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제2차 아넥시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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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넥시 성문 바로 앞에서, 다섯 명이 공병이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문의 바로 앞쪽, 각도 상 주변에서 쏘는 총탄으로 맞추기 어렵다지만 적을 마주한 장소이다.
사격을 한다면 바로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고 쏘거나, 돌을 굴릴 수 있을 텐데, 아예 성문 안쪽으로 바짝 달라붙어 투석에 당할 위험을 최소화했다.
먼저 두 명은 작은 들것 형태의 나무판 위에 놓인 솥과 양동이를 섞어 놓은 것처럼 생긴 쇳덩이를 조심스레 지키고 있었다.
현재 가장 위협적인 것은, 아까 1차 특공대가 당했던 것. 바로 독한 증류주가 잔뜩 든 불붙은 항아리였다.
주로 성문을 돌파하는 것이 주목적인 화약 무기, 페타드의 내부에는 화약이 잔뜩 들어있다. 여기 불 붙은 알코올이 닿으면 결과는 뻔하다. 성문 대신 공병 특공대가 모조리 날아갈 것이다.
지금 그들이 성문에 바짝 붙어 쪼그리고 앉아있는 바닥과 두툼한 나무에는 시커먼 얼룩이 묻어있다. 근처에서 화약이 폭발한 흔적이다. 이전 특공대의 흔적이기도 하고.
공병들은 애써 근처의 새카맣게 탄 시체들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 보다 운이 없었던 동료들의 끔찍한 최후이다. 그들 또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대신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하면 총병의 지원이 두 배 이상으로 대폭 늘었다. 150여 명의 총병들이 끊임없이 성벽 위를 노리고 사격해 항아리 투척을 막고 있었다.
나름 화약 무기를 포함한 각종 공성 병기를 다룰 수 있는 공병은 귀중한 존재가 분명하다. 그리고 화약으로 가득한 쇠 솥인 페타드 자체도 값비싼 무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작전을 두 번이나 실패할 경우, 지휘부의 체면이나 병사들의 사기 문제도 있었다. 그게 이번에 충분한 지원을 받아 적을 머리도 들지 못하게 만든 주요 이유였다.
한편 페타드를 지키고 있는 두 명 외에 나머지는 부지런히 두껍고 단단한 나무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미리 본진에서부터 알맞게 깎아내서 크기를 맞춰 온 물건이다. 뻑뻑한 단면을 끼워 맞추고 밧줄로 묶어 연결하자 견고한 받침대가 완성된다. 성인 남자 정도가 올라가도 끄떡없도록 단단히 고정한다.
“받침대 준비됐나?”
“불붙었는데 한쪽으로 쏠리거나 하면 우리 다 뒈진다, 신경 써.”
두 명의 공병이 양 모서리를 잡고 힘을 주어 누른다. 빡빡한 모서리가 딱 맞아 들어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꾸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올려다본다. 뭔가가 떨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다행히 지독한 집중사격으로 부서진 성벽 표면이 떨어져 내리는 돌가루 외에는 떨어지는 무서운 공격은 없었다.
“자, 옮기자.”
“하나, 둘, 으쌰!”
공병들이 다시 네 개의 손잡이가 달린 판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이제는 수직으로 세운다. 지금까지 바닥에 닿아 있었던 납작한 면을 성문에 붙게 옮긴다.
“조심해, 조심해···.”
“똑바로 고정해. 도화선 빼고.”
지금 혹시라도 쓰러져서 화약이 잘못 폭발하기라도 하면 다 죽는다. 가뜩이나 무거운 페타드를 성문에 고정하며 땀을 뻘뻘 흘린다.
페타드란, 솥이나 양동이, 종처럼 생긴 원통형의 용기에 화약을 가득 채운 단순한 구조였다. 물론 강철로 된 용기는 상당히 두껍고 견고했다.
폭약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폭발할 때켜서 파편을 날려 주변을 파괴하는 종류의 무기는 아니다. 만약에 그런 용도였다면 재질을 강철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폭발 시 찢겨 날아가며 날카로운 파편을 만들어 내는 얇은 주철이나, 조각나 날카로운 단면을 만드는 도자기 등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편이 주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타드는 그런 용도가 아니다. 대량의 화약이 폭발하며 내는 폭풍을 한 방향으로 쏘아내는 용도이다. 당연히 폭압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강철 외피가 필요하다.
그 점에서는 평범한 화약을 사용하는 총기나 대포와도 비슷하다. 화약의 폭발을 견디는 견고한 쇳덩이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폭압을 쏘아 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페타드는 ‘멀리’ 쏘는 무기가 아니라는 점이 차이점이었다.
솥 형태의 페타드 본체에는 뚜껑이 있다. 이 역시 두툼한 쇳덩이로 만들어져 있으며,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
공병들은 받침대를 이용해, 페타드의 이 뚜껑 부분이 성문에 닿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 미리 높이를 재었고, 받침대가 되는 나무토막들을 미리 준비해온 것이다.
