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32화 (332/556)

36-1. 승리자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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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이 끝난 다음 날이 밝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추격은 예정대로 할 수 없었다.

추격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 부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콘도티에레··· 지금이라도 주무셔야···.”

“난 그래도 새벽에 조금이라도 잤잖아. 첼레스티나야말로 잤어? 보고서 보니 밤새 정리한 것 같던데.”

“네에? 저, 저는 원래 가끔은 안 자요!”

“...대체 무슨 소리야. 어서 가서 두 시간 자고 와! 여긴 아인멜츠 경과 내가 어떻게든 처리 할 테니까.”

“네에, 저는! 괜찮아요오···.”

나는 한숨을 쉬며 잠을 자지 못해 눈이 빨개진 첼레스티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전장에서 밤을 새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긴 하지만··· 어제는 특히나 저녁 늦게까지 전투가 계속됐기 때문에 상황이 더욱 나빴다.

사실 공식적으로 교전 종료 명령 따위는 내려지지 않았었다. 전투가 끝난 이유는, 해가 완전히 져서 더 이상 ‘적을 찾을 수 없다’라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대를 후방으로 이동시켜 ‘비교적’ 안전하고 쾌적한 병영에서 쉬는 등의 사치스러운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어도 전령을 보낼 수 없었다. 부대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전령이 어찌어찌 부대를 찾고, 그 지휘관을 만나 명령을 전달했다 해도, 그 지휘관이 부대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아군과 적군이 뒤섞여 치열한 전투 중이었는데, 어느 휘하 부대가 멀쩡히 남아있고 어느 휘하 부대가 전멸당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밤에 뭘 하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 우리가 졸리니 적도 졸릴 것이다··· 라는 희망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라, 적이 우리를 보지 못 하는 대신 우리가 적을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적을 못 찾는 건 그나마 낫지, 최악은 우리가 우리를 못 찾는 일이다!

극도로 제한되는 시야, 정신을 좀먹는 긴장감,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 못했다는 피곤함은 어둠 속 멀리 일렁이는 그림자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하니까.

게다가, 그 시야가 제한되고, 긴장하고, 피곤한 병사의 손에 장전된 총이 들려 있다면 곧바로 참사로 이어진다.

물론 주변에 다른 장전된 총이 더 많다면, 그냥 참사로 끝나지 않겠고.

실제로 지난 밤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터질 뻔 했다.

뒤늦게 전장에 돌아와 복수심에 몸이 달았는지, 어둠을 모릅쓰고 추격을 계속하던 서부군 보병의 선두가 중간에 방향을 잃었다.

이미 포위망을 빠져나간 지 한참 된, 시체만이 굴러다니는 전장을 한참 배회하던 그들이 어둠 속에서 맞닥뜨린 상대는, 다름 아닌 드 레뮤즈의 보병대였다!

한쪽은 한 때 전장을 이탈했다는 수치심과 복수심에 가득한 귀족들이 이끄는 보병들.

한쪽은 명령에 충실이 따르고는 있지만 전투 경험이 부족해 극도로 예민해진 신병들.

얼마든지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서부군의 장교들이 선행하는 정찰대를 내보내는 최소한의 분별은 있었고, 드 레뮤즈 군은 사방에 불을 환하게 피워놓고 있었기에 참사는 피했다.

그래도 가슴이 서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는 더 큰 일이 생기겠다는 생각에, 사령부에서는 목청 좋은 전령들을 사방으로 달리며 ‘전투 중지!’를 외치도록 시켰다.

실질적으로 전장에 어둠이 완전히 내린지 2시간이 흐른 뒤에야, 산발적으로 벌어지던 도망자와 추격자와의 교전은 끝날 수 있었다.

포로를 잡는 것은 중요했지만, 이러다 아군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모두가 했던 모양이고.

대신에 각 부대에서 일부 병력을 차출해 부상병들을 수습했다.

격전이 벌어진 주 전장의 위치는 뻔했기 때문에, 다행히도 부상병 수습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후방 초원에 끝도 없이 늘어선 부상병들의 침상이다.

사실 제대로 침상을 준비할 틈도 없어서, 대부분은 담요를 둘둘 말고 있었고 그마저도 없는 병사들도 있었지만은.

책임감 강한 군의관과 군간호사들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끝없이 들어오는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들이라고 교전이 벌어지는 낮 동안에 쉰 것도 아니다. 특히 일부는 아직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 들어가 귓가를 스치는 총알 아래에서 응급처치를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임무를 맡은 장병들은 당연하거니와, 나머지도 편히 쉴 수 있을리 만무했다.

