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271화 (271/556)

33-7. 쿠앙트뢰 조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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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오 가엘 데 프라가도는 방금 전장에서 귀환한 할콘 남작을 맞이했다.

라솔 왕국 이스키비르 강 하류 주둔군 소속인 그는 이름 높은 코루냐 연대의 연대장이며, 이번 원정군 전체의 선봉 지휘관이다.

그러므로 마티오는 선봉 지휘관으로서, 지금 라솔군 소속으로 강을 건넌 모든 병력의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다.

할콘의 경기병대 역시 그가 활용할 병력이고, 지휘관인 할콘 남작은 그의 하급자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방금 전투에서 패배하고 병력을 절반 가까이나 잃고 귀환한 패장이다.

그럼에도 당당하고 여상스러운 할콘의 모습에서, 상관을 대하는 압박감이나 패배 직후의 부담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방금 귀환했습니다, 마티오 경.”

“수고하셨소.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다그치듯 말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전투의 초기 단계, 중요한 것은 본대를 위한 교두보를 챙기는 것이지 지엽적인 패배는 언제든 겪을 수 있다.

“적 보병 부대를 섬멸하기 위해 포위하고 있었으나, 어디선가 예정에 없던 적 기병이 나타나 후퇴했습니다. 다소 피해를 입었으나, 절반 정도는 안전이 확보되면 귀환하리라 생각합니다.”

할콘 남작은 침착한 얼굴로 보고한다.

뭐 그의 말대로 산개된 병력이 귀환할 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휘부 입장에서 보면 무리한 추격으로 전력이 크게 손상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만한 실패를 보고하면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니, 마티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이 기마 용병대 지휘관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끔한 셔츠에, 검은색으로 염색한 단단한 가죽 코트는 전장에서도 언제나 단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느껴지는 폭력적이고 불량해 보이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추측이지만, 그 검은 눈에 비치는 세상은 마티오가 보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리라.

게다가 출신도 말하지 않으며 오로지 ‘할콘 남작’이라는 정체 불명의 작위를 주장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티오 자신도 그다지 대귀족 출신은 아니지만, 제대로 교육 받은 귀족은 저런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아니, 선배 연대장이든, 경애하는 사령관인 퀸토 변경백이든, 휘하의 베테랑 부사관이든 동료 군인들도 저런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는다.

생소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데엔 이런 이유도 있으리라.

어찌 됐든 이 자를 고용하기로 한 것은 퀸토 변경백의 판단이다. 전력으로 주어진 이상 써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라솔 왕국의 승리를 위해 적극적인 것은 좋지만 그대 또한 아군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소. 적극성이 지나쳐 무모함이 되면 곤란하니 각별히 주의해 주시오.”

“말씀 감사합니다, 마티오 경. 그런데, 한가지 제안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제안? 무슨 제안?”

마티오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패배 직후 제안이라니. 이를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곧바로 적을 다시 추격하는 겁니다. 제 부대가 후퇴한 것은 보병과 기병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명망 높은 코루냐 연대와 함께라면 반드시 사흘 내로 적을 격멸할 수 있습니다.”

“...적의 규모가 어느 정도라고 하셨소?”

“포로의 정보에 따르면, 어느 백작이 지휘하는 보병 연대급 부대에, 출신 불명인 600기 정도의 기병 부대가 추가되었습니다.”

전혀 어이없는 제안은 아니다. 어차피 적과 교전하여 최대한의 타격을 입히는 것도 보조 목적 중 하나였다.

600기의 기병은 그렇다 쳐도 엘랑키아의 백작이 지휘하는 연대급 부대라면 지금 전멸시켜 놓으면 장기적으로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으니까.

“흐음··· 하지만 이미 적은 멀어지기 시작한 게 아니오? 이제와서 쫓아가봤자 잡을 수 있을지 과연···.”

“일부러 주변에서 발생한 패잔병들을 그 쪽으로 후퇴하게 몰았습니다. 부상자들이 많을 테니, 생각보다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크흠···.”

인정사정없지만 뛰어난 전법이다. 확실히 다수의 부상병과 패잔병들이 포함되면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부상병들이야 당연하고, 큰 상처가 없더라도 완전히 패배해 전열을 이탈한 자들을 갑자기 무기를 줘서 전장에 세우는 건 또 다른 일이니까.

“마티오 연대장께서는 빛나는 전공을 가져가십시오. 저희는 전리품을 챙기겠습니다.”

“음···.”