도화선을 꽂아 불을 붙이면, 화약이 폭발하면서 뚜껑을 날려 버릴 것이다. 그럼 평범한 대포보다도 많은 양의 화약이 일시에 폭발하며 만든 에너지가 뚜껑을 밀어낸다. 그럼 이 뚜껑이 포탄처럼 밀려나면서 단단하고 두툼한 나무 성문을 부수는 것이다.
“아 조금 낮은데···.”
“받침대랑 쐐기 끼워 넣어서 올려!”
“받침대 넣는다! 하나, 둘!”
귀가 아프고 총성이 울리고, 코가 매울 정도로 화약 연기가 가득한 전장이지만, 공병들의 작업은 여느 기술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루는 장비가 무지막지하게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단순하게 성문의 아무 곳이나 부숴서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는 그냥 사람 머리통 정도가 들락거릴 구멍을 뚫을 뿐이다. 이만한 인원이, 이렇게 비싼 무기를 써 가며 얻어내는 결과물로는 전혀 수지가 맞지 않는다!
페타드가 노리는 것은 성문 그 자체가 아니다.
바로 성문을 고정하는, 성문 반대편에 붙은 빗장이다. 성문 자체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하니, 성문을 고정하는 빗장을 부숴 문을 연다는 것이다.
“이 높이가 맞지? 확인 좀!”
“빗장걸이 고정한 쇠못 위치를 보면 여기가 맞을 거야. 눈으로는··· 반대편이 안 보여!”
“뭐? 설마 이중 문인가?”
성문 사이의 좁은 틈으로 내다보면 반대편에서 빛이 만드는 그림자 덕분에 빗장의 위치가 보인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문 안쪽이 완전히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문은 우리 책임이 아니야! 필요하면 한 번 더 부숴야지!”
“헐어빠진 요새 주제에 할 건 다 하는구만.”
“두 번째 문은 외부 문처럼 단단하진 않을 거야. 곡괭이나 도끼로 충분히 부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 높이가 맞아?”
“맞아. 이 높이로 고정하고 터뜨려!”
빗장의 위치를 확인한 공병들이 마지막 준비를 마친다.
만약 페타드라는 무기를 안다면, 성문 반대편의 수비군은 설치를 방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 하다못해 성문 틈으로 칼날을 밀어 넣어 받침대를 밀치기만 해도 페타드의 설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혀 아무런 반응도 없다. 이는 페타드가 얼마나 위력적인 무기인지 모른다는 방증이다. 아넥시를 지키는 수비군은 정규군이 아니라 민병대라고 하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화약이 발명된 후에도, 돌로 된 성벽을 부수는 것은 아주 큰 비용과 긴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나마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공성포의 경우나 그렇다.
훨씬 작고 경제적인 중소형 야포로는 견고한 벽돌을 짜맞춘 요새를 부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무리 쏴 봐야 외부 벽돌만 깨질 뿐, 건축물 구조 자체를 무너뜨릴 만큼의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술가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성문을 포격하는 것이다. 아무리 강화한다 해도 여닫는 목적을 가진 이상, 성문은 목재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목재는 석조로 된 성벽보다 약했다.
하지만 실제로 포격을 해 보니 성문을 부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확히 맞추는 것도 문제였지만, 어지간히 너덜너덜해진 성문도 나름의 자기 역할을 했다. 구멍 좀 뚫렸다고 공격군이 뚫고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새도 진화해서 외성을 두르거나, 낮은 위치에 건설하는 등으로 집중포화를 퍼붓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공성 전술가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장전된 대포를 성문 앞까지 끌고 가는 것이다!
성문에 포구를 대고, 정확하게 빗장을 조준해 발사한다. 근거리에서 발사되어 에너지 손실도 없을뿐더러, 빗나가지도 않는 포탄이 성문을 뚫고 빗장을 부수는 것은 당연했다. 드디어 성문이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당연히 수많은 어려움을 동반했다.
군인이 아니라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무겁고 번거로운 대포를 성문에 바짝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은 공격자든 방어자든 문외한이든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페타드이다. ‘대포에 비해서’ 가볍다. ‘대포에 비해서’ 휴대하기 좋다.
다만 구조적으로 성문에 바짝 붙여서 고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 페타드를 다루는 전문적인 공병이 필요했다. 이 공병들은 예민한 화약 무기를 다루는 기술도 필요했고, 그걸 적이 감시하는 성문에 바짝 붙어서 실수 없이 해내는 배짱도 필요하다.
지금, 아넥시 성문의 성전군 공병들이 바로 그런 공병들이다. 물론 그들의 배짱을 유지하는 데는 상당한 성공보수가 함께하고 있었지만.
