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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0화 (10/650)

10화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김영수의 등장에 황인석은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한진영은 그런 황인석을 향해 재차 손을 내밀며 말했다.

“뭐하십니까? 제 말 들리지 않으십니까? 주십시오.”

“이게 누군가?”

김영수는 최준호의 안내로 안으로 들어가다 한진영과 황인석을 발견하고 지점장실로 가려던 발길을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바꿨다.

“다들 여기 있었구먼.”

“안녕하셨습니까? 안 그래도 조만간 뵈러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직접 오셨네요.”

한진영은 황인석을 향해 내밀던 손을 거두고 김영수를 향해 인사했다.

김영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본 후 황인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도 잘 있었나? 이제는 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섭섭하네그려.”

“아닙니다. 김 사장님. 제가 인사를 드리지 않는다니요? 잠시…… 제가 정신이 딴 데 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다고?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곳에 가 있었길래 그런가? 이 노인네에게 이야기 좀 해줄 수 있겠나?”

“그게…….”

황인석은 머뭇거렸다.

김영수는 황인석이 대답을 못 하자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자네 이름이…….”

“한진영입니다.”

“그래. 한진영 씨. 무슨 일인지 자네가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나? 황 대리가 영 대답을 하지 못하네.”

“회사 일이지만 사장님의 일이기도 해서 말씀드려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 내 일이야?”

김영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최준호가 단박에 김영수가 무엇을 찾는지 알아챘다.

앉아 있던 직원의 등을 두드려 일어나게 만든 후 의자를 김영수에게 내밀었다.

“사장님. 앉아서 들으시지요.”

“그래도 될까?”

“그럼요. 편하게 이야기 들으셔도 괜찮으십니다.”

“다들 일하는데 내가 너무 귀찮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눈치 없는 노인네가 와서 일 방해한다고 할까 봐. 그게 걱정인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한단 말입니까?”

최준호는 고개를 들어 직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자기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맑은 표정을 김영수를 향해 지어 보이며 말했다.

“사장님에 관한 일이 바로 저희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일입니다. 편하게…… 그저 사장님의 집처럼 여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저의 마음입니다.”

“하하하. 하여튼 최 지점장.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데는 뭐 있어. 그럼 내 사양하지 않고 앉도록 하겠네.”

김영수는 최준호가 내준 의자에 앉은 후 황인석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본 후 말했다.

“그래. 이야기해보게.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 이야기인지 듣고 싶은데 말이야.”

한진영은 황인석을 슬쩍 바라본 후 미소를 지으며 김영수를 바라봤다.

한진영은 김영수가 이 시간에 지점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라고 볼 수 있는 그 시점에서 김영수가 지점에 찾아왔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며칠 만에 10억의 자금이 날아가 버린 그가 지점에 찾아와 예치된 자금을 모두 빼냈다.

그로 인해 황인석은 회사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최준호 또한 큰 타격을 입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한 한진영이었다.

그래서 미리 시간에 맞춰 황인석을 찾아와 일부러 김영수의 계좌를 내놓으라 고집을 부린 것이었다.

김영수 본인이 직접 보고 정리하라는 의미에서였다.

한진영은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김영수를 향해 차분히 입을 열었다.

“김 사장님의 계좌를 제가 맡기 위해 황 대리님에게 계좌를 넘겨달라고 요청하던 참이었습니다.”

“오~ 내 담당을 바꾼다는 건가?”

김영수가 최준호를 돌아보고 물었다.

최준호는 김영수의 질문에 허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아무래도…….”

최준호는 신입에게 계좌를 넘긴다는 것을 김영수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러자 김영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마침 나도 그 이야기를 하러 이곳에 온 거야.”

“그 이야기를 하려 하셨다고요?”

“어. 저 친구한테 맡기고 있는 내 일임 계좌를 거둬들이려고 했어. 그리고…… 그 계좌 한진영 씨에게 넘겼으면 좋겠는데 최 지점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친구는 아직 신입이라…….”

“이봐. 최 지점장. 나도 귀가 있어.”

최준호는 김영수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큰 손해 볼 뻔한 내 자금을 살린 게 전부가 아니던데? 내가 그때 투자할 자금을 멈추는 게 아니라 이 친구한테 맡겼다면 오히려 큰 이득을 볼 뻔했더구먼. 아닌가?”

“아…… 들으셨습니까?”

“그럼. 내가 이래 봬도 시흥 바닥에서는 가지고 있는 귀와 입이 많아.”

최준호는 이야기가 통하겠다는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앉아있는 김영수와 키를 맞추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허리를 꺾은 채 이야기했다.

“사고가 터졌을 때 객장에 계셨던 분 중에서 과감하게 저희에게 돈을 맡기신 분들은 꽤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남편 퇴직금을 맡기신 주부님은 당일에만…… 몇 프로?”

최준호는 최석영 과장을 보고 물었다.

“당일에만 20%입니다.”

“그래. 당일에만 20%. 오늘까지 하면 총 25%의 수익을 올리셨죠. 그리고 유유히 정리하면서 딱 사흘 만에 25%의 수익을…….”

“알았네. 나도 다 알고 온 거야.”

김영수는 귀 아프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는 황인석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럼 자네가 담당을 옮기라는 말에 거부하고 있다는 건가? 내 계좌인데?”

