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9. 생뢰르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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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다들 폐지하는 근접 방패 보병을 이제 와서 확충하는 이유가 뭡니까?’
정말 많은 이들이 이런 질문을 했었다.
동료 용병이나 고용주, 심지어 돌격대 설치를 위해 시험적으로 무기를 발주했던 그룬발트의 병기창에서까지도 말이다.
‘화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는 최대한 가볍게가 기본인데··· 여기다가 쇠를 씌운다고요?’
병기창의 책임자가 돈을 주니 하긴 하겠지만, 걱정된다며 간곡히 말리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아직 300명이 안 되던 시기, 어쩌면 슈토르히라는 이름 조차도 아직 없었던 시절이던가. 오래된 일이라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나도 확신은 잘 가지 않지만, 한 번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
항상 어디서 모범 답안이라도 보고 온 듯이, 해답을 척척 내놓던 콘도티에레도 돌격대 편성 건에 대해서는 확신은 없는 듯 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적극적이었고, 크레시미르가 제안하러 가면 아낌 없이 의견과 평가를 내놓았다.
그렇게 꾸역꾸역 만들어진 돌격대였다.
사실 개념으로 따지면 별다른 것은 없다. 애초에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창과 총에 더해서 방패병을 정규 편제로 넣는 연대도 많았고 현재도 없지는 않다.
봉급을 더 많이 받고, 대열의 외곽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고참병들 중에서, 유난히 용감하고 저돌적이며 싸움도 잘하는 녀석들을 모아 놓았다 정도일까.
무장도 유난히 두껍고 무거운 방패에, 힘을 모아 내리치면 갑옷도 부술 기세의 무기를 들려 준 정도.
콘도티에레의 주문은 딱 하나였다. 언제나 일점 돌파를 할 것.
평범하게 전열 싸움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적의 화력에 노출되었을 때의 취약함도 그렇고, 적과 붙어야 강점을 보이는 특성 상 ‘언제나 아군의 내부, 혹은 적의 내부에 있어라’ 라는 모순적인 방침이 정해졌다.
그렇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요소와 개념들을 모아 만든 돌격대, 정확히는 슈토르히 연대 예하 돌격 중대라는 이름의 특수 부대는 대박을 쳤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대열 유지해! 적이 생각보다 강하진 않지만 수가 많다!”
“예엡!”
타닥, 하고 원형 방패의 모서리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중대장인 크레시미르와 부하들의 거리는 가까웠다.
최소한 상체는 관통력이 좋은 근거리에서 발사한 총이나, 대포라도 끌고 오지 않는 한은 안전한 상태이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기에 무릎도 비교적 안전하다.
“적을 밀어내라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엘랑키아 돼지들!”
“크아아악! 박살을 내 버려라!”
방금까지 자신들이 공세였는데, 슈토르히 돌격대가 쐐기처럼 밀고 들어와서는 비스듬히 박혀버렸다.
알시라스 해군 육전대 입장에서는 돌아버릴 지경이다. 공격을 방해받는다는 전술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
자신들은 본래 땅에 발을 디디고 싸우는 데는 전문이 아니다. 하지만 지상의 머저리들을 백병전에서는 얼마든지 찍어 누를 수 있다 생각했었다.
일종의 비대칭 전력으로서,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가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유능한 충격보병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 진실이다.
그런데 웬 걸, 보도 듣도 못한 커다란 방패를 들고 온 괴상한 놈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데 역공을 가해 온 것이다.
이걸 참고 볼 수 있는 육전대는 아무도 없었다.
“온다! 충격에 대비해!”
“짜식들 바짝 약이 올랐네!”
콰쾅!
두껍다지만, 인간의 육체에 비하면 한없이 얇은 방패의 벽을 사이에 두고 양측의 병력이 격돌한다.
“크윽, 크아악!”
“멍청아, 방패를 몸으로 밀지 마! 뒤에서 찔린다고!”
약이 오른 나머지 방패를 타넘으려던 듯한 적이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지자, 장교가 그를 나무란다.
당연히 방어하는 쪽인 돌격대는 방패에 달라붙은 몸뚱이를 그냥 둘 리 없다.
방패 위로 칼을 얹듯 밀어 넣든, 측면으로 미끄러지듯 찔러 넣든, 적은 가시가 없는 줄 알고 달려들다가 끔찍한 꼴을 당하는 것이다.
실전에서 방패를 상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것이다.
