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19화 (19/650)

19화 인연은 시작됐다

이제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최석영이 오늘도 앵커 앞에 앉아 있었다.

앵커는 그런 최석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자주 뵈니 이제는 내적 친밀감까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로 이렇게 방송으로 뵌 지 5번째 같은데요. 투자대회를 하시기 전에 이런 상황을 예상하셨습니까?”

자기소개가 필요 없어진 최석영이었다.

앵커도 그것을 알기에 어디 증권사의 누구인지를 묻기보다 그동안의 감상을 물으며 인터뷰의 처음을 열었다.

그리고 그런 예상 못 한 질문에도 최석영은 카메라로 자연스럽게 시선 처리하며 대답했다.

“예상했습니다.”

“예상하셨다고요?”

뜻밖의 대답이어서 그런 것인지 오히려 앵커가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국에 오기 전까지 한진영의 손을 붙잡고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거냐고 몇 번이나 묻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 앉은 지 벌써 다섯 번째인데 우황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심장 뛰는 것을 멈추기 어렵다던 최석영이었다.

그런 그가 카메라에 불이 켜지면 사람이 바뀌었다.

“저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이 독식하는 일이 벌어질지요. 게다가…….”

화면에서 최석영의 수익률이 공개됐다.

“5주차가 마무리된 지금 최석영 과장님의 수익률은 30%를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앞에 2주 차까지 아무런 포지션을 잡지 않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단 3주 만에 3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는 건데 참으로 대단한 실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위권과는 40%가 넘는 수익률 차이를 보여주고 계시는데…… 어떠십니까? 이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 같은가요?”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니라 저는 차이를 더 벌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저는 미래차를 정리한 후 럭키화학을 매수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잘 나가는 미래차를 정리하고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여주는 럭키화학을 매수하신다고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매번 나오실 때마다 이렇게 놀람을 전해주시는군요.”

앵커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유를 듣고 싶군요.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앵커의 입에서 나올만한 질문이 한진영의 옆에서 들려왔다.

한진영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말쑥한 차림의 중년 신사가 서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송사의 초대로 방송이 이루어지는 곳에 찾아온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화면이 아닌 스튜디오 밖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중년 신사가 찾아와 한진영을 향해 말을 건 것이었다.

“아! 제 소개부터 하는 것이 먼저인가요? 반갑습니다. 저는 프라임 리츠의 김영철이라고 합니다.”

“프라임 리츠요?”

한진영은 프라임 리츠라는 이름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김영철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사람이 내민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명함에는 김영철 이름 옆에 사장이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 말씀입니까?”

“네. 한진영 씨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한진영은 김영철의 말에 명함을 앞뒤로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거군요.”

“제가 마련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한진영은 명함에서 다시 스튜디오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최석영이 앵커의 질문을 받아 럭키화학을 매수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김영철 사장님과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은 저기서 럭키화학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이야기를 다 마치고 나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영철은 한진영의 옆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기분이 나쁘신가 보군요.”

“제가 말입니까? 그럴 리가요? 기분 나쁜 것 없습니다. 그저 제가 드릴 대답이 없어 그런 것이니 이해해주십시오.”

“저는 최석영 과장님이 아니라 한진영 씨의 입을 통해서 대답을 듣고 싶었는데…… 오늘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살펴 가십시오.”

한진영은 김영철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김영철은 한진영의 인사를 받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서 있던 김영철은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떴다.

김영철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약 10여 분간의 인터뷰가 더 진행됐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최석영이 다가왔다.

“아이고…… 아이고…….”

화면 밖으로 나오자마자 최석영은 떨리는 다리를 멈춰 세우지 못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두 손으로 붙잡고 나서야 최석영은 겨우 제자리에 설 수 있었다.

“과장님. 시청자들은 화면 밖에서 과장님이 이런 줄 모를 겁니다.”

“그러게…… 난 카메라 불만 꺼지면 왜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반대라서 다행이지요. 카메라 앞에서 이러면 방송이 진행이 안 되니까요.”

최석영은 겨우 진정이 된 다리에서 손을 떼고 한진영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어때? 직접 보니까?”

“괜찮았습니다.”

“그게 끝이야? 뭐 직접 보니 화면에서 보던 것과 다르다느니 뭐 이런 느낌은 없어? 조명과 카메라 그리고 스튜디오까지 직접 본 건 처음일 테니 말이야.”

“글쎄요. 처음은 아니라서요.”

“처음이 아니야?”

최석영은 놀랍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언제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있어?”

“예전에 직접 출연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익숙해요.”

“그래? 어렸을 때 방송국 합창단이라던지 그런 것 해 봤나 보네. 하긴 그러면 익숙하겠지.”

한진영의 말에 예전을 어린 시절로 오해한 최석영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말한 예전은 어렸을 때가 아니라 이곳에 오기 전을 의미했다.

그곳에서 한진영은 종종 방송 출연을 했기에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까 보니까 누가 자네에게 말을 걸던데 누구야? 아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던데…….”

“확실히 과장님은 방송 체질인가 보네요. 그 와중에 저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보신 거예요?”

“그러게 말이야. 나는 카메라가 돌아가면 오히려 더 긴장이 안 되더라니까. 그래서 누군데?”

“이런 사람이라고 하네요.”

한진영은 말을 하며 김영철이 건넨 명함을 최석영에게 보여줬다.

최석영은 명함을 건네받고 이리저리 살폈다.

“프라임 리츠? 리츠면…… 부동산회사 아니야?”

“부동산회사 맞아요. 그리고 프라임 리츠라면 한가락 하는 곳이에요.”

