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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2화 (22/650)

22화 텐 빌리언

최석영은 대경TV에서부터 가지고 온 상패와 상장을 끌어안은 채 종종걸음으로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진영 씨. 진영아. 잠깐만 기다려봐.”

최석영의 부름에 한진영은 앞서 걷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살짝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석영을 향해 말했다.

“왜 그러세요?”

“잠깐만 나랑 이야기 좀 해.”

삼청동에서 식사를 마친 한진영과 최석영은 데려다주겠다는 정병선의 호의를 거절했다.

잠시 둘이 따로 이야기를 나눠보겠다는 말을 전한 후 한식집 문을 나온 한진영과 최석영이었다.

“이야기요?”

“그래. 이야기하러 나온 거잖아.”

“그거야…….”

“그러니까. 빨리. 저기 좋겠다. 저기로 가자.”

얘기가 끝났으니 자리를 일어나기 위한 완곡한 표현이 아니었냐는 말을 하려던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최석영은 이야기를 꼭 나눠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한진영의 손을 잡고 한쪽에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는 카페로 이끌었다.

테이블이라고 네 개 밖에 있지 않은 자그마한 카페에 들어선 최석영은 한진영에게 뭘 먹을 거냐고 묻지도 않은 채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마음대로 주문했다.

그리고 비어있는 탁자로 한진영을 끌고 가 자리에 앉혔다.

“이야기 좀 해.”

한진영은 최석영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세요.”

대충 최석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한진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

그런 한진영과 달리 최석영은 한식집을 나올 때부터 한가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의문을 풀지 못하게는 표정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최석영은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왜 프라임 리츠로 안 가겠다는 거야? 20억 투자를 받는 건 좋다지만, 그래 봐야 진영 씨한테 떨어지는 콩고물은 얼마 안 되잖아. 그에 비해 프라임 리츠는 억대 연봉도 가볍게 줄 것 같았고. 그러니 프라임 리츠로 가는 게 낫지 않았어?”

“뭐, 당장 받을 돈만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대체 왜…… 설마 나하고의 의리 때문에?”

“의리라…… 뭐 그것도 있긴 있죠.”

“그럼 지금이라도 생각을 다시 해봐. 나는 아무래도 좋아. 나는 진영 씨 덕분에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그런 주제에 발목까지 잡긴 싫어.”

“의리 때문만은 아니에요. 프라임 리츠는 부동산 회사예요. 부동산 회사가 주식투자를 한다고 해 봤자 서브 형태의 투자밖에 되지 못하는 그런 곳에 갈 이유가 없죠. 가면 괜히 들러리만 하다 끝이 날지도 모르는데 가서 뭐 해요.”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는데…… 그래도 제안을 확실히 들어보기는 할 필요가 있었잖아. 그리고 서브 형태인 게 어쩌면 더 편할지도 모르고 말이야. 부담감은 덜 할 거 아니야.”

“왜요? 만약 연봉 10억. 이렇게 제안을 받았다면 제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요?”

“연봉 10억까지 불렀겠냐만은…… 그래도…….”

최석영은 아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어준 한진영이다.

그러니 최석영 입장에선 한진영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과장님. 지금이야 그쪽에서 할 제안이 커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리츠 계열로 가지 않는 편이 제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니 더는 관심 두지 마세요.”

“미래?”

“네. 미래요. 제가 꿈꾸는 일은 조금 더 먼 곳에 있으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한진영에게 바짝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혹시 자네 전업투자를 꿈꾸고 있는 거야? 내가 투자대회 하면서 느낀 건데 사실 이 정도쯤 되면 직접 투자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진영 씨, 지금 회사 나와서 전업 개인 투자를 할 생각을 하는 거지?”

“전업투자요?”

“그래. 남의 돈 굴려서 수수료 떨어지는 거 먹는 것보다 이렇게 수익률이 높으면 직접투자를 하는 편이 나은 게 아닐까 싶은데…… 만약 그렇다면 나도 그만두고 우리 집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초기 자금을…….”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에 커피를 들고 오던 점원이 놀랄 정도였다.

최석영은 점원에게 커피를 받아 직접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왜 그래?”