당연히 총기가 주류가 된 이후로 방패의 사용량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간이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게이면서 총알도 완벽히 튕겨내는 방패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게를 더한다면, 차라리 투구와 흉갑을 강화하거나, 극단적으로는 하나 더 입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면 어느정도 총탄에 대한 방어력을 담보할 수 있었으니.
이런 전장에서 알시라스 해군 육전대가 갑자기 시간 여행이라도 한듯, 눈 앞에 뿅 하고 나타난 방패의 벽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
“흐이압!”
콰앙!
크레시미르는 이를 악물며 신음을 참았다. 적은 갑자기 나무꾼으로 전직이라도 한듯, 쇠를 바른 방패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 놈들 가지고 있는 외날검이 약간 도끼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콰악!
어마어마한 힘이다. 자기도 어지간히 힘이 세다 생각하지만, 어깨가 움찔하고 밀릴 정도였다.
슬쩍 방패 너머로 적을 바라본다.
확실히 키가 크고, ‘나 괴력을 가지고 있소’ 라고 써 붙인 듯한 과격한 이목구비.
숫제 이쪽이 반격을 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듯, 온 힘을 다해 양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그걸 그냥 둘 수는 없지. 크레시미르는 한 걸음 힘차게 내딛는다.
“어? 어어?”
세번째 도끼질을 위해 양손을 높이 치켜들고 있던 적은 ‘벽’이 갑자기 다가오기 시작하자 당황한다. 크레시미르의 검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인다.
“끄아아악! 이 새끼··· 끄윽! 이상한 수를 쓴다!”
“이상한 수는 무슨.”
방패의 틈을 타고 유려하게 움직인 칼 끝은 마주 선 적의 허벅지에서 무릎까지를 도려내듯 깊게 베고 지나갔다.
평소에 면도도 할 수 있을 만큼 날카롭게 유지한 칼날, 거기에 기술과 힘이 더해진 깔끔한 일격이었다.
허벅지에서 피를 펑펑 뿜이며 적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처참할 정도로 깊게 난 상처를 보고 주변의 다른 적도 질린 것 같다.
이들도 싸우는것이 직업인 만큼, 상처가 난 형태만 봐도 보통 솜씨나 힘으로는 낼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을 알아 본 것이다.
“오, 대장님 멋진데요?”
“조심해, 이제 총알 날라올 차례다.”
“아, 그건 싫은데요···.”
다시 대열 안쪽으로 돌아온 크레시미르는 여유가 생긴 틈을 타 주변을 살핀다.
아군은 적진 가운데 꽂힌 바늘과 같은 형태지만, 아직 크게 위험하지는 않아 보인다.
돌격대 병사들이 워낙에들 잘 싸워주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돌격대의 엄호로 인해 부담이 줄어들자마자, 인근 드 누아 연대도 갑자기 질서를 되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 입장에서야, 당연히 주 전선이자 주 목표는 드 누아 연대이지, 갑자기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온 백명 남짓한 시대착오적인 무장의 돌격대 따위가 아니니까.
“벌어먹을 총 가져와!”
“이 새끼들 이상하다, 방패 째로 날려버려!”
올 것이 왔다. 긴장으로 침을 삼키며 방패에 몸을 딱 붙인다. 적은 주로 권총을 쓰지만 구경이 제법 커 보이는 화승총도 몇 자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총은 몰라도, 이 거리에서 화승총은 방패로 절대 막을 수 없다. 투구조차도 운이 좋아야 막을까 말까니까. 사실 권총도 위험할 수 있고.
차라리 이대로 치고 나갈까?
아니, 아직 그러기에 적이 너무 강성하다.
슈토르히 돌격대의 특징은, 이 시대의 백병전 전문 부대 치고는 전투 지속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언제나 소수일지라도 대열을 유지하고 주변 동료와 연계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그저 기세에만 몸을 맡기는 단순한 충격 보병 역할로 끝나서는 지금처럼 슈토르히 연대에서 당당한 독립 부대로 인정받지 못했을 테니까.
이번에는 꼼짝없이 맞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할 무렵.
갑자기 적진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적들이 아우성치고, 전령이 이리저리 바삐 달리는 게 여기서도 보인다.
“무슨 일이지?”
크레시미르도 모르는 것을 부하들이 알 리가 없기에 대답은 없다.
하지만 명확하게 흐름이 보인다.