할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제안한다. 전혀 관심이 없다면, 끌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마티오와 코루냐 연대는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숫자로 정면으로 충돌한다면, 엘랑키아의 보병 따위를 무너뜨리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게다가 백작이 지휘하는 부대, 그것도 최전방 부대라면 중요도가 꽤 높겠지. 포로로서 가치는 물론이고 이후 적의 전열에도 큰 구멍이 뚫릴 것이다.

할콘 남작이 전리품에 탐을 내는 것도, 백작의 지휘부에 있을 가치 있는 물건들과 주요 장교들의 몸값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통상적으로 약탈의 대상이 아니어서 그렇지, 잘 무장된 부대는 그 자체로 엄청난 돈이 들어간 집단이기에 걸어다니는 전리품 덩어리나 다름 없었다.

시골 마을이나 소도시를 약탈해봤자 생각만큼 돈 되는 물건은 안나온다. 그런 점에서 약체화된 중요 부대를 공략하려는 것인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티오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포로의 말에 의하면, 지휘관인 백작은 북방 나우데사 전쟁에도 참여했던 인물이라 합니다. 분명 대단한 전공이 될 겁니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할콘의 권유가 더해진다.

그 정도라면 필시 중요 인물이겠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들일지도 모를 수백 기의 기병 때문에 그런 먹음직한 먹이를 놓친 것이 억울할 것이다.

패잔병을 포함하면 못해도 수천 정도의 적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고, 이어질 대규모 결전에도 의미 있는 전과이다.

여러모로 고려해 볼만 한 추격전이기는 하지만···.

“귀경의 의견대로 해도 좋겠지만, 우리 군의 주 목표는 교두보 확보요. 만약에라도 아군 주력을 위험에 빠지게 할지도 모르는 행동을 할 수는 없으니.”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할콘은 상황을 이해한 것 같지만, 작게 한숨 쉬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영 터무니 없는 제안은 아니었으니까. 마티오 역시 약간이지만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그래도 아직 주력이 강을 건너는 도중이다. 아직 일부밖에 강을 건너오지 못했고 대부분의 물자는 반대편에 있었기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자신의 임무는 교두보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 아무리 주변에 적이 없다 해도 함부로 강변을 떠날 수는 없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오. 향후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지 않겠소. 다음에는 백작의 막사가 아니라, 엘랑키아 국왕의 막사를 약탈할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지.”

마티오는 굳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절반 정도는 마찬가지로 아쉬운 자신에게 덧붙이는 말이었다.

“그럴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요. 그럼 저는 흩어진 부하들을 다시 모을 겸, 거리를 두고 적을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오. 귀경의 부대는 우리 하류 주둔군의 눈과 귀가 되어 주셔야 하니 말이오.”

“저희는 살아 남는 데엔 도가 튼 자들이니까요.”

납득한 듯,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말로 돌아가는 모습을 마티오가 묵묵히 지켜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할콘 남작의 기병대의 실제 전력은 둘째치더라도 ‘전장의 유일한 협력자’로는 두고 싶지 않다는 다소 편협한 시선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등 뒤를 전투보다 약탈품에 관심이 있는 자들에게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

겉으로라도 공정해야 하는 지휘관 입장에서는 절대로 입 밖에 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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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젱 드 마로텍스 백작의 부대, 그리고 다른 지역의 패잔병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한다.

그나마 다행히도 가는 길이 평지였기에 철저한 방어 진형을 갖추고 조심조심 나아가고 있었다.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일단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굳이 길고 긴 이스키비르 강을 따라서 병력을 분산 배치한 멍청했던 처사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내 예상조차도 뛰어 넘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적군은 생각 이상으로 용의주도했다.

아군은 생각 이상으로 무능했고.

무능했다··· 라고 하면 너무한 처사일지도 모르겠다. 적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나설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을 테니.

“루젱 백작님, 이스키비르 강 부근에 배치 되었던 병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아십니까?”

“내 연대를 빼고 약 3천에서 4천 명 정도였을 것이오만···.”

내 질문에, 루젱 백작은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아마 내 질문이 ‘함께 탈출하지 못한 병력이 얼마나 됩니까?’로 들렸을 테니까.

뭐 완전히 전멸한 것은 아니겠지만, 완전히 무력화 된 것은 확실하다.

강변을 따라 분산 배치한 행위는 적을 방비하는 행위가 되기는 커녕, 적의 기습에 취약한 비숙련 병력을 적 코 앞에 가져다 놓는 꼴이 된 것이다.

