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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0화 (20/650)

20화 둥지를 옮길 생각이 없다

최준호는 점점 멀어지는 이성우의 뒷모습을 보면서 혀를 찼다.

“어휴 저거…… 저 녀석 뒤에 있는 아버지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잘랐을 텐데…… 실적도 개판에 영업 능력도 부족하고…… 어휴 저걸 어따 써먹어.”

최석영은 최준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이성우가 떠난 곳을 쳐다봤다.

“뒤에 있는 아버지요? 성우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인데요?”

최석영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궁금하다는 얼굴로 최준호를 돌아봤다.

이성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준호 지점장은 최석영의 반응을 보고 자기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혔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보고 속으로 웃었다.

아직은 이성우의 아버지가 공개되지 않았을 만한 시기였다.

이성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공개되는 시기는 앞으로도 3년은 흘러야 했다.

그리고 3년 뒤 이성우의 아버지가 공개된 뒤 사람들은 후회했다.

그에게 이런 대단한 배경이 있는 줄 알았으면 이야기라도 한마디 더 나눌 거라는 후회를 한 직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성우의 집안은 대단했다.

기풍철강의 아들.

우리나라의 굴지 철강사의 아들이었던 것이었다.

지점 안에서는 최준호 지점장만이 이성우의 실제 뒷배경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본사에서 특별관리 차원에서 최준호에게 알려준 것으로, 최준호가 아무렇게나 이성우의 뒷배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준호는 이대로 최석영의 관심이 계속 이성우의 아버지로 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관심이 커지면 이성우의 뒷배경이 들통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뒷배경이 공개된다면 그 원인을 제공한 자기도 본사의 처벌을 각오해야 했다.

최준호는 급히 하려던 말을 꺼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진짜 이 정도쯤 되면 강연회 한번 해도 될 것 같은데? 어때?”

최석영은 최준호의 의도대로 계속 이성우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최준호의 말은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말입니까? 말도 안 됩니다.”

최석영은 손사래를 치면서 한진영이 있는 쪽을 흘깃흘깃 쳐다봤다.

최준호는 자기 의도대로 화제가 바뀐 것에 만족하는 미소를 띠며 계속 강연회에 관한 이야기를 이었다.

“아니야. 이 정도면 할 수 있지. 경제지 하단에 광고 띄우고 본사에 이야기해서 본사 홈페이지에도 강연회 일정 내보내면 여기 채우는 건 일도 아닐 거야. 게다가 요새 계속 방송에 나가니까 방송에서도 언급해달라고 대경TV에 이야기하면…… 300석 정도? 그쯤 채우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아. 어디 보자. 우리 객장 의자 싹 치우고 간이의자로 쫙 깔면 300석쯤 나오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찌…….”

최석영은 최준호의 말에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꿈에서나 그릴만 한 일이 눈 앞에 펼쳐진 것만 같은 느낌에 꿈을 꾸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최석영은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일에 다시 한번 손사래를 쳤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대회 1등을 차지한 뒤 그런 이벤트가 있는 것도 좋으니까요.”

계속 손사래를 치는 최석영과 달리 한진영의 입에서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고 말했다.

“역시 생각하고 있었지?”

“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니. 내가 할 수 있을까?”

최준호에게 말을 하려던 최석영은 한진영의 옷자락을 붙잡고 물었다.

최준호는 그런 최석영의 모습을 보고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결국 모든 결정은 한진영의 선택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최준호는 한진영에게 확실히 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불렀다.

“잠깐 내 사무실로 가세나.”

최준호가 앞장 서 사무실로 향했다.

최석영은 최준호의 뒤를 따르며 한진영에게 몇 번이나 그래도 되겠냐고 물었다.

강연회에 나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강연회는 필요했고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최석영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여 최석영을 내세운 것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간 최준호는 문을 닫고 한진영과 최석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혹시 그만둘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

“네?”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상기된 얼굴을 보여주던 최석영은 최준호 지점장의 말에 크게 당황했다.

“그만두다니요? 지점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인기를 얻었으니 혹시 그만두고 독립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여기 우리 셋만 있으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세. 그런 계획 가지고 있어?”

“지점장님. 저희가 어떻게…….”

“우리끼리니까 그러지 말게. 아는 사람끼리 왜 이러나?”

조금 전까지 웃는 모습을 보이던 최준호의 표정이 지금은 굳어 있었다.

최석영도 최준호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님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최석영이었기에 어떤 선택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들으신 게 있으신가 보군요.”

한진영은 최준호의 말에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 자리에 앉았다.

“서서 이야기하지 마시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과장님. 과장님도 앉아요. 과장님도 들어야 할만한 이야기니까요.”

“잠깐만…… 진영 씨. 이게 무슨 소리야?”

“과장님도 곧 아시게 될 겁니다. 그래서, 지점장님.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당황한 표정의 최석영과 달리 한진영은 태연하기만 할 뿐이었다.

최준호 지점장은 그런 한진영과 최석영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의자를 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좋아. 대충 아는 것 같으니 이야기하도록 하겠네.”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이자 조용히 한진영의 오른편에 앉았다.

최준호는 최석영까지 자리에 앉자 입을 열었다.

“나도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네. 인기를 끌면 회사를 나가 독립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거니까. 나도 이해해. 그편이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그런데…… 이런 건 좀 뜻밖이라 나도 당황스럽더군.”

