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7화 (27/650)

27화 우리가 고객에게 해야 하는 말

최준호와 한진영은 객장을 함께 둘러봤다.

객장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는 고객들이 가득히 앉아 돌아가는 상황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창구 쪽도 마찬가지였다.

대기표를 손에 들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신성증권 시흥지점은 다른 지점들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강연회를 열자는 이야기야? 여기서?”

“네. 여기서 300명 규모로요.”

“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연회를 열어주겠다고 열성이던 최준호가 이제는 오히려 강연회를 열자는 한진영의 제안에 난색을 보였다.

“강연회를 왜 굳이 열려고 해? 지금 봐봐. 강연회 없어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하지 마. 번잡스러워.”

최준호는 손을 저으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객장을 벗어나는데도 사람들 사이를 피해 걸어가야 할 만큼 많은 사람 숫자에 최준호는 강연회를 여는 의미를 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강연회는 꼭 필요합니다.”

“이봐. 진영 씨. 강연회 필요 없어. 안 그래도 우리에게 상담받겠다고 오는 고객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강연회까지 하면서 사람 모을 필요가 있어? 욕심내다가 배 터져 죽으니까 우리는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거로 하자.”

최준호가 욕심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진짜로 강연회를 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강연회를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본사에 이야기하여 지점에서 강연회를 열거라는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신문사와 방송사를 통해 광고도 내야 했다.

물론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다 지점의 주머니에서 지출이 이루어져야 했다.

참가자들에게 소정의 참가비를 받기는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아무나 막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수준일 뿐.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주말에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직원들의 수고로움도 이해해줘야 했다.

금전적으로 보상할 수 없는 피로감을 메워줄 무언가가 있지 않은 한 그들을 불러 주말에 일을 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실적이었다.

고객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여 높은 성과급과 직장에서의 안정감을 찾아야겠다는 목표가 그들을 주말에 회사로 나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러지 않더라도 고객들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최준호는 사무실로 향하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다른 직원들에게는 나에게 했던 말 하지 마. 아마 그 이야기 들으면 진영 씨를 고깝게 볼지도 모르니까.”

“주말에 일 시키려고 했다고 말입니까?”

“그래. 평일에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주말에는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런데 지금 그런 직원들에게 강연회 이야기하면서 주말에 나오라는 이야기를 해봐. 어휴~ 진영 씨 잡아먹겠다고 덤벼들지도 몰라. 그러니까 강연회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알았지?”

최준호는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고 지점장실로 향했다.

최준호와 한진영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던 이성우고 한진영에게로 다가왔다.

“뭐라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거지.”

“그렇지? 그렇게 말씀하셨지? 그럴 줄 알았다.”

이성우는 자기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지금 강연회를 하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아무도 안 좋아해. 봐봐. 지금 창구가 그득그득 차 있는데 굳이 여기서 고객을 더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아무도 없지.”

“글쎄. 그럴까?”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

장이 마감되며 바쁜 하루가 끝이 났다.

창구에 앉아 온종일 고객들의 상담을 해줬던 직원들은 물론이고 전화기를 붙잡고 고객들에게 새로운 투자 권유를 했던 직원들까지 모두 힘겨운 하루를 보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죽겠다.”

“몸이 녹초가 됐어. 이대로 그냥 자고 싶다.”

“나도 그래. 집에 가는 것도 힘들다. 그냥 여기서 이불 펴고 눕고 싶어.”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몸을 늘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자자. 그렇게 누워있으려고만 하지 말고…… 어서 고객 유치 자료 저에게 넘겨주세요. 저도 빨리 정리하고 퇴근해야 하니까요.”

김미진이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서 주세요. 저 잘못하다가는 이대로 야근해야 해요. 그러니까 어서…… 황 대리님. 어서요. 황 대리님. 새로운 고객 유치한 거 주세요.”

황인석이 김미진을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김미진은 그런 황인석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그렇게 볼일 다 보고 주려고 하시는 것 좀 그만하시고요.”

“없어.”

“네?”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온종일 여기 앉아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눴으면서…… 없다고요?”

