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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6화 (6/650)

6화 지난번을 떠올려라

놀란 것은 김미진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시세판이 파란색으로 모두 바뀌어 미칠 듯이 떨어져 나가는 숫자에 객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굳어버리고 말았다.

“-2%……-3%…… 미친놈들. 외국인이 지금 2분 만에 선물 1만 계약을 집어 던졌어. 이게 무슨 일이야?”

경우진 대리 또한 모니터에 고개를 박고 소리쳤다.

신성증권 시흥지점은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에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진영은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밥 먹으러 나간 사람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했다.

고객들은 몰려들건만 비어있는 자리로 인해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고객들을 어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고객들이 몰려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르르르.

그러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모든 직원이 지점에 남아 있었기에 대응하기에는 그때보다 수월했다.

“매도. 매도해야겠습니다.”

“나부터 매도해주세요.”

“여기. 난 VIP야. 나 알지? 나. 내 것부터 팔아줘.”

“밀지 마! 순서대로 해. 순서대로 하자고……!”

“난 표 뽑았어. 표 뽑은 순서대로 해야지, 왜 온 순서대로 해?”

“표가 무슨 상관이야. 지금 한가롭게 표 뽑고 이런저런 거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이봐? 빨리 처리해야지, 왜 지켜만 보고 있어? 어서 내 물량 다 매도해달라고…… 늦으면 그만큼 손해야.”

직원들이 막는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혼란은 삽시간에 객장을 잠식해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폭락에 사람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버린 것만 같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볼 생각도 없는 듯이 보였다.

삽시간에 쏟아지는 물량이 한시라도 빨리 파는 것만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창구에 갑작스럽게 몰려든 고객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결국 노련한 최 과장이 나섰다.

“고객 여러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문 실수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최석영 과장의 말에 당장에라도 창구 턱을 뛰어넘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점차 진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최석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차분히 설명했다.

“주식시장에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가다 나오는 일입니다. 이런 주문 실수는 금방 회복하고는 하니 조금만 지켜봐 주십시오. 이렇게 마구잡이로 던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저를 믿고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최석영의 말이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순식간에 객장에 휘몰아쳤던 광기가 최석영의 말에 조금씩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최석영의 말에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실체를 알지 못하게는 이런 폭락은 단숨에 제자리로 회복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창구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뒤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숙였던 광기가 더욱 크게 폭발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객장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북한?”

“핵실험?”

“전쟁?”

“전쟁이 난다는 거야?”

뒤로 물러나던 사람들은 시세판으로 고개를 돌려 이야기의 실체를 확인했다.

산성전자 -5%.

신성증권 -9%.

대좌건설 -8%.

스특스조선 -10%.

종합주가지수 1347 -4%.

약보합으로 시작하여 1400을 기준으로 공방전을 벌이던 종합주가지수가 순식간에 1350선마저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폭락은 이제 시작인 듯이 분위기를 잡았다.

“선물시장에서…… 사이드카가…….”

선물시장이 현물시장보다 먼저 반응했다.

사이드카의 기준점인 -5%를 터치하며 프로그램 매매가 정지되고 만 것이었다.

최석영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했던 이야기가 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너희들 물량 팔려고 우리 못 팔게 만든 거지?”

최석영 과장은 졸지에 기관 물량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인 투자자의 매도를 막은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제가…….”

“그럼 저 사람 뭐 하고 있는 건데!”

사람들의 분노가 쏟아지는 것을 막으려던 최석영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저 사람 막아!”

“이것들이 누구를 호구로 아나!”

몇몇이 창구를 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석영을 비롯하여 경우진 등의 남자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여기저기로 넘어오는 사람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막는 이들을 헤치고 들어온 이들은 황인석의 자리로 난입했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무언가를 열심히 하던 황인석이었다.

그는 자기 손목을 잡아채는 손에 하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놈이 자기 것만 매도하고 있었습니다.”

황인석의 손목을 잡아챈 남자는 창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황인석은 남자의 손에 손목이 붙잡혔음에도 하던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 뭐야? 너 뭐 하고 있는 거야?”

눈을 부라리는 남자를 향해 황인석은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 잠시만요. 고객님. 다했습니다. 이 손 좀 놔주십시오.”

“우리 먼저 처리해줘야지, 네 것만 하는 거야?”

“제게 아닙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고객님들 계좌입니다. 그분들도 모두 저희 신성증권의 고객들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네 고객만 고객인 거야?”

“그건…… 저기 있는 창구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지요. 명확히 나누면 제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화 푸시고…… 대기하고 계시다가 순서에 따라 매도 주문 넣으시면 됩니다.”

고객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황인석의 말에 금방이라도 폭도로 변할 것처럼 크게 화를 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시장은 폭락의 각을 계속 키워갔다.

속속 하나둘씩 종목들이 하한가에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종합주가지수는 -7%까지 하락하여 1310대에 돌입하고 말았다.

점심 먹기 전까지 1400대를 들락날락하던 지수가 30분도 되지 않아 1300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진정시키던 최석영은 황인석을 노려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고객 물량만 털어낸 황인석이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인석은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손을 털었다.

