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131화 (131/556)

20-29. 샹다메리 전투

“으아아! 살려줘!”

“시발! 비켜! 비키라고!”

“멈춰! 물러서지 마!”

“비키라고 시발!”

한 번 전열이 붕괴한 아퀴오슈 후위 연대의 상황은 비참하다. 위험한 상황, 적군의 총구가 이쪽을 향하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공포스러운 상황에서조차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기강 덕분이다. 그리고 기강은 군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때 받는 처벌이나 강한 군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에 의해 유지된다.

바로 그렇더라도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인다는 학습된, 그리고 경험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보병 개인이 도망쳐봤자 홀로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방이 적군과 아군의 사선이 지나는 교전장의 한 가운데이다. 요행히 살아남아 전투 후에 처벌받지 않더라도 전장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홀로 자리를 지킨다? 그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남들도 다 함께 전열을 지킬 때나 의미가 있다.

확실한 죽음.

예정된 파멸.

그것을 인지한 순간 대열의 유지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패닉이 휩쓸고 간 아퀴오슈 후위 연대의 상황은 처참하다.

이미 이성을 잃고 무조건 전방에서 벗어나려는 전열의 도망병.

아직 이성은 챙기고 있으나, 상황을 이해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후열병.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 고함은 지르고 있으나, 이미 그들 자신도 끝장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장교들까지.

“발사!”

이미 전투 부대가 아니라 공포에 질린 한 무더기의 도망병들이 된 적을 향해 최후의 파멸이 발사된다. 가지런히 늘어선 슈토르히 연대 총병들이 방아쇠를 당기고, 불꽃과 하얀 연기가 양군의 사이를 가득 채운다.

타타타타탕!

“아악! 아아악!”

“신이시여! 신이시여!”

“살려줘어!”

“멈추란 말이다!”

“너나 멈춰 시발!”

뜨거운 납탄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방어구를 뚫고, 그 안 인간의 육체를 사정없이 헤집어 놓는다. 누군가는 머리가 뚫려 반대편으로 허연 뇌수를 뿌리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고. 누군가는 폐에 조각난 납탄이 박혀 괴상한 숨소리를 내며 바닥을 긁고. 누군가는 허벅지를 깨끗하게 관통해 사람 몸속에 이렇게 많은 피가 있었나 싶을 정도의 피 웅덩이를 만들며 숨이 끊어져 간다.

역설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둔 밀집 대형은 진정한 의미의 밀집이 아니다. 열과 열, 오와 오 사이에는 전술적인 움직임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공간이 있다. 하지만 그저 적이 두려워서, 살겠다고 도망치며 만들어낸 악다구니의 도망병 무리는 진정한 의미의 ‘밀집’ 상태이다. 대충 조준해도 말 그대로 어딘가에는 명중하며 관통에 의한 2차 피해를 보는 경우도 늘어난다.

“발사!”

타타타타타탕!

“으흐윽···.”

“신이시여 살려주세요!”

“크아아악!”

슈토르히 연대의 2회차 일제사격이 이어진다. 다시 쏟아져 나간 납탄들이 아까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진 적병들을 마구 난타한다. 공포에 질린 도망병들이 다시 무수히 쓰러진다. 마구 얽힌 시체 더미에 새로운 시체가 추가된다.

“아··· 아파, 아파···.”

“같이··· 가···.”

“끄으으, 으흑!”

“흐어어어엉!”

가해자이며 전투에 익숙한 슈토르히 소속의 용병들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다. 너무 좁은 공간에 뒤엉킨 상태에, 너무 높은 정확도와 밀도의 일제사격이 두 번이나 가해진 결과, 산 자와 죽은 자가 얽힌 소름이 끼치는 띠 형태의 산이 만들어져 버렸다.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은 그저 통곡하고 오열하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인 시체의 산.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다시 장전하고 기다린다!”

다행히도 슈토르히 연대는 더 이상 사격할 예정은 없는 모양이다. 전진하여 확인 사살을 하지도 않는다. 총병들은 빠른 재사격을 위한 재장전 대신 꽂을대로 총구를 꼼꼼하게 청소하기 시작한다.

사격 직후에는 타버린 탄약포 조각이며 타다 남은 화약, 탄매 등등이 들러붙어 총열이 균일하지 않게 된다. 사격에 방해가 되는 탄약 찌꺼기를 깨끗하게 닦아내어 좀 더 확실한 ‘다음 첫 사격’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적에게도 지옥을 보여줄 수 있겠지. 적병들을 측은하게 여기거나 말거나, 이미 익숙해진 이 ‘전쟁의 장인’들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인다.

아퀴오슈 후위 연대는 운이 없었다. 너무 많은 악운이 그들을 덮쳤다.

하필이면 집중된 포격.

우왕좌왕했던 사령부의 명령.

온전한 연대가 절반으로 나뉘는 바람에 지휘체계가 완전하지 못했다는 상황.

연대장 후미엔 드 아퀴오슈 소 후작이 직접 이끄는 정예군과 베테랑 장교들의 삼 분의 이 이상이 드 누아 군의 공세를 막기 위한 전위 연대에 포함되어 있었다.

질적인 문제뿐 아니라, 남겨진 예비대이기에 병력이 1000명 정도로 슈토르히 연대에 비해서도 수적 열세였다.

포격이 계속 쏟아지는 혼란 통이라는 이유로 완전히 대열을 정돈하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에서 교전 시작.

그리고 무엇보다. 첫 실전 상대가 하필이면 슈토르히 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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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았어. 모두 수고했다.”

현재 슈토르히 연대의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선임 중대장 루트비히 아린 폰 자이트리츠는 부하들의 활약을 짧게 평가했다. 그리고는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밀어 올린다.

