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21화 (521/556)

47-56. 폴름스 전투, 셋째 날

빠가각!

“으아아악!”

아군 포대가 세 번째 포탄을 발사하기 전, 그룬발트 군 대열에서 발사한 포탄이 먼저 날아왔다.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에 야로스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만약에 포병과 포병이 서로를 노리는 대포병 사격을 하게 된다면, 아주 작은 피해에도 포격 불능 상태에 빠지곤 한다.

“모, 모두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저도, 저도요···.”

다행히 포탄은 재장전을 위해 화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포수들의 머리 위를 살짝 넘겨, 후방에 위치한 예비 탄약 수레를 부순 모양이다.

밀폐된 화약통이 나뒹굴고, 나무 상자에 담겼던 쇠 포탄이 풀밭에 나뒹굴고 있었다.

뻐엉! 펑!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재장전한 포 부터 재차 불을 뿜기 시작한다. 혼자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에, 야로스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사실상 이번이 첫 실전인 어린 포수들도 자신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고 진지하게 재장전에 임했기 때문이다.

“포격을 마친 포반부터 뒤로 빠져요!”

“알겠습니다!”

“들었지? 장비 챙겨서 가자!”

정말 폭풍처럼 세 발의 포격을 마친 포들이 차례대로 뒤로 빠지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마지막 포탄을 쏘지 않은 것은 가장 우측에 배치된 10번 포로, 첼레스티나가 직접 한쪽 무릎을 꿇고 달라붙어서는 진지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방금 근처로 포탄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이다.

아마도 그녀의 그런 진지함과 차분함이 함께하는 포병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슈토르히 시절의 선임중대장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은 절대로 총알이 비켜나간다는 확신이라도 가진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도 무언가 홀린 듯 그런 태도를 따라하고 있었고, 이는 순간의 실수가 목숨을 앗아가는 전장에서 큰 이점이 되었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겁이 많은지··· 더욱 부끄러움을 느끼는 야로스였다.

정말 떠밀리듯 반 강제이긴 했지만 나우데사에서 팔자에도 없는 보병 연대장을 했던 경험이 마치 신기루와도 같았다.

“조준 완료!”

마지막까지 가늠자를 살피며 미세하게 조절하던 첼레스티나가 마침내 포에서 한 걸음 떨어지며 선언하듯 외친다.

“쏴라!”

꽈앙!

첼레스티나의 신호만 기다리고 있던 포술장이 점화구에 불을 당기자, 굉음과 함께 소구경 야포가 화염을 뿜으며 뒤로 밀려난다.

“자, 모두 철수해요!”

“옛, 움직여, 움직여!”

미리 장전봉을 챙긴 포수들이 양 옆에서 포가 손잡이를 잡고 뒤로 빠진다.

포격의 결과를 확인할 틈도 없이, 미련 따위는 없다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명중! 적 대포 하나가 박살났습니다!”

“와아아아아!”

대신 적진을 살피고 있던 야로스가 확인하고 또 한 번 전공을 세운 포수들을 축하해준다.

마지막까지 첼레스티나가 조율한 소구경 포탄은 그룬발트 군 포가의 본체와 바퀴를 잇는 연결부를 정확하게 때려 부쉈다.

그 바람에 한쪽 바퀴가 망가지며 그 방향으로 주저앉았고, 반대편 바퀴는 허공으로 족히 3미터는 날아 올랐다.

야로스는 아까 적 포격에 망가진 탄약 수레 주변에 아직 수습되지 않은 포탄들이 마치 쇠구슬처럼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주워 담아 함께 퇴각했다.

전투를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는데, 이 크고 작은 쇳덩이들은 금덩이보다도 귀한 물건이 될지 모른다.

오늘 아침, 슈뵈켄 마을 부근에 제법 여유있다 생각하며 쌓아 놓았던 포탄 무더기들이 격전을 치루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지 경험한 바였다.

만약 포탄 재고가 없다면 수적으로 불리한 와중에도 대등하게 싸울 수 없었겠지.

바쁜 발걸음을 서두르며, 적진 방향을 흘끗 바라본다.

대략 천 명은 조금 넘어 보이는 적 보병 부대의 측면은 말 그대로 갈가리 찢겨버렸다.

부대 단위로 따져서 2~3개 중대 정도 규모에 비록 구경이 작다고는 해도, 10문의 화포를 동원해 총 30발의 포탄을 쏟아 부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첫 포격은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난 효과를 봤었다.

아마 당장은 어떻게 살아남았다 치더라도, 문자 그대로 동료들이 ‘선채로 토막나는’ 꼴을 본 병사들은 당장 자기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외곽 쪽에 집중되었을 하급 장교나 부사관들도 떼죽음을 당했을 테니 통제력도 상실했을 테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중앙 쪽에서 새롭게 총병 중대를 차출해 측면을 보강하는 모양새였다.

