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01화 (101/556)

19-4. 신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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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블랑독 북서부에 펼쳐진 정찰망 보고를 종합하다가 의외의 소식을 듣고 놀랐다.

“어어? 뭐라고 첼레스티나?”

“네에, 국왕군이 행군로를 동쪽으로 틀었어요, 콘도티에레!”

“어··· 왜 그랬을까?”

“네에··· 앗 설마! 동쪽의 법황군과 합류하려는 목적이 아닐까요, 콘도티에레?”

“으음, 설마? 아니 꼭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 레뮤즈 백작령을 경유해 남하하던 성전군이 동쪽으로 방향을 튼 이유를 모르겠다. 설마··· 에크테인 산맥의 유일한 방어 거점인 타바브르 요새로 향하나 싶기도 했지만, 거기는 정말 손바닥만 한 벼랑 위의 요새이다. 후방에 있으면 신경이 쓰이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굳이? 라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운데.

“잠깐, 그럼 동쪽의 법황군은 별 소식이 없어?”

“네에, 여러 소부대로 나뉘어서 내려오고 있어요. 마을들을 하나하나 점령하고 있어요, 콘도티에레.”

“그럼 딱히 국왕군과 법황군이 약속하진 않은 것 아닌가?”

“네에··· 그렇겠네요?”

법황군은 크고 작은 무저항 거점들을 점령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블랑독 북부의 마을들은 정순파 신도들이나 블랑독 연맹군에 참여한 이들이나 그 가족들이 피난을 떠났기 때문에 반 이상이 텅 비어있었다. 마치 이 마을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지도의 색깔을 새로 칠하듯이, 그들의 진격로는 촘촘했다.

물론 남은 사람들은 무저항인 상태로 점령군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다행히 포르망제 함락 이후 그와 같은 무자비한 약탈이나 학살은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신성한 전쟁이니 이단에 대한 처벌이니 하는데 이단 혐의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마구잡이로 죽여버리면 그 정치적 후폭풍은 아무리 법황이라도 감당하기 힘드니까.

아무튼··· 서로 합류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국왕군은 왜 동진 중이지?

“첼레스티나, 지금 에크테인 산맥 남쪽에 배치된 부대는 누가 있지?”

“네에··· 네그라타 연대가 있네요!”

“미카토 연대장인가··· 정찰 명령을 보내줘. 절대 무리하지는 말고, 적 전위가 소수라면 교전할 것. 포로를 잡을 수 있으면 좋고.”

“네에, 콘도티에레! 무리하지 말고 적과 교전해 적 의도를 확인할 것, 포로가 있다면 후송할 것!”

“좋아, 부탁할게.”

시원시원하게 트랑카벨 가문의 영지로 진격해올 줄 알았더니, 갑자기 우회하는 이유는 모르겠네.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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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넥시 성문 근처의 어느 주점에서는 또 다른 건곤일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의 테이블을 두고, 수십 명의 주민이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다.

“으으음···.”

한쪽에 앉아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제, 요한 린데만 폰 아인푸르트였다. 그는 마치 이렇게 하면 반대편이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손에 든 카드 패를 노려보고 있었다.

“좋아 콜이다! 사제님 패 좀 보지!”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긴장으로 굳어지고 땀에 젖은 얼굴로 외쳤다. 탁자 한가운데는 상당한 숫자의 동전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주변에 포기하고 손을 놓고 있는 이들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나머지가 판돈을 모두 잃은 가운데,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의 승부가 된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패를 공개하시죠!”

먼저 반대편의 남자 쪽이,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탁자를 내려찍듯이 패를 공개했다. 그 기세에 탁자 한가운데 동전의 산이 살짝 흔들린다.

“3의 트리플이다!”

“오오오! 이 상황에 트리플?”

“꽤 센데!”

“이거 먹은 거 아냐?”

남자의 다소 불안해 보이면서도, 득의양양한 미소를 본 요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오, 주디칼리에 333인의 그림자 악마가 나타나 산과 들을 더럽히고, 맑은 물을 검게 하였으니···.”

반대로 살짝,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패를 하나씩 내려놓는 요한은 기도문 일부를 읊는다.

“성검을 쥔 대리인이 질풍을 이끌고 급습하니, 이는 즉 주신의 가호이니라! 주신의 한 줄기 질풍이 그림자 악마가 만들어 낸 검은 안개를 날려 버리자 천상의 빛이 더러운 존재의 피부를 마치 종이처럼 불타버리더라! 거기에 대리인이 이끄는···.”

착착착, 세 장의 카드가 탁자 위에 자리한다.

“모두 555인의 기사가 주신을 찬양하며 주디칼리의 벌판을 달리니 이미 불타버린 그림자 악마들의 영혼마저도 사그라져버리더라!”

“우와아아아아!”

“미친, 5의 트리플?”

“이걸 뒤집어! 표정 관리 어떻게 한 거야!”

탁자 반대편의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탁자에 놓인 5의 카드 세 장을 바라보더니, 힘없이 탁자 위에 주저앉는다. 기이한 앓는 소리를 내면서.