긴장과 더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기어코 성문, 빗장의 높이에 페타드를 고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도화선 꽂았어? 확인 완료!”
“이제 점화한다! 모두 옆으로 피해!”
“피해라! 피해!”
다섯 명의 공병들이 성문에서 조금 떨어진다. 바로 옆에 엄청난 양의 화약이 가득 담긴 쇠 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화약은 곧 폭발할 예정이다. 물론 그 폭발력은 성문을 향할 예정이지만···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점화! 점화!”
“조심해!”
별로 길지도 않은 도화선이 빠르게 타들어 간다. 불을 붙인 공병도 몇 미터 떨어진 동료의 위치로 가서는 성벽에 바짝 붙는다. 성벽 위에서 공격받을지는 몰라도, 폭발 직전의 화약 덩어리 옆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긴장 속에, 도화선이 조금씩 타들어 간다. 파츠츠츠 하는 소리와 함께.
이윽고, 작은 불꽃이 타버린 끈을 따라 벽에 단단히 고정된 쇠 솥에 뚫린 구멍 안쪽으로 사라진다.
1초 쯤 후에, 푸쉭 하는 소리와 함께 점화구에서 화염과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1.3초쯤 후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페타드가 폭발한다. 성문에 밀착된 뚜껑 쪽으로 엄청난 화염이 치솟는다. 반동을 견디지 못한 두꺼운 받침대가 산산이 조각나며 사방으로 나무 조각이 튄다.
“으아아악!”
폭발시의 엄청난 폭압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흙먼지가 치솟는다.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공병들조차도 기겁할 정도의 압력이다.
탱! 탱그랑!
역할을 마친 페타드의 본체가 성문에서 떨어져 나와 땅 위에 떨어진다. 엉망진창으로 검댕이 묻고 폭발시 압력에 의해 변형되고 찌그러진 쇳덩이가 바닥을 구른다.
찌그러지긴 했지만 찢어지거나 깨지지는 않았다.
엄청난 폭압을 제대로 성문 쪽으로 쏟아 냈다는 증거였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공병들은 성문으로 달려가 몸으로 밀친다. 바로 전에까지 끄떡없이 견디고 있던 견고한 성문이 안으로 스르르 밀린다.
성문 한가운데에는 새카맣게 불탄 자국이 있고, 그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있다.
페타드 특공대는 성공한 것이다.
“성공했다! 성문이 폭파됐다!”
“돌격! 성문을 통해 안으로 진입한다!”
함성이 터져 나온 쪽은, 지금까지 성문 바로 위 성벽을 노리고 있던 총병 대열이었다. 이들은 페타드 공병 특공대를 지원하는 역할이기도 했지만, 성공시 열린 성문을 통해 돌입하는 선봉대의 역할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안에 들어가서 후속 병력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기만 하면 요새 함락은 분명했다.
사격을 멈춘 총병들이 근접 무기를 뽑아들고 성문으로 우르르 몰려든다. 속도가 중요하다. 적이 대응하기 전에 성문 안으로 돌입하면 승리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성 안으로 돌입했다는 포상이 기다린다! 욕망이 총병들의 용기에 불을 붙였다.
“잠깐! 멈춰!”
“이중 성문일지도 모른다!”
놀란 공병들이 외쳤지만 이미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한 돌격대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돌격! 돌겨억!”
“성문을 열어라! 우와아아아아아!”
“멈추라니까아!”
“이야아아!”
공병들의 제지에도 돌격대는 바리케이드를 지나 아넥시 성문으로 쇄도해 나간다.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사격에 운 없는 희생자가 발생한다. 하지만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오면 안 돼! 안에 뭔가 있다!"
"멈추라고오!"
애처로운 외침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승리가 눈앞에 보인다는 착각. 그 승리에 자신이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욕심. 그것이 돌격자들의 눈을 멀게 했다.
공병들은 어쩔 수 없이 비켜서서 문 옆에 바짝 달라붙는다. 이대로 성문 앞에 있다가는 휩쓸려서 팔자에도 없는 선봉대장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반쯤 부서져 열려있는 성문으로 검이나 철퇴 등 근접 무기를 뽑아든 총병들이 뛰쳐 들어간다. 함성도 우렁차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이상함을 느낀다.
앞 사람이 나아가질 않는다. 벽이라도 만난 것처럼. 기세 좋던 돌격이 멈춰버리고 중간에 끼인 병사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길이 막혔어! 뭐야?"
"으으윽! 밀지 마!"
"문 열린 거 아냐? 부숴 버리라고!"
신나던 기세가 꺾이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그때. 성벽에 개구리처럼 찰싹 달라 붙어서 위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공병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성벽 위에서 던져진 두 개의 항아리.
입구 부분을 동여맨 천에는 불이 붙어 마치 장식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 피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병은 있는 힘껏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