차라리 나름 전쟁 경험이 있는 루젱 백작 휘하에 단일 병력으로 배치했다면 모르겠다. 그럼 지더라도 지금 보다는 효율적으로 싸워 봤을 테니까.

하지만 보나마나, ‘상황에 따라 협력해서 대응한다’ 따위의 무사안일한 방침 아닌 방침이나 세워 놓고 병력을 뿌려 놓고 끝냈겠지.

나도 큰 목표만 정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실무 지휘관들에게 맡기는 임무형 지휘체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후방에서 지도를 보며 생각한 사령관의 판단보다 직접 전방에서 현장에 선 지휘관의 판단이 효율적일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든 강변을 지킨다’거나 ‘필요에 따라 협력한다’ 따위는 큰 목표라고 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협력에는 제대로 된 조직이 있어야지··· 그래야 전방 경계병이 기습당해 목숨을 잃더라도 무의미한 죽음이 되지 않는 것이고.

지금은 그런 무의미한 죽음이 얼마나 있었을까. 천 명? 이천 명?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사령관이 그러면 부하들이 불안해 하니까 참는다.

한편, 행군로 주변을 바삐 뛰어다니던 로베르 드 나뵈프 연대장이 보고를 위해 나를 찾아온다.

“주변에 위협적인 적군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적 기마 정찰대가 거리를 두고 쫓아오고 있습니다.”

“본대에 우리 위치를 보고하는 것으로 보이나요?”

“임무를 교대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숫자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면 어딘가에 본대가 반드시 숨어 있을것 같습니다.”

이거 사냥감이 약해지는 것만 기다리며 거리를 두고 괴롭히는 하이에나 같구만.

직접 습격하지 않더라도, 시야 끄트머리에서 끊임 없이 모습을 보이는 것 만으로도 쫓기는 쪽에서는 신경이 곤두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전투 이후로는 공격해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베르 경이 보낸 추격대가 쫓아가면 꽁지 빠져라 도망친다.

그러나 추격대가 귀환하면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서 우리 뒤를 쫓고 있다.

환장할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멀리까지 쫓았다가는 소중한 전력인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가 위험하다.

그렇다고 다수의 부상병이 포함된 대열이 지금보다 서두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최대한 빨리 본대와 합류해서 적이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몸집을 불리거나, 안전한 장소로 가야 한다.

“저 자들은 정말 신경을 긁는구려. 이대로 습격을 해올 것 같소?”

짜증이 나는 것은 루젱 백작도 마찬가지인지 나에게 물어온다.

“단언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아마 공격해오지는 않을 겁니다.”

“빌어먹을, 죽다 살아난 못난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소만 차라리 공격해오면 좋겠군!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아마 위험 지역을 빠져 나갈 때까지는 계속 저 꼴을 봐야 할 겁니다.”

내가 신경이 곤두서는 이유는 조금 달랐다. 바로 저 놈들 때문에 멀리까지 정찰을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수의 정찰병을 보내기에는, 언제 어디서 매복하고 있을지 모를 적이 두렵다.

적이 쉽게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은밀성이 중요한데, 이렇게 정찰병의 출발 시점을 들켜서는 결국엔 따라 잡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습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의 정찰병을 보내면 당장 이쪽의 방어력이 부족해진다.

일종의 제공권 싸움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시 제공권을 찾아 오기 전 까지는 지금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조금만 버티면, 임무 대기 중일 프리스마라 연대가 지원 올 것이다.

프리스마라 기병들의 ‘아라라라라’라는 외침이 너무도 그리웠다.

아마도 더 이상 큰 위험은 없겠지.

그렇다 해도 초전은 완전히 이쪽의 손해다.

강을 건너는 적을 막지 못한 건 둘째 치더라도, 퇴각하는 아군을 살려내기 급급해서 적군의 병력 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부디 다음 행보는 협력하에 제대로 적을 몰아내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에트 경,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시구려.”

“하아··· 죄송합니다, 백작님.”

“분명 우리 서부 귀족들이 또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고 계신 게 아니오?”

“아뇨 저희는 협력 관계이고··· 또···.”

“하하핫! 내가 보기에도 답답한 밥통들이 많으니 말이오. 걱정 마시오. 이 루젱은 앞으로 작전 회의에서는 에트 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소!”

호탕하게 웃는 루젱 백작의 얼굴을 보면서, 그래도 얻은 게 영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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