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성우는 5만 원짜리 지폐 여러 장을 내밀어 최석영 아이들의 호감을 샀다.
최석영은 방방 뛰는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저 친구 뭐야? 왜 저렇게 손이 커?”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알아두면 좋다고요.”
“그런데 저거 저렇게 그냥 받아도 될까?”
아내가 좋아하기는 했지만, 가격을 생각해보면 선물로 받기엔 상당히 부담되는 와인이었다.
한진영은 좋으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는 최석영의 등을 두드리며 안으로 이끌었다.
“괜찮습니다. 저 친구한테는 받아도 돼요.”
“저 친구한테는 받아도 된다고?”
“네. 부자예요.”
“어?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최석영은 아이들과 놀아주는 이성우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니라 우리 같은 증권사에서는 모를 수가 없는데…… 진짜야? 진짜 부잣집 아들이야?”
실적을 쌓기 위해 자기 돈을 집어넣는 것을 서슴지 않는 곳이 증권사였다.
보험과 마찬가지로 가족 명의로 계약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집안에 재산이 있는 편이 실적을 쌓는 데 도움이 됐기에 스스로 말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각자 집안의 재력이 드러나고는 했다.
그런데 이성우는 집안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실적을 제대로 쌓지 못해 목숨 줄이 간당간당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어디라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랄만한 곳입니다.”
“진짜? 어딘데?”
최석영은 궁금한 마음에 한진영의 뒤를 따르며 계속 물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직접 들으세요.”
“말해줄 놈이었으면 진작에 이야기했겠지. 그냥 네가 말해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요. 친해져서 직접 들으세요.”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식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최석영의 아내가 열심히 준비한 음식들을 식탁으로 옮기고 있었다.
“저희 애 아빠 많이 도와주셨다면서요?”
“한 팀이니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말이 어울리지가 않지요. 그냥 모두 우리가 함께 잘되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어머. 말씀도 참……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그냥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주 맛있을 것 같네요.”
명절 때나 볼만한 음식들이 식탁에 놓였다.
음식만 보고도 최석영의 아내가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참을 아이들과 놀아주던 이성우도 식탁으로 오자 식사 자리가 시작됐다.
갈비와 전 등을 먹으며 이성우를 은근히 바라보던 최석영은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자리를 이성우 옆으로 옮기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술을 나누던 두 사람의 대화 주제가 한진영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주제의 궁금증을 품고 한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듣기로는 김 본부장한테 영입 제안을 받았다면서?”
최석영이 먼저 말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성우가 말을 받았다.
“그래. 나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 김 본부장이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왜 싫다고 했어?”
“싫다고 한 게 맞아?”
“맞겠죠. 그러니까 우리와 함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좋다고 했다면 진작 떠났겠죠.”
“떠나다니? 어디로?”
“과장님. 생각해보세요. 오늘 같은 주말에 우리하고 함께 있다는 게 그 증거 아니겠어요? 만약 김 본부장의 제안을 받았다면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집을 알아보러 다녔겠죠. 그렇지? 내 말이 맞지?”
최석영과 이성우가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싫다고 했어요.”
“왜?”
“왜?”
두 사람이 모두 같은 마음이었던지 동시에 ‘왜’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한진영은 두 사람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언제부터 그렇게 잘 맞았습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왜 싫다고 한 건데? 김 본부장 라인 잡았으면 바로 본사로 뛰어 올라가는 거 아니야?”
“본사…… 그렇죠. 본사로 갈 수 있었죠.”
“그럼 진영이 너는 본사로 가고 싶지 않아? 하긴. 너처럼 영업 잘하면 지점에서 고객들 끌어모으는 게 오히려 돈 더 잘 벌겠다.”
최석영의 말에 이성우가 맞장구쳤다.
“얘처럼 하면 지점영업도 나쁘지 않죠. 이번에 프라임 리츠 수수료 0.2%를 얘가 먹는다잖아요. 어휴. 그것만으로도 왕복 800이에요. 한 달에 두어 번 매매하면 1,600이 통장에 그대로 꽂히는데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좋은 거죠.”
돈 이야기가 나오자 최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진영이 목표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야.”
