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4. 폴름스 전투, 셋째 날
“재미를 봤으니 빠르게 빠진다! 창병이 다가오기 전에 물러선다!”
“옛, 대장님!”
충분히 그룬발트 군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피를 짜내 쓰러진 동료들의 목숨 값을 받아낸 엘랑키아 기병들이 미련 없이 물러선다.
전형적인 일격이탈 전술이다.
그들을 막았어야 할 적 보병 연대의 나머지 부분은 동쪽으로 300미터 쯤 떨어진 장소에서 혼란해진 전열로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후퇴! 물러선다!”
“집결지에서 보자! 깃발 놓치지 말아!”
“알겠습니다!”
기병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 나간다.
퍼걱! 퍼엉! 쾅!
빈 틈을 막기 위해 이동하던 창병 대열로 포탄이 떨어진다. 엘랑키아 군 포병이 발사한 포탄이었다.
시커먼 쇳덩이가 구르고 튀며 운 없는 병사들이 나무 토막처럼 나가 떨어진다.
간신히 정돈되었던 대열에 대각선으로 끔찍한 피빛 길이 만들어지며 다시 혼란해진다.
자칫 아군 기병이 맞을 수도 있었던 근거리 지원이었다. 허나 상관 없다, 라고 디타레는 생각한다.
물론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이 아군 포탄에 맞아도 상관없다 생각하는 게 옳은 처사는 아니리라.
디타레 자신도 최전방에서 부하들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목숨은 내놓고 있다만, 아군의 오사에 맞아 죽는건 정말 악몽이나 다름 없는 개죽음이었다.
당연히 그렇다고 아군 포병인들 같은 아군을 쏘고 싶겠나. 아군이 맞을 위험이 있는 근접 지원이 꺼려지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차피 전장에 널린 게 그룬발트 놈들이고, 확률적으로 적이 맞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게다가 포병이 적진을 흔들어준 만큼, 기병의 활약 여지가 많아지고 종합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방금 상황만 해도, 포병의 집중 사격이 그룬발트 보병 부대의 대응을 최소한 1분 정도는 늦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포탄이 명령을 전파하던 중견 지휘관이나 장교를 뭉개 버리기라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황금같은 시간을, 디타레는 부하들을 이끌고 돌파해 적의 아픈 부분을 찌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 점을 모두 고려한 합동 작전이다.
“무사히 후퇴했습니다!”
“좋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적 기병의 위치를 항상 추적하고, 다음 명령 전까지 대기하라.”
“옛, 알겠습니다!”
지금 전장 상황은 디타레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골치 아픈 케이스였다.
엘랑키아 중앙군과 전장의 북서쪽 끝을 지키는 슈뵈켄 마을, 그 사이에 펼쳐진 드넓은 개활지.
만명 단위의 대군이 마주하여 치고 받기에 충분히 넓은 전장이다.
실제로 이 공간을 통해 거침없이 진격해 들어온 그룬발트 우익군의 총 병력은 기병과 보병을 합쳐 2만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이 와중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바로 8천 기에 가까운 엘랑키아 기병 대군에게 압박당해, 공세는 커녕 혹시 뚫리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적의 대규모 병력을 ‘싸우지 않고서도’ 압박해 막아내고 있던 기병 대군이 대부분 전장 반대편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위협적인 중기병만 몽땅 빼서 말이다.
당연히 억제가 사라진 적군이 텅 빈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전진해 온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디타레 드 카울은 앨랑키아 전군의 측방을 지키는 임시 좌익군 지휘관으로서 이를 어떻게든 막아내야 한다.
이대로 두면 전장을 우회한 적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엘랑키아 중앙군이 우회 포위 당하든, 슈뵈켄이 함락당하든 심각한 문제니까.
“가자! 적을 도발하는 건 좋지만 너무 다가가지 마라!”
“옛, 대장님!”
지휘관 디타레를 선두로 한 수백 기의 기병대가 전장을 가로지른다. 전장에 가득한 그룬발트 군의 보병 부대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2만의 대군, 그것도 기병과 보병에 포병까지 포함되어 균형잡힌 명실상부한 야전군이다.
그에 비해 디타레가 보유한 전력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직속 병력인 기병 3천여 기. 다만절대 다수가 경기병이다.
이번 전쟁 내내 디타레가 직접 이끌며 정찰과 후방 견제 역할을 했던 전력을 중심으로 자부심을 가진 정예 경기병 부대이다.
압도적인 기동력과 숙련도를 보여주며, 상황에 따라서는 아까처럼 충격력도 보일 수 있는 믿음직한 병력이다.
