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82화 (82/556)

17-2. 뤼나메르 교차로

“결국 확인 된 거야?”

“네에··· 목격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함락 와중에 탈출한 생존자가 나와서....”

“휴우··· 그렇구나.”

“그, 그래도 모두들 소문으로만 들은 것은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나는 첼레스티나와 침통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포르망제 성의 함락.

누가 꾸민 것일까. 혹은 우연히 발생한 것일까.

피난민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 포로 신문에서 나온 증언에서 얻는 정보는 원래 부정확하다. 가령 고문을 해서 진위를 확인하면 된다고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의외로 어지간한 고문으로는 넘어가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 꽤 있고, 반대로 의지도 정보도 없는 인간을 고문하면 살기 위해서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하니까.

그걸 검증하는 비용을 생각하자면, 무작정 고문보다는 차라리 감정에 호소하거나, 적절한 위협을 섞는 편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뭐, 나는 둘 다 잘 못 하니까 내가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포르망제 성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또 보고를 드릴게요오···.”

“그래. 주민들도 꽤 많았을 텐데, 억지로 저항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이번에는 유난히 특이했다. 한참 전부터 포르망제 성이 함락당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었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는 소문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브농 방앗간 전투로부터 며칠이 지나고서야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다. 포르망제 함락의 와중에 요행히 살아남은, 드 포르망제 남작가를 섬기던 가신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이게 좀 이상하다. 전장에서 뜬소문이야 항상 있지만, 왜 유난히 상반되는, 하지만 구체적인 소문이 퍼졌을까.

보통 정보 공작이 발생하면 그걸로 명백하게 이득을 보는 자를 의심하면 되지만, 이번 경우에는 딱히 누가 크게 이득을 봤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다만 누가 손해를 봤냐 하면, 내가 손해를 봤다.

포르망제 성이 버티는 사이 병력을 이끌고 북상해 적을 견제한다는 큰 그림이 무너졌으니까! 전략을 바닥부터 새로 짜야 한다. 그런데 이건 그냥 하면 되는 거고··· 우리 군이 전략적으로 손해를 봤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적이 우리 계획을 알지는 못했을 게 아닌가.

참고로 그냥 주력 부대를 이끌고 북상하지 못하는 것은 적의 규모나 구성을 확실하게 몰라서 불안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뭣보다도 서북쪽에서 어떤 병력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크다. 자칫 너무 북상해서 퇴각 타이밍을 놓쳤을 때 다른 방향으로 적이 들어오면 그냥 망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제8 벨모제 기병 연대에서 보고가 왔어요!”

“마브리엘 경이?”

벨모제의 성주, 트랑카벨의 노장 톨마르 마슈레 경의 장남인 마브리엘 마슈레는 기병 연대장으로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제7 연대의 파스칼 드 뒤랑 경이 나름 천재성이 느껴지는 과감한 기병 운용이라고 한다면, 마브리엘은 견실하고 단단한 기병 운용이라고 하겠다.

- 이틀간 북상, 키리농 언덕 부근에서 키리농 마을을 약탈했던 것으로 보이는 무리와 조우, 교전

- 46명 사살, 7명 포로로 잡음. 아군 피해 부상자 2명

예상은 했지만, 다행히 승전보다. 봄이 되자마자 적의 약탈부대가 블랑독 북부를 들쑤시고 다니고 있었다. 그 병력은 적게는 십수 명 정도에서, 많게는 천 명 가까이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다브농 습지에서 벌어졌던 전투도 그런 부대 중 하나였겠지.

적이 통제되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행동이 일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브농에서 트랑카벨 용기병들이 구하지 않았다면, 창고째로 불에 태워질뻔 한 무고한 피난민들과 같은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식량은 요구했지만 저항하지 않는 주민들에게 폭행을 가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정순파가 아님을 맹세하면 보내주는 일도 있었다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 명확한 정책이나 방향성을 가진 약탈부대 파견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아니 혹시··· 이것도 모순된 정보 살포 공작처럼 아군을 헷갈리게 하려는 것은 아닌가? 무슨 이득이 있지?

