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색화약의 용병대장-545화 (545/556)

49-2. 폴름스 전투, 열일곱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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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간 부대가 일으킨 흙먼지 속을 헐떡대는 보병들이 뒤따른다.

긴장으로 배어나온 땀과 기름으로 잘 손질된 철제 무기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주변에 가득하다.

“전진! 멈추지 마!”

“우리도 뒤쳐지지 마라!”

전장에서 보병의 필수 무기인 장창과 화승총은 둘 다 휴대성이 매우 떨어지는 무기이다.

장창은 사람 키의 두 배를 넘는 터무니 없는 길이 때문이고, 조금만 오래 들고 있어도 팔이 뻐근해지는 쇳덩이인 화승총은 말할 것도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 속보로 이동, 아니 반쯤은 뛰고 있는 드 제브레도뉴 가문의 보병들은 그런 무기를 들고도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바르키슈가 저 앞을 달려가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라! 적진에 도달해서 쉬도록 하자!”

“예엡!”

유난히 폭이 넓고 커다란 양손용 장검을 지휘봉처럼 휘두르며 외쳐대는 것은 루제 드 제브레도뉴 공작의 가신인 피락스 우베노 연대장이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휘하 장병들을 독려하며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익숙해 보인다.

실제로, 이 대머리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연대장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부대에 다가갈 때 마다, 중대 단위로 힘이 넘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대장과 장교, 그리고 병사들이 깊은 신뢰로 뭉쳐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자! 가즈아!”

“와아아아아!”

하지만, 이 정도 속도로 이동하는데 대열이 유지가 될 리가 없었다.

빠른 행군 속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탓에, 중대 단위로 분산해 이동하는 우베노 연대의 대열은 엉망진창이었다.

평범하게 다른 지역으로 급히 이동하는 행군이라면 상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를 앞두고 있는 적전 행군, 그것도 적을 향해 나아가는 공격 이동이다.

적과의 거리는 가까우면 수백 미터, 멀더라도 2킬로미터 안쪽이다. 말 그대로 몇 분 후에 교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이런 속도, 이런 대형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콘도티에레, 이런 속도로 이동해도 되는 것입니까? 소관이 보기에는 위험해 보입니다!”

“아니··· 원래는 이러면 안 되지. 안 되는데···.”

호위대의 일원이자 객원 참모로서 내 뒤를 바짝 따르고 있던 티테니아 드 몽파르지에가 당황한 목소리로 묻는다.

상식적으로 대답을 하자면, 당연히 안 되는 일이다.

‘병사의 강함은 그 팔에 있는 게 아니라 다리에 있다’

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기동성이 중요한 것이 전장이지만, 그건 다른 ‘기본적인 것’이 갖추어 졌을 때의 일이다.

가령, 슈토르히 연대는 전장에서 남다른 기동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발이 빠르다기 보다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 시킨데다가 자기 역할을 아주 잘 숙지한 숙련병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방향 전환이나 병력 재배치는 몰라도 행군 속도가 빠르다··· 와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그런데 지금 이 우베노 연대, 드 제브레도뉴 영지군 병사들이 보이는 모습은 무질서에 가깝다.

최근 중견 지휘관이자 참모로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는 티테니아가 지적할 정도로 말이다.

아니 뭐··· 문외한이 보더라도 ‘이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긴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를 말리지 않고 그냥 두고 보는 이유는···.

바로 내가 승인한 작전이기 때문이다.

전열 구성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대열은 엉망진창에, 싸울 힘은 남을까 싶을 정도로 헐떡대는 병사들을 보면 티테니아가 걱정하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 사이에 섞여서 보면 확실히 뭔가 특이함이 느껴지기는 한다.

대열이 엉망진창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중대 단위로는 철저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병사들 사이의 거리도 일정 이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가자! 가자고!”

“하나, 둘! 하나, 둘!”

게다가 엄청나게 사기가 높다. 사기가 높은 정도가 아니라, 고양된 전의가 나에게까지 느껴져 목 뒤의 털이 쭈볏 설 정도니까.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과, ‘이들이라면 괜찮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이유였다.

