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아넥시 방어전
모리츠가 발사한 우렁찬 신호음의 메아리가 잦아들 무렵, 이변이 일어났다.
아, 이변은 아니다. 전부 계획된 작전이니까.
멀리서 아련하게, 날카롭고 빠른 박자의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거의 동시에 하나가 더. 성문을 중심으로, 오른쪽 끝과 왼쪽 끝에서 들려오는 소리.
돌격 나팔 소리는 은은한 말발굽 소리가 되고, 점점 또렷해졌으며 이윽고 함성이 더해졌다.
보이지는 않지만, 성벽 아래에서 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던 적들은 당황해서 주위를 살펴보고 있겠지.
좌측과 우측 양쪽에서 각각 100명의 기병들이 칼을 뽑아 들고 질주한다.
“너는 왼쪽, 너는 오른쪽을 살피다가, 지켜보는 민병대 아저씨들이 없는데 적이 올라오면 이 호각을 세 번 불어. 삐익, 삐익, 삐익 하고.”
나는 남은 전령 꼬맹이들에게 호각을 맡기고, 1층으로 뛰어 내려간다.
“지나갈게요!”
내가 갑자기 성문 앞 대기소를 가로지르자, 부상자를 살피며 전투 물자를 옮기던 여성 지원자들이나, 치료를 받으며 대기하고 있던 부상병들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콘도티에레 에트!”
아쥬흐가 나를 부른다. 그녀 쪽을 바라본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춰 선다. 부상병들을 돌보기 위해 빌려 입은 품이 넉넉한 하얀 옷이 피로 젖어있다. 그만큼 많은 병사들을 치료하고, 살려냈겠지.
종일 고생을 해서인지 왠지 해쓱해 보였고 틀어 올린 화사한 금발도 땀에 젖어 흐트러져 있었으나, 지금까지 내가 본 어떤 그녀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아쥬흐 공, 급한 환자는 없습니까?”
“지금 당장은··· 그래요.”
“지금 트랑카벨의 기사들이 돌격하고 있습니다! 아쥬흐 가문의 일원으로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런가요? 그래야죠!”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손에 묻은 피를 천으로 쓱쓱 닦더니 나를 따른다.
“에밀리아, 성벽으로 올라가자.”
“예, 마님.”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체구의 소녀가 가방을 붙잡고 뒤따른다. 가방에는 깨끗한 붕대가 산더미처럼 들어있었다. 아쥬흐를 보조하는 간호사 역할인 모양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대단한데!
나는 씩 웃어 보인 후, 앞장서서 계단을 달려 올라간다. 오랜 세월로 닳고 닳아 울퉁불퉁한 비탈이 되어 있는 계단 따위는 나를 막을 수 없다.
한달음에 성벽 위까지 올라온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야아아아!”
“멈추지 말고 그대로 달려서 포위해!”
“트랑카벨을 위하여!”
함성소리와 명령소리가 뒤섞여 울린다. 왼쪽에서 파스칼 드 뒤랑의 1중대 100기, 오른쪽에서 마브리엘 마슈레의 2중대 100기.
퀴레이스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기병 200기가 전장을 어지러이 달리며, 패닉에 빠진 적병들을 마구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기병들이 양쪽 측면에서 후방을 감싸듯 폭풍처럼 몰아치는데, 보병이 어디를 도망가겠는가?
적은 성벽에 오르기 위해 대열이 흩어진데다 갑작스러운 압도적인 기병의 출현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트랑카벨 기병대의 완벽한 기습이다! 예상하지 못한 폐급 용병 나부랭이는 전혀 상대가 안 되지!
모두들 미리 내린 지시대로 잘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대열 갖출 시간도 아깝다, 총을 쏘기 위해 멈추는 것도 사치다, 검을 뽑아 들고 돌격하라고 전했었다. 이 지시는 지금 생각해도 아주 적절한 지시였다. 어릴 때부터 말과 함께 자란 태생 귀족으로 이루어진 트랑카벨의 신생 기병대는, 총을 다루는 데는 초보였지만 마상 검술에는 달인들이었으니까.
“으아아아! 살려줘!”
공포로 제정신이 아닌 총병이 화승총도 팽개치고 달아나는 것을, 기사 하나가 스치듯 지나간다. 어깨와 목 사이, 흉갑이 가려주지 못하는 부위에 정확하게 칼자국이 난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단속적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목을 움켜쥐고 쓰러진다.