“예? 지금 한 달에 성과급으로만 1,600이 찍히는 게 적다는 거예요?”
“너는 좀 가만히 있어 봐. 정신이 없다. 그냥 조용히 이유나 들어보자. 이유가 뭐야?”
한진영은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신성증권 내에서 권력 간에 충돌이 벌어질 겁니다. 뭐 쉽게 말해서 라인 싸움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그 중심에 김정대 본부장이 있고요. 그런데 제가 지금 김정대 본부장 밑에 들어간다면 그 싸움에 휘말릴 수 있는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그런 일이 일어나?”
“본부가 나뉘고 사업부가 통합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누군가는 힘을 잃고 누군가는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겠죠? 그리고 힘을 잃은 사람은 힘을 되찾기 위해 싸움을 걸 것이며, 힘을 얻은 사람은 힘을 지키기 위해 들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을 거예요. 꽤 복잡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럼 본부장급 라인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는 이야기야? 휘유~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을 들으며 목이 탔던지 와인잔을 들어 단숨에 안에 들어있던 와인을 들이켰다.
이성우도 목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타는 목보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게 먼저였다.
이성우는 와인 잔을 든 채 한진영에게 물었다.
“김정대 본부장을 도와 힘을 찾으면…… 공신이 되는 거잖아. 듣기로는 조언도 건넸다면서? 그게 마음에 들어 프라임 리츠 수수료도 너에게 준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진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랬지. 그런데 너는 진짜 모르는 게 없구나. 지점장실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까지 다 알고 있으니 말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럼 김정대 본부장이 힘을 잃는다는 거야? 이번 싸움에서 김정대 본부장이 약자 입장이야?”
“글쎄. 내 조언을 듣고 다른 선택을 했으니 결과도 다르게 나올지 모르겠지. 하지만 어쨌든 싸움이 일어나는 곳에 난 참전할 생각이 없어. 공신? 그까짓 것을 얻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싸움의 결과도 알고 있었다.
이성우의 말대로 힘 싸움에서 지금 김정대는 약자의 처지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의 밑으로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한진영이 노리는 곳은 신성증권의 상층부가 아니었다.
더 큰 꿈을 꾸는 한진영은 굳이 싸움에 휘말려 애꿎은 상처를 입고 싶지 않았다.
한진영은 와인 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한 뒤 이야기의 화제를 바꿨다.
“그것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 지금 좋아 보이는 종목이 뭐가 있어? 네가 유심히 지켜보는 종목 말이야.”
“키야~ 그거 알려주면 안 되는데.”
“뭔데? 생각해 놓은 게 있나 보구먼. 좀 이야기해봐.”
“과장님도 궁금하세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거 비밀인데…….”
한진영과 최석영이 동시에 궁금하다는 말을 건네자 이성우는 조금 전까지 나누던 이야기는 모두 머릿속에서 잊고 말았다.
한진영과 최석영에게 뽐내고 싶은 마음이 다른 생각을 모두 지웠기 때문이다.
“정말 이건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야기나 해봐. 뭐 보고 있었어?”
이성우가 뜸을 들이자 최석영도 궁금했던지 자꾸 이성우를 닦달했다.
한진영은 느긋한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성우는 몇 번이나 헛기침하더니 큰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두리투어요. 아~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두리투어? 그거 괜찮나? 지금 서브프라임 폭락 뒤에 정신 못 차리는 종목 중의 하나잖아. 아직도 바닥에서 헤매고 있던데…….”
최석영의 말에 이성우가 발끈하며 들고 있던 와인잔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이번에 JP모건에서 두리투어 비중 확대 리포트 내놓은 거 보셨어요? 이거 제가 아무런 근거 없이 괜찮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어. 나도 보기는 봤어. 목표가도 올렸던데?”
“맞아요. 4만 7천 원에서 5만 원으로 목표가 올리고 비중 확대로 매수 추천했어요. 이건 가는 종목이라니까요. JP모건이 인증한 종목이에요.”
강력한 이성우의 말에 최석영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이거 서브프라임 터지기 전에 10만 원도 넘겼었잖아. 그동안 너무 빌빌대기는 했어. 다른 종목들에 비하면 말이야.”