방금은 분명 통쾌한 승리였지만, 서로 보병 부대가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애매한 포지션이라는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약이 오른 적이 아군 보병의 측면을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첼레스티나 중대장님! 방금 포탄으로 두들겨 주었던 녀석들이 열받아서 쫓아오지는 않을까요?”

“네에, 아마 그러지는 못할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아군 보병이 양 측면에 적을 둔 격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야로스의 말에 첼레스티나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 손을 뻗어 반대편을 가리켰다.

그 방향을 바라본 야로스는 그녀가 왜 그렇게 확신했는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군 기병대가 전진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화승총 사거리 정도로 가까울 정도는 아니지만, 적으로부터 거의 200에서 250미터 정도까지 바짝 다가가 있었다.

보병 입장에서도 먼 거리라곤 할 수 없었고, 기병은 박차 한번만 가하면 단숨에 가속해서 좁힐 수 있는 거리였다.

분명, 비교적 가벼운 무장을 한 기병들로 이루어진 그 부대는 티테니아라는 이름의 귀족 아가씨가 지휘하는 부대였다.

야로스가 알기로는 두 여성 지휘관 사이에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이심전심으로 기병을 전진시켜 포격을 간접 지원한 모양이다.

기병대가 이렇게까지 바짝 다가와 견제하는데, 그룬발트 보병 입장에서는 부대 방향을 틀거나 진형을 바꾸기도 어려우니 속이 터지는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먼저 손에 쥔 카드를 다 쓰는 쪽이 무조건 불리해요!”

“화, 확실히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방금 포격을 마친 포대를 이끌고 부대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왼편의 적 보병은 제법 큰 피해도 입혔을 뿐더러, 기병의 도움을 받아 견제하는 데 성공한 상황이다.

적은 만신창이가 된 좌측익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꼼짝하지 못할 것이다.

그 틈에 얼른 반대편을 도우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카드는 엘랑키아 기사분들이니,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우리가 최대한 적을 약화시켜 놓아야죠!”

“마, 맞습니다, 헉헉··· 그렇죠!”

“많이 무거우시죠? 제가 들까요오?”

“아뇨, 아닙니다! 허억, 제가 옮기겠습니다!”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로 무거운 쇠 포탄이 든 상자를 들고 뛰던 야로스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첼레스티나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상관을 고생시킬 수 없다··· 라는 원론적 문제라기 보다도, 전황을 살피는 일과 직접 포를 조준하며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일 역시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조금 더 고생하는것이 맞았··· 지만 상자에서 자꾸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쏠리는 쇠구슬 덕분에 양 팔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들이 목표로 하는 부대 오른편은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우와아아, 와아아아아아!”

타타탕, 탕! 따다당!

타탕! 뻐엉! 쾅! 탕! 탕!

반대편에 다가갈 수록, 함성소리와 각종 전투 소음이 또렷하게 들렸다.

운 좋게 선제 포격으로 반쯤은 제압하고 들어간 반대편과 다르게, 저쪽은 격렬하게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분명히 포성이 들렸다.

아군 야포는 후방에 배치된 장거리 포 3문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기 있으니, 분명 적의 포격일 것이다.

외부 지원도 없이 몸으로 적의 포격을 받으며 싸우고 있을 아군을 생각하니 조금은 팔에 힘이 돌아오는 느낌이다.

가까워지면서 눈에 들어온 우측의 적군은 약간 측면에 총병들을 증강해서 배치한 특이한 진형을 하고 있었다.

서로의 보병이 측면을 보여주며 지나친 기묘한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화력의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욕심 가득한 배치였다.

“모두 정지! 여기 방열하도록 해요! 아까처럼, 비스듬히 한 줄로!”

“옛, 알겠습니다.”

“여기를 우리 포반이 맡을 테니, 자네는 오른편으로 오시게.”

“예, 그렇게 하시죠.”

첼레스티나의 지시에 포병들은 척척 알아서 위치를 정해 포격 준비를 시작한다. 거의 포격 각을 정하면서 포구 청소를 동시에 시작하고 있었다.

“후우우···.”

한편 야로스는 무겁디 무거운 포탄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다소 꼴사나운 쪼그려 앉은 자세로 팔을 주물렀다.

이번에는 아까보다는 적진과 거리가 좀 멀어 보인다.

어쩔 수 없었다. 미리 안전한 위치에서 준비해놓고 적이 시야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려 선공을 가했던 전투 초기와는 다르다.

이제는 적이 보는 앞에서 포격 준비를 마쳐야 했고 적 대포가 몇 문인지는 몰라도 이미 포격 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붙는 것은 위험했다.