“크헉, 쿨럭!”
총병 하나를 무자비하게 끝장낸 기사는 그대로 속도도 늦추지 않고 다음 희생자를 찾아간다. 성문 앞의 아비규환 현장, 표적은 아직 수백이나 남아있다. 누군지는 몰라도 전문가의 솜씨다. 말의 흔들림이 몸에 전해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1초 후의 상대 위치와 자신의 높이 변화를 계산할 수 있는 능숙한 기수의 솜씨.
통상 기병의 검이라고 하면 베기 중심의 예리한 날의 끝이 휜 곡도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기사 검 형태의 직검 역시 훌륭한 경쟁력이 있다. 오히려 서로 갑옷으로 잘 무장된 상태이고 기병의 높이나 속도로 인한 충격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나는 직검 쪽을 높게 사고 싶다.
그래서 주 장비로 총을 도입하네, 갑옷을 새로 해 입히네 하고 남의 귀한 돈을 펑펑 써대면서 야단법석을 부리는 와중에도 보조 무기는 ‘익숙하신 검 가져오세요.’라고 한 것이고. 20대 기사만 해도 검술을 10년 이상 수련했고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쓰고 있을 텐데, 그걸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지.
대체로 베기 중심의 곡도에 비해 무게중심이 손잡이 쪽에 가까워 칼끝의 컨트롤이 쉽고 형태 특성상 충격력을 전달하기에 더 좋다. 상대가 막아도 골절이나 낙마 등 추가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넘어뜨린 상대 갑옷 틈에 쑤셔 넣어서 막타 치기도 좋고···.
“뭉쳐라! 살고 싶으면 뭉치란 말이야!”
성문 바로 앞에 방패병 몇이 뭉쳐 있었다. 남들보다 확연히 무장이 잘 된 보병 몇이 방패를 맞대고 마름모꼴 진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근처에서 허우적대던 용병 몇이 끼어든다. 아, 이럼 안 되는데··· 지금은 20명 정도지만 여기 패잔병들이 더 들러붙어서 덩치가 커지면 나중에 몰아붙이기 피곤해진다.
권총 자루를 만지작거린다. 거리가 애매한데, 맞출 수 있을까. 두 발 쏘면 한 발 정도는 맞지 않을까··· 시발 갑자기 라니오타에서 갑옷 관통 시험할 때 빗나간 트라우마가 비수처럼 심장에 꽂힌다. 시발 또 못 맞추면 쪽팔려서 성벽에서 뛰어내릴 듯. 지금 손 떨림 상태는 괜찮은데··· 나는 몇 번 손을 접었다 폈다 한다.
빠캉!
내 고민은 상쾌한 총성과 함께 날아갔다. 검을 치켜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용병이 벼락 맞은 듯 움찔하더니 그대로 쓰러진다. 잠시 단단하게 모여들던 마름모꼴 진형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이어서 어정쩡하게 모인 무리를 향해, 성벽 위 민병대가 쏘는 화살이 쏟아진다. 하긴, 이 위치에서 기병 막겠다고 방진 짜면 한쪽에서는 등짝에 화살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방진을 짜냐. 성벽 위에서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지휘자도 잃은 용병들이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한다.
“모리츠!”
“콘도티에레, 제가 왔습니다!”
“완전 수고했어! 다친 데는 없지?”
“멀쩡합니다!”
모리츠가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재장전을 시작한다. 조금 쉬어도 될 텐데, 정말 부지런하구나 이 녀석도. 든든한 옛 동료가 옆에 있다는 건 정말 힘이 나는 일이다.
“이것이··· 전쟁이군요.”
성가퀴 너머로 조심스럽게 전장을 살피던 아쥬흐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다. 고정한 머리 타래에서 흘러나온 금발이 세찬 맞바람에 휘날리고 있음에도,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전장의 광경에 흠뻑 빠져 있었다.
유혈 장면이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조금 전까지 다친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피 칠갑을 하다 왔는데 말이지. 이제와서 피가 무섭겠어.
“이것이 ‘트랑카벨의 승리’입니다.”
내가 말을 덧붙이자, 아쥬흐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곧 내가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깨달은 듯, 마주 보며 미소를 짓는다.
“그렇네요··· 아넥시 사람들을 콘도티에레 에트가 구해주셨군요.”
