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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3화 (23/650)

23화 큰 건을 가지고 왔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죠. 아무래도 여기서 이야기하기에는 곤란한 이야기들이니까요.”

“얼마나 곤란하기에…….”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말에 더욱 불안해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이끌려 지점장실로 가며 눈가가 촉촉해지기까지 했다.

“진영 씨. 그러지 마. 회사에서 도저히 맞춰줄 수 없는 금액이야? 도대체 얼마를 그쪽에서 꺼냈길래 이래? 아니, 일단 우리 제안도 들어봐. 자네한테만은 지저분하게 80%니 70%니 같은 이야기 없이 그냥 100% 연봉에 플러스로 수수료를 떼어주는 쪽으로 갈 테니까 우리 제안도 좀 들어봐.”

지점장실로 향하며 불안에 떤 최준호 지점장은 본사에서 이야기 나온 것들을 마구 쏟아냈다.

서로 밀고 당기며 하나씩 패를 꺼내 보이는 것 없이 바로 모든 패를 까 보이는 모습이 급한 최준호의 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울상을 짓고 있는 최준호를 지점장실에 밀어 넣고 지점장실 문을 닫아걸었다.

딸깍!

문이 잠기는 소리에 최준호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얼굴을 보고 급히 생각했다.

‘놓치면 안 돼. 이제 이 녀석 덕을 좀 보려고 그러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해. 나중에 이 녀석 덕분에 더 큰 이득을 얻을 게 분명해.’

주식판에서 평생을 구르며 수많은 사람을 봐왔던 최준호였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키워왔던 육감이 한진영을 잡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최준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한진영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 그럼 이렇게 하자. 회사 소속으로는 힘들면 지난번에 말했던 대로 계약직으로 우리 시흥지점과 계약을 맺도록 하자. 그럼 맞춰줄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져. 어때? 그럼 프라임 리츠에서 제안한 것과 비슷한 수준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지점장님. 우선 앉으세요.”

마치 지점장실의 주인이라도 된 것 같은 한진영이었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의자를 빼 앉으며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진짜?”

“네. 진짜입니다. 그리고 나가게 되면 그때 따로 말씀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이번은 아니란 말이지?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 심장 떨리게 하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이길래?”

최준호 지점장인 한진영이 잠근 문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가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최준호를 향해 말했다.

“프라임 리츠에서 자금을 유치할 생각입니다.”

“뭐? 뭐라고?”

최준호는 이야기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한진영을 향해 다시 물었다.

“다시 말해봐. 뭘 한다고?”

“프라임 리츠에서 돈을 끌어올 생각입니다. 이미 그쪽에 제안을 넣었고요.”

“프라임…… 리츠에서?”

“네.”

최준호는 고개를 돌려 잠시 홀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가진 최준호는 다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린 후 말했다.

“프라임 리츠에서 자금을 유치한다고? 얼마나?”

“일단은 20억입니다.”

“20억?”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한진영의 다음 말은 최준호를 더욱 놀라게 했다.

“시작이 20억일 뿐입니다. 프라임 리츠는 투자 다각화를 노리고 있습니다. 신성증권과 관계만 잘 유지한다면 그 이후에도 계속 유치 자금은 늘어날 게 분명합니다. 프라임 리츠의 정병선 회장에게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고요. 주식은 신성증권에서 부동산은 프라임 리츠에서…….”

“그 말은…….”

“여차하면 우리 쪽 리츠 사업부에 대한 도움을 프라임 리츠에서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이건……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최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 주변을 서성였다.

한진영은 앉은 채 최준호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건 지점장님 선에서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니 우선 우리 쪽에서 어쩔 수 있는 것부터 진행하는 것은 어떤가 합니다.”

“우리 쪽에서 진행할 수 있는 거라면…….”

“프라임 리츠의 법인 자금을 우리가 운용할 수 있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건…….”

최준호 지점장은 서성이던 것을 멈추고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본사에서 인정해줄 리가 없어. 법인 자금을 돌리는 부서는 따로 있다고…… 우리 지점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러니 제가 이렇게 지점장님을 찾아온 것 아닙니까?”

“나라고 별수 있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는데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본사에서 프라임 리츠 자금을 넘기라고 하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고…….”

“프라임 리츠에서 꺼낸 조건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제가 프라임 리츠의 자금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 그거 하나만 걸었습니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자네가 새로 찾아오는 고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거구먼. 이렇게 큰 건을 노리고 말이야. 그리고 자네에게 조언을 받은 최 과장도 마찬가지였고…….”

“네. 기존 고객들로 제 슬롯이 다 차버리면 이런 알짜를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먹고 싶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먹게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할 수…….”

“경우의 수는 딱 두 가지입니다. ‘프라임 리츠의 자금을 유치하여 저에게 맡긴다와 프라임 리츠의 자금을 유치하지 않는다’로 말입니다. 그리고 프라임 리츠와 관계를 터놓으면 리츠 사업을 노리고 있는 신성증권에 도움이 된다는 것까지 부록으로 껴 있는 상태고요.”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알면서도 혹시나 해 물어봤던 최준호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20억이라는 돈이 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꼭 먹어야 하는 금액이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개인 입장에서야 엄청나게 큰 금액이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20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금이 계속 유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리츠 시장을 노리는 신성증권 입장에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프라임 리츠라는 회사는 군침이 돌 만한 곳이었다.