대부분은 전장에서 철수하지도 못한 상태로, 교대로 쪼그리고 앉거나 웅크리고 누워 쪽잠을 잤을 뿐이다.

이러니, 다음날 아침인 현재 제대로 추격에 나설 수 있는 부대가 있을리 만무했다.

그나마 오랜 용병 생활로 얻은 짬밥으로, 전장에서 살짝 벗어나 교대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프리스마라 기병대 정도가 컨디션이 괜찮아 아침에 내보냈을 뿐이다.

그나마도 그들의 임무는 ‘추격’이 아니라 ‘감시’였다. 물론 도망치는 적을 그대로 방치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전장을 오가는 각 부대의 장교들과 전령들의 표정이 어둡다.

많은 부대들이 해가 뜬 후에야 낙오병들이 귀환하고 있었고, 이제야 점호를 통해 인원을 점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나는 우선적으로 올라온 몇몇 부대의 인원 보고를 확인하며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해가 전장을 비추기 시작했을 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수도 없이 쌓인 시체의 산이었다.

치열했던 공방이 거듭된 전선의 형태를 눈으로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선 형태로 이어지는 시체의 산.

특히나 전투가 격했고 병력의 밀도가 높았던 몇몇 장소에는,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시체가 겹겹이 누워있었다.

아군도 적군도, 결국 이 꼴이 되도록 많은 희생을 낸 것은 지휘관들의 책임,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책임이겠지.

그렇다해도, 지금은 살아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에트 참모장! 드 레뮤즈의 보병들은 정오까지 휴식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아직 전장에서 병력을 추스르고 있는 보병대장 세샤르 드 레도쿠르 자작이나, 기병대장 소베트르 드 랑두제 경을 대신해 드 레뮤즈 영지군을 책임지고 있는 아인멜츠 피노르 폰 자이트리츠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 레뮤즈의 병사들이··· 추격의 핵심이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휴식 후에 필요하다면 추격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첫 승리로 사기도 높습니다!”

“하하··· 다행이군요.”

다소 과장이 있을지 몰라도, 전투 내내 침착한 판단력을 증명한 아인멜츠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라몽 백작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그게···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다만 드레피니 집사장의 말에 따르면, 호흡은 안정되었으니 곧 괜찮아지실 것이라 합니다.”

“전에도 그러셨던 적이 있나요?”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전투의 승리가 결정된 순간,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은 혼절해 말에서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끝까지 전장에서 싸우는 부하들을 지켜 보았던 것인지.

지금까지 라몽 백작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점들을 모조리 후회하고 사과라고 하고 싶을 정도의 의지였다.

앞으로는 생각으로라도 욕 하지 말아야겠다.

게다가 역설적이게도 지금 가장 멀쩡한 부대는 드 레뮤즈의 4개 보병 연대이다.

격전장을 죄다 맡거나, 외곽을 따라 이동하며 병력면에서나 체력면에서나 크게 소모된 트랑카벨 영지군이나, 아직 병력 소집조차 다 되지 않은 서부군 잔존병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니까.

최소한 전투 내내 집결해서 싸웠고, 과도한 행군을 하지도 않은 드 레뮤즈 보병 연대들은 아직 전투력을 온존한 몇 안되는 부대였다.

“콘도티에레! 저희도 언제라도 출전이 가능합니다. 명령을 내려주시면 추격 선두에 서겠습니다!”

“미카토 연대장···.”

네그라타 연대장 미카토 바르두 샌잔디스가 힘찬 목소리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온다.

그들은 어제, 위험한 반격작전의 선두를 맡았으며 슈토르히 연대 다음으로 먼 거리를 행군해 적의 측면을 타격했다.

그나마 슈토르히는 적과 교전하기보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다면, 네그라타는 실제로 중반까지는 적진을 돌파하며 타라트라바 전열 붕괴에 가장 큰 전공을 세웠다.

게다가 연대 당 포로 획득수를 따져도, 네그라타의 절반을 따라올 수 있는 부대는 없으리라.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슈토르히의 행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그들은 이웃한 드 레뮤즈 보병대와 보조를 맞춰야 했기 때문에 홀가분하게 홀로 진격한 슈토르히 연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네그라타 연대에 우선 보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오까지는 준비를 마치도록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콘도티에레!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더더욱 고생을 시킨다는데, 미카토 연대장은 마치 다음 주 부터 휴가라는 말이라도 들은 듯 환한 얼굴이 된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와 비슷한 입장인 용병 연대장이었지만··· 네그라타 친구들은 고생 좀 하겠구나.