“제 말이요. 지금 반 토막도 아니라 1/3 토막 나서 헤매고 있어요. 3만 3천원이 뭐예요? 다른 종목들 회복한 거 생각하면 시장에서 소외돼서 이러는 거지 주목받는 순간 가격 회복은 시간문제나 마찬가지예요.”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 주가 회복이 너무 더디니까.”
자기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 이성우는 단숨에 앞에 놓인 와인잔을 들이키고는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했다.
“IT나 자동차는 이제 한물갔죠. 별 볼 일 없어요. 이제는 소외주를 찾아야 할 때에요.”
“그래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 게임 만든 그 회사 이름이 뭐야? MC? 거기가 20만 원까지 올라갔었는데 그럴만한 회사던가?”
“그러니까요. 애들 장난 같은 게임 만드는 곳이 10배나 올랐다니 볼 장 다 본거지요. 그런 건 작전 걸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분명 여기서 무너져요.”
“그렇지? 네가 생각하기에도 무너질 것 같지?”
“이미 조정 들어갔잖아요. 안 무너지면 제 손에 장을 지져요.”
한진영은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성우의 말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성우를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 네가 생각하기에 MC소프트가 그렇게나 안 좋게 보여?”
“안 좋다뿐이냐? 그거 100% 작전주야.”
“작전주야?”
한진영은 몰랐다는 듯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자 이성우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향해 MC소프트가 얼마나 안 좋은 종목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 봐라. MC소프트가 뭐 하는 회사냐고 지나다니는 사람 붙잡고 한번 물어봐.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 같아? 백 명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할걸? 그것도 게임이나 하는 꼬맹이들이나 알지 평범한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곳이야. 그런데 그런 회사가 시총이 20위에서 30위 사이에서 놀고 있어. 우리나라의 그 수많은 회사 중에서도 탑 30위 안에 올라있다는 거야.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분명 작전 걸렸으니까 그런 거지 정상적인 움직임으로는 그렇게 오르지 못해.”
“그에 반해서 두리투어는 정상적으로 보이고?”
“그래. 두리투어야말로 소외주다. 그거 들어가야 한다.”
이성우는 자기의 분석에 심취한 것인지 엄숙한 표정까지 지으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지금 1500을 넘기면서 끌고 왔던 기존 주도주들이 힘이 빠지며 고개를 숙이고 있어. 지수가 1400대로 후퇴를 했는데 주도주들이 본격적으로 힘이 빠지면 MC소프트 같은 곳은 폭락을 피하지 못할 거야. 그렇게 되면 시세는 기존 주도주들에서 소외주로 넘어가게 되어 있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소외주들 중에서 어떤 놈이 갈지를 골라야 해.”
“분석이…… 그럴듯한데?”
한진영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자 이성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내가 회사에서 계속 분석하고 얻은 것들이야. 너니까 이런 이야기 해주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어. 과장님.”
“어?”
“과장님도 진영이와 친해서 알려드리는 거예요.”
“어? 그래. 고마워.”
얼떨결에 최석영은 고맙다는 말을 하고 한진영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해하며 지금의 기분을 잔뜩 만끽하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한진영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저게 맞는 말이야? 그럴듯하기는 한데…… 다른 사람도 아니라 이성우가 저렇게 큰소리치면서 이야기하니까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의 헛발질을 지켜본 최석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한진영에게 진위를 물어보기 위해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한진영은 웃으며 최석영에게 대답했다.
“아니면 또 어때요? 저렇게 진지하게 분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죠. 저는 큰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일을 시작할 때가 됐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우리가 할 일?”
최석영이 궁금한 얼굴로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슬슬 사람들이 소외주를 찾고 주도주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중요해요. 안 오른 종목은 왜 아직 안 오르는지 궁금해하고, 많이 오른 종목들은 곧 떨어지지 않느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슬슬 강연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 않으세요? 딱 알맞은 시간이 된 것 같아요.”
한진영은 여전히 심취해 있는 이성우와 강연회라는 이야기를 듣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최석영을 번갈아 보며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