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두 번째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앵커의 목소리에 모두 이야기를 하던 것을 멈추고 TV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속에서는 앵커가 지난주 각 전문가가 추천했던 종목들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을 알렸다.
“역시 쉽지가 않아. 잘했어.”
최준호가 곁에 앉아 있는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화면에 잡힌 각 전문가의 수익률은 처참했다.
첫째 주부터 파란색을 보인 것도 모자라 모 전문가의 경우에는 -10%가 넘는 손해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들은 한진영을 돌아봤다.
최석영이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알고 있던 직원들은 자리에 있는 한진영에게 축하의 말을 눈으로 대신했다.
앵커는 각 전문가가 추천했던 종목들의 일주일간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추천했던 이유와 일주일간 나왔던 그 종목의 뉴스를 함께 놓고 검증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와~ 이거 너무 빡센 거 아닌가요? 무슨 시체 검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말입니다. 지점장님. 알고 계셨어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최준호를 돌아보고 물었다.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방송은 세세하게 종목에 대한 부검을 진행하고 있었다.
만약 자리에 그 종목을 추천한 전문가가 있었다면 사과까지 받으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준호도 이런 모습을 예상하지 못한 건지 당황한 모습으로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건…… 너무한데. 이렇게까지 하면 다음부터 누가 제대로 종목 선정이나 할 수 있겠어?”
최준호는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누가’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최준호가 지목하는 상대가 한진영이라는 사실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최준호의 말에 한진영은 여전히 TV를 바라본 채 대답했다.
“오늘까지는 미리 종목을 받았으니 종목 선정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겠지만…… 다음 주부터는 좀 다르겠지요. 종목 선정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게. 다음 주부터는 모험을 걸지는 못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저는 이렇게 진행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도 되어 있고요.”
“알고 있었다고?”
“그럼요. 지금 이런 모습이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존과 다른 방식이기에 당황스럽기는 하겠지만요.”
보는 사람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식으로 속속들이 다 까뒤집는다면 보는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있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야 괜찮다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참여를 하지 않는 자기들도 부담이 가는데, 참여를 하는 사람들이 받는 부담은 상상 이상일 거로 생각됐다.
“그래서……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김미진이 놀랍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보기에도 한진영은 정말로 예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저기 최 과장님 나오네요.”
한진영은 김미진의 질문에 미소로 대답한 후 사람들의 관심을 TV로 돌렸다.
굳이 이런저런 설명을 여러 사람에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 그럴싸해 보이는데요.”
화면에 최석영이 나오자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 가졌던 의문을 금세 날려버렸다.
“직접 화면에 나오니까 또 다른데요.”
“그러게. 다르긴 다르다. 굉장히 사람이 스마트해 보이는데?”
곁에 앉아있던 직원의 말에 최준호가 동의했다.
확실히 그냥 볼 때와 달리 화면을 통해 보는 최석영이 더 신뢰 있게 느껴졌다.
“안경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최 과장님이 원래 안경을 쓰셨나요?”
“안경을 쓰고 나가는 게 좋다고 조언을 드렸는데 역시 안경이 포인트가 된 것 같네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한진영도 사람들의 말에 동조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최준호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자네가 안경 쓰라고 했어?”
“네. 안경을 쓰지 않아도 신뢰를 상대방에게 주는 외모지만 안경을 쓰면 더 효과를 볼 수 있겠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안경도 뿔테 쪽으로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고요. 최 과장님이 제 말을 잘 들었네요. 보기 좋습니다.”
담담하게 꺼낸 말이었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자네 혹시 최 과장이 방송에 나올 걸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가?”
최준호의 말에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한진영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오히려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거냐는 의문이 드는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염두에 뒀습니다. 그리고 첫째 주부터 나올 거라는 것도 예상했고요. 그리고 앞으로 12주 남은 기간 모두 독식해서 방송에 나가게 될 겁니다.”
“독식한다고?”
“그래야 의미가 있죠. 한번 나오고 마는 거라면 참가에 의의를 둔 올림픽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최준호는 물론이고 듣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한진영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12주 연속 1등을 하겠다는 건지 감도 잡지 못하게는 직원들은 한진영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다.
그때 최석영의 인터뷰가 시작되며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자기소개부터 시작한 인터뷰는 첫 주 1등을 달성한 것을 축하하는 인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무포지션을 잡은 이유를 묻는 것으로 본격적인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금 시장 상황은 쉬운 상황이 아닙니다. 서브프라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지금 코스피는 1400까지 다이렉트로 올라온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북한의 핵실험 때도 증명됐지만 피로감이 가득 쌓여있는 증시는 작은 이슈에도 크게 출렁거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최석영이 물 흐르듯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최석영의 말에 홀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원래 최 과장님이 저렇게 말을 잘했나?”
“그러게…… 과장님 맞아?”
유려한 말솜씨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최석영이었다.
깔끔한 외모에 신뢰가 느껴지는 목소리 톤.
그리고 그런 외적인 플러스 요인을 잘 살려주는 말솜씨.
사람들은 최석영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중이었다.
“저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최 과장과 함께하겠다고 말씀드린 것이죠.”
“자네는…… 모르는 게 뭔가?”
“다 알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고 있다고 대답할 정도는 됩니다.”
“정말 신기해. 신기해.”
최준호는 한진영을 향해 몇 번에 걸쳐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최석영을 바라봤다.