이 정도 먹이를 품고 있다면 본사에 이야기를 넣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최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좋아. 이야기를 넣어보지. 그런데…… 안 될 수도 있어. 만약 안 되면 어쩔 생각인가?”

“될 겁니다.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말이네. 만약에…… 안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글쎄요. 그런 일은 벌어지면 안 되지만 정말로 벌어지게 된다면…… 저도 다시 생각해봐야지요.”

“다시 뭘 생각한다는 건가?”

“신성증권에 계속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저도 이만저만 실망하는 게 아닐 것 같아서요.”

최준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한진영은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아 참. 이걸 잊을 뻔했네요. 프라임 리츠는 수수료 0.4%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뭐? 그 말을 왜 이제서야 하는 거야?”

최준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한진영은 최준호가 반길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활짝 웃는 모습에 마주 웃으며 말했다.

“정 회장에게 통상 업계 평균이 0.2%라고 했는데 자기네들은 0.4%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조건은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한다는 조건에서요.”

“그 이야기를 진즉 했어야지. 그럼 고민할 필요 없잖아. 그런 조건이라면 위에서도 무조건 받아들일 거야. 걱정하지 마.”

모든 고민을 날려버릴 만한 해법을 얻어서 그런지 최준호의 표정은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

북적이는 시흥지점의 문을 열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시흥지점이 잘된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이렇게 고객이 많이 찾는 지점은 전국에서 시흥지점이 유일할 것 같군요.”

“저희 시흥지점의 모든 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을 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뒷짐을 진 채 최준호 지점장의 말을 가볍게 반박했다.

그리고 시흥지점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최 지점장님도 조만간 본사에서 얼굴을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상태라면 권역장 자리에 앉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이고 본부장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권역장이라니요. 저는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회를 잡으시겠는데요? 지금 모습만 봐서는 말입니다.”

최준호도 지금의 말에 크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 추세대로라면 1년 혹은 2년 내에 경기권역의 책임자로 자기가 내정될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성적을 뽐낸 투자대회의 성과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최석영을 만나기 위해 투자대회 뒤에도 시흥지점으로 끊임없이 찾아왔다.

대회가 진행되는 12주 동안 한 번도 손실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다섯 배, 열 배의 고수익을 노리는 전문가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끌어가는 전문가를 사람들은 더 신뢰했다.

게다가 수익도 나쁘지 않았다.

하락 장 혹은 큰 범위 내에서의 가두리 장이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100%의 수익은 엄청난 수익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2위권이 보여준 10% 남짓의 수익률을 올리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을 올리는 전문가가 신성증권 시흥지점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식투자를 하려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밀려드는 중이었다.

“계좌를 트더라도 신성증권 시흥지점에 가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WM본부장 입이 찢어지게 좋아하던데…… 그럴만한 것 같습니다. 부러워요. WM본부장 밑에 지점장님과 같은 분께서 계신다는 것이 말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에휴~. 그에 반해 저는 이게 뭔지…… 제 몫으로 떨어지려는 것도 뺏기게 생겨서 이렇게 찾아오는 신세가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본부장님. 뺏기다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상하네요. 제가 이야기 듣기로는 뺏긴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말입니다.”

최준호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이렇게 직접 시흥지점에까지 찾아와 이런 말을 하는 통에 최준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신성증권의 WHOLESALE 본부를 맡은 김정대는 곤란해하는 최준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점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이야기할 시간이라도 있겠습니까?”

문 앞에서 보던 것과 직접 들어와서 느껴지는 열기는 다르게 다가왔다.

후끈거리는 느낌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의 욕망이 그대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최준호는 화제를 돌리는 김정대 본부장의 말에 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이야기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본부장님께서 오셨는데 그게 먼저지요.”

“그래요? 그래도 고객이 먼저 아닙니까? 사장님께서 이런 이야기 들으시면 화내십니다.”

“그게 아니라…… 제 말은 그 뜻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점장님께서 어떤 의미로 이야기하셨는지 말입니다. 그럼 지점장실에 들어가서 나머지 이야기를 나눌까요?”

최준호는 김정대의 말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처음 얼굴을 마주했을 때부터 계속 걸어오는 딴지에 최준호는 곤란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본사 특히 법인과 관련된 업무를 보는 곳에서 곱게 보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수수료율을 감당하겠다는 프라임 리츠의 결정에 본사도 결정을 받아들일 거로 생각했다.

0.2%와 0.4%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만큼이나 홀세일 본부장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린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홀세일 본부장이 직접 시흥지점으로 들를 리가 없었다.

본사로 불러들였다면 불러들였을 인물이 직접 시흥지점으로 들른 것에 최준호는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을 느꼈다.

“어서 진영 씨한테 가서 내 방으로 당장 오라고 해.”

최준호는 곁에 있는 직원에게 한진영을 불러올 것을 지시하고 주인처럼 앞서 나가 지점장실로 들어간 김정대의 뒤를 쫓았다.

“진영 씨.”

한진영은 찾아온 김미진을 보고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알고 있습니다. 지점장님께서 저를 부르셨죠?”

“네. 그런데 지점장님과 함께 오신 분이 누군지 아세요? 지점장님께서 쩔쩔매시는 게 보통 고객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에요.”

김미진은 최준호가 막 들어간 지점장실을 돌아보고 물었다.

한진영도 김미진을 따라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간 지점장실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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