적의 주 전선에 분명한, 그리고 부정적인 뭔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주 전선이 밀려나고 있기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부대에 압박을 주고, 그 영향이 여기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측면을 찌르고 들어온 슈토르히 돌격대를 상대하던 적의 ‘수평’이 어긋나고 있었다.
슈토르히 돌격대는 물론 ‘단순한’ 충격 보병은 아니다.
‘더 훌륭한’ 충격 보병이다.
“후위에 전령! 후위에 전령! 이 쪽으로!”
“옛, 중대장님!”
크레시미르의 다급한 외침에, 방금전까지 농담 따먹기를 하던 부하 장교가 황급히 신호를 보낸다.
크레시미르와 선두 돌격대가 적과 교전하는 동안, 아직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위 부대가 서둘러 달려온다.
“하하핫!”
자신도 모르게 활짝 웃고 말았다. 좁은 활로를 통해 달려오는 후위 사이로, 최대한 몸을 수그리고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고프릭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격의 목표가 되어 위험할 수 있으니, 전투상황 이외에는 최대한 숙이고 다니라고 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아무리 숨겨도 저 곰 같은 덩치가 동료들 사이에서 숨겨질 것 같지는 않다.
“우리 드 누아 동료들이 생각보다도 힘을 써 준 모양이다! 적이 흔들리고 있다!”
“옛!”
“우리가 도와줄 수 밖에 없지! 나를 포함한 전위와, 대기했던 후위가 함께 돌격한다. 나머지는 후방을 지킨다!”
“옛!”
적의 이 혼란이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조만간 질서는 회복되리라는 것이다.
다소 도박수이지만, 이만한 기회가 또 안 생길지도 모른다.
“적은 한 번 물러섰던 적이니까, 또 옆구리를 강하게 때리면 버티지 못 할 거야.”
“어, 중대장님, 어디까지 돌격하면 되겠습니까?”
“어디까지?”
어디까지라, 단순히 적진에 충격력을 전달하고 거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악착같이 파고들고 추격까지 할 것인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
“예엡!”
“고프릭! 이제 허리 펴도 돼! 내가 선두다, 잘 따라와!”
“예, 예엣, 중대장님!”
“자, 지금부터 밀어 붙인다! 돌격!”
“우와아아아아아!”
적과의 거리는 몇 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돌격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아무튼 유지하던 대열을 풀고 뛰쳐 나간다.
파각!”
“어억!”
갑자기 크레시미르의 왼쪽 어깨가 뒤로 휘청인다. 손가락에서 어깨에 이르는 관절이 몽땅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눈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눈이 먼 것은 아니다. 근거리에서 뿜어져 나온 화약 연기가 온통 눈 앞을 가렸을 뿐이다.
“크으윽!”
자칫하면 넘어질뻔 한 균형을 회복한다.
총에 맞았다.
하지만 괜찮다, 튕겨냈다.
예전에 투구 앞쪽으로 납탄을 튕겨 본 경험이 있어서 안다. 아예 뚫릴 정도면 이런 식으로 둔한 충격이 오는 게 아니라 딱 그 부분만 뚫린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는지를 확인한다. 기묘한 뻐근한 감각에 좌반신이 불편하긴 했지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엇!”
선두였던 크레시미르가 잠시 멈춰있던 사이, 뒤이어 달려오던 후위 병사들이 앞질러 달리기 시작한다.
“하하···.”
남달리 커다란 어깨, 어설프게 그린 곰 얼굴이 그려진 역시 남달리 커다란 방패.
투구 아래로 보이는 순박하지만 진지한 눈.
부대 최고 막내 중 하나인 고프릭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악!”
고프릭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적이 움찔거리며 반 걸음 쯤 물러서는게 보인다.
이게 바로 돌격대지.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모순된 생각을 하며, 크레시미르는 뒤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돌격을 안 했으면 모를까, 하기로 했으면 끝장을 낸다.
그게 바로 돌격대지.
슈토르히기도 하고 말이야.
평소와 달리, 이번에는 뒤에서 든든하게 느껴지는 슈토르히 본대의 눈길이 없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분명히 죽어라 싸우고 있으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전장을 휘어잡고 정리해 줄 거란 신뢰가 사라지지 않는게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게, 이번에는 콘도티에레가 오랜만에 직접 지휘한다고.
기대를 안하면 그게 멍청이지.
“같이 가 이놈들아!”
어깨는 여전히 아프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