소설리스트

한계 찢는 천재마법사-31화 (31/366)

31화 언데드 (3)

거체의 언데드인 무덤 파수꾼이 다섯, 리치가 셋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통곡의 기사. 하나같이 쉽게 볼 수 없는 언데드들이다. 거기다 수백이 넘는 스켈레톤 군세까지.

정면으로 맞붙었다간 대응할 새도 없이 휩쓸릴 것이다.

그러니까.

‘가둬 버린다.’

쩌저저적.

주변이 흔들리며 이내 공동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지하 깊이 묻혀 있는 작은 세상이 한 사람의 뜻대로 움직였다.

“말도 안 돼…….”

토벌대는 베르덴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갈리아크와 서로 경쟁하며 언데드를 사냥하는 광경을 봐 왔으니까. 이리스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건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시시각각 뒤바뀌는 공간. 단순히 공동을 힘으로 엎어 버리는 게 아니었다.

휩쓸린 스켈레톤들은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갇혀 버렸고, 벽을 부술 수 있는 리치와 무덤 파수꾼 그리고 통곡의 기사를 뭉치지 못하게 떨어뜨렸다.

숫자의 폭력을 단숨에 무력화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베르덴의 계산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마법사들은 전율했다.

“어, 바닥이……!”

토벌대들이 서 있던 지면 또한 갈라졌다.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이 토벌대들이 세 집단으로 나뉘었다.

이리스가 멀어져 가는 베르덴을 보며 소리쳤다.

“선배님!”

“도착하면 리치가 있을 거다. 각자 알아서 처리해. 통곡의 기사는 내가 맡는다.”

마력에 실린 목소리가 퍼져 나가 토벌대들에게 들려왔다.

그제서야 베르덴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토벌하려는 거다. 이 수많은 언데드를.

미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미 그들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토벌대들은 베르덴이 지정한 각자의 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갈리아크가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봤다.

“이것 참, 놀랍기는 한데…… 저놈을 네가 상대한다고? 저건 이미 내 사냥감으로 정해 뒀다.”

“네 건 따로 있다.”

“응? 그게 뭔 헛소……?!”

베르덴이 손짓하자 갈리아크의 바닥이 지하로 꺼졌다.

뭐라 말할 틈도 없었다.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인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바들바들 떨고 있는 한 성직자와 다섯 마리의 무덤 파수꾼이 있는 방에 도착해 있었다.

갈리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나한테 짬 처리를 시켜?’

이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유쾌했다. 그가 강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제일 맛있는 걸 가져간 건 용서 못 하지.’

도끼를 쥔 갈리아크가 무덤 파수꾼을 바라봤다.

백금 등급 모험가라 할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할 언데드는 아니지만, 갈리아크는 베르덴과 싸우고 있을 통곡의 기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얼마나 즐거울까.

“어이, 믿음쟁이.”

“저, 저요?”

“불 꺼지지 않게 잘 봐라.”

아, 성직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찰나의 공포에 압도되면 안 된다느니 지껄여 놓고 저렇게 겁에 질린 모습이라니. 역시 말뿐인 놈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

갈리아크가 고함을 내지르며 무덤 파수꾼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베르덴이 구성한 공간 중 최하층.

강대한 언데드와 도살자의 전투, 그 여파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 * *

이리스 팀에겐 네리엔과 마로스를, 록스 팀에겐 고드를 그리고 나머지 비르온 영지의 모험가들에겐 성직자를 배정했다.

금 등급 모험가가 있으니 상대가 리치라고 해도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토벌이 가능할 것이다. 베르덴이 더 해 줄 건 없었다.

‘……좀 지치는군.’

마력회로의 과부하. 이렇게나 대규모적으로 섬세하게 마력을 조작하는 건 역시 3위계의 회로로는 무리였다.

마법서를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공간 지각 능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불가능했을 기예.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댄 베르덴이 숨을 깊게 토했다.

저 앞에 있는 통곡의 기사와 시선을 마주했다.

붉은빛이 고요히 그를 보고 있었다.

‘공격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 건가?’

그럼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회로를 진정시키고 있자, 통곡의 기사가 턱을 달싹거렸다.

그 이름답게 또다시 비명이라도 지르는가 싶었으나 마치 혼잣말이라도 하듯 중얼거리는 모습이었다. 베르덴이 귀를 기울였다.

[돌아…… 가야…….]

‘목소리?’

어눌해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의미를 담은 소리였다.

그것에 의문을 느끼기도 잠시, 언데드가 베르덴을 향해 검을 곧게 세웠다. 눈 안에 있는 불꽃이 거세게 불타오르며 끈적한 증오를 내뿜었다.

‘온다.’

쿠웅!

통곡의 기사가 지면을 부수며 달려들었다. 자세도 뭣도 없이 살기를 흩뿌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흉포함 그 자체.