“그냥 웃겨서요.”

“웃긴다고?”

“네.”

한진영은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빨대를 이용해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과장님. 전업투자가 좋아 보이세요?”

“안 좋을 건 뭐야? 자네처럼 12주 연속 아무런 손해 없이 수익률이 100%에 가까운 수준이라면…… 괜찮지 않아? 그편이 돈을 훨씬 더 많이 벌 거 같은데.”

“과장님. 꿈을 크게 가지세요.”

“뭐라고?”

“직접투자로 얼마나 벌 것 같아서 그러세요? 10억? 100억?”

한진영의 말에 기분이 살짝 나빠지는 느낌을 받은 최석영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래. 100억. 100억쯤 벌면 괜찮은 것 아니야? 우리가 100억을 벌려면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하는지 알잖아. 이것저것 성과급으로 그 돈을 채우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그렇다고 회사 다니면서 내 돈 굴리는 건 금지되어 있고…… 이런 상황에서 회사 다니면서 더럽게 남의 돈을 먹느니 나와서 전업투자자를 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잖아. 이렇게 좋은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말이야.”

“과장님. 오래전부터 생각하신 것 같네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기왕 이렇게 된 것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자는 생각으로 툭 터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솔직하게 이야기할게. 나 사실 몇 주 전부터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 그리고 욕심도 났고…… 자네도 그렇지만 나도 이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구른 사람이라서 지금 수익률에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 이해하지?”

“이해합니다.”

“그래서 자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 더럽게 회사에 얽매이지 말고 나와서 우리 돈으로 우리끼리 하는 건 어떠냐고 말이야. 그럼 얻는 수익이 다 우리 주머니로 들어올 테니 얼마나 좋아. 돈은 걱정하지 마.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어떻게든 주변에서 빌리고 집 담보로 대출받고 해서 마련할 테니까. 한 3~4억 정도 들고 하면 충분하지 않겠어?”

한진영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최석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굳게 다문 입과 충혈된 눈 속에서 최석영이 얼마나 고민했는지 잘 알 것만 같았다.

이제 막 커가는 아이들이 있는 10년 차 과장 주머니에서 3~4억의 돈이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한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사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는 것 또한 보통 각오로 결정한 것도 아닐 것이었다.

최석영은 한진영과 함께 일하며 한진영의 진가를 알아봤고 한진영에게 승부수를 걸려 했다.

“이대로 회사 생활하다가는 서울에 변변한 집 하나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우리 일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고민 많이 했어. 솔직히 나 혼자라면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거야. 다 자네가 있어서 꿈이라도 꿀 수 있는 건데…… 진영아. 우리 나가자. 전업으로 맘 편하게 우리가 다 먹자. 어? 너만 도와주면…….”

“과장님. 저는 겨우 10억, 100억을 버는 게 목표가 아닙니다.”

“뭐?”

“제 목표는 텐 빌리언이에요.”

“텐 빌리언? 그래. 그게 100억 아니야?”

“텐 빌리언 달러요.”

“…….”

최석영은 잠시 머리가 멈춘 것인지 한진영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가만히 한진영이 말한 텐 빌리언 달러가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를 계산했다.

“텐 빌리언 달러면…… 1달러가 천이백 원쯤 하니까…… 12조? 지금 12조가 목표라고 말한 거야?”

“네. 대충 연봉으로 그 정도 버는 게 목표입니다.”

“뭐? 연봉으로?”

평생 모은 돈이 텐 빌리언 달러라고 해도 가늠이 안 되는 수준이건만 연봉으로 텐 빌리언 달러를 벌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최석영은 한진영이 자기를 향해 농담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나와서 전업으로 뛰자고 해서 나한테 농담하는 거지?”

“농담 아닙니다. 저는 진지해요. 제 목표는 100억 달러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에요.”

한진영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석영을 보고 미소 지었다.

100억 원까지는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목표였다.

그러나 조 단위도 모자라 12조를 연봉으로 받겠다는 목표는 감도 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게는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은 최석영의 이런 반응을 이해했다.

