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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1화 (11/650)

11화 적임자를 찾는다

김영수가 다녀간 지 며칠 후.

시흥지점에서는 어떤 이야기로 직원들이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주차장에 있던 차가 자네 차라는 말이야?”

“네. 제 차입니다.”

“포르쉐가 진짜 네 차라고?”

“네. 제 차입니다. 뭐가 잘못됐나요?”

직원들은 한진영을 둘러싸고 서서 번갈아 가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자네 집이 좀 사나? 이제 막 회사에 취업한 아들에게 포르쉐를 턱턱 사주실 만큼 좀 사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이번에 새로 뽑은 차입니다. 부모님 도움 하나도 받지 않고요.”

직원들은 한진영의 말에 서로를 돌아보며 놀라워했다.

이제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이 번듯한 외제 차를 끌고 온 거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거 못해도 1억은 훌쩍 넘기지 않아? 옵션 이것저것 붙이면 내가 알고 있기로는 2억 가까이 간다는 것 같은데…….”

“돈도 돈이지만…… 새로 출고되는데도 몇 달 걸리지 않아? 이제 막 입사한 자네가 그 차를 계약하고 받으려면 회사 입사 전에 계약했다는 이야기인데…… 로또라도 되고 입사한 거야?”

한진영은 직원들의 상상력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리고 그럴 만하다는 생각하며 가볍게 대답했다.

“로또가 됐다면 출근 안 하지요. 대리님. 안 그렇습니까?”

경우진 대리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 로또 되면 나 같아도 회사 안 나오지. 그럼 도대체 뭔 돈으로 포르쉐를 뽑았냐 이 말이야. 그것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이 말이야.”

“얼마 전에 인센티브 좀 받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지점장님이 격려금도 주셨고요.”

“뭐? 인센티브로 뽑았다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의 말에 크게 놀랐다.

어쩌면 외제 차를 뽑았다는 사실보다 인센티브로 포르쉐를 뽑았다는 사실에 더 놀란 것만 같았다.

마침 지점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 최준호를 보고 직원들이 급히 물었다.

“지점장님. 한진영 씨에게 도대체 인센티브로 얼마 주신 겁니까? 몇 억 주셨어요?”

“뭔 소리야? 인센티브로 몇 억을 왜 줘?”

“한진영 씨가 인센티브로 포르쉐를 뽑았다는데요?”

“그래?”

최준호도 지금의 대화에 흥미를 느꼈는지 한진영의 근처로 다가왔다.

“내가 자네에게 나간 돈을 알고 있는데 그 돈으로 포르쉐를 뽑았다고? 자네 통장에 입금될 때 실수로 공이 몇 개 더 붙어 들어간 건가?”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은행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인센티브로 외제 차를 뽑았다는 거야?”

“리스죠. 샀다는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리스?”

“네. 리스로 뽑은 겁니다. 그러니까 새 차 나오는 데 몇 달이나 걸릴 차가 바로 온 거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이번에 큰 건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그런 차를 뽑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걱정 어린 얼굴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자네 조심해. 신입이 매달 월급만큼의 리스비를 줘야 하는 차를 뽑는 건 좋은 게 아니야.”

“글쎄요. 저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해서 가장 높은 차를 뽑은 건데요.”

“일부러 포르쉐를 뽑았다고?”

“네. 일을 위해서요.”

최준호는 이야기를 들으며 한진영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대화에 끼어들어 한진영을 향해 질문했다.

“이유를 알려줄 수 있겠나?”

한진영은 최준호의 질문에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객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안도감? 오히려 자기 돈을 삥땅 친 건 아닐까 하고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고객은 비싼 차를 모는 사람에게 더 안도감을 느끼고는 합니다. 좋은 차를 몬다는 것은 돈을 잘 번다는 뜻이고 돈을 잘 번다는 것은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요. 직원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게 바로 그 사람의 능력이고 성과이니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한 겁니다.”

한진영이 직접 자산운용사까지 세우면서 느낀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런 심리를 이용한 몇몇 사기꾼들이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잘 먹히는 심리였고 주식시장에서 활동할 때는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기특한 듯이 한진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제법이야. 잘 알고 있어.”

최준호도 잘 알고 있는 방법이었다.

그걸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깨우친 것을 보며 최준호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점장님. 한진영 씨의 말이 맞는 건가요?”

경우진은 놀란 얼굴로 최준호를 향해 물었다.

최준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나도 언제 기회가 되면 자네들에게 말하려고 했던 방법이야. 그런데 한진영 씨가 한발 빨리 보여주고 말았네. 대단해.”

“정말인가요? 고객들이 영업사원의 차를 보고 안도감을 느낀다고요? 오히려 의심하는 게 아니고요?”

“의심? 자네 같으면 옆에 경차를 모는 최 과장하고 외제 차를 모는 한진영 씨 두 사람 중에 누구에게 돈을 맡기겠나? 우리같이 돈을 만지는 직업은 그 사람의 씀씀이가 곧 능력처럼 비치고는 해. 능력이 안 돼 경차를 몬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그런데 한진영 씨처럼 젊은 사람이 좋은 차를 몰면 어리지만 능력이 좋다고 생각하고 좀 더 쉽게 지갑을 열고는 해. 그게 이 바닥 생리야. 알았어?”

최준호는 잘했다는 뜻으로 다시 한번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돈을 쓸 때 잘 계산해서 하도록 해. 괜히 무리하다가는 나중에 힘들어질 테니까.”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지난번에 받은 그런 인센티브를 계속 받게 될 테니까요. 그때 가서 지점장님도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 격려금도 계속 주셔야 해요.”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계약을 계속 따오면 격려금이 뭐야. 내 자리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

“지점장님 자리를 저에게 내어주시면 지점장님은 어디로 가시려고요?”