뭐 당연히 지금도 충분히 위험하고 대담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총병들의 저격에서는 안전한 거리일 것이다.

“야로스 씨, 포탄좀 가져가도 될까요?”

“아, 가져가, 얼마든지 가져가.”

소년 포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양손에 포탄 하나씩을 들고 포반으로 돌아간다.

야로스는 자신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원래는 바쁘고 다른 여러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첼레스티나를 도와, 포병들이 ‘하나의 포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직접 포대를 지휘하는 상황이다보니 정말로 할 일이 없었다. 이렇게 힘 쓰는 일 밖에는.

뭐, 우리 포대가 활약을 하면 할수록 적에게 노려질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필요할 때 방어전을 조직하는 것도 그의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반쯤은 전투의 방관자 상태였다.

“장전 완료!”

“신중히 조준해! 아까보다 거리가 좀 머니까.”

“두 칸 내려! 잘못하면 적 머리 넘어간다!”

아마도 포탄이 적 머리를 넘길 가능성을 남기기 보다는 조금 가까운 거리에 착탄하더라도 포각을 내리는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마침 전쟁터 주변의 지면은 단단하고 평평했다. 야로스야 잘은 모르지만 포격 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때문에 좀 덜 날아가서 가까이 떨어지더라도, 포탄은 물수제비를 타는 납작한 돌처럼 지면을 통통 튀기면서 적진으로 굴러 들어갈 것이다.

콰앙!

“으아아악!”

“흐윽, 흐아아아···.”

하지만 이번에는 적이 확실히 빨랐다.

아마 이쪽에서 포대가 방열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자마자 포를 돌렸겠지.

적이 쏜 포탄이 한참 포격을 준비중이던 아군 포가를 부숴 버렸다.

사방으로 나무조각이 날리고, 바퀴 축이 부러지는 바람에 포신이 힘없이 고개를 숙이듯 박힌다.

장전 마지막 단계였기에, 포구로 밀어 넣었던 포탄이 도로 빠져나와 흙바닥을 구른다.

“이런, 모두 괜찮아?”

“으으··· 아으으으···.”

좌우에 붙어있던 두 명의 포수들이 피를 흘리며 끙끙댄다. 허벅지와 손에 비산한 나무 파편이 잔뜩 박혀있었다.

그래도 직접 포탄에 닿거나, 폭발에 노출된 것이 아니라 천만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 문이 파괴된 상황에서 나머지 아홉 문의 포가 장전을 마쳤다.

“10번 포부터 발사!”

“쏴라!”

꽈앙!

“쏴!”

펑! 뻐어엉! 쾅!

다시 순차적으로 포탄이 발사된다. 뜨거운 복수의 포탄이 마구 떨어지자, 기세를 올리고 있던 적 총병들이 순식간에 수그러든다.

급하게 장전하느라 몇 발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버렸지만, 그래도 거의 동시에 착탄한 여러 발이 밀집 대형으로 빨려 들어가자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순식간에 피가 사방으로 튀고 비명이 난무한다. 부서진 무기와 신체 조각이 좀 더 운 좋은 동료들의 어깨 위로 쏟아진다.

야전에 익숙한 베타랑 군인들에게 싫어도 익숙해질 수 밖에 없는 경험이지만, 그래도 좁은 공간에 아홉 발의 포탄이 연달아 떨어진 것은 상정 이상의 위력이었을 것이다.

“적 대포가 보병 뒤로 숨었습니다!”

“네에, 다음 포격에 당할까 두려웠나 보네요.”

기세가 단숨에 반전되었다. 반대로 엘랑키아 보병의 우측 총병들이 흔들리기 시작한 적진으로 총탄을 쏘아 보낸다.

“재장전!”

“서두르자!”

포병들이 다음 포탄을 서둘러 장전한다.

이번에도 적진에서는 이쪽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뭔가 외친다.

분명 생각보다 많은 포대를 보고 놀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총 사거리에는 닿지 않고, 별동대를 보내자니 거리가 애매하게 멀고, 아군 보병이 근처에 있어서 대응하기가 마땅치 않을 것이다.

비록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포탄 나른 것 밖에 없지만, 야로스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러고보니 반대편에서는 티테니아 경의 기병대가 위협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적을 견제해 주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아군 기병을 살피던 야로스의 눈이 커진다.

“체, 첼레스티나 대장님!”

“네에? 무슨 일인가요오?”

“기병이 돌격하고 있습니다! 이, 이거 예정된 작전인가요?”

“그게 무슨··· 아앗?”

야로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첼레스티나 역시 놀라움으로 눈이 커진다.

좀 더 후방에서 우측 날개를 형성하고 있던 엘랑키아 기사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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