화면 속의 최석영은 현재의 시장 상황과 무포지션을 잡은 이유를 소상히 듣기 쉽게 설명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한진영에게 이야기 들어서 그런 것인지 말이 입을 통해 거침없이 나왔다.
앵커도 잠시 최석영의 말에 홀렸는지 바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그러자 최석영이 웃는 얼굴로 앵커의 말을 선수 쳤다.
“그래서 다음 제 포지션이 궁금하시지요? 어떤 종목을 선정할지 그리고 선정이유 등등 궁금하신 것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네. 바로 그게 제가 여쭙고 싶던 겁니다. 최석영 과장님께서는 앞으로 진행될 2주 차에 어떤 종목을 고르신 겁니까?”
화면 속 앵커가 질문하자 TV 앞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화면에서야 최석영이 대답하겠지만,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사람이 한진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직접 대답을 듣고 싶은 듯했다.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그래서 뭐야? 아까 식사 자리에서도 안 알려주던데…… 지금은 알려줄 수 있지?”
한진영은 잠시 최준호를 바라보다 자리에 있는 사람이 궁금해하던 것을 대답했다.
“다음 주 우리와 함께할 종목은…….”
“꿀꺽.”
화면 속에서의 최석영도 한진영과 마찬가지로 잠시 말을 멈추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없습니다.”
“뭐?”
“네?”
화면 밖과 안에서 동시에 같은 반응이 나왔다.
앵커도 미리 전달받지 못한 것인지 앞에 놓인 진행 대본을 다시 뒤적이며 최석영이 맞는 대답을 한 것인지 확인했다.
화면 밖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한진영을 향해 인상 썼다.
“또 무포지션이라고?”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최준호 지점장이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번 주도 무포지션입니다.”
한진영은 미소를 띄우며 화면을 바라봤다.
당황한 앵커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화면에는 다른 전문가들이 이번 주에 어떤 종목을 추천했는지를 정리한 화면이 떠 있었다.
‘다른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하구나.’
한진영은 최석영 아래 아무런 종목명이 쓰여있지 않은 빈칸을 보며 미소 지었다.
***
따르릉.
“네. 신성증권 시흥…… 네.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전화를 받은 김미진은 연신 사과를 한 후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김미진뿐만이 아니었다.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직원들은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업무를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오늘만 100통은 받은 것 같다.”
한진영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같은 지점으로 발령을 받은 동기인 이성우가 찾아왔다.
그는 종이컵에 타온 커피를 한진영에게 내밀며 말했다.
“최 과장님은 안 보이시네.”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종이컵을 건네받은 뒤 대답했다.
“일찍 들어가셨어.”
“들어가셨다고? 오늘 같은 날?”
“오늘 같은 날이니까 들어가셔야지. 계시면 아마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으려 할걸. 고객뿐만 아니라 다른 증권사에서도 그렇고…… 봐봐. 저기도 왔네. 과장님 얼굴 한번 보겠다고 말이야.”
객장에 들어온 고객은 직원들이 앉아 있는 곳을 두리번거렸다.
상황판으로 직행하는 기존 고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계속 누군가를 찾는 모습이 아무래도 최석영의 얼굴을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이런 때 앉아 있으면 괜히 욕먹기만 하겠지. 그러느니 그냥 들어가시는 게 나아.”
“그렇기는 한데…….”
이성우는 한진영의 책상에 걸터앉은 채 몸을 살짝 기울여 한진영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 반응이 많이 안 좋아. 살벌해. 내가 조금 전 받은 전화는 우선 쌍욕부터 박고 시작하더라. 자기네들이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없는데 성의가 없다나 뭐라나. 그럴 거면 왜 방송에 나왔냐고…… 어휴. 난리도 아니다.”
이성우는 조금 전 받은 전화가 생각난 건지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도 포지션이 없다는 것이 공개되자 반응이 격하게 나왔다.
분명 포지션을 공개하기 전에 충분히 지금 시장의 분위기와 전망을 이야기했음에도 사람들은 포지션이 없다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막말로 추천일 뿐이고 포지션 공유일 뿐이지 방송에 나와서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니잖아. 누가 목에 칼 들이밀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들 그렇게 화가 난 건지 모르겠다.”
이성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고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고 물었다.
“넌 괜찮아?”
“어? 뭐가?”
“욕하는 사람들이 고객만이 아니잖아.”
이성우는 한진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진짜 괜찮아?”
“난 또 무슨 소리 한다고……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어.”
한진영이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속은 문드러지는 기분일 거로 생각한 이성우는 한진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성우의 생각대로 어제 방송 이후 비난은 외부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업무를 하지 못하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리고 비난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도 날아들었다.
“다른 증권사에서도 왜 그랬냐고 욕하는 마당에 직원들이 뭐라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지.”
“뭐? 다른 증권사에서도 욕한다고?”
“그래. 같이 방송 나왔던 증권사는 물론이고 방송을 만든 방송사에서도 난리다. 규정에 걸리는지 아닌지 찾는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무포지션이 불법은 아니잖아.”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한번은 모르고 용납해도 두 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거지. 이해해. 그럴 수 있어.”
“마음도 넓다. 넌 뭐 다 이해한다고 그러냐?”
한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이성우를 향해 웃었다.
“이런 상황이 오래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어떤 방법을 쓰던 1등만 하면 되지. 뭔 상관이야. 안 그래?”
한진영은 마치 술잔을 들어 올리듯이 이성우가 건넸던 종이컵을 치켜든 뒤 단숨에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