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전쟁의 바람
“크아아아악! 크이이이엑!”
그냥 솥을 손 위에 내려놓았을 뿐이 아니다. 남자는 뜨거운 솥을 짓이기듯이 빙글빙글 움직였다. 보세낙은 조금 전까지 불 위에 있었던 뜨거운 솥의 철 바닥에 손등이 익는 느낌과 무거운 쇠솥에 손바닥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함께 받으며 비명을 질렀다.
멀쩡한 오른손으로 솥을 밀어 보려 했으나, 남자가 힘을 주어 잡고 있으므로 밀리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뜨거운 솥을 밀치려다가 오히려 오른 손바닥과 팔목에 시뻘겋게 화상을 입고 말았다.
10초쯤 지나 남자는 솥을 치워 주었다.
“으흑, 으흐흐흑!”
보세낙의 왼팔은 무거운 솥에 짓눌려 도저히 인간의 손이라고 하기 힘든 형태를 하고 있었다. 뻘겋게 익어 버렸고, 손가락 마디 마디가 박살 나서 이상한 방향으로 저 혼자 흔들리고 있었으며, 손등의 뼈가 내려앉아 기이하게 평평해져 탁자와 일체가 되어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요! 나는 신의 사자란 말이오!”
오른손으로 왼 팔목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친다. 그의 썩 곱지는 않은 목소리의 절반은 울음이나 다름없다.
“신의 사자는 지랄.”
촤아악! 남자는 그대로 솥을 엎었다. 보세낙의 방향으로. 고기와 채소 조각이 섞인, 약간 기름기 있는 걸쭉한 액체가 고블린을 닮은 사제의 몸에 쏟아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이번 비명은 좀 더 길고 높았다. 손이 아픈 것도 잊고 온몸에 끼얹어진 뜨거운 국물을 털어내려던 보세낙은 왼손의 통증에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른다. 끙끙대며 단순하지만 제법 고급스러운 재질로 된 수도복을 벗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비쩍 말라 볼품없는 그의 상체는 이미 벌겋게 익어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었다.
“너 뭐야? 너! 으으으윽!”
무심코 손가락질을 하려던 빈약한 반라의 보세낙이 다시 비명을 지른다.
“이게 무슨 짓이냐! 신께서 너를 어떻게··· 끄아악!”
“아주 끝까지 아가리를 닥치지를 않는구나. 그래 멋대로 떠들어 봐라, 빌어먹을 설교자 놈아.”
남자는 보세낙의 오른 손목을 틀어쥔다. 벗어나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평생 기도만 하여 비쩍 마른 사제의 손목과, 평생 몸 쓰는 일을 한 것 같은 남자의 손목은 거의 어른과 아이 차이가 난다.
움푹 들어간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눈물이 맺혀있고,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에는 주름이 잔뜩 잡혀있다. 어째서 이 얼굴을 처음 봤을 때는 온순한 농부의 얼굴이라고 착각했을까, 순간 우드득 소리와 함께 보세낙의 손목이 부러진다. 다시 한번 끔찍한 비명이 오두막을 흔들었으나 메아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도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사원에 나가 성사에 참여하고 사제가 전하는 신성한 말씀에 귀 기울이는 평범한 촌놈이었다.”
쾅! 손목이 부러졌든 말든, 남자는 보세낙의 몸을 거칠게 끌고 가 평평한 벽에 팽개치듯 밀어붙인다. 부러진 손목이 당겨진 보세낙이 듣기 싫은 비명을 질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주신이 자기 분신이라는 검의 대리인을 왜 고통받으며 죽도록 내버려 두었는지는 이해가 잘 가지 않더군.”
“분신? 분신이라고? 어리석은 놈! 검의 대리인은 주의 분신이 아니다. 주와 영과 대리인은 모두 하나의 신성을 공유하여 계승하는··· 크아아악!”
“얼마든지 떠들어라. 다 들어주마.”
“불경한 놈! 어찌 신의 사자를 이렇, 끄아아아악! 무슨 짓이냐! 하지마!”
“그림자의 악령들이 대리인을 이렇게 했다더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나?”
“캬아아아아아아악!”
남자는 왼쪽 팔뚝으로 보세낙의 목을 벽에 고정한 채로, 팔목에 못을 박았다. 쾅, 쾅, 쾅, 세 번 만에 못이 끝까지 들어갔고 비명소리는 단계적으로 높아져 갔다.
“검의 대리인이 칠일 밤낮을 버틴 끝에 빈사에서 돌아와 신의 계시로 그림자를 멸하였도다!”
남자가 발악하듯 외친다. 남자의 양쪽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수염을 적시고 있었다. 부르르 떨리는 입가에서 침이 흘러내린다.