“하하, 저는 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신께서 가호해주시니까요. 여러분도 주신 믿으시고 축복받으세요!”

요한은 동전 더미를 챙기다가, 그중 한 줌을 집어 옆에 내려놓는다.

“주인장! 여기 모든 분께 잔에 든 주신의 은총을 한 잔씩 돌려주세요!”

“오오, 사제님!”

“이게 신앙의 힘이구먼?”

“화끈하네!”

공짜 술은 언제나 옳았다. 주점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가 된다.

“사, 사제님, 어떻게 그리 강한 거요?”

몽땅 다 털린, 탁자에 앉아있던 노인이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묻는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주신께서 항상 제 패를 보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저는 지지 않지요.”

“거짓말! 아까 8탑으로 허세 부려서 몽땅 끌고 들어간 건 뭔데? 난 그때 투 페어였다고!”

방금 패배한 남자가 발끈하여 소리를 질렀다. 정말 신이 패를 점지해주었다면 지금처럼 역으로 상대를 찍어 눌렀겠지. 하지만 요한은 쓰레기 패를 들고도 허세를 부려 이겼다. 무슨 놈의 신앙이고 무슨 놈의 주신인가!

“하하하! 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끄으으으···.”

“자, 그러지 말고 형제님도 주신의 은총을 한잔하시지요.”

“으으으으! 젠장, 나도 한 잔 줘!”

남자는 치밀어오르는 불만을 차갑지만 뜨거운 술을 마시며 넘겨버린다. 실력이든 허세든 운이든 신앙이든 이유는 뭐라도 좋다. 어쨌든 진 것은 진 거니까, 여기서 더 이야기 해봤자 구질구질해지는 것이지.

요한 역시 자신의 술잔을 받아 공짜 술을 받아 신나 하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원샷하고 신나게 웃는다.

“저어, 요한 사제님.”

“오오, 아르옌 수사, 무슨 일인가?”

“여기 오신 후로 저녁만 되면 사흘째 술판만 벌이고 계신데··· 괜찮은 건가요?”

“그야 방어전에서 이기려면, 하늘의 주신과, 땅의 요새와, 요새를 지키는 사람을 모두 얻어야 하는 법 아닌가?"

"그렇... 지요?"

"주신의 뜻은 언제나 어긋나지 않게 함께하고 있고, 아넥시에는 멋진 요새가 있으니, 이제 함께 싸울 사람들만 구하면 되는 것이지!”

“하아···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하, 이 친구야, 걱정하지 말고 여기 주님의 은총이나 한잔하시게.”

요한이 술잔을 내밀지만, 아르옌은 완곡하게 거절한다.

“아뇨··· 저는 술에 약해서요.”

“그리고 우리가 없어도 충분히 잘 싸울 정도로 준비를 잘 해두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입니다. 보이는 것은 민병들인데, 분명 전문가의 솜씨가 보입니다.”

“역시 잘 봤군, 자네도 슬슬 독립해야 하지 않겠나?”

“저는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럼··· 저희가 할 일은 없을까요?”

“아니지, 오히려 반대라네! 아주 멋진 무대가 마련되었으니 우리가 아주 약간, 약간만 변주를 해준다면 아넥시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지 않겠나?”

“요한 사제님은 실력만은 확실하시니··· 믿고 따르겠습니다.”

“푸하하하하, 알았으니 오늘은 주님의 은총도 좀 따라 보시게!”

아르옌은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조심스럽게 술에 담긴 잔을 삼키고, 찡그리는 표정을 짓는다.

키가 크고 잘 발달한 근육, 짙은 눈썹이 두드러지는 선이 굵은 얼굴에 헝클어진 듯 정리된 듯 적당히 기른 머리가 잘 어울리는 요한과, 키도 작고 창백한 얼굴에 머리카락도 짧게 깎은 아르옌 수사는 많이 달라 보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페어로 활동해온 각별한 사이였다.

“난공불락 아넥시를 위해서!”

“와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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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요페로 페레데즈, 네그라타 용병단의 중대장은 가파른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돌을 대충 깎아 끼워 맞춘 석벽은 잡을 곳이 많아서 기어오르는 것이 다행히 어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문제다. 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었기에, 이빨 사이에는 가죽끈을 물고 아주 조금씩 조심조심 벽을 올라야 하는 상황이 피를 말렸다.

탕탕! 탕!

“저쪽 숲에 적이다!”

“저기 보여? 저쪽을 쏴!”

탕! 탕!

그들, 알론소와 그의 부하들 총 여섯 명이 벽을 기어오르는 감시탑 반대편에서는 총격전이 한창이었다. 그 소리와 혼란에 기대어, 제발 들키지 말 것을 기도하면서 벽을 오르는 것이다. 온몸에 땀이 흘러서 자꾸 미끄러질 것 같았고,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조금씩 조금씩, 대략 3층 높이의 감시탑 꼭대기가 가까워진다.

