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380화 (380/556)

39-13. 고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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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부운, 오늘도 행복한 기록 사격 시간이 왔어요.”

귓가에 첼레스티나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교관인 그녀의 목소리는 원래 미성에 느릿한데다가 상대를 걱정해주는 진심도 담겨 있어 누가 들어도 좋은 목소리이다.

평소였다면 말이지.

지금, 가늠자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표적을 겨누고 있는 지금은 마치 사형이라도 선고하는 판사의 말처럼 들린다.

목 뒤의 털이 다 곤두서고 목이 졸리는 느낌이다.

아르옌 그로반, 얼마 전 평생 입어온 수도복을 벗어 던지고 방어교단 수도사로서의 계율을 버렸다.

얄궂게도 스승인 요한 린데만 폰 아인푸르트 사제는 완전히 교리를 벗어난 자신을 ‘파문’하지 않았다. ‘잠시 다녀오라’는 것이 스승의 말이었다.

그렇게 스승의 곁을 ‘잠시 떠난’ 그는 아넥시를 출발해서는 무작정 카르카냑에 도착했다. 그리고 영지군 모병 사무소를 찾아갔다.

현재 트랑카벨 영지군은 신병을 모집하고 있지는 않았기에 모병 담당자는 난색을 표했지만, 다행히 담당자는 아르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성전군의 압도적 대군을 상대로 방어전을 이끌었던 ‘목숨 바쳐 이단을 돕지만 이단은 아니라 주장하는’ 괴짜 사제와 그 제자의 이야기는 카르카냑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르사코르 언덕에서 법황군이 궤멸해 사실상 성전이 일단락 된 이후에도 계속 종군하여 생뢰르반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것을 모병 담당자는 알고 있었다.

라솔을 상대로 한 출병에 트랑카벨 영지군 소속이 아니면서도 ‘콘도티에레의 호의로’ 지휘부의 일원이 되어 따라갔었기 때문이다.

다소 규정에 어긋난다고 할지라도 트랑카벨 가문의 운명을 결정했던 두 번의 전투에 한 번은 총병으로, 한 번은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용사이다.

게다가 수도사를 그만두고 환속까지 하며 의지를 보이는 아르옌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 모병 담당자는 수소문 끝에 교육을 준비하던 첼레스티나를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첼레스티나 역시 영지군 신병을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으나 사정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훈련 참여를 허락했다.

‘만약에, 만약에라도 트랑카벨 영지군이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슈토르히 연대에 책임지고 입대시키겠다’

라고 했다며, 땀을 뻘뻘 흘리며 전달해준 모병 담당자에게 아르옌은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모병 담당자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상이군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울목의 전투에서 드라멜른 기사단의 총병이 발사한 대구경 납탄이 그의 정강이 뼈를 완전히 산산조각냈다고 한다.

“응원하겠습니다, 수사님. 아, 지금은 수사님이 아니겠군요.”

굳은 악수를 나누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바로 그 덕에 아르옌은 이 자리, 트랑카벨 영지군 선발 사수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그 선택을 하루에 열 번은 후회하곤 했지만.

굳은 표정의 동료 10명과 함께 나란히 사선에 선 지금, 머리속에서는 별 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

지금은 2주마다 있는 기록 사격이다. 모두 세 발의 사격을 하며, 장전시간을 포함해서 주어진 시간은 한 발에 1분, 총 3분이다.

즉 3분 동안 세 번 표적을 향해 사격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훈련이다. 그럼에도 아르옌이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사선에 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선, 표적이 너무 멀다.

첫 기록 사격에서 80미터 거리로 시작한 표적은 갈수록 멀어지더니, 이제는 사선으로부터 100미터를 훌쩍 넘어 버렸다.

더 두려운 것은 교관들이 거리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표적이 너무 작다.

화약을 충분히 채운 실탄 사격 훈련은 총병들 사이에서 흔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가로 세로 1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표적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이번 표적은 세로는 1미터 정도이지만, 가로는 그보다 절반으로 작았다.

즉, 탄이 조금만 좌우로 튀어도 빗나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두 번 불합격하면 훈련 과정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 기준은 세 발 중 한 발 명중이다.

어찌 보면 관대한 기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한 발 맞추는 것이 죽도록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실력과 무관하게 화약이나 총기에 문제가 있어서 탄도가 안정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가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장에서는 두번 째 기회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 때는 표적에게 잠시 멈춰 달라고 말하실 건가요?’