그들은 이론상 트랑카벨 가문에 몸값을 잡힌 상태이니, 열성적으로 나서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격전 중의 격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른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와 지빌링엔 연대는 재편성이 시급한 상태이다.

···대체 사상자가 얼마나 될지 보고를 받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게다가 제10 카르카냑 보병 연대와 제31 몽세나 정찰 연대장은 중상을 입은 상태이다.

제31 연대의 로베르 드 나뵈프 연대장은 전투 초반에 총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로 전투를 지휘했다고 한다.

아넥시 전투에서 붕대를 둘둘 감은 상태에서도 차라리 전장에서 죽겠다며 창을 들고 말에 오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하여간 책임감의 덩어리 같은 사람이다. 어쨌든, 이어지는 추격전에는 참여하지 못한다고 봐야겠지.

그런 상황이니 어떻게든 도망치는 적을 압박할 병력을 재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부군도··· 재편성을 빨리 끝내준다면 좋을 텐데.

“콘도티에레! 앙비토 공작,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님이 오셨어요!”

“아··· 그 사람 무사했구나.”

안 좋은 소식이 따로 없었고, 부대를 재편중이라는 공작 명의의 전령이 왔었으니 무사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몽 드 레뮤즈 백작이 그렇듯, 당사자의 군사적 능력과 무관하게 명목상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부대의 대들보와도 같다. 그가 건재하다는 것은 다행이다.

“트랑카벨의 에트 경!”

“앙비토 드 몽파르지에 공작님, 트랑카벨 자작 가문의 대리 사령관 에트입니다. 전투 직후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예의를 갖추면서도 나는 조금 놀랐다. 공작은 예의 화려하고 단정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옷깃에 과장되게 나와있는 값비싸보이는 하얀 레이스 장식은 시커먼 화약 연기로 절어 있었고, 혼자 관리가 되나 싶을 정도로 정갈하고 화려한 모자도, 비단 장식 띠도 온통 구겨져있었다.

단정한 하얀 얼굴 또한, 화약 얼룩으로 엉망이다.

···이 사람은 최소한 화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장에서 부하들과 함께 싸우기는 한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오··· 에트 경, 생뢰르반의 승리자이자, 우리 서부군의 구원자, 드 몽파르지에 가문의 은인에게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구려.”

“아니 공작님··· 저기, 이러시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서부의 관리자이자 최고 명문 8대귀족 중 하나. 엘랑키아 전체에서 의전 서열이 높은 사람이 열 손가락에 꼽힐 법한 어마어마한 대귀족이 나에게 먼저 인사한다.

그냥 인사도 아니고, 모자를 벗고 과장되게 연극 배우처럼 허리를 숙이며 경의를 표하는 정식 경례이다!

일단 주군인 앙비토 공작이 고개를 숙이자, 수행원들도 줄줄이 고개를 숙인다.

아니 혹시 뭔가 내가 답례를 해야 하는가? 촌놈에 엘랑키아 예법 따위는 모르는 용병 나부랭이인 내가 알 리가 없잖은가!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곧 마주 고개를 숙였고, 옆에서 첼레스티나 역시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기색이 느껴진다.

한참 후에야, 눈치를 보며 서로 고개를 든다.

어째서인지 앙비토 공작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리고··· 그가 가슴에 댄 챙이 넓은 모자에는 모서리가 그슬린 총알 구멍이 있다. 그것만 보아도, 이 사람이 지난 전투에서 놀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는 일개 대리사령관에 불과합니다. 이번 전투에서는 라몽 백작님을 보좌하는 참모장이구요. 그렇게 예를 갖추시지 않아도 됩니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아군은 꼼짝없이 패배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또한, 어리석은 이 몸의 숨통 또한 무사히 붙어 있었을까?”

“음, 네···.”

“전날의 장대했던 전투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나, 지금은 귀경이 시급히 알아야 하는 내용이 있네.”

“무, 무엇입니까?”

“본관 막하에서 기병을 지휘하던 노브리크 드 다푸아 자작이 새벽녘에 오명을 반납하겠다며 출격한 모양이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부담스럽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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