쿵!
“꺄아으악!”
쿵! 쿵! 쿵!
“끄아악, 갸아아아아!”
반대편 팔목에도 못이 박힌다. 남자가 보세낙의 턱을 받치고 있던 팔을 치우자, 몸무게 때문에 몸이 밑으로 축 늘어지고 필연적으로 그 무게가 양 손목에 박힌 못에 실린다.
마치 키가 작은 어린아이가 양손을 부모에게 붙잡혀 들리는 듯한 자세.
“나는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
망치를 탁자 위에 던져 버리며, 남자가 으르렁대듯 말했다.
“짐승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 가난하지만 먹고는 살 수 있었다. 숲에서 캔 약초도 큰 영지에 내다 팔면 돈이 꽤 됐고.”
그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흐느낀다.
“약초를 팔러 가게 되었는데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혹시 몰라 블랑독에 사는 장모님 댁에 아내와 아들을 맡겼었지···.”
남자의 흐느낌이 더 심해진다. 남자는 어깨로 울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려 얼굴이 엉망이 되고 엉망으로 자란 수염을 적신다.
“네가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겠지. 빌어먹을 사제놈! 아들과 장모님은 잿더미 속에서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누라는 찾을 수 있었다.”
분노를 참을 수 없는지 탁자 위에 박살 난 접시 조각을 집어 들어 보세낙에게 던졌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조각은 보세낙의 머리 근처 벽에 명중하며 산산조각이 났다.
“네 놈들이 줄에 매달아서 모욕하고 죽였으니까! 몸에 난 칼자국이 대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었다고! 내 아내는 정순파인지 뭔지 그 이단이 뭔지도 몰랐···.”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남자의 거듭된 폭언, 익숙해진 통증, 그리고 어정쩡한 교리 문답에 가까운 상황이 보세낙의 광신성에 불을 붙였다.
“주신의 지상 대리인, 법황 성하께서 블랑독 전체에 파문을 내리셨다! 파문을 막을 방법은 스스로를 정갈히 하며 이단자를 추토하는 것뿐! 그러나 블랑독의 불신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미, 미친 새끼···.”
“너 같은 신성모독자의 아내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죽을죄, 영원히 신의 발아래에 이르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돌며 고통받으리라!”
“네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나!”
“물론! 누구보다도 주신께 충실하고 교단에 충실한 모범적인 인간이다!”
선을 넘는 광신성은 남자를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었다.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던 그가 너무 어이가 없어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이런 자식 때문에 내 가족이···.”
“파하하하! 천상의 주신께서 나를 보고 계시다! 이단들을 토멸하다 힘이 부족하였으나, 불신자에 의해 고통받는 이 모습을!”
“그래, 신은 존재하지, 동의한다.”
보세낙의 가슴에 무딘 부엌칼이 박혔다.
“크허어어억!”
남자는 그대로 칼을 눌러 잘랐다. 우드드득,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부엌칼이 보세낙의 겨드랑이에서 반대편 옆구리까지 베었다.
“허억, 흐어어어···.”
다시 반대로, 또다시 갈비뼈가 부러지는 우드득 소리가 난다. 그 서슬에 허파를 다쳤는지 보세낙의 비명소리에서 힘이 빠진다.
“신이 없었다면, 오늘 저녁에 너를 내 집으로 보내주지 않았을 테니까.”
남자는 살점이 묻어난 부엌칼을 아무렇게나 던진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수습하고 막 집으로 돌아온 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계속 아내와 자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화를 내고, 복수하고 싶었지만 어디 가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죽자. 불을 질러 자기 가족이 살았던 흔적을 모두 지우고 목숨을 끊고자 했다.
그런데,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그것은 남자가 미워하고 해하고자 했던 복수의 대상이었다.
이보다 완벽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남자는 댈 수 없었다.
“키에에에엑··· 그, 그만....”
길게 X자로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물처럼 후두두둑 쏟아져 내린다.
“주, 죽으어···.”
고통으로 툭 튀어나온 보세낙의 눈이 부르르 떨린다. 억지로라도 숨을 쉬기 위해 가늘고 거친 입술이 기분 나쁜 짐승의 주둥이처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죽여달라는 것인지, 죽어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어떤 의도의 말을 하려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까가갸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단말마의 순간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어떤 비명보다도 크고, 기괴한. 도저히 인간이 내는 소리로는 들리지 않는 비명.
아이러니하게도 최후의 순간, 보세낙이 기괴한 비명을 지르게 만든 것은, 혹시라도 사후에 주신의 곁에 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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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카냑으로 귀환한 우리는 환영을 받았다. 아넥시에서 있었던 승리는 벌써 부정확하게나마 널리 알려져 있는 모양이다.