어려운 조건이라 생각한 누군가가 질문하자, 첼레스티나 교관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게다가 딱히 장거리 사격에 대한 경험이 적었던 아르옌은 이미 한 번 불합격하고 말았다. 그러니 이제는 실수할 수도 없다.

큰소리를 치고 곁을 떠났던 제자가 몇 달 지나지 않아 털레털레 찾아와서는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라고 한다면 스승은 대체 뭐라고 할까.

아마도 호탕하게 웃으면서 ‘이 또한 주신의 이끄심이니, 탕아는 집으로 돌아가는도다! 잘 왔네!’ 등의 말을 하며 반갑게 맞아주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죽어도 싫었다. 스승을 보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는 것이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최대한 깊게 내쉰다. 잘못된 호흡 습관이 장거리 사격에서 어떤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지는 지겹도록 몸으로 익혔다.

지금 그의 탄약 가방 안에 있는 세 발 분량의 탄약포는 불균질한 화약 알갱이를 하나 하나 골라내 완벽한 중량을 고려해서 준비한 최상품이다.

주석이 일부 섞인 비교적 단단한 합금탄 또한 일일이 줄로 갈아내어 완벽한 구형이 되도록 조정한 다음, 팽팽한 가죽으로 감쌌다.

“저는 교관으로서 힘든 훈련을 견뎌주시는 여러분께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등 뒤에서 첼레스티나 교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여기, 3조에는 훌륭하신 분이 많이 계시네요.”

3조는 아르옌이 속한 11명으로 이루어진 조를 말한다.

“여기에는 가문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훈련에 참여하신 분도 계시고, 확실한 중대장 진급 기회를 거절하고 합류하신 분도 있어요.”

아,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가. 같은 조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친한 편이고 시간이 되는 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그런 줄은 몰랐다.

“...그리고 고민 끝에 잠시 주신을 섬기는 천직을 내려 놓고 오신 분도 계시지요.”

···이건 아마도 자신을 말하는 모양이다.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아르옌은 이 이야기를 종종 주변에 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미 평범한 트랑카벨 정규 연대의 사수로서는 훌륭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대단한 수준에 올랐습니다.”

첼레스티나 교관은 웃는 얼굴로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 붙이는 무서운 사람이기는 했지만, 훈련 중이 아닐 때는 항상 상냥하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표적인 것은 최선을 다 해도 빗나가는 경우가 있고 이는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훈련에서 탈락하더라도 어떤 불이익도 없을 것이란 말이다.

애초에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란 점은 자신은 물론 트랑카벨 가문이나 콘도티에레도 인지하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연대로 돌아가도 훌륭한 명사수로 인정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다음 한 걸음을 힘들게 내딛고 계시죠. 모두의 다음 격발에 행운이 있기를···.”

말을 중간에 끊은 첼레스티나 교관은 잠시 뒤 정정하여 말을 잇는다.

“아니지, 모든 사수는 자신의 행운을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모두 사격 준비 해 주세요오!”

드디어 때가 왔다.

자신은 이번 사격을 위해서 빠짐없이 준비를 했는가?

자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이다. 최소한 교관과 동료들에게 배운 것, 그리고 실전에서 체득한 경험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최소한 한 발은 맞춰야 한다. 자신은 더 이상 기회는 없으니까. 천천히 총을 허리 앞에 세우고 장전 준비를 한다.

기록 사격은 빈 총으로 시작해서 장전부터 명중까지를 증명하는 과정이니까.

“모두 시작!”

가방에서 곧바로 탄약포를 꺼내 끝을 이빨로 뜯고 총구에 부어 넣는다. 사사삭 하고 화약 입자가 총열 내부를 스치는 소리가 묘하게 기분 좋게 들린다.

이어서 꽂을대로 천천히 탄약을 다진다. 너무 빡빡하게 다지면 오히려 격발이 불균일하게 일어나거나 탄환에 충분한 힘이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얇은 가죽으로 감싸진 합금 탄환을 꺼낸다.

평소라면 탄약포 끝에 탄환이 함께 포장되어 있어, 종이 껍데기 채로 총구에 밀어 넣겠지만 이번은 아니다.

자칫하면 격발시 불완전하게 타버린 종이 찌꺼기가 탄환을 왜곡시키거나 총열 내부를 더럽힐 수 있다.