“그래? 자네가 아는 곳이야?”

“알고 있죠. 그것도 잘 알고 있죠.”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김영철이 떠나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내에서 돈 좀 굴린다는 부동산회사로 앞으로 유명해질 곳이에요.”

“앞으로?”

“네. 비록 지금은 운용자금이 수백억이 채 되지 못하지만, 가진 인맥과 노하우 그리고 탁월한 투자처 선정으로 미래에는 독보적인 위치까지 올라갈 게 분명해요. 그렇게 될 거예요.”

“독보적이라고 표현한 것 보니까 생각보다 잘 나가는 곳 같은데?”

“그 이상일 거예요. 정확히는 저도 얼마나 될지 알지 못하지만 조 단위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일 테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될 게 분명한 거죠.”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이 놀란 눈으로 명함에서 눈을 뗐다.

“뭐? 굴리는 자금이 조 단위가 넘어가게 될 거라고?”

“부동산이니까요. 강남에 수천억짜리 빌딩이 즐비한데 그런 거 서너 개만 굴려도 조 단위 넘어가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그렇게 놀라실 필요 없어요.”

“그렇기는 한데……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까 그렇게 떠실 필요 없어요. 지금 프라임 리츠의 위치는 그저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곳 정도가 정확한 표현일 테니까요.”

최석영은 한진영에 대해 잘 알았다.

그가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면 그렇게 될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한진영이 보여준 능력은 한진영의 말에 의심을 하게 만들지 않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여전히 명함을 든 채 말했다.

“아까 보니까 이 사람은 자네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던데 오히려 자네가 모른 척한 거 아냐? 내가 본 게 맞지?”

“그런 것까지 잘 보셨네요.”

“왜 그랬어? 자네가 말한 정도로 큰 가능성을 가진 곳이라면 꽉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 놓치면 아깝잖아.”

최석영은 말을 마치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명함에 쓰여있는 번호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켰다.

“연락해보자. 멀리 가지 않았을 거야. 지금이라도 불러서 다시 이야기 나눠보는 게 좋겠어.”

최석영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려 할 때 한진영이 명함을 낚아챘다.

그리고 명함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기다리세요.”

“어?”

“지금은 아니니 차분히 기다리세요.”

“지금은 아니라니?”

한진영은 따가운 조명으로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솟아난 최석영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손수건을 최석영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얼굴을 봤으니 인연은 시작됐어요. 그러니 그렇게 안달 낼 필요 없어요. 특히 우리가 먼저 다가가면 오히려 상대는 물러나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그가 다시 다가오길 기다리면 돼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다시 온다는 이야기는 그가 다음에 우리를 또 만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그가 왜 이곳에 왔겠어요? 저는 그가 나타난 순간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어요. 그러니 과장님은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요. 오늘처럼 이렇게 방송 앞에서 태연한 모습을 유지한 채요. 저를 믿으시죠?”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안심이 된 건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나. 그래. 알았어. 기다릴게. 자네가 기다리라면 100년이 걸리더라도 기다려야지.”

최석영은 들었던 전화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최석영의 수익률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이미 7주 차에 50% 가까운 수익률을 보여주며 1등 자리를 굳혔다.

10주 차에서는 2위권과 거의 70%에 가까운 차이를 보이며 1등을 확정 지어버렸다.

2위권은 물론이고 최석영을 제외한 전문가라는 벌어진 수익률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히 하위권의 경우에는 마이너스 20%가 넘는 손해를 보여주며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말았다.

상위권 순위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다를 것이 없었다.

플러스권을 겨우 유지한 채 멀어져 가는 최석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진영이 만들어준 최석영의 수익률은 다른 참가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수익률만큼이나 매매 방식도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들어본 적도 없는 종목을 수시로 갈아타거나 여러 종목을 쓸어 담아 하나만 터져라 하는 식의 무대포 방식이 아니었다.

누구나 알만한 대형주 위주의 매매는 한번 잡으면 기본으로 이주일 이상을 들고 가는 스윙 매매로 시청자들도 따라 하기 쉬운 매매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청자가 최석영을 따라 매매하기도 했다.

“최 과장님. 이게 다 뭡니까?”

출근하는 최석영의 품에는 편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이성우가 최석영의 품에 담긴 편지 일부를 받아 들었다.

“그거 감사 편지. 고맙다는 편지야.”

“감사 편지요? 요새도 이렇게 편지지로 편지를 보내나요?”

이성우는 쇼핑백 안에 들어 있는 편지지 하나를 들었다.

편지지 겉면에는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로 ‘감사하는 최석영 과장님께’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봐서 어안이 벙벙하다. 아무래도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 나이가 좀 있어서 그런가? 이메일이 아니라 이렇게 직접 편지를 보내는 것 같아.”

“그런데 한두 사람이 아니네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이 정도면 편지를 보내지 않고 고맙다고 마음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많다는 것 아니에요? 그냥 과장님 추종자들을 모아 투자클럽 같은 것 만드시는 게 돈 더 많이 버시는 길 같아요.”

“이성우. 쓸데없는 소리 할 거야?”

이성우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언제 찾아왔는지 모르는 최준호 지점장이 커다란 눈망울로 이성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지점장님 그게 아니라…….”

“아니건 맞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한 번만 내 귀에 그런 소리 들렸다가는 아주 확!”

최준호는 이성우를 향해 손으로 물어뜯는 모양을 취했다.

이성우는 깜짝 놀라 쇼핑백을 곁에 서 있던 한진영에게 건네고는 후다닥 자리를 떠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