내가 ‘부정확하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소식이 심하게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무슨··· 내가 일대일 대결을 벌여 적장의 목을 단발에 관통시켰다나 뭐라나. 여기가 서부 영화 세계관이냐? 내가 황야의 총잡이야?
“오오, 당신이 아넥시의 영웅!”
“말로만 듣던 콘도티에레 각하입니까?”
이건 또 뭔··· 트랑카벨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처음 보는 귀족들의 무리에 둘러싸였다. 당황해서 아쥬흐 쪽을 보았으나, 그녀 역시 이들이 누군지는 모르는 것 같다. 누구지 이 아저씨들은?
“콘도티에레! 누님!”
짐짓 침착을 가장하지만, 흥분을 숨길 수 없어 살짝 끝이 올라가는 소년의 목소리. 나에게도 반가운 목소리다.
“아실!”
아쥬흐와 아실이 포옹하고, 나와도 악수를 나눈다. 생글생글 웃는 소년은 출전하기 전과 비교하면 더 늠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그냥 귀족 소년이 아니다. 아롱드 영감··· 자작님의 뒤를 잇는, 트랑카벨의 계승자니까.
엘랑키아에서는 보통 16세에 하는 성인식을 1년 당겨서 하고, 계승권을 명확히 한 것은 아롱드와 아쥬흐가 함께 상의하여 정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이단 토벌령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었더라도 블랑독에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도였겠지.
나도 열심히 돕기야 하겠지만 소년의 어깨에는 너무 많은 짐이 얹혀 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블랑독의 여러 영주님이십니다. 계승식 이후로 많은 도움을 주셨고, 아넥시의 영웅 얼굴을 보고 가시겠다며 콘도티에레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하, 그렇게 된 것이구나.
“콘도티에레, 피곤하시겠지만 상대 좀 해 주세요. 블랑독에서 중요한 귀족들이 보이네요.”
아쥬흐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대로··· 빨리 씻고 마시고 쉬고 싶은데 그러기는 틀린 것 같다. 나는 가능한 한, 즐겁다는 듯 활짝 미소를 지으며 귀족들을 맞이하기로 했다. 속으로야 한숨이 나오지만··· 이것도 밥값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콘도티에레! 권총의 명수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주디칼리 여행을 하면서 화약 무기에 관심을 가졌었는데요···.”
“백 걸음 밖에서 말의 눈을 쏘실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요!”
“우리 영지의 수비군에게도 총기류의 공급을 하고 싶습니다!”
잠깐, 뭔가 소문이 이상하게 난 것 같은데···.
병력 양성이나 작전 지휘에 대한 평이면 그러려니 하고 성실하게 대답하겠는데, 대부분은 총기류에 관한 이야기잖아! 내가 황야의 총잡이냐고···.
“총기 실력은 결국은 많이 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허공에 태워서 날린 돈과 비례해서 실력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법이죠.”
“하하하하! 콘도티에레 께서는 말씀도 참 재미있게 하시는군요.”
나는 놀랍게도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이런 귀족들은 어떤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다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면 좋아한다.
“앞으로 트랑카벨 영지 이외의 블랑독 출신 중에서도 총병들을 모병할 예정입니다.”
“오오, 그렇습니까?”
“그때 독려해주시면, 전쟁이 끝나면 영민 중에 숙련된 총병을 얻으시게 되는 거지요. 그것도 트랑카벨 가문의 비용으로 훈련시켜서 말입니다!”
“와하하하하! 맞네요, 맞아요.”
슬쩍슬쩍 추임새 넣는 김에 약팔이도 좀 해주고. 다음에는 모리츠를 데리고 와야겠다. 모리츠가 이런 거 정말 잘하는데. 몸매도 끝내주는 근육질이라 귀족 아가씨들 숨넘어간다니까, 정말로.
“여러분, 콘도티에레 에트는 막 전쟁터에서 귀환하셨답니다. 잠시 씻고 휴식하실 필요가 있어요.”
“아아, 이거 저희가 실례를.”
오오, 아쥬흐가 내 배려를 해준다. 그래, 나는 할 만큼 했어. 빨리 씻고 그늘에서 바람 쐬면서 포도주라도 한 잔···.
“오늘 저녁에 자리를 마련할게요. 거기서 다시 콘도티에레 에트의 무용담을 들어보도록 하죠.”
“그거 좋겠군요!”
아, 2부가 있는 거구나.
전쟁터가 편하다, 자기는 이제 평화롭게는 못 살 것 같다며 허세를 부리는 자칭 전쟁 중독자들을 사회 부적응자라 생각했었는데,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저녁에는 꼭 모리츠 데리고 들어가자.
탱커가 필요해. 아주 훌륭한 탱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