샹다메리 언덕의 기마 견인포 8문과, 지빌링엔 용병이 점령한 적 대포 6문의 지원 포격이 있기는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동수의 적 보병 연대를 10분도 안 되는 교전으로 완전히 붕괴시킨 엄청난 전과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루트비히는 다음 일을 찾는다.

“하···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나설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옆에서 다른 선임 중대장, 크레시미르 두브람이 푸념을 터뜨린다.

“적이 생각보다 빨리 무너졌으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래서야 또 전투가 끝날 때까지 구경만 하다 끝나겠네.”

“이제 적 기병이 온다. 대열이 무너지면 후위는 돌격대가 맡아줘야 해.”

“...너희 괴물 같은 창병과 총병들이 기병 좀 붙는다고 무너지진 않을 것 같은데.”

“급히 행군하느라 포병들을 두고 왔다. 현재 상황이 좋지만은 않아. 방심하지 마.”

본래 슈토르히 연대는 자체적으로 화포를 운용한다. 용병대장 에트는 항상 창병과 총병, 그리고 포병을 혼성으로 배치하는 이상적인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의 정예 부대는 아직 슈토르히 연대밖에 만들지 못했다. 트랑카벨 정규 보병 연대들 역시 창설된 시기를 생각하면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포병 합동 편성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 다름 아닌 선임 중대장 루트비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진 한가운데로 급히 침투해온 상황이라 도저히 포대를 함께 끌고 올 수가 없었다. 약점이라면 약점인 상황이겠다.

만약에 방금 단기간에 격퇴한 아퀴오슈 후위 연대와 아직 교전 중이었다면, 측면에 적 보병을 붙인 상태로 기병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면 기동성이 묶이는 데다가 한 방향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상황은 피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에라도 전열에 구멍이 나면 우리가 바로 복구해주지. 맡겨 두라고.”

“그래, 믿겠다.”

진지한 얼굴의 크레시미르는 자신과 동격이지만, 기꺼이 신뢰하고 지휘를 맡기고 있는 루트비히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멀리서 기병대가 일으키는 먼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둘을 포함한 슈토르히의 전원은 엘랑키아 기사들과는 나우데사의 북방 전쟁에서 지겹도록 싸웠었다.

역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엘랑키아 기사단.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승자는 슈토르히였었다.

루트비히는 고민이 되는 듯, 사방을 둘러본다. 아군 배치는 잘 되어 있는가, 적의 위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슈토르히 연대가 전장의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가 등등. 이 냉철한 전술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크레시미르, 돌격대에 임무를 맡기고 싶다.”

“뭐야? 뭐든 맡겨달라고!”

“저기 보이지?”

그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향한다. 아우성치며 달아나고 있는 적병들의 옆쪽.

“우리도 포대를 점령하고 농성에 들어가는 게 좋겠어.”

“그거 좋은 생각인데! 맡겨만 줘. 바로 점령해서 보내줄게.”

“맡길게.”

“슈토르히 돌격대! 집합!”

항상 구경꾼 역할만 해온 크레시미르는 정말로 기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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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런 추태라니!”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조차도 버티지 못하는 건가···.”

성전군 사령관 에티엔 드 크레이의 명령을 받고 서둘러 전장으로 직행한 엘랑키아 왕실 근위기병대장이자, 퐁투베 연대의 지휘관인 베리브 드 퐁투베 자작은 휘하 장교들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그 역시도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보병 지원 없이 사각 대형을 갖춘 보병 연대를 제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잠시 부대를 멈추고 대열을 정돈하며, 자신의 임무를 떠올려 본다.

대열을 뚫고 들어온 두 개의 적 보병 부대를 섬멸하거나 격퇴하는 것.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200명 정도의 결사대가 부대와 부대 사이의 간격을 잘 이용해서 달려드는 것 정도는 예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천 명이 넘는 멀쩡한 보병 연대 하나가 통째로 아군 후방에 있는 건 대체 무슨 연유라는 말인가.

가난한 하급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제대로 된 군마를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삼촌에게 사정사정해서 빌린 짐말을 타고 전장에 나갔던 이후로 30년 가까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건만, 이런 괴상한 기동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적진 돌파는 기병의 역할이 아닌가? 보병 부대의 움직임은 경직되기 마련인데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이유를 베리브로서는 알 수 없었다.

“디타레 경, 귀관의 분견대에 명령을 내리겠소.”

“맡겨 주십시오, 자작님!”

자신의 부대가 지명되자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젊은 지휘관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선다.

“포대를 점거한 적을 몰아내고 포대를 탈환하시오. 접근이 어렵다면 적을 고립시키기만 해도 괜찮소.”

“명령 받들었습니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건투를 빌겠소.”

베리브 드 퐁투베 자신과 비슷하게, 가난한 하급 귀족 출신으로 출세한 디타레는 퐁투베 연대의 휘하 장교 중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준비된 적진에 달려들어 부대를 위기에 빠뜨리는 어리석고 용감하기만 한 얼간이는 아니었다. 하긴 그런 멍청이였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장교로 진급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디타레 드 카울은 아군을 살리고 적을 깎아내는 데 재능을 가진 천부적인 유격 기병대 지휘관이었다. 그렇게 적을 괴롭히고 지치게 만들면 반드시 약점을 드러낸다. 전황을 살피는 감각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번과 같은 상황에 맡기면 분명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겠지.

혹시라도 주변에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성전군 보병 부대가 있나 확인해보지만, 지원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불쾌한 침입자의 격퇴는 퐁투베 기병 연대가 단독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나머지는 적 보병의 본대를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자작님.”

약 1500기의 퐁투베 연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디타레가 지휘하는 분견대 약 300기가 포대를 점거하고 농성 중인 지빌링엔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나머지 병력은 슈토르히 본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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