“그거야 더 높은 곳으로 간다는 말 아니겠어?”

최준호와 한진영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지점장과 신입사원이 이렇게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자자. 아침 회의 시작하세. 그럼 다들 들어와.”

최준호는 떠들썩했던 대화를 마무리 짓고 먼저 지점장실로 들어갔다.

뒤를 이어 각 팀의 팀장급들과 주요 직원들이 노트를 들고 지점장실로 들어가며 아침 업무가 시작됐다.

약 30여 분간의 회의를 마치고 나온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하. 어디서 고객을 더 유치하냐?”

최석영은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최석영과 함께 나온 경우진도 한숨을 쉬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주식시장 개판 되고 나서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는데 사람을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내 말이…… 아니 지점장님은 다른 회사 고객이라도 뺏어오라는데 도대체 뭐로 기존 고객을 뺏어오냐고…… 답답하다. 답답해.”

최석영은 회의실에 들고 들어갔던 노트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담배를 들고 객장으로 향했다.

경우진도 최석영의 뒤를 따르며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 시작 전에 담배부터 한 대 피우고 하자는 손짓이었다.

한진영은 최석영과 경우진을 따라가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입에 담배를 물며 말했다.

“회의가 잘되지 않으셨나 보네요.”

“자네는 좋겠어.”

“저 말씀입니까?”

최석영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에게 부러움이 담겨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고객을 많이 유치했잖아. 약정금액 얼마나 채웠어?”

경우진도 궁금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최근에 있었던 일로 얼마나 한진영이 땡겼는지 궁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님이 채워주신 10억에 소개로 2억을 더 채웠습니다.”

“휴우~ 자네는 한동안 이제 실적 걱정 없겠네.”

“실적 때문에 압박받으셨습니까?”

“그게 아니면 뭐겠나? 아~ 가끔 내가 증권사 직원인지 아니면 보험사 직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최근에 그런 고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기왕 이렇게 고객들에게 애원하면서 상품을 팔아먹을 거라면 보험영업을 뛰는 게 훨씬 낫겠다고 말입니다. 최소한 보험 영업은 팔아먹은 상품이 날아가 버리는 일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으니 고객들 유치하기가 더 힘이 듭니다.”

최석영의 깊은 한숨에 경우진이 동조하며 담배를 재떨이에 떨었다.

한진영은 실적 압박을 받는 최석영과 경우진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 말대로 한동안 한진영은 실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유치한 자금을 이용하여 계좌를 열심히 돌린다면 짭짤한 수당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이게 바로 지점 영업의 장점이었으며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것이 지점 영업직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여기서 안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30억은 채워야 해.’

그래야 연말에 직원들 줄을 세울 때 순위권에 이름을 집어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위권에 들어가야만 본사로 올라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김영수 같은 사람이 두 명이 더 찾아온다면 쉽게 달성될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수는 어디까지나 특별한 케이스였다.

실제론 고객에게서 1억을 유치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김영수가 시흥에서 돈깨나 굴린다는 사람을 소개해줬는데도 2억을 모으는 데 그쳤다.

그러니 시흥 바닥에서만 30억을 끌어모으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시흥 바닥은 너무 작아. 눈을 돌려야겠어.’

한진영은 시흥에 매달릴 게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자금을 유치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가장 제격인 것은 역시 방송이었다.

마침 방송과 관련된 일이 시흥지점에서 일어났던 만큼 그걸 제대로 이용해볼 작정이었다.

‘그러면 방송에 내보낼 사람이 필요한데…….’

자신이 직접 방송에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증권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경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최 과장…….’

주위를 둘러보던 한진영은 최석영을 발견하곤 위아래로 훑었다.

‘적당한 나이에 안경만 씌우면 나름 신뢰할 수 있는 얼굴이 될 것 같은데.’

게다가 최석영의 경력 또한 방송에 출연하기 무리 없을 정도였다.

다시금 최석영을 바라보던 한진영은 방송에 나오는 최석영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머리는 조금 더 손질하고…….’

한참을 푸념하는 최석영의 곁에서 한진영은 차근차근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다 피우고 온 한진영과 최석영은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지점 문이 열리고 고객들이 객장으로 들어오며 업무가 시작됐다.

그리고 최석영은 모자란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자기가 맡은 일임 계좌를 아침부터 열심히 돌렸다.

회전율을 높여 고객의 계좌에서 수수료를 최대한 뽑아먹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진영이 왔던 곳에서는 증권사에서 자산운용사로 많이 넘어간 업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사고팔아 증권사의 수수료를 높여 그곳에서 수당을 빼먹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도 고객의 계좌가 손해를 봐서는 안 되었기에 최석영은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을만한 곳을 찾아 오전 내내 열심히 계좌를 돌렸다.

“그래도 아직 신종플루 테마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바이오주들 돌리니까 좀 괜찮네.”

“그러게요. 과장님. 이렇게라도 돌려서 약정금액은 채우지 못하더라도 회전율 좀 높이면 지점장님이 그만 갈구시겠죠?”

“그렇지 않을걸? 아마 약정금액 채우는 날까지 갈굴 게 뻔해. 내가 지점장님과 함께 일한 지 벌써 3년째 아니냐? 분명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야.”

최석영이 열심히 단말기를 통해 주식을 사고팔며 경우진과 대화를 나눴다.

한진영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최석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렸다.

외모는 그가 생각한 조건에 부합했지만, 성격까지도 괜찮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생활에서 보여지는 것과 방송에서 보여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 한진영이 필요한 인물은 방송에서 비칠 최석영이었다.

그가 방송에 나와 사고를 칠만한 위인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아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전 내내 떠올렸던 지난 시절 최석영이라는 사람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방송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한진영은 최석영을 방송에 내세울 사람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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