고통을 억누른 베르덴이 날아올랐다.

<다중 화염 화살>

불꽃이 폭발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통곡의 기사를 덮쳤다.

당연히 이걸로 죽을 리는 없었지만, 언데드인 이상 화염에 면역이 없을 터.

불길 속에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체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유의미한 피해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더 강하게.’

화염과 바람. 두 원소를 합쳤다.

<폭염의 화살>

굉음이 터지며 뜨거운 열기가 공간에 휘몰아쳤다.

통곡의 기사. 어느 정도의 강함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마법사인 베르덴이 어쭙잖게 근접전을 벌였다간 단칼에 목이 날아갈 수 있다.

그에게 있어 최선은 원거리에서 펼치는 마법 폭격으로 그대로 소멸해 버리는 것.

콰아앙! 콰앙! 콰아앙!

멈추면 안 된다. 놈이 견디지 못하고 반응할 때가 기회다.

이렇다 할 대응도 없이, 연이은 마법에 직격당한 통곡의 기사의 다리가 순간 비틀거렸다.

‘지금!’

<파이어 스피어>

불꽃의 창이 몸체를 꿰뚫었다. 그리고 폭발했다.

놈이 입고 있던 갑옷 중앙에 큰 구멍이 뚫렸다. 그러자 주춤거리던 통곡의 기사가 허리를 젖히더니, 들고 있던 검을 베르덴을 향해 내던졌다.

피하기엔 너무 빠르다. 그러나 마력방벽을 펼쳐선 안 된다.

검을 던진 통곡의 기사가 지금도 베르덴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마력방벽이 깨져 버리면 회로에 크게 무리가 올 터.

그 빈틈을 잡힌다면 베르덴의 승산은 희박하다.

‘어쩔 수 없다.’

카가가각! 스태프로 검을 비스듬히 막아 냈다. 막대한 충격에 장기가 뒤흔들리고, 팔이 비명을 질렀다.

뒤이어 목을 향해 날아오는 언데드의 손아귀를, 가까스로 허리를 숙여 피해 냈다. 일부 잘려 나간 잿빛 머리칼이 휘날렸다.

<충격파>

콰앙! 멀리 날아간 통곡의 기사가 벽에 처박혔다.

그런데도 놈은 움직였다. 주요 부위를 부수면 죽는 기존의 언데드와 달리, 육체를 완전히 붕괴시키지 않는 이상, 저 증오를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해 주지.”

급격한 마력 소모와 회로의 과부하로 인한 두통. 팔뼈는 부러졌는지 시큰거린다. 그러나 여력은 충분하다.

사선을 넘어 역천을 이룬 베르덴에겐 고통 따위는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파도>

거친 물결이 사방을 덮쳤다. 수중에 갇힌 통곡의 기사가 분노한 듯 이리저리 검을 휘둘렀다. 파도가 갈라지고 다시금 합쳐졌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베르덴이 마력을 전개했다.

<겨울 돌풍>

더블 캐스팅. 양옆에서 휘몰아친 혹한의 바람이 파도를 얼렸다. 그렇게 얼음 속에 갇혀서야 겨우 언데드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제 남은 건 베르덴이 가진 마법 중 최강의 일격을 쏟아 내는 것뿐.

‘하지만 뇌격은 안 돼.’

얼음에도 전기는 통하긴 하나, 방해가 되는 요소가 더 크다. 언데드는 생명체가 아니니 효과도 적고.

지금 필요한 건 관통력이다. 얼음과 언데드를 동시에 꿰뚫을 창.

<어스 스피어>

<어스 스피어>

<어스 스피어>

세 개의 마법에 이은 마력집중.

바위의 창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까지 마력을 집어넣었다. 사거리는 짧아지나 위력은 그 이상으로 높아졌다.

쩌적. 얼음에 균열이 생기며 통곡의 기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베르덴이 눈을 번뜩였다.

두개골, 갈비뼈, 골반. 언데드를 이루는 골격 중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노리고 강력한 마법이 날아들었다.

피할 수 없는 두 번째 죽음.

언데드의 눈구멍에 있는 두 불꽃이 흔들렸다.

* * *

그는 왕국의 군인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백인장까지 오른 그의 원동력은 하나뿐이었다.

오직 가족.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버티고 또 버텨 동료들과, 부하들과 함께 다 같이 돌아가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쟁 도중, 우연히 왕국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왜 리비안트 공작이 왕국에서 독립했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끔찍한 비밀을.

그 대가는 참혹했다.

그와 부하들은 왕의 직속 기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숨이 붙어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부 생매장되었으니까.

그는 자신의 눈앞에 쌓여 가는 흙을 바라보며 증오를 불태웠다. 가족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언데드로서.

흙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는 손가락으로 조금씩 흙을 파냈다. 1년이 흐르고 또 2년이 흐르자 다른 언데드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마침내 지상까지 닿았다.