물론 경기병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가 없다. 그걸 절대 잊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수백 명 정도의 중기병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함께 훈련을 받은 왕실군 이외의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부대였다.
대부분이 엘랑키아 북서부의 소영주 가문 출신으로, 부대 단위 훈련이 부족해 일단은 마지막 충격력이자 예비대로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물론 집단전 경험이 부족하다 뿐이지, 그래도 엘랑키아 기사들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기에 슈뵈켄 수비를 책임진 1개 연대의 보병.
더해서 슈뵈켄 주변에 이중 삼중으로 방어망을 구축한 포병대가 상당수이다.
소구경의 연대급 경야포에서 성벽 부수는 데 특화된 대구경 공성포까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집중된 포병부대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저기서 차출된 정예 총병 부대가 몇 중대 정도 있다.
사거리가 긴 중화승총을 보유한 숙련 사수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전투 초반부터 대활약을 했고, 지금은 포병 진지로 이동해 슈뵈켄 마을의 후방을 지키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개전은, 디타레 휘하의 기병대의 기습 돌격으로 시작되었다.
8천 기의 기병 대군에 눌려 최대한 후방에서 기동력을 포기한 밀집 사각 대형으로 버티기 모드에 들어갔던 적이었다.
하지만 주력 중기병들이 전장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사실··· 일정 병력이 이동한 것이 맞기는 하지만, 배치 단계에서부터 속임수였다.
상당수의 병력은 원래 중앙군 휘하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일부가 말에서 내려 대기하는 식으로 최대한 적의 정찰을 회피했던 것이다.
반대로 좌측에서는 중기병과 경기병을 섞어 배치하는 식으로 허세를 부렸다.
전위부대는 마치 돌격을 시도할 것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여 적을 위축시키는 한편, 모래먼지를 일으켜 이쪽의 의도를 최대한 숨겼다.
이게 갑자기 전장 반대편에 기병대를 순식간에 집중 투입할 수 있던 비밀이었다.
전 병력의 절반 정도는 이동한 게 사실이지만, 그들이 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나머지 절반이 적진에 돌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적에게 한 번은 통할’ 공들인 기만책은 실제로 통했고, 엘랑키아 군이 전장 전체에 주도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룬발트 군 우익군은 노발대발해서 몰려오고 있었고, 그걸 책임져야 할 게 디타레와 얼마 안되는 휘하 병력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갑자기 밀집 대열을 풀고 빠른 속도로 접근해온 그룬발트 군에게, 디타레가 택한 대응은 ‘선제 공격’이었다.
‘한 번은 반드시 통할 전술’을 준비했던 사령부의 참모, 트랑카벨의 에트 경은 다행히도 뒷감당을 해야 하는 디타레를 위한 대응책도 준비해 두었었다.
탕! 타타탕! 땅!
타탓, 타타탓!
약이 오를대로 오른 그룬발트 보병들이 홧김에 쏴대는 총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소부대로 나뉘어서 적진을 휘젓고 다니는 엘랑키아 경기병 부대에 명중하는 탄환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마주한 반대편의 아군 보병을 쏠까 걱정되어 과감하게 일제사격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병대가 근처에 다가갈 때마다, 근처 보병들이 바짝 긴장하며 움직임이 얼어붙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쾌감마저 느껴졌다.
심지어 몇 번에 한 번은 실제로 돌격해 들어가고, 그런 부대는 대부분 박살이 났기 때문에 그룬발트 보병들은 긴장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로, 부대마다 멈췄다 섰다 진형을 바꿨다 말았다를 반복하다 보니 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절대적 약자 입장에서 유일하게 싸울 수 있는 방법은, 혼란을 일으키고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도하는 겁니다.’
생뢰르반 전투가 끝난 직후, 여러 협상 자리에서 만났던 트랑카벨 자작가의 젊은 대리 사령관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물론 그건 농담이었다. 심지어 그걸 듣는 상당수가 혼란스러워 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농담.
‘혼란을 일으킨다’ 까지는 진짜였지만, 그 뒤에는 착실하고도 촘촘한 계획이 있었다.
디타레 휘하의 잡탕 부대는 중앙과 우측에 병력을 최대한 밀어 준 상태에서 어떻게든 끌어온 남은 병력을 짜깁기한 임시 부대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맡은 역할은 ‘죽기 전까지 시간을 최대한 끌어라’ 따위의 무모한 방패 막이는 아니었다.
이리저리 달리다 보니, 디타레 휘하의 분견대는 적진을 비스듬히 빠져 나와 있었다.