아무리 목표는 크게 잡는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목표를 잡는다는 것은 농담거리도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느껴지시는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조지 소로스 연봉이 대충 3조에서 4조쯤 된다는 것 아시죠?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제임스 사이먼스도 대충 3조쯤 연봉을 받고요. 폴슨앤컴퍼니의 존 폴슨은 2조쯤 받나요? 지금 3조, 4조씩 받는 그들이 10년 뒤에는 얼마를 벌고 있을까요? 10조까지는 아니지만 5, 6조는 받지 않겠어요? 그리고 또 10년 뒤에는요? 그때는 진짜로 10조를 벌고 있을 게 분명해요.”

“지금 조지 소로스하고 제임스 사이먼스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들은 미국에서 활동하니까 그런 거야.”

“그럼 미국으로 가면 되겠네요. 우리나라에서 힘을 키워 아시아 시장을 먹고 미국으로 가면 되는 겁니다.”

“자네…….”

최석영은 입을 벌렸다.

전업투자자가 되어 100억을 벌겠다는 자기의 꿈은 한진영의 꿈에 비교하면 꿈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최석영을 보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하긴, 요새 워렌버핏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CEO가 연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10년 뒤에 소로스 등이 5, 6조를 받지 못할 수도 있죠. 연봉을 줄이고 배당금을 높이던가 스톡옵션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니까요. 하지만 결국 왼쪽 주머니로 받나, 오른쪽 주머니로 받나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같으니 그들이 버는 돈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배당에 스톡옵션까지…… 자네만의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 거야?”

최석영은 몸을 쭉 빼 한진영의 품에 안길 것처럼 다가가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마주 몸을 내밀었다.

“네. 전업투자자로 혼자 돈을 버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아시잖아요. 하지만 회사를 세워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수수료를 받아먹는 것에는 한계가 없어요. 그리고 망할 걱정도 없고요. 이보다 안전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있는데 뭐 하러 내 돈을 태워 가며 끽해봐야 평생 수백억 버는 게 전부인 일을 하겠습니까? 과장님.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멀리 보세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

“과장님이 땡겨온다는 3억으로 100억을 만들 정도가 된다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어렵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은 내민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기가 빨린 듯한 느낌을 받은 최석영은 쓰러질 듯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

최준호는 최석영이 가지고 온 상패와 상장을 요리조리 살폈다.

“우리 지점에도 이런 날이 오네. 드디어 저 장식장을 쓸 수 있게 돼서 내가 얼마나 기쁜지 몰라. 자 박수.”

한진영은 최준호 지점장이 박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긴 그때는 박수 칠 만한 일이 없었지.’

한진영은 마치 자기가 타오기라도 한 듯이 즐거워하는 최준호를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과거에는 지금쯤 최준호가 꼴찌를 한 직원을 향해 소리를 쳤었다.

그리고 본사로 불려가 갖은 모욕을 당하는 바람에 시흥지점은 한동안 찬 바람이 불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본사에서 자네에게 주는 금일봉이야. 수고했어.”

최준호는 최석영을 향해 봉투를 내밀었다.

최석영은 인사를 하고 봉투를 받은 뒤 조심스럽게 봉투 안을 살폈다.

받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 때문에 봉투 안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최준호 지점장은 그런 최석영을 보고 웃으며 곁에 있는 한진영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자네는 섭섭해하지 않아도 돼. 내가 회사에 이야기했으니까.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은 자네라고 말이야.”

혹시라도 한진영이 섭섭해할까 봐 세심하게 챙긴 최준호였다.

처음부터 투자대회를 지켜본 최준호 입장에서는 어쩌면 이러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최석영보다 한진영의 공로가 더 컸다.

게다가 찝찝한 지난 일 때문에라도 한진영의 마음을 달랠 필요가 있었다.

“혹시 프라임 리츠하고 이야기는 해봤어?”

최준호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쪽에서 어떤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본사에서는 무조건 자네를 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왔으니까 그쪽에서 제안받은 걸 이야기해줘. 그러면 거기에 우리가 맞추도록 할 테니까.”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역시…… 뭐라고 제안받았나? 얼마 주겠대?”

조금 전까지 밝기만 하던 최준호 지점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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