최소한만 갖춰지면 명중보다도 안정적인 속도가 중요한 평범한 사격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한계까지 정확도가 필요한 지금은 아니다.

총구에 딱 맞게 끼워진 탄환을 꽂을대로 밀어 넣자, 다소 뻑뻑하면서도 크게 걸리는 지점 없이 끝까지 들어간다.

총열 내부를 조심스럽게 손질한 보람이 있었다.

타앙!

탄환을 밀어 넣은 꽂을대를 총구로 다시 꺼내는 중에, 벌써 누군가는 첫 발을 사격했다. 놀라운 속도였다.

하지만 동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장전 속도는 결코 늦지 않다. 평소 루틴대로만 움직이면 절대 시간을 넘치지는 않는다.

총 3분이라는 시간만 엄수하면 사격이 빠르고 느린 것에 대한 패널티는 없다. 오로지 제한 시간 내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

총을 살짝 옆으로 눕히고 점화구에 고운 점화약을 부어 넣는다. 격철을 당기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탕! 타앙!

주변에서 한 발씩 총탄이 발사되며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어느새 익숙해진 냄새였다. 치열한 아넥시 공방전에서, 그리고 선발 사수 훈련장에서도.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며 총을 겨눈다. 가늠자 사이로 가늠쇠 끝이 보인다.

그 너머로 보이는 나무 표적.

타앙!

방아쇠를 당기자 묵직한 반동이 어깨를 때린다.

빗나갔다!

첫 발이 가장 완벽한 사격인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충분한 시간을 들인 장전은 못했어도 총열이 가장 깨끗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펫!”

망설일 틈은 없다. 곧바로 다음 탄약포를 뜯어 찌꺼기를 바닥에 뱉는다.

화약을 다지고 2발 째 탄환을 밀어 넣는다. 다행히 여전히 뻑뻑하지만 크게 걸리는 지점 없이 총알이 들어간다.

총열이 찌꺼기로 크게 더럽히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타앙! 타탕! 탕!

주변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계속 올린다. 함께 훈련 받은 동료 사수들이 각자 자신의 루틴에 따라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콰자작!

누군가의 총탄이 표적 뒤를 고정하고 있던 나무 장대를 정확하게 부숴 버렸는지, 표적이 허공으로 빙글빙글 돌며 날아오른다.

정말로 한 가운데를 정확하게 명중시킨 모양이다. 실력이든 운이든 대단하다.

남들이 명중시키고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은 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세상에는 오로지 자신과 표적밖에 없다.

평생 수도사 생활을 하며 얻은 명상을 통한 집중력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됐다.

다시 표적을 가늠쇠 위에 올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젠장, 또 빗나갔다. 이렇게나 준비했는데도 두 발 째가 빗나가고 만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깊은 절망감이 가슴 속을 채운다. 동요가 아차 하는 순간 실수하게 만든다. 루틴이 깨지면서 탄약 채우는 게 늦었다.

조용히, 천천히. 평소 훈련대로라면 전부 쏘고 나서도 시간은 제법 남는다. 몇 초 정도의 손실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주의깊게 장전한다. 역시, 세 발 째는 총열에 찌꺼기가 끼어 좀 더 뻑뻑하다.

대신, 이럴 줄 알고 세 번째 탄환은 가죽 대신 매끄러운 종이로 감쌌다. 약간의 차이지만 장전에 도움이 된다.

만약 세 발 째도 빗나가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당장 포기하고 방어 교회나 스승님께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평범하게 트랑카벨 군에 입대해 종군을 하며 경험을 쌓을 수도 있겠고, 다음 기수의 선발 사수 훈련에 다시 참가할 수도 있겠지.

첼레스티나 교관도 기회는 평생에 한 번 뿐은 아니라며 그렇게 이야기 했으니까.

그러면 될 지도 모른다. 처음 세 발 모두 빗나가 명중하지 못한 것도, 장거리 사격과 심한 근력 훈련이라는 익숙하지 못한 상황에 치였기 때문이니까.

잠시 마음이 느슨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스승님의 말이 생각났다.

‘이게 군대란 성직자 조직과도 같아서, 모든 게 짬순이라네! 짬에서 밀려 어떤 수모를 당할 지 모르니까!’

타앙!

보기 좋게 표적의 한쪽 귀퉁이가 날아갔다.

명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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