전장의 다른 부분에서는 다른 분견대가 모래먼지를 일으키고 사방으로 총소리를 내며 난리를 부리고 있으리라.
2만의 잘 구성된 야전군을 상대로 선을 긋고 힘 싸움을 해 봤자 답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병력을 분산시키며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다.
“적진을 가로질렀으니, 슈뵈켄을 경유해서 후방으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잠시 속도를 늦춘다. 말도 우리도 조금이라도 쉬어야지. 그룬발트 기병대의 움직임은 아직 없나?”
“예, 대장님. 아직 전황만 살피고 있습니다.”
“으흠, 그거 다행이군.”
현재 가장 위협적인 것은 그룬발트 군의 기병이다.
숫자 자체는 디타레 휘하의 기병이 유리했지만, 여러 개의 부대로 분산하여 활동하고 있는 지금 적 기병에 요격당하면 당해내기 힘들었다.
경기병 입장에서 그룬발트 중기병과 정면 충돌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적 기병에게 따라잡힌 끝에 기동력을 상실하는 것이 최악이었다.
특히나 보병 부대의 약점을 발견해 공격하는데 측면에서 돌격 당하기라도 한다면 경기병 중심의 부대는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하리라.
하지만 그룬발트 기병대가 지금 조용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전투 초반에 뛰쳐나왔다가 박살이 났던 것이다.
상황은 세 단계에 걸친 유인 및 기습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1단계, 기만당했다는 것을 깨닫고 밀집 대형을 풀고 우르르 몰려오는 그룬발트 보병의 선두를 기습한다.
2단계, 보병 선두가 혼란을 일으키며 무너지자, 경기병의 습격을 인지한 그룬발트 기병이 요격을 위해 추격해온다.
3단계, 아군 후위 기병대와 숙련 총병이 혼성하여 기다리고 있는 지점으로 적 기병을 유인한다.
기병 사이에 배치된 숙련 총병들의 예상치 못한중화승총 사격이 기세를 올려 추격해오는 그룬발트 기사들의 기세를 꺾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측면에서 소수의 포병들이 장거리 포격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무장은 부족하지만 숫자와 기세에서 우위를 점한 디타레 휘하의 기병대가 일제히 반전하여 역공을 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엘랑키아 기병대도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룬발트 기병의 피해는 그 세 배에 달했으며, 꽁무니를 뺀 후로 다시 전장에 나설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만약 보병 사이로 도망치지 않았다면 추격하여 훨씬 큰 피해를 입혔을 텐데··· 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다시 부대를 추스르는데 시간은 필요할 모양이다.
임시 방편 치고는, 시작이 워낙 좋았기에 지금까지도 전황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고 말이다.
‘이게 사실··· 샹다메리에서 폐하의 기병대를 상대로 버티기 위해 사용했던 전술입니다.’
어딘가 쑥스러워하고, 한편으로는 슬퍼 보이던 에트 경의 얼굴이 생각났다.
본인도 샹다메리 전투에 참전했던 디타레는 입맛이 썼다. 그 전투에서, 블랑독의 군대는 엘랑키아 왕실군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물론 샹다메리 전투는 공식적으로 말 그대로 국왕 폐하의 군대인 ‘왕실군’이 동원된 전투는 아니다.
하지만 참전했던 엘랑키아 북부 귀족 가문은 왕실군과 겹치는 경우도 많았고, 무엇보다 근위기병대에 복무하는 장교들이 많았다.
그들 중 상당수가 샹다메리에서 죽거나 다쳐 중견 장교 부족으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당시 디타레가 속했던 연대장이자, 근위기병대의 상관이었던 베리브 드 퐁투베 자작의 중상이 뼈아팠다.
디타레가 가장 존경하고, 누구보다 뛰어나다 생각하는 엘랑키아의 기병 지휘관이자 위대한 기사였으니까.
낙마할 때 말에 깔려 중상을 입은 후, 블랑독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 돌아온 베리브 근위기병대장은 애석하게도 일선에서 물러났다.
만약 그 분이 여기서 부대를 이끌었다면, 디타레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성과를 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되는 것이다.
“전군, 슈뵈켄을 우회해 후방의 아군과 합류한다!”
“알겠습니다!”
복잡한 생각은 애써 떨쳐 버리기로 한다.
과거 샹다메리에서 엘랑키아 기병대를 쥐 잡듯 잡아 버렸던 전술은, 지금은 그룬발트 군을 상대로 훌륭하게 동작하고 있었으니까.
같은 시각, 지금까지 디타레의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보였던 그룬발트 군 대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