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우리의 관계는 이것과 같다
자신감 넘치는 한진영의 목소리와 달리 여전히 최준호는 의아하기만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래. 이유를 알고 있으니 바로 답을 들어야겠지? 해결책이란 게 뭔가?”
한진영은 여전히 의문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최준호를 향해 말했다.
“최 과장을 우리 지점 대표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뭐라고?”
최준호는 잠시 말을 마친 뒤에 코웃음을 쳤다.
“지금 그걸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건가? 최 과장을 수익률 대회 대표로 내보내자고?”
최준호는 한진영의 답을 똑같이 따라 하고는 고개를 연신 흔들었다.
한진영은 이런 최준호의 모습에도 주눅 드는 기색 하나 없이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최 과장이 못 미더우신 것 이해합니다.”
“이봐. 자네가 아직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지 못한 것 같은데, 지금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수익률 대회가 다른 곳도 아니라 방송에서 모두 오픈하고 진행하는 거라는 것 알고 있나? 게다가 그때그때 바로 포지션을 바꿀 수도 없고, 오직 일주일 뒤에 주가가 올라 있는 종목을 골라내야 한다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흘 동안 20%가 넘게 올라갔던 종목도 연이틀 폭락을 하게 된다면 그 종목을 선택한 전문가는 손해를 본 것으로 계산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선택한 다음 날 상한가 갔다가 횡보 뒤에 방송 나오기 바로 전 거래일에 하한가에 들어간다면 결국 성적표는 마이너스로 받는 게 그 대회란 말이야. 이건 웬만한 고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도가 있는 일이야. 그런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라 최 과장에게 맡기자고? 참나…….”
최준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최석영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말투였다.
그는 한진영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차라리 자네가 한다고 했다면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었을 거네. 그런데 최석영은…….”
“맞습니다. 최 과장과 제가 한팀으로 참가를 할 계획입니다.”
“뭐?”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그리고 한진영이 말한 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팀이라니?”
“물론 외부에 드러나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최 과장이 될 겁니다. 그러나 종목을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매수 시점과 매도할 자리를 찾는 것 등은 제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할 생각입니다.”
“자네가……?”
“네.”
누군가 본다면 우스운 일이었다.
10년 다 되어가는 경력을 가진 최석영을 믿지 못하는 최준호였다.
그런데 이제 몇 달 되어 가는 신입이 팀으로 나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흔들리고 있었다.
이는 최준호가 한진영의 실력을 눈여겨보고 있는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2차 핵실험마저 미리 알아내는 한진영의 정보통을 믿고 있는 탓이 컸다.
“그게…… 정말인가?”
“네. 그러니 최 과장님을 추천한 것이지요. 저도 최 과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알고 있다니 그건 더 이야기하지 않겠네. 그런데 지금 나가려는 그 대경TV의 수익률 대회는 먹을 것 없이 가시만 잔뜩 돋아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나?”
최준호는 잠시 말을 하던 것을 멈추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송을 통해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나 그런 자리가 탐이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 그런 자리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는 자리야. 수익률 대회? 말이 좋아 대회라고 부르지, 그건 대회라 부를 수도 없어.”
“그래서 지점장님께서 고민이 많으셨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한다는 듯한 착잡한 표정을 짓는 한진영은 최준호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방송사에서 할당된 신성증권의 자리가 강제적으로 배정이 되어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우리 지점이 실적이라도 좋았다면 안 하겠다고 버티기라도 할 테지만 그렇지도 못하니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겠지요.”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 놀랍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도대체 자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까지 하네.”
“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지요. 지금 중요한 것은 할당된 자리에 사람을 무조건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그 자리에 최 과장을 넣어 보자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이렇게 지점장님을 찾아온 겁니다.”
한진영은 이야기하느라 조금 앞으로 기울어졌던 몸을 자연스럽게 뒤로 물렸다.
지난날 여러 사람을 상대하며 자연스럽게 터득했던 대화의 스킬이 최준호를 상대로 펼쳐진 것이었다.
밀고 당기며 최준호의 생각을 한진영이 원하는 대로 끌고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여러 가지 해결책 중의 하나일 뿐이지요. 결국, 결정은 지점장님이 선택하실 문제이니 제 제안은 참고만 해주십시오.”
“잠깐!”
최준호는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은 한진영을 손을 들어서 막았다.
“분명 자네가 같이 한다고 했지?”
“최 과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점장님의 생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제가 지원 자격인 5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복잡하게 최 과장과 함께할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지원 자격이 되지 못하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잘못되면 회사뿐만 아니라 지점 명성에도 먹칠이 된다는 것 알고 있지?”
“그건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말을 하고는 지난번의 일을 떠올렸다.
본사에서 억지로 떠넘긴 일이었다.
최준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점에서 그래도 괜찮다는 평을 받는 김현진 과장을 수익률 대회에 참가시켰다.
그리고 수익률 대회에서 꼴찌를 하며 방송사와 시청자 그리고 본사에까지 시흥지점은 깊은 신뢰를 잃고 말았다.
한진영은 그 판을 정반대로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래. 크게 바라지 않겠어. 꼴찌만 하지 않으면 돼. 할 수 있겠나?”
“저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더 높은 곳?”
“대경TV에 최 과장을 안착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익률 대회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입니다. 이런 곳에서 꼴찌를 운운하기에는 제 꿈은 더 큽니다.”
최준호는 잠시 한진영을 바라봤다.