“그래. 없어. 다들 그냥 상담만 하고 돌아갔어.”

“좋아요. 그럼 상담일지라도 주세요. 그거라도 정리해야 하니까요.”

“여기.”

한진영과의 일로 창구로 자리를 옮긴 황인석이 김미진을 향해 서류철 하나를 넘겼다.

“난 일 끝났다. 이제 퇴근하니까 나 찾지 마.”

“정말 이게 다예요?”

“그게 다야.”

김미진이 황인석의 뒤통수를 보고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다라는 말뿐이었다.

김미진은 온종일 상담한 것치고 너무 적은 양의 상담일지를 쳐다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황 대리님이 회사에서 마음이 떠났나?”

잘리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대차게 당하는 모습을 본 김미진은 황인석이 제 발로 회사를 떠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허술한 상담일지를 내밀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진 씨. 수고해.”

김미진의 손에 또 다른 직원의 상담일지가 올려졌다.

김미진은 새롭게 건네받은 상담일지를 보고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방 대리님. 이게 다예요?”

“어. 그게 다야.”

“방 대리님도 온종일 상담하셨잖아요.”

“상담하면 뭐 해? 다들 그냥 물어보기만 하고 돌아가 버리는걸. 계좌를 튼다던가 아니면 새롭게 어딘가에 투자하려는 사람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어. 그러니 상담일지가 그렇게 얇을 수밖에 없지. 물어보는 것도 대부분 같은 이야기뿐이었고…….”

“어떤 이야기?”

“지점장님.”

방 대리와 김미진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최준호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김미진의 손에 올려진 상담일지를 들어 올려 직접 확인하며 방 대리에게 물었다.

“이야기해봐. 다들 뭘 물어보던가?”

방 대리는 괜히 김미진과 대화를 하는 바람에 지점장에 잡혔다는 생각에 억울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지수 조정이 어디까지 갈 것 같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수 조정 속에서 어떤 종목을 잡아야 하는지 물어보는 게 다음 이야기였고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는데?”

“아무도 모른다고 했지요. 그리고 지금은…… 사야 할 때라고…….”

“그렇지. 우리는 무조건 사라고 해야 해. 알았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기다리라는 말이나 아니면 매도하라는 말은 입에서 절대 나오면 안 돼.”

최준호는 보고 있던 상담일지를 김미진에게 건넨 뒤 계속 이야기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지진이 나더라도 우리는 무조건 사야 한다고 말해야 해. 그게 우리 일이고 우리 직업이야. 알았어?”

“지점장님. 명심하고 있습니다.”

“명심하는 사람 치고 상담일지가 너무 얇아.”

“내일부터는 지점장님의 말씀을 따라 조금 더 강력하게 고객들에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돼. 무조건 고객들이 주식을 매수하게 만들어야 해. 알았어?”

“네.”

최준호는 방 대리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요즘 친구들은 다들 저렇게 나약해서야 원.’

최준호는 옛날 자기가 영업할 때와 달라진 풍경에 혀를 찼다.

IT붐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먼저 매수한 뒤, 사후 통보로 고객에게 매수했다고 연락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다가는 큰일 나지만 그때는 그랬다.

물어보고 매수하다가는 시간이 늦으니 그냥 우선 매수하고 그다음에 고객에게 전화하여 매수했다고 이야기해야만 타이밍을 맞출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고객들은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고객들도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매매를 할 정도로 시장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크라는 이름만 붙으면 상한가 20방은 기본으로 치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과 달리 상하한가 폭이 12% 수준이었기에 상한가가 비교적 쉽게 나오기는 했다.

그래도 회사 이름만으로 주가가 3배, 4배 오른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운 시기였다는 뜻이었다.

보일러 회사가 회사 이름 뒤에 테크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IT회사로 분류되어 30 연상, 40 연상을 치던 시절.

인터넷 검색 어쩌고 하는 회사라는 곳은 상장하자마자 27 연상과 37배의 기록적인 폭등을 보여주던 시절.

그 시절에도 고객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매매를 주저했었다.