게다가 오늘 새벽의 공격은 아주 특이한 상황이라는 점도 더해졌다. 드 제브레도뉴 보병들의 빠른 행군 속도는 분명 엄청난 강점이 되리라.

“정찰병이 돌아왔어요오, 콘도티에레! 그룬발트 군은 아직도 주둔지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 그럼 타이밍이 딱 맞았네. 피락스 연대장에게 전해줘. 작전 속행이라고.”

“네에, 콘도티에레!”

다행히 예정에서 바뀐 것은 없었다.

그룬발트 군은 정보가 늦고, 지근 거리에 드 제브레도뉴의 보병들이 대거 등장한 것을 보고 기겁을 하겠지.

그렇게 절반은 유리하게 전투를 시작할 수 있겠다.

‘폴름스 선제후령과 정전 협정을 위한 건수가 필요하오’

엘랑키아의 국왕, 다고베르 2세에게 뜬금없는 요청을 받은 것이 얼마 전의 일이다.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지만, 폴름스 선제후령과는 정전 협정을 진행중이다. 이는 엄연히 양측 정부와 정부 간의 중요한 국가간 협의였다.

아무리 선제후가 신성 그룬발트 황제를 섬기는 입장이라고는 하나, 그 독립성은 평범한 영주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그런데, 그 협의가 생각보다는 잘 진행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 이런 협의를 단기간에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원하는 카드보다 한 장 정도 더 내주는 배짱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서로의 욕심이 팽팽하게 부딪치기 때문에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그러다 모처럼의 협상이 결렬되고, ‘자웅은 전장에서 겨룹시다’만이 결론으로 남는 경우도 허다하지.

지금은 아마 서로 불리하지 않다 생각해서 고집이 쉽게 꺾이지 않고 있는 것이겠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엘랑키아 왕국 입장이야, 당연히 전황이 시원시원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해도 굵직한 전투에서는 계속 승리하는 와중이고.

폴름스 선제후령 역시 포위당한 상황이고 출성 돌격에서 호되게 당했다고는 해도, 아직 단 한명의 엘랑키아 병사도 성벽을 넘지 못한 상황.

거기다 사흘 째의 격전 이후, 대치만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새로운 승리, 전황의 새로운 흐름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협상 때문만은 아니다.

시간이 우리 편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대치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그룬발트 군이 ‘심리적 타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백전백승은 아니더라도, 힘으로 눌러 줘야 앞으로의 전황에도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지.

하지만 정작 새로운 전단을 열고자 했더니 어려운 조건이 붙는다.

‘미안하지만, 이번 작전에는 왕실군의 중기병은 지원해 줄 수 없소. 이유는 에트 경도 잘 알고 있을 테니··· 이해해주기 바라오’

···최강의 카드가 봉인당했다.

내선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는 현재, 단기 결전을 가장 쉽게 승리하는 좋은 방법은 엘랑키아 기사대를 집중 운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전투에서 더더욱 위상이 올랐으니, 전장 선택에 따라서는 거의 저항 없이 승리를 거둘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섣부르게 최강의 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그런 집중 투입을 주장 한다면 당장 나부터가 반대할 상황이니까.

우선 사흘 째의 격전에서 기사대가 입은 피해는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기사라는 전력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 해도, 이를 조직할 중견 장교들과 군마 피해가 생각보다 심대했다.

그들은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이전보다 강하지는 않을 것이며, 무리하게 운용하면 잘 통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 한정된 전력을 최대한 아껴두고 싶다는 것은 지휘관 모두의 생각이었다.

혹시라도 어설프게 내보냈다가, 적 중에 냉정한 지휘관이 있다면 전에 없던 약점이 생겼다는 것을 파악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 넓은 폴름스 전역에서 한 전선에 기사대가 등장했다는 것은 다른 전선에는 등장하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고 만다.

계획하지 않는 전투로 적을 도발하다 수세에 몰린다.