“아니죠, 트랑카벨이 구한 겁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요.”
아쥬흐는 자신이 가진 ‘힘’을 자각하고 있을까. 지금 계획대로 간다면, 트랑카벨 가문은 엘랑키아 전체에서 단일 가문으로는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니까.
“모리츠, 돌격대 준비를 부탁해!”
“오오, 개문의 시간입니까! 돌격대 집하압!”
“으읏!”
명백하게, 내 별것 아닌 명예를 걸고 말하지만, 총소리보다도 모리츠의 목소리가 더 크다. 어마어마한 박력의 외침이 성벽을 휩쓸고 지나간다.
“돌격대 집합!”
“성문으로 갑시다!”
기병 돌격 이후 성벽에 달라붙는 적이 없어졌기 때문에 잠시 전투의 방관자가 되었던 민병들이 힘차게 외치며 우르르 성벽 아래로 내려간다.
전투 전, 미리 각 구역을 맡은 구역장들에게 전달했었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기면 성문 열고 돌격합니다, 각 인원의 절반을 돌격대로 뽑아 주세요’라고.
당시 내 말을 듣던 구역장들은 그게 가능한지 반신반의하는 모양이었는데, 사기가 오른 모양을 보니 이제는 다들 믿는 거 같다.
“모리츠 가자!”
“네, 콘도티에레!”
모리츠가 먼저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나도 내려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쥬흐에게 말한다.
“아쥬흐 공, 유리하기는 해도 백병전이라 부상자가 좀 나올지도 모릅니다. 힘드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세요, 콘도티에레 에트.”
“다녀오겠습니다!”
나도 성벽 아래로 내려간다. 먼저 내려온 민병들이 모여 있었다. 상당수가 전투의 흔적이 역력하다. 피투성이에 지쳐 보였지만, 내 명령만을 기다리는 그 눈빛은 활활 불타고 있었다.
지휘관 경험으로는 전투 직전의 과도한 흥분은 좋지만은 않다는 입장이지만, 이긴 전투에 쐐기를 박아 넣는 돌격대로서는 나쁘지 않다.
“성문 개방!”
내 외침에, 대들보처럼 묵직한 빗장이 내려지고, 지지직 하는 모래 끌리는 소리와 함께 성문이 천천히 열린다. 워낙 묵직한 탓에, 네 명이 달라붙어서 당기는 데도 오래 걸린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성벽 안쪽에 한 줄기 빛이 비치더니, 점점 넓어진다.
“루, 루옹 씨 아닙니까?”
“명령을 어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성벽은 믿을 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왔습니다.”
나는 맨 앞에 서 있는 루옹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구역장은 가능하면 성벽의 위치를 지켜 주었으면 했는데. 동료들처럼 열정으로 타오르는 눈을 가진 그는 무식하게 생긴 날이 넓고 깊은 벌목용 도끼를 들고 있었다. 이런 게 이 마을에 왜 있지, 주변에 큰 나무도 없는데···. 날 끝에 엉겨 붙은 핏덩이와 머리카락 비슷한 것이 묻은 것으로 보아, 오늘 최소 한 번 이상 원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사용되긴 한 것 같다.
“콘도티에레, 오늘 지휘 정말 대단했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광경은 처음 봤어요!”
루옹이 외치자 민병들 사이에서 시끄럽게 감탄의 외침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돌격대원은 대략 반수니 한 150명쯤 되어야 할 텐데, 이제 보니 아무리 봐도 200명은 되어 보인다. 으음, 저 뒤편에 창 들고 슬그머니 참여한 아주머니 대원들도 보이는데.
뭐 시발 이렇게 됐는데 어쩔 거야. 되돌려 보낼 수도 없고!
“이렇게 된 것, 루옹 씨에게 선봉을 맡기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오오, 루옹 출세했네!”
“루옹 대장!”
아넥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지켜보던 그의 얼굴이 생각난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목각인형 같았던 얼굴. 지금은 전투의 흔적으로 흐트러진 상태이나, 강한 생명의 열기가 느껴진다. 부디 다치지 않고 전투를 끝낼 수 있기를.
“그럼 가는 겁니다 루옹, 돌격 앞으로!”
“돌격!”
“우와아아아아!”
“이야아아아!”