“최 과장님. 시스템이 먹통이 됐어요. 매도하고 싶어도 매도가 안 돼요.”

지금이라도 사람들의 매도 주문을 준비하던 김미진은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

최석영은 차라리 사람들을 막지 말 것을 그랬다며 후회했다.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자는 또 뭐 하는 거야?”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진영에게로 쏠렸다.

한진영이 단말기를 가지고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 씨. 뭐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단말기를 조작하는 한진영이 미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 최석영이었다.

그때 한진영이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매수 주문은 이쪽에서 받겠습니다.”

당장에라도 신성증권 시흥지점을 때려 부술 것 같이 분노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을 향해 한진영이 뜻밖의 말을 던졌다.

“뭐라고?”

“순서대로 매수 주문 넣어드릴 테니 차분히 질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당장에라도 집기를 부실 것만 같던 사람들도 한진영의 말에 멍한 얼굴을 보이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서 매도가 아니라 매수를 이야기하고 있는 한진영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준호 지점장도 지점장실에 있지 못하고 밖에 나와 있었다.

그도 뒤에서 한진영의 말을 들으며 놀라고 말았다.

“한진영 씨.”

“과장님. 제가 담당하고 있는 계좌들은 모두 꽉꽉 눌러 매수해 놨습니다. 편하게 하한가에서 잡았지요. 특히 스특스조선과 같이 변동성이 큰 종목들 위주로 담았습니다. 과장님 담당 계좌들도 담는 게 어떠십니까?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사람들은 주춤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다는 말이 주식쟁이들인 그들의 마음을 후벼 팠기 때문이다.

“이미 하한가에 돌입하고 있는데 여기서 매도를 어디에 한다는 말입니까? 하한가에 물량 쌓아놓을 뿐이지요. 그리고 매도가 되면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내일 또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걸까요?”

“전쟁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창구 바깥에 있던 고객 중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한진영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고 말했다.

“누가 전쟁이 난다고 합니까?”

“전쟁이……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핵실험입니다. 그것도 처음 있었던 핵실험도 아니라 2차 핵실험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지난번 핵실험이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돌아보기 시작했다.

3년 전에 있었던 핵실험 이야기를 떠올린 모습이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돌았지만, 실체가 그동안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핵실험을 했다는 북한의 발표가 3년 전에 있었었다.

그리고 지진연구소에서 미약하게 움직인 지진계를 확인했고 이 지진은 인공적이다라는 발표를 하며 북한의 핵실험이 공인되었었다.

“처음 있었던 핵실험에도 증시는 이렇게 빠지지 않았습니다. 겨우 3% 빠진 게 전부였지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사이드카에 서킷이 코앞까지 와 있습니다. 변동성 좋은 종목들은 죄다 하한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산성전자는 어떻습니까? 핵실험 이야기가 들렸을 때 -5%였던 것이 지금은 -3%대로 회복했습니다. 오히려 회복되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매도가 아니라 매수를 해야 하는 때라는 거라는 이야기지요. 믿기 싫으면 믿지 않아도 되니 좀 비켜주시죠. 혹시라도 매수하겠다는 고객님들께서 계실지도 모르니까요.”

사람들은 주춤주춤 한진영의 손에 자리를 피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를 보며 한진영이 한 말을 가만히 되뇌었다.

그때 한진영 앞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저 매수하고 싶어요.”

남편 퇴직금으로 대서양 화장품을 매수하려던 아주머니가 다시 한진영 앞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창구 앞에 놓인 매수 주문 종이를 급히 적으며 말했다.

“제가 아침부터 객장을 지켜봤는데 한진영 씨가 오늘 폭락이 온다고 했다면서요?”

아주머니의 말에 한진영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정말로 폭락이 왔어요. 그렇다면 지금은 매도가 아니라 매수를 해야 한다는 말도 맞는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눈치는 빨라요. 다 밀어 넣을게요.”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오늘 매수하고 내일 매도하시면 됩니다. 아셨죠?”

한진영은 자기를 믿어주는 첫 번째 고객을 위해 팁까지 건네며 매수 주문을 넣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한진영이 ELS의 녹인을 언급하며 언쟁을 벌였던 것을 떠올렸다.

폭락이 나오기 전에 폭락을 예상한 인물.

그런 그가 매도가 아닌 매수라며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객장까지 나와 주식을 할 정도로 주식에 미쳐있던 사람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매수. 내가 다음으로 매수할 테야.”

“그다음은 나.”

“여기 창구 열어줘. 매도 안 된다며? 매도 안 되면 매수라도 할 수 있게 해줘.”

한진영의 말 몇 마디에 몇 분 전에 서로 매도하겠다며 다투던 사람들이 단번에 서로 매수하겠다며 다투는 모습으로 바꾸어버렸다.

한진영은 장 마감 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지금 종합주가지수 -8%의 지수가 3시간도 되지 않아 플러스가 되어 마감이 되는 상황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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