반대편 나무 그늘 속에는 알론소의 나머지 부하들이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총을 쏘며 적의 시야를 끌며 사격을 유도하고 있었다.

네그라타 연대의 선두인 알론소의 정찰대가 블랑독 중북부의 작은 농촌 마을, 종데베에 도착했을 때 적군은 막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비어있던 마을을 빼앗긴 알론소는 잠시 고민했다.

병력의 숫자는 아군이 유리하다. 적군 약 100명에 비해, 아군이 1.5배 많다.

마을은 방어하기 좋아 보인다. 블랑독 지방 특유의 돌로 촘촘하게 쌓아 올린 돌담이 그리 높지는 않아도 마을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큰길로 통하는 마을 입구는 몇십 명의 창병이 틀어막기에 딱 좋은 규모였다.

정면으로 공격하면··· 이기지 못하거나 이기더라도 상당한 피해가 생길 것은 분명해 보였다.

알론소는 결심했다.

그러니까, 공격한다. 정면은 피해서.

“보여? 어디지?”

“젠장, 쥐새끼 같은 놈들! 장전해!”

탕!

“저기다! 저쪽!”

탕탕! 탕!

땀방울이 하늘을 보고 있는 알론소의 턱을 따라 흐르다 허공으로 떨어진다. 이제 손 한 번만 뻗으면 탑 꼭대기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두 명이 거의 비슷한 위치에 올랐고, 나머지도 거의 다 올라온 것 같다. 슬슬 팔이 아파져 오고 손가락에는 감각도 없다. 기습해놓고 팔에 힘이 없어서 못 싸우기라도 하면··· 빌어먹을.

신뢰하는 베테랑 동료들과 눈짓으로 의사를 나눈다. 의사고 뭐고, 정해놓은 신호는 하나였다. 턱짓 세 번 후 돌입.

턱짓 한 번. 왼쪽의 병사가 단검을 꺼내 입에 문다.

턱짓 두 번. 오른쪽의 병사가 난간 바로 아래에 바짝 달라붙는다. 언제라도 튀어 오를 수 있도록.

턱짓 세 번. 팔에 남은 마지막 힘을 긁어모아 몸을 난간 위로 던지듯 튕겨 올렸다. 기습인데 헉헉대며 팔 하나씩 올라갈 수는 없으니까, 제발 이쪽을 바라보는 적이 없기를 바라면서.

탁.

소리를 죽인다고 일부러 맨발로 오는 등 노력했으나, 감시탑 꼭대기의 바닥에 닿는 순간에는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적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쪽 벽에 붙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총질 중이었으니까. 아래쪽의 아군이 위험을 무릅쓰고 시선을 끌어 주어서 다행이다. 적은 열 명쯤. 생각보다 많지만 기습하면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탁, 탁, 탁.

먼저 감시탑에 오른 세 명이 단번에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각각 한 명씩 맡아 목을 그었다.

“그어억!”

“뭐, 뭐야?”

“적이다!”

탕!

“크윽!”

“끄아아아악!”

먼저 달려 들었던 세 명에 곧바로 나머지 세 명이 합류했고 순식간에 10명의 적이 쓰러졌다.

“빨리 서둘러! 장전된 총 있나?”

“으 시발··· 저 맞았어요.”

“어? 괜찮아?”

“하··· 가슴에서··· 이상한 소리가···.”

명치에서 피를 콸콸 쏟아내던 병사가 그대로 옆으로 드러눕는다. 순식간에 절명한 것이다.

“...명복은 나중에 빌어주자. 빨리 장전해.”

“네···.”

작전의 성공은 신속함에 달렸다. 알론소와 병사들은 재빠르게 장전을 시작하고, 이미 장전된 총은 옆에 모아 둔다. 반대편 감시탑에 오른 동료들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특별히 소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성공했기를 빌 수밖에···.

“장전 완료.”

“저도요.”

“여기 두 개 더 있습니다.”

전문 총병은 아니지만 용병 생활을 오래 한 베테랑들답게 화승총 장전 정도는 전문가들이다.

“어이! 감시탑! 어이!”

오랫동안 총성이 이어지지 않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아래쪽에서 누군가가 외친다. 알론소가 고개를 내밀자 창벽을 만들고 있는 병사들의 후방에서 기사 한 명이 면갑을 올리고 이쪽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거기 뭐 하는 거야!”

“아 잠깐만요.”

“뭐? 야 너 누구야!”

들킨 모양이다. 얼굴 때문인지 억양 때문인지. 어쨌든 알론소는 총을 움켜쥐었다.

“이거나 쳐먹어라!”

탕!

“윽!”

알론소는 혀를 찼다. 총탄은 기사의 어깨에 맞았다.

타타탕! 탕!

탕, 타탕!

감시탑 위의 다른 병사들도 사격을 시작했다. 당연히 표적은 아래의 적 창병들. 반대편 감시탑에서도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저쪽도 성공해서 화약을 퍼붓고 있구나.

“전부 쏴버려!”

두 개째의 화승총을 집어 들며, 알론소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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