엄청난 기세로, 민병들이 성문을 빠져나가 달려 나간다. 수성전 도중 개문 출격이라··· 그룬발트나 주디칼리에서도 해본 적 없는 지휘인데, 이렇게 한 번 해보는구나.
“콘도티에레, 말을 가져왔습니다!”
나는 모리츠가 가져온 말을 타고 민병들이 빠져나간 뒤를 쫓는다. 성문 밖으로 빠져나가자, 마치 줄여 놓았던 스피커 볼륨을 갑자기 높인 것처럼 전장의 소음이 확 하고 귀를 때리며, 피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내 역할은 ‘전장의 흐름 정리’이다.
승리와 기세에 취해 맹목이 된 병사들, 게다가 민병대라 대부분 전투 경험도 처음일 테고 그들을 이끌 중견 지휘관도 없으니까. 기세가 한 군데 적체되면 효율이 안 나오고, 엉뚱한 데서 한숨 돌린 적이 되살아나 그걸 정리하느라 또 불필요한 피해가 누적될 수 있다.
...고 생각했지만, 말 타고 한 번 돌아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부채꼴 형태로 알아서 잘 퍼져나간 민병들은 그나마 성벽을 등지고 기병의 돌격을 버텨보려던 용병들의 희망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었다.
그리고 기세를 못 이긴 성벽 위의 돌격대가 아닌 병사들도 적이 남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전투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러니 앞에서 기병대에 치이고 뒤에서 민병들이 돌진해 오는데 용병들의 멘탈이 남아나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다.
솔직히 개판이지만, 기세가 이렇게나 터졌는데 막을 이유도 없고 막을 방법도 없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끄으아악!”
개개인의 전투력은 약탈자들이 더 강하고 장비도 좋을지 모르나, 부대로서의 협력이 완전히 깨진 상태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민병들을 막진 못한다.
한마디로 다구리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지. 세 명에서 용병 하나를 눕혀놓고 두드려 패 피떡을 만들어 놓은 민병들이 다음 희생자를 찾는다. 게다가 이 민병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들인 만큼, 목숨이 걸린 이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민병들은 불리한 상황에서는 역할이 제한되지만 유리한 상황에서는 어떤 베테랑도 부럽지 않다.
“저 새끼 도망친다!”
“넘어뜨려! 어어, 그리 간다!”
이건 뭐, 몰이 사냥이 되어 버렸네. 적 입장에서는 요행히 벗어나도 먹이 노리는 상어처럼 달려드는 기병을 마주할 뿐이다. 어느 쪽이나 믿음직하네.
흐름 정리는 됐고, 그럼 다음 단계로 가자.
내 눈은 저 앞의 창병 방진을 향했다. 100명 정도? 아까 모리츠가 120명이라 했던가. 그들은 놀랍게도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은 판단이다. 어차피 저기서 대형을 풀고 도망쳐 봤자 기병대에 따라잡힐 뿐이지.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중 하나. 대형을 유지하고 천천히 전장에서 빠져나가거나, 마찬가지로 대형을 유지하고 아예 전장으로 들어와 생존한 패잔병들을 흡수해 덩치를 불리거나.
적 지휘관은 후자를 선택한 모양이다. 실제로 창병 방진은 승패가 어지간히 갈려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되어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 그룬발트에서도··· 전투에서 완전히 패배해서 다 털린 와중에 방진을 유지하면서 이틀에 걸쳐서 도망친 기억이 있다. 아드레날린이 넘쳐나서 졸린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싸우던 전우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래서 창병을 제외한 나머지 병종들을 분리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총병이 아주 소수만 창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격해도, 공격 측에서는 큰 부담이 걸린다.
그래서 기병대에는 ‘총병들을 가장 먼저 섬멸하라’라는 신신당부를 전했었고 내가 보기에는 거의 완벽하게 실행된 것 같다.
그럼 뭐, 안타깝지만 약탈자들에게 희망은 없다.
약탈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전투였다면, 리니 능선 전투에서처럼 항복을 권고하고 포로를 잡았겠지.
하지만 지금 이 전장에 나선 민병들의 상당수가 이놈들에게 가족과 이웃, 재산을 잃고 피난 온 주변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도덕적 판단을 강요할 수 없다.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온전히 피해자들의 몫이다.
그들이 판결하기 쉽게 하려면, 우선 적을 철저하게 부숴 놔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