“그래서 강연회 이야기를 꺼내셨군요. 강연회로 저희의 마음을 한번 잡아보시려고요.”

“그래. 솔직히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야. 그렇게라도 자네 마음을 잡고 싶은 생각이 생겼으니까.”

한진영은 탁자 위에 손을 올리고 최준호를 향해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겁니까? 지점장님이 이러신 것을 보면…… 프라임 리츠입니까?”

“프라임 리츠? 방송국에 왔던 그 사람?”

최석영은 몇 주 전에 찾아왔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왜 그 사람 이야기가 이곳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한진영과 최준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후우~”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담배가 피우고 싶었던지 왼손으로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한진영과 최석영은 최준호가 내민 것을 내려다봤다.

최석영은 최준호가 내민 명함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었다.

“프라임 리츠 정병선 회장? 지난번에 봤던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지 않았나? 김 뭐시기였던 것 같은데…….”

“회장이라는 직함을 보니 그 사람의 상사인가 보네요.”

최준호 지점장은 여전히 명함을 내려다보고 있는 최석영과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안 그래도 한번 자네를 봤다고 하더군. 그쪽에서 자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야. 그래서 나에게 꼭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하던데…….”

“걱정 마십시오. 저는 회사를 나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정말인가?”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단호한 말투에 깜짝 놀라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정말 생각이 없어?”

“생각 없습니다.”

한진영은 명함을 내려다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사실 최준호에게 최석영은 큰 의미가 없었다.

앞에 나가 명성을 얻고 인기를 끄는 것은 최석영이었지만, 진짜 일을 진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한진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준호가 보기에 한진영은 진짜배기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장을 바라보는 탁월한 시야부터 위기 대처능력 그리고 사람을 쓰는 용인술까지 무엇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월급이라는 테두리에 가둬놓고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나가게 된다면 돈을 보따리로 안겨줘야 겨우 계약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한진영과 같은 사람이었다.

최준호는 한진영에게 확답을 얻고 싶었던지 재차 물었다.

“정말 나가지 않을 거지?”

“나가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신성증권에서 할 일이 많으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 지점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프라임 리츠에서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래서 그곳에서 자네를 스카우트하지 않겠냔 생각을 했는데…… 자네가 그렇게 이야기해주니까 마음이 놓여. 설마 나중에 다른 소리 하는 건 아니지?”

한진영이 두 번이나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는데도 최준호의 말속에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한진영은 최준호 쪽으로 명함을 밀며 말했다.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길 생각은 없으니 이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소한 지점장님 그늘 아래에서는 다른 데 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안심이 되던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기 그늘 아래라는 말이 신경이 쓰인 최준호는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

투자대회 12주 차가 모두 끝이 났다.

2위권과 차원이 다른 수익률을 보여준 최석영이었다.

게다가 12주 동안 단 한 번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진기록은 방송사는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기에 충분했다.

따라 하기도 쉽고 따라 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소문으로 투자대회를 연장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쇄도하기도 했다.

방송사도 최석영이 흥행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방송사에서는 투자대회 말미부터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해 왔다.

“어떻게 생각해?”

최석영은 방송사의 제안을 한진영에게 알려준 뒤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한진영은 들고 있던 서류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결론은 새롭게 신설된 전문가 상담코너 속의 메인 상담가로 나서 달라는 거네요.”

“그렇지. 그런데…….”

최석영이 혹시 누가 듣는 사람이 없을까 걱정하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방송사에서 또 다른 제안을 해왔어.”

“대충 과장님 표정을 보니까 어떤 제안인지 알겠네요.”

“알겠다고? 난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나와서 방송사 소속으로 들어오는 건 어떠냐고 그랬죠?”

“어? 어떻게 알았어?”

최석영은 깜짝 놀란 얼굴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혹시 진영 씨도 제안받았어?”

“아니요. 방송사에서 저에게 그런 제안을 할 이유는 없죠. 방송사 입장에서 필요한 사람은 과장님이니까요. 그냥 뻔히 예상되는 이야기라 이야기한 겁니다.”

“그래?”

최석영은 한진영의 설명에 납득하고는 다시 은밀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지점장님이 지난번에 걱정했던 이유를 알겠어. 제안이 상당해. 그러니까…….”

“과장님. 저를 설득하시려 하지 마세요. 제가 지점장님과 함께 있을 때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 옮길 생각이 있다면 과장님만 가세요.”

최석영은 아쉬운 듯이 한진영을 쳐다봤다.

제안도 들을 생각이 없다는 한진영의 모습에 서운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돌아보고 피식하고 웃었다.

“아쉽습니까?”

“아쉽지. 생각도 못 한 금액이라니까. 그게 얼마냐면…….”

“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으니까요. 지금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인맥입니다.”

한진영은 몸을 돌려 최석영의 목에 메어 있는 넥타이를 만져줬다.

“지금 만들어 놓아야만 하는 인맥이 있습니다. 그리고 몸값은 나왔을 때가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 더 오르기 마련입니다. 이제 겨우 명성을 얻었다고 몇 푼 안 되는 돈에 흔들리지 마세요.”

한진영은 고쳐진 넥타이를 한번 쳐다보고 최석영의 등을 두드렸다.

“조금 뒤에 더 재미있는 제안을 듣게 될 테니 과장님도 이런 거에 익숙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최석영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투자대회 시상이 이제 막 시작되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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