그나저나 벌써 몇몇 군데에서 이단 재판이 열렸고 화형대가 몇 개나 세워졌다는 소식도 있었다. 트랑카벨 가문의 수차례에 걸친 권고에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정순파가 있었던 모양이다. 혹은 정순파로 몰린 사람이 있었거나.

아니 뭐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이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문득 아넥시에서 만났던 고블린 닮았던 수도사가 생각난다. 이단심판에 미쳐서 군대까지 편성했던 정신이 나간 인간. 이름이 보세낙 드 리몽이었던가. 미리 도망쳐 버려서 잡아 처벌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운명을 맡겼어야 했는데.

이번 성전군에도 참여했을까? 참여했겠지? 그렇다면 이번에는 꼭 잡아서 죄를 묻겠다.

나는 일단 2개 연대의 보병, 다브농 습지 전투에서 활약했던 제15 델레망드 보병 연대와 그 뒤를 지원했던 드 누아 북부 연대를 이끌고 북상 중이다. 당연히 보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8 벨모제 기병 연대가 전방을,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가 측방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지킨다고 하면 안 되겠다. 왕성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멀리까지 넘어온 약탈부대들을 찾아 전멸시키고 있었으니까. 훈련도 제대로 안 되고 싸울 의지도 부족한, 심지어 제대로 무장하지도 먹지도 못한 약탈자들이, 다브농에서의 만행 등으로 화가 잔뜩 난 트랑카벨 기병대의 기습을 당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기동성이 좋은 기병대와, 보병 2개 연대만 이끌고 북상하는 이유는 당연히 블랑독 중앙을 비워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병력이면 쉽게 포위당하지도 않을 테고, 어지간히 규모를 이룬 적의 군세에도 대항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포르망제 성이 진짜로 어떻게 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약탈자들을 압박해 혹시 있을지 모를 피난민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면 좋겠지.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면 이 종교에 미친 놈들을 한 대 아프게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솔직히 없지 않다.

사람 죽이려고 전쟁하는 빌어먹을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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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약탈자들이 어지러이 산등성이의 비탈을 달리고 있었다. 그들이 헉헉대며 뛰어오르는 언덕 위에는 작은 숲이 있다. 오로지 그 숲에 들어가 숨겠다는 일념으로 죽어라 달리고 있다.

체력이 약한 자들이 먼저 뒤쳐지고, 무언가 짐을 잔뜩 지고 있는 자들도 뒤쳐진다. 힘이 빠진 자들이 살겠다며 짐을 팽개치고, 몇몇은 무기도 팽개친다. 곡물이 든 자루, 돈이 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든 가방이 비탈길에 아무렇게나 나뒹군다.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한 자들은 헉헉대며 숲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서 달려간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달려!”

“허억, 허억, 살려줘···.”

“조금만 더!”

그들이 숲까지 100여미터 남겨두었을 때, 눈앞에 한 줄로 늘어선 총병들이 나타난다. 트랑카벨의 용기병들이다. 총 끝을 가지런히 한 용기병들의 후방에는 그들이 타고 와 묶어놓은 말들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적들이 이쪽으로 올 것을 알고, 미리 말을 타고 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벌써!”

탕탕! 타탕!

“크아아악!”

“뭐야 어디서 온··· 윽!”

탕! 탕탕!

조금만 더, 백 걸음만 더 가면 안전한 숲속에서 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달려온 이들이 멈추어 선다. 이미 녹초가 된 그들의 발목을 시커먼 절망이 무겁게 붙잡고 늘어진다. 폐는 한계까지 혹사당해 찢어지기 직전이고. 반대로 돌아서 도망칠 힘도 없다.

용기병들의 총탄이 약탈자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한다. 일제사격조차도 아니다. 대열도 엉망으로 무너지고 지칠 대로 지쳐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한, 아니 애초부터 질서나 전투력이 있었는지도 의문인 약탈자 무리에게 일제사격은 사치라고 지휘관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기다린 용기병들의 조준사격으로 약탈자들의 숫자가 줄어든다. 사거리 내의 적이 줄어들자, 용기병들이 거리를 좁히기 시작한다. 그들의 숙련된 행동은 전투라기보다는, 반복 작업을 하는 기술자처럼도 보인다.