그렇지만 그때에도 고객을 유치했고 고객들에게 매수를 권하며 영업을 이어갔었다.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게 뭐가 문제라고…… 혼란스러우니까 고객이지 그럼 날카로운 분석력이 있으면 여기에 왜 오겠어? 자기들이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에이~ 나약해. 하여튼 요즘 친구들은 나약해.”

최준호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무실을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지점장실로 돌아갔다.

***

최석영과 이성우는 울상인 표정으로 한진영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며 한탄했다.

“왜 안 오르지?”

“그러니까요. 왜 안 오르죠?”

“그걸 네가 말하면 어떡해? 오른다며? 이제는 소외주들 타이밍이라며?”

최석영이 자기 말을 따라 하는 이성우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성우는 최석영의 이런 행동에도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손에 쥐고 말했다.

“과장님. 과장님도 제 말에 동조했잖아요. 제 말이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다면서요?”

“그때는…… 자네 말을 들으니까 꼭 그런 거 같아서 그런 거지.”

“그러니까요. 그때는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셨으면 제 탓을 하셔서는 안되죠.”

최석영은 이성우의 말에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아. 어쩌지…….”

“과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별일 벌써 생겼다. 네 말만 듣고 두리투어에 투자했다가 피 보게 생겼어. 그리고 나 따라 투자한 고객들도 원망이 점점 커지고 있고…….”

“과장님. 그래도 MC소프트에 투자했던 것보다는 낫지 않아요? 두리투어야 횡보를 하지만 MC소프트는 10% 가까이 빠졌으니까요. 좋게 좋게 생각하세요.”

“너는…….”

최석영은 능글맞은 이성우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진영아. 어떨 것 같아?”

“뭐가요?”

“뭐긴 뭐야. 두리투어지. 나 지금 그거 들어가 놓고 무지하게 신경 쓰여. 아무래도 잘못 들어간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이야기를 듣던 이성우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과장님. 잘못 들어간 거 아니라니까요.”

“너는 좀 조용히 해. 진영이한테 물어보고 있잖아.”

최석영의 말에 짜증이 묻어 나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이성우의 입이 닫혔다.

한진영은 차분히 그런 최석영과 이성우의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웃었다.

“뭘 그렇게 걱정이 많아요? 적당히 오르겠죠.”

“어? 오른다고?”

“네. 지금은 오르느냐 떨어지느냐를 따질 때가 아니에요. 1700선까지는 열려있는 상황에서 어떤 게 더 많이 오를까를 찾아야 할 시기죠. 괜찮아요. 두리투어도 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덜 올라서 그렇지…….”

“1700까지 열려있다고?”

“지금 1400인데? 1700까지 열려있는 게 맞아?”

두 사람은 동시에 1700까지 열려있다는 한진영의 말에 놀란 듯이 물었다.

1500대에서 밀려 1400대에 들어선 지금의 상황에서 1700까지는 앞으로도 종합주가지수 상으로 20%가량 상승 폭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종합주가지수 20%면 개별종목으로는 잘만 흐름을 타면 100% 상승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호기회가 온다는 말에 최석영과 이성우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진짜야? 진짜 1700까지 열려있어?”

“아닌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시장이 조정 분위기로 가는 게 1200까지는 흘러내릴 것 같던데…… 외국계 증권사 중에 일본 쪽 노무라증권도 그렇게 예상하던데…….”

“얌마. 왜 초를 쳐. 진영이가 그렇게 예상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의심하지 마.”

괜한 소리를 하는 이성우를 향해 최석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과장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건 순수한 성우의 판단이니까 잘못하고 말고를 이야기할 이유가 없어요. 성우야 괜찮아. 앞으로도 그렇게 네 생각을 이야기하면 돼. 알았지?”

따뜻한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감동했는지 촉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너밖에 없다. 나를 알아주는 건 진짜 너 하나뿐이야. 진영아.”

한진영 품에 이성우가 뛰어들었고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등을 토닥이며 생각했다.

‘3년 동안 한 번도 맞추지 못했던 이런 귀한 존재가 품에 들어왔는데 놓칠 수는 없지.’

한진영은 어린아이라도 된 것 같은 이성우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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