드디어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원한과 증오를 되갚을 때가 왔는데.

‘나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남아 있는 인간이었던 시절의 그 감정과 기억의 편린이 언데드의 몸을 움직였다.

‘돌아가야 해.’

그는 죽을 수 없었다, 또다시.

* * *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망자의 울음소리가 공간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 여파에 얼음이 깨지고, 창의 궤도가 틀어졌다.

콰자자작!

얼굴의 반이 날아가고, 다리가 너덜거렸으며 박살 난 왼쪽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럼에도 통곡의 기사는 전보다 더욱 진한 살기와 증오를 내뿜고 있었다.

“그림자가…….”

주위의 어둠이 놈에게 끌려들어 가 형체를 이루었다.

흑색 기사.

어둠을 두른 언데드는 한층 더 커졌고, 되찾은 검 또한 어둠을 품고 있었다. 한쪽 팔은 없어진 채 그대로였다. 검은색 일색인 놈의 두 눈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검을 질질 끌며 한 발자국씩 천천히 다가오는 그 압박감에, 베르덴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지끈.

베르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신을 갉아먹는 격통 속에서 저 언데드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순간, 지면이 크게 흔들렸다.

진동은 멈추지 않고 베르덴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콰아아앙! 벽을 부수고 날아온 도끼가 통곡의 기사에게 쇄도했다. 직격당한 언데드가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그 충격에 가슴을 감싸고 있던 어둠의 일부가 깨어져 떨어졌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특히 내 밥을 탐내는 놈들을 혐오한다고.”

“……갈리아크?”

온몸이 잔상처로 가득해 피투성이가 된 도살자.

그가 벽을 부수고 베르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아아아아…….

머리가 떨어져 나간 리치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네리엔은 그 잔해마저 발로 짓밟아 부쉈다.

“끄, 끝난 건가요?”

“그래, 끝났어.”

“예, 확실히 죽었습니다.”

그 대답에 이리스와 그녀의 동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리치의 토벌 위험도는 최소 금 등급 이상. 이리스와 동료들의 실력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언데드였다. 만약 네리엔과 마로스가 없었다면 리치에게 꼼짝없이 죽었겠지.

눈앞의 위험이 사라지자, 이리스는 베르덴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요?”

“글쎄. 죽었을 수도 있고, 살았을 수도 있지. 그리고 지금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야.”

베르덴이 만든 공간은 꽤나 컸지만 나갈 출구가 없었다.

갈리아크나 고드가 있으면 부숴 보기라도 해 봤을 테지만 이들에게 그런 화력은 없었다. 최악을 생각하자면 이대로 질식해 죽거나,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선배님…….’

이리스는 왠지 짐이 된 것 같아 울적해졌다.

솔직히 열심히 싸웠지만 도움보단 방해가 되었다는 생각이 컸다. 아무리 짐꾼 역할로선 최선을 다했을지라도.

만약 따라오지 않았다면 베르덴이 홀로 통곡의 기사를 상대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를 텐데.

의미 없는 결과론적 이야기다.

그러던 도중, 천장에서 큰 진동이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네리엔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벽에 붙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주위 모든 것이 뒤흔들렸고, 이내 천장이 무너졌다.

“꺄아아아악!”

“뭐, 뭡니까?!”

먼지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그 안에서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먼지가 걷히자 두 명의 음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피투성이가 된 갈리아크와 통곡의 기사. 둘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일격을 주고받았다. 도끼와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지만, 이리스만은 그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선배님은 어딨지?’

설마 죽은 건……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렇게 확신할 때, 무너진 천장 사이에서 마법이 날아왔다.

까앙! 언데드의 다리를 강타한 바위의 창. 어둠으로 이뤄진 갑옷은 뚫지 못했지만 무릎을 꿇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이어 도살자의 발길질에 통곡의 기사가 멀리 나가떨어졌다.

천장에서 내려온 베르덴이 바닥에 착지했다.

“뭐야, 위에서 자고 있는 것 아니었나? 응?”

“앞이나 봐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누군가에 대한 깊은 증오심이 묻어난 통곡 또는 비명.

비틀거리며 일어선 언데드에게서 서늘한 죽음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허억, 허억…….”

“루아스시여, 루아스시여……!”

머리털이 쭈뼛 서고 호흡까지 흐트러지는 기분. 모험가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얼어붙었고, 성직자는 자신들이 신앙하는 빛의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나 그들을 구원해 주는 건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크하하하. 한낱 시체 따위에게서 이런 즐거움이라니. 어이, 애셔. 이 몸이 앞장설 테니까 뒤에서 그 잘난 마법이나 잘 써 봐. 내 뒤통수 맞히지 말고 말이야, 응?”

“노력은 해 보지.”

언데드와 도살자 그리고 마법사.

이 셋의 전투는 끝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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