대경TV에 최 과장을 안착시키겠다는 뜻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방송을 통해 시흥지점으로 고객을 자연스럽게 유치할 게 분명했다.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묻지는 않겠네. 다만…….”
“걱정이 되신다면 다른 사람을 방송에 넣으시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기왕지사 탐탁지 않은 일에 발을 들이민다면 성공했을 때 얻을 보상이 큰 쪽에 배팅해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진영에게 말했다.
“좋아. 어차피 한다면 자네 제안 쪽이 좀 더 흥미가 가기는 하는군. 그럼 나가서 최 과장을 불러오게나.”
“최 과장과는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내일?”
“네. 아직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요.”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팀으로 묶어서 일한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보군. 좋아. 조율이 끝나면 찾아오게. 나는 대경TV에 최 과장을 제안할 준비를 마쳐 놓을 테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듣고 싶었던 답을 들은 것에 만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둑해진 밤이 되어서야 한진영은 집에 도착하게 됐다.
차를 새로 사며 사는 곳도 근처에서 가장 괜찮은 오피스텔로 이사한 한진영이었다.
새롭게 지어진 곳으로 지금의 한진영에게는 과하다 못해 무리하게 느껴질 정도의 거처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전혀 무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거 자산운용사 대표를 맡았을 때 생활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은 노숙자로 전락한 것과 다름없게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성북동에 재벌들만 보유하고 있다는 대저택은 물론이고, 자산운용사 이름으로 보유하고 있던 초호화 오피스텔.
여기에 더해 느긋하게 지내기 위해 언제나 비워 놓고 있는 호텔 객실이 지난날 자신의 거처였다.
그러니 투룸에 월세 100만 원 수준의 오피스텔이라 해도 자신에겐 무리한 곳이 아니었다.
“이제야 퇴근하는 건가? 한참 기다렸네.”
주차하고 올라온 한진영의 오피스텔 문 앞에서 최석영이 초췌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밤새 생각해보고 내일 오라고 이야기했던 한진영이었다.
그런데 최석영은 밤사이는 고사하고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한진영 앞에 서 있었다.
“자네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지. 그런데 자네는…… 집도 좋네. 여기 꽤 비싸지 않아?”
“오래는 아니고 잠시 지내려고 구한 곳입니다. 들어오시지요.”
‘잠시’라는 말에 최석영은 누군가의 호의 혹은 한두 달 잠깐 살기 위해 무리해서 얻은 곳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정말로 ‘잠시’ 살 생각으로 이곳을 쓰려 한 것이었다.
돈을 조금 더 모으면 집부터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 안에 가구라고 할 것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집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휑한 실내와 아직은 정리가 안 된 내부를 보며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런 곳에선 오래 살기 힘들지. 월세지?”
“네. 월세입니다.”
“얼마나 해?”
“한 달에 100 나갑니다.”
“어휴. 나는…… 그 돈 내고 여기 못살 거 같아. 내 월급에 100씩 나가면…… 난 못살아.”
최석영은 고개를 흔들며 집을 구경했다.
“얼른 새로 집 구해서 나가도록 해. 자네 월급 빤하게 아는 데 그 돈에 한 달 100씩 나가면 돈 못 모은다.”
“제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오신 이유에 관해서나 이야기해볼까요?”
한진영은 주스를 최석영에게 내밀고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주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아직 찬 기운이 제대로 올라오지도 않은 유리잔을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한참 고민해 봤는데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 이렇게 여기에 온 거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알아야 고민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이해합니다.”
한진영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주스를 들어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고민하지 마시고 바로 물어보세요. 대답해 드릴 테니까요.”
“그래. 좋아.”
바로 물어보라는 데도 잠시 뜸을 들이던 최석영은 결국 결심을 했는지 한진영을 향해 빠르게 물었다.
“왜 나를 도와주려는 건가?”
“도와주다니요?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도와드리는 게 아닙니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고? 그럼 뭔가?”
“서로 잘 되려고 하는 겁니다. 과장님과 저 모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모두?”
한진영은 들고 있던 주스를 탁자 위에 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주스 통을 들고 왔다.
그리고 최석영의 유리잔에 다시 가득 주스를 부으며 말했다.
“이 주스 통과 유리잔 그리고 유리잔 속에 담긴 주스가 바로 과장님과 저, 그리고 고객이 되는 겁니다. 방송을 통해 고객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주스 통이고 그렇게 모인 고객을 과장님의 유리잔과 저의 유리잔에 공평히 담아 마시는 것. 이게 우리 관계입니다. 어떠십니까? 방송을 통해 모은 고객의 절반. 저는 그걸 위해 과장님께 방송 자리를 마련해드리려 하는 겁니다.”
방송에 실제로 나가는 것은 최석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과실을 모두 최석영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덕으로 방송에 앉은 것이니, 당연히 그 과실도 나눠 가질 생각이었다.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목이 탔는지 다시 유리잔을 들어 주스를 벌컥벌컥 마셔 댔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과장님 자녀들도 얼추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 큰애가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기는 해.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건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는데 이 정도 집의 월세를 가지고 혀를 내둘러서는 안 되지요. 특히, 우리처럼 돈을 가지고 노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월세 100에 그래서야 하겠습니까?”
“자네…….”
“조금 더 멀리 보세요. 저와 함께 더 나은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달에 월세 100을 걱정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좋은 집과 학원 그리고 풍족한 생활을 안겨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시작입니다.”
한진영은 여유로운 얼굴로 시시각각 변하는 최석영의 표정을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