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11화 (478/556)

47-46. 폴름스 전투, 셋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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쉭, 쉬쉭! 퍽!

“끄으윽!”

“악!”

총탄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생생하다. 너무나도 가까이 스쳐 지나간 까닭에 뺨이 이상하게 시큰거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살아 남았다. 비명이나 신음을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들과 다르게 말이다.

트랑카벨 영지군의 선발 사수, 현재는 제19 벨모제 보병 연대 소속이지만 허점 투성이인 슈뵈켄 마을을 돕기 위해 파견온 얀 고티에는 잠깐이지만 질끈 감았던 눈을 뜬다.

그리고 걸음을 서두르면서도 총구를 쑤시는 꽂을대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어차피 한 번은 맞을 수 밖에 없는 적의 사격이었다.

지금까지 수레 뒤에 숨어 거의 일방적으로 사격 할 때는 좋았지만, 방어선에서 후퇴하는 바람에 이제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훅, 후우···.”

탄약을 끝까지 밀어 넣고, 총을 가슴 앞에 세워 화승에 불이 잘 붙었는지 확인한다. 다행히도 불은 입바람을 받아 빨갛게 타오른다.

정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몰려오는 적은 끝도 없어 보인다. 아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많았다.

타앙!

서둘러 수평만 맞춰 방아쇠를 당기고 계속해서 물러선다. 어차피 또 맞아야 한다면 거리라도 벌리는 편이 나았으니까.

총을 얼마나 쏴 댔는지, 청동 총열이 너무 뜨거워서 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적신 천으로 식힐 수 있다면 좋지만 전장 한가운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는 오줌으로 식히고 화약으로 증발시키는 일까지 있다는데···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겠지.

방어선까지 버리고 물러선 이상, 이대로 싸워서 이길 방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러나! 대열은 유지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행히도 숙련병들로 이루어진 엘랑키아 총병 대열은 질서를 지키며 후퇴와 사격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이를 따라오고 있는 그룬발트 군은 빽빽한 밀집대형을 갖추고 서두르지도 않는 모양이다.

사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창병의 보호를 받으며, 평소 진격 속도대로 차근차근 거리를 좁히며 상황이 되면 일제사격을 퍼붓는다.

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적진은 붕괴된다. 비슷한 전력으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강의 전술’ 이다.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불리한 엘랑키아 보병들이 맞서 싸울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양 측면에 배치된 지빌링엔 반연대 말고는 창병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이 중요한 개활지에서 마주 본 총격전에서 밀리는 것도 있겠지만, 어떻게 대등하게 버틴다고 해도 차근차근 다가오는 창날의 벽을 어떻게 할 수 없다.

“퉷!”

바짝 마른 입술과 혀에는 화약 특유의 찝찝한 맛이 남는다. 이건 유난히 목을 마르게 했기 때문에 전투가 진행되면 탄약포가 입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을 불어 억지로 탄약포를 뱉어내고, 총구에 화약을 부어 넣는다.

뒷걸음질을 치며 수직으로 세운 개머리판을 바닥에 탁탁 쳐서 화약을 다진다.

총열 청소를 못해서 아마 지금 총구 안쪽은 동굴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발사도 안 될 정도로 막힌 상황은 아니니 다행이었다.

다음으로 완전히 탄약포에서 벗겨낸 납탄을 집어 넣는다. 종이에 감싼 상태에서는 뻑뻑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이동하면서 사격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혹시라도 떨구기라도 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탄약포 하나를 버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뜨거운 총구로 조심조심 납탄을 밀어 넣고 꽂을대로 쑤셔 넣는데, 후방에서 갑자기 장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네, 얀이라고 했었지? 잠시 뒤 신호가 오면 왼편으로 이동하게. 다섯 걸음 정도.”

“예? 옛?”

“그래, 자네부터 말일세.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야.”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진지한 표정의 장교가 전장에서 치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주변에 명령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얀은 그게 무슨 의도로 내려온 질문인지 바로 깨달았다.

“아, 알겠습니다.”

“좋아! 절대 늦으면 안 돼!”

장전하던 탄환을 침착하게 마지막까지 밀어 넣는다.

역시, 그들은 전장에 그냥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탕! 타탕! 타타탕!

휙, 휘휙! 파팍, 퍽!