비척거리며 살아보겠다고 방향을 바꿔 도망치던 약탈자들의 몸을 뜨거운 납덩이가 관통한다. 조금 전까지 마을에서 약탈한 물건들을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며 시시덕거리던 자들이 자신들이 약탈했던 초원에 뜨거운 피를 뿌리며 눕는다.

“돌격!”

운이 좋았는지, 힘을 남겨두었는지 어떻게든 용기병들이 펼친 화망에서 벗어난 자들을 서두르지도 않고 뒤쫓아온 추격 기병들이 덮친다.

“시발! 벌써 여기까지 온 거냐고!”

“대장, 어디로 가죠?”

“도망쳐! 도망쳐!”

약탈자들의 마지막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간다. 덩치가 작고 다리도 짧으며 폭발적인 운동능력은 없지만, 오래 유지하는 지구력이 좋고 산비탈에도 익숙한 산악마들을 탄 추격 기병들에게 무엇보다 어울리는 전투였다.

굳이 권총을 쓸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저항하려 드는 자들도 없다. 무력하게, 최후의 저항이 방향을 바꿔 도망쳐 보겠다고 이미 힘이 고갈된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는 것뿐인 약탈자들을 검을 뽑아 든 추격 기병들이 스치고 지나가며 마구 베어 넘긴다.

“대승리입니다, 로베르 경!”

“용기병 중대에서 신호가 옵니다! 적 섬멸 확인!”

전투의 전말을 후방에서 총기병 예비대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제31 추격 연대장 로베르 드 나뵈프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인다. 모처럼 트랑카벨의 성녀께서 강대한 무력을 전해 주셨고, 콘도티에레가 힘들여 훈련해 맡겨준 병력이다. 오히려 완벽하게 승리하지 않으면 곤란한 일이다. 기쁘기는 하지만, 굳이 표출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인데 매번 기뻐할 수는 없으니까.

“포로가 있다면 신문을 위해서 본대로 보내고, 더 북쪽으로 구릉지대를 따라 이동한다. 본대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면 곧바로 보고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로베르 경!”

가능하면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고, 공적인 업무에 넣으려고도 하지 않는 로베르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아넥시 전투가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전투 직전, 감정만 앞세워서 무모하게 약탈자들에게 덤비다가 중상을 입었던 복부의 흉터는 아물기는 했지만, 당연히 남아있다. 로베르의 친구들, 그리고 백성들을 약탈하고 학살했던 자들과 한패가 지금 블랑독 북부에는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다.

감정만 앞세워서, 스스로의 몸을 망치는 것도 모자라 성녀께서 맡겨주신 소중한 군대를 상처입히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그래도 성전군이라면 한 명이라도 더 쓰러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순식간에 전투를 끝낸 제31 정찰 연대가 순식간에 행군 대형을 갖춰서 이동하기 시작한다.

승전보를 가진 2명의 추격 기병이 줄로 엮은 6명의 포로를 몰고 본대로 향한다. 이들이 버렸던 물건 중, 쓸만한 것들을 전리품 삼아 포로에게 등짐지게 하는 것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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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승전보가 이어졌다. 2번은 마브리엘의 제8 기병 연대에서, 3번은 제31 정찰 연대에서 왔다. 약 180명의 적을 사살했으며, 47명이 포로로 잡혔다. 아군의 피해는 약간의 부상자와, 말 몇 마리 뿐이었다. 기병이 보병에 비해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혼전 중에 영 좋지 않은 곳을 찔리면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예비 군마는 제법 준비되어 있다.

"콘도티에레!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이에요!"

"전투? 어느 부대?"

"네에, 그게, 양쪽 다 우리 군이 아니라고 해요! 트랑카벨 군도, 드 누아 군도 아니라고...."

"...응? 뭐라고?"

양쪽 다 우리 군이 아닌데 이 지역에서 싸우고 있다?

대체 누구지? 내가 모르는 일이 또 벌어지고 있는 건가?

"일단 가서 봐야겠다. 전령에게 안내를 부탁할게."

"네에, 콘도티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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