현재 다고베르 2세가 철저하게 피하고자 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게다가 그룬발트 군 역시 바보가 아니고, 중기병은 그 이동을 엄폐하기 가장 어려운 병종이다.

당연히 눈에 불을 켜고 엘랑키아 기사대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오픈된 개활지에서 첩자나 정찰병을 철저하게 막을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부대가 이동하는 것은 곧바로 발각이 날 것이며 전군에 전파되는 것도 시간문제이리라.

이래서는 아무리 새벽이라고 해도 기습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결국 요구사항은 많은데, 손발은 묶인 상태에서 전투를 시작해야 하는 꼴이 되었다.

나는 다음 공세를 준비하기 위해 전선 여러 곳을 후보로 삼았다.

아군과 적군 병력의 집중, 방어 시설의 수준 따위를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었지만···.

결국 브레세른을 정한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바로···.

“콘도티에레, 바르키슈 연대에서 전령이 왔어요! 적 진영 북동쪽에서 적이 나와 진형을 형성 중. 연대급 규모라고 하네요!”

“좋아, 확실히 우리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군.”

“네에, 완벽한 기습이네요오. 공격 명령을 전달할까요?”

“음··· 아니, 병사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잠시 대기, 공격은 우베노 연대와 동시에 한다.”

“네에, 콘도티에레!”

첼레스티나가 서둘러 전령에게 명령을 전해 돌려 보낸다.

브레세른과 마주한 적이 이번 공세의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 다시 말해 ‘만만해’ 보였던 이유.

바로 정보력의 차이 때문이었다.

지금 폴름스 주변 지역은 텅 빈 것으로 보여도, 양측의 진영과 진영을 오가는 정찰과 전령으로 가득한 상황이다.

도중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조우전도, 서로가 자기 임무를 수행하다 우연히 만나게 되거나 상대방을 방해하기 위해서 발생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유독, 브레세른과 대치한 적 진영에서는 정찰병의 활발한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명령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 역시, 외부에서 도착하는 숫자에 비해 다른 부대로 보내는 경우가 현저히 적었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이 지역을 담당한 지휘관은 정찰을 보낼 병력이 부족하거나, 정보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게 아닐까.

다만 포위망에서 ‘가장 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 보내오는 정보로 만족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나 소극적으로 나오다니···.

지난 전투에서 엘랑키아 군은 중기병에 가려지긴 했으나, 경기병대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색적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정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오히려 함정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부쩍 들었고, 요 사흘 간 트랑카벨과 드 몽파르지에 기병대를 풀어 브레세른과 대치한 적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적극적인 정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이쪽의 정찰을 방해도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덕택에 사흘 간의 집중적인 조사는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보병으로 구성된 정찰대가 하루 세 번 주변을 순찰하나, 주둔지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기병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주둔지 내부에 꼼꼼하게 숨겨놓아 정확한 규모 파악이 힘들다는 것.

전체 규모는 대략 1만에서 1만 5천 정도라는 것.

그 외에도 굳이 알 필요 없는 잡다한 정보들 까지 수집한 후에야, 적이 일부러 약점을 드러낸 것은 아님을 확신했다.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먹는 아침 식사를 고려하여 아침 공격 계획을 세웠고 말이다.

당연하지만 아침 식사 시간도 정찰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다.

벼락차기로 작전 계획이 세워지고, 브레세른 전선을 책임지는 루제 공작과의 지휘권 분담도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트랑카벨의 에트 경! 공격 준비를 해도 되겠습니까?”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우베노 연대장 피락스의 외침이다.

“가십시오, 피락스 경. 다만 너무 서두르시면 안됩니다.”

“허헛, 알겠습니다. 우베노 연대는 항상 서두릅니다만.”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이 경험 많은 드 제브레도뉴의 연대장은 부하들 사이로 사라진다.

공격을 위해 서둘러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빠르게 행군해온 우베노 연대는 많이 지쳐 보였고, 공격을 시작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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