적이 쏜 총탄이 또다시 날아온다. 운 없는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져 그들이 물러선 공간에 흔적처럼 남는다.

하지만 ‘다음’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아까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지금 조준하고 쏠까, 잠시 기다릴까 고민하던 찰나.

“모두 지금이야! 움직여!”

“움직여! 이쪽으로!”

그리고 냅다 왼편으로 이동한다. 반대편의 동료들은 다른 장교의 명령을 듣고 오른편으로 이동한다.

마치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던 문이 좌우로 열리듯 말이다.

좌우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냅다 반대편으로 뛴 병사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그것’이 육중한 포구를 드러냈으니까.

그리고 울부짖었다. 접근하는 그룬발트 군을 향해서.

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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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테니아 드 몽파르지에는 평생 그런 장면을 처음 보았다.

그 굉음은 평소에 듣던 포성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소리’라고 표현하기 두려울 정도로 진동 그 자체가 느껴졌고, 어지간한 총성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잘 훈련된 애마가 순간 움찔하며 앞다리를 슬쩍 들 정도였다.

그리고 보았다.

조금 후방에서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더욱 생생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거포의 포구에서 붉은 화염과 함께 튀어나온 검은 덩어리들이 부채살처럼 퍼지며 날아가는 것을 말이다.

이어서 정면을 가득 채운 하얀 연기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눈 앞에 펼쳐졌을 광경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것, 첼레스티나가 심혈을 기울여, 포신 파열 직전까지 꽉꽉 채워 넣은 공성포의 정면에는 그룬발트 군의 창병 밀집 대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잘해야 앞으로 한 발 정도 쏠 수 있다’

첼레스티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 마지막 한 발을 가장 화려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써 버리기로 했다.

전선 전체에서 모두 여섯 문의 화포, 세 문의 대구경 공성포와, 그것보다는 좀 작지만 그래도 야전포 중 최고 수준의 대포 세 문이 준비되었다.

한계까지 화약과 소구경 탄환을 채워 넣은 이 여섯 개의 ‘폭탄’은 물러서는 아군 총병들 후방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 아마도 이 전투에서는 마지막이 될 포격을 발사, 아니 해방한 것이다.

“티테니아 경! 티테니아 경!”

“넷? 네엣! 첼레스티나?”

“지금이에요! 돌격하세요오! 목표는 적진의 반대편!”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게요! 저도 보병들을 수습해 뒤를 따를거고요!”

첼레스티나의 말을 들은 티테니아가 신호하자, 나팔수가 나팔을 힘주어 분다.

날카롭고 빠른, 전장 전체에 전해지는 돌격의 신호.

“돌격 앞으로!”

“돌격! 돌겨억!”

“가자아아아아!”

기다리던 기병들이 질주를 시작한다. 돌격 예비 단계 따위는 없었다.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적과의 거리는 방금까지 총병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던 만큼, 기병의 속도라면 순식간에 도달할 정도로 가까웠으니까.

매캐한 화약 연기를 뚫고 10미터 쯤 나아간 바로 다음 순간, 티테니아는 놀라움으로 숨을 멈추었다.

지근거리에서 발사된 산탄, 그것도 소구경 포탄들로 이루어진 산탄 사격이 끔찍한 광경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포탄 ‘들’이 쓸고 지나간 지역은 밀집해있던 대형 그대로 겹겹이 쓰러진 창병들의 시체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들의 몸에서 나온 부산물들이 마치 시뻘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게다가 더욱 소름끼치는 건, 포격의 기세 때문에 허공으로, 후방으로 날아간 핏덩이들이 아직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웠다. 놀랍고 무서웠다.

하지만 티테니아는 곧바로 숨을 크게 들이쉰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폐를 가득 채워 머리가 다 아플 정도였지만, 전장에서 싸우려면 반드시 익숙해져야 할 냄새였다.

고삐를 강하게 틀어 쥐고, 검을 든 오른팔을 길게 앞으로 뻗는다.

자신도 이렇게 놀랐고, 무서운데.

적은 얼마나 놀랐고 무서울까.

그녀가 말을 몰아 기병대의 선두에서 2초도 지나지 않아 적진에 도달했을 때, 아마도 대열의 모서리를 지키고 있었을 그룬발트 군의 장교와 눈이 마주친다.

한계까지 벌어진 입과 혼이 나간 듯한 눈.