“사장님 그게 아니라…….”

“그거든 저거든. 자네 뭐 하는 사람인가?”

“사장님. 그동안 저와 함께했던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사장님과 저와 함께한 정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친구 이상한 생각을 하는 친구구먼. 최 지점장.”

“네. 사장님.”

김영수는 황인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최준호를 가까이 불러들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황인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친목질 하려고 만든 곳인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자네 지점 직원은 옛정을 운운하고 있는 거지?”

“이봐 황 대리. 자네 어서 사장님께 사과드리지 못하겠나?”

“잠깐. 이봐 한진영 씨.”

김영수는 황인석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들어 한진영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한진영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옛정을 생각해야 한다고 보나?”

김영수의 말에 한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돈에 정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 말 잘하는구먼. 계속해보게.”

김영수는 내밀었던 손가락을 거두고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김영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천천히 그 앞에서 하기 시작했다.

“저희 신성증권에 사장님이 돈을 맡기시는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돈을 가장 잘 벌만 한 사람에게 계좌를 맡기는 것이 사장님을 위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회사를 위하는 길이지요. 그래서 제가 황 대리님에게 사장님의 계좌를 달라고 이야기한 것이었습니다. 사장님의 계좌를 가장 잘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이니까요.”

신입답지 않은 게 당돌해 보이기까지 한 한진영의 모습에 김영수는 만족하는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내 계좌를 가장 잘 운용할 사람이라고 확신한다는 말인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 또 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인가?”

김영수가 주변을 둘러볼 때 한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사장님 또한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지요.”

“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김영수의 얼굴에 미소는 더욱 짙어져 갔다.

그는 의자에 앉은 채 다리까지 꼰 상태로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지점에 찾아와 이렇게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것이지요. 그것도 황 대리님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들으라는 듯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말입니다.”

“오호~”

김영수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두 다리로 땅을 한번 굴렀다.

“영차.”

김영수가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자 최준호가 급히 다가가 김영수를 부축했다.

김영수는 최준호가 내민 팔을 붙잡고 의자에서 일어나 한진영을 다시 한번 손가락질한 후 최준호를 향해 말했다.

“재미있는 친구야.”

“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준호는 김영수가 어떤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지점장으로만 3년 차이며 그 전부터 이런 자산가와 오랫동안 만나며 자연스레 터득한 눈치였다.

최준호는 김영수가 똑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며 한진영에 대한 칭찬을 이었다.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혼란 속에서도 냉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요. 보통은 그런 상황에서 그런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거든요. 아마 사장님 계좌를 운용할 때도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할 겁니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 이곳에 왔는데 만족스러워.”

김영수는 일어선 채로 한진영과 눈을 마주하고 말했다.

“내 계좌 자네가 맡게.”

“사장님…….”

황인석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김영수를 불렀다.

김영수는 한진영을 바라볼 때와 다른 눈으로 황인석을 노려봤다.

“자네는 운 좋은 줄 알아. 만약 자네 말대로 그 ELS인가에 투자해서 내 돈 날렸으면 내가 자네 가만히 놔뒀을 것 같아?”

한진영은 김영수의 말을 듣고는 그가 왔던 곳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김 사장의 말대로 오히려 운이 좋은 거지. 소송 때문에 법정을 왔다 갔다 하며 경력까지 싹 다 끊겨버렸던 그때와 비교하면…….’

그러나 황인석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영수에게 매달렸다.

“사장님. 저는 정말 사장님께 좋은 상품을…….”

“듣기 싫어. 한마디만 더 해봐. 자네 같은 사람을 나에게 붙인 최 지점장에게도 실망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최준호는 자기에게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황인석에게 달려들었다.

“조용히 해. 회사 계속 다니고 싶으면 한마디도 더 꺼내지 마.”

최준호는 황인석의 입이 굳게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김영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친구 다시는 사장님 눈에 띄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일은 여기 있는 한진영 씨가 맡게 될 겁니다. 한진영 씨 잘 할 수 있지?”

“맡겨주십시오. 김 사장님과 회사에 모두 만족할만한 결과를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영수는 말을 마친 뒤에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빛을 한진영의 눈에서 발견했다.

“뭐 아직 할 말이 남았나?”

한진영은 김영수를 빤히 바라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는 김 사장님께 제 진심을 보여드렸습니다. 다짐도 했고요. 그러니 사장님께서도 가지고 온 선물 보따리를 푸셨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아직 부족한 건가요?”

“하하하. 이 친구…….”

최준호는 한진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김영수와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김영수는 한동안 즐거운 얼굴로 웃으며 한진영을 손가락질한 후 입을 열었다.

“그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오기는 했지. 지난번에 투자하려고 했던 10억.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기존에 내가 예치했던 것에 10억을 더해서 한번 해봐.”

“사장님.”

최준호가 감격한 얼굴로 김영수에게 안겨들 것처럼 다가갔다.

김영수는 그런 최준호를 손을 들어서 막았다.

“징그럽게 그러지 마.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야. 일주일 뒤에 내 사무실로 찾아와. 내가 몇 사람 더 소개해줄 테니까. 어떤가? 이 정도면 되겠나?”

“네. 딱 제가 원하던 선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진영의 인사에 김영수는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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