그제서야 들고 있던 검으로 대응하려는 것 같았지만 이미 늦었다.

퍼걱!

무언가 단단하지만 탄력 있는 형체, 이를테면 과일을 치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일부러 힘을 주어 휘두르지 않는다. 돌격하는 속도에 맞춰 무기를 뻗는 것으로 충분했다.

혹시라도 무기를 놓치지 않도록 어깨와 팔꿈치를 이용해 부드럽게 충격을 흡수한다.

그대로 말을 모아 총병대의 측면으로 바짝 말을 몬다.

본래라면 든든한 창병에게 보호받아야 했을 지점이다.

허나 지금 그 창병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카펫이 되어 전장에 깔려 있었기에, 총병들은 측면에 바짝 달라 붙듯 다가오는 티테니아의 경기병에게 속수무책이었다.

“으아아아! 뭐야?”

“끄으윽!”

“막아라! 총 뒀다 뭐 해! 쏴버리라고!”

이미 늦었다. 애초에 자욱한 화약 연기를 뚫고 2초 만에 거리를 좁혀온 기병대에게 대응할 방법 따위는 없다는 것이 맞겠지.

“하아앗!”

“흐아아악!”

티테니아는 인정사정없이 검을 비스듬하게 휘둘렀다.

상대는 엉겁결에 화승총을 들어 막으려 한 것 같으나, 기세를 탄 검날은 적의 손가락 세 개를 잘라 버리며 그대로 이마에 명중했다.

적병은 단단하게 굳힌 가죽 모자를 쓰고 있었으나, 드 몽파르지에의 장인이 벼려낸 기사검의 일격을 막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파인 이마의 상처에서 폭포처럼 피를 흘리던 그룬발트 보병이 뒤로 날아가듯 쓰러진다.

순간 놀란 말이 투레질을 하며 속도를 줄인다. 정면이 그룬발트 보병들로 막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로 ‘막혔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미처 못 도망가고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야아아아!”

“히이익!”

“도망쳐! 도망쳐! 엘랑키아 기사다!”

“갑자기 어디서!”

호전적인 고함을 지르며 검을 마구 휘두르자, 적은 미처 저항하지 못하고 무기를 팽개친 채 도망친다.

티테니아의 기병대는 그대로 적을 몰아 붙인다. 적을 죽이는 것 보다 전열을 붕괴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죽일 필요도 없었다. 이미 자기들끼리 놀라서 밀치고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타탕! 탕!

모두가 저항을 포기하고 도망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기병에게 강한 상성을 가지는 창병들이 여기저기 작은 단위 부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온통 대열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부대가 발생하자 그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돌격에 나선 것은 티테니아의 기병 뿐만은 아니었다.

“아라라라라라라!”

“아라라라라랏!”

특유의 괴상한 전투 함성을 지르며, 여지껏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던 프리스마라 기병들이 반대편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드 레뮤즈! 가자!”

“돌격! 멈추지 마!”

함께 차출된 드 레뮤즈 가문의 기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출신의 하급 귀족 기병들은 지금까지 전장에 서지 못했던 한이라도 풀듯, 저돌적으로 그룬발트 군 대열로 돌입해 들어갔다.

어차피 이런 기회가 많이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 아마도 마지막 반격 기회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티테니아와 첼레스티나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여기 쏟아 붓기로 했다.

이대로 적을 붕괴시키거나, 최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도록.

타타타탕! 타타타탕!

“으윽!”

“쏘지 마 개자식들아!”

“시팔, 크으으···.”

전방 부대가 무너지는 것을 본, 아직은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후방의 그룬발트 총병 대열이 일제 사격을 뿜어낸다.

엘랑키아 기병들을 노리기 위해 높게 조준하라는 장교들의 지시가 있기는 하였지만···.

애초에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화승총이 그렇게 생각대로 잘 될리가 없었다.

상당수는 아군에게 명중했고, 또 반대로 아군이 맞을까 두려워한 까닭에 너무 높게 조준한 탄환은 대부분 허공으로 날아갔다.

겁에 질린 채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는 아군을 앞에 두고, 침착하게 적 기병만을 노리라는 것 부터가 말도 안되는 명령이었다.

그렇게, 도망병들과 마구 뒤섞인 엘랑키아 기병들이 또다시 새로운 대열 사이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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