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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0화 (30/650)

30화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투자자

회의실 앞에서 서성이던 최석영은 한진영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다급히 다가갔다.

“어떻게 됐어?”

한진영이 회의실에 들어갈 때와 달라 잠깐 사이에 얼굴이 푸석해진 최석영이었다.

한진영은 최석영의 어깨를 감싸고 천천히 자리로 돌아가며 말했다.

“과장님은 바로 준비하시면 됩니다.”

“준비? 바로?”

최석영은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그럼 지점장님께서 허락하신 거야?”

“그럼요. 허락하셨지요.”

“정말?”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과장님은 바로 준비하세요. 피부과 예약해서 피부과도 다니시고 눈썹 문신에 어디 보자…….”

한진영은 최석영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제일 먼저 점 빼는 것부터 시작하시죠. 아무래도 딱지 앉은 뒤에 다 낫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요.”

한진영이 말을 하면 할수록 최석영의 눈은 점점 더 커졌다.

“진짜로…… 강연회를 하는 거야?”

“그럼 가짜로 하겠습니까? 아직 지점장님의 결심이 제대로 서지 못했는데 그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건 저한테 맡기시고 과장님은 과장님이 할 일을 준비하고 계시면 됩니다. 그러다 요이땅하면 바로 진행할 수 있게요.”

“잠깐! 잠깐 저기로 가서 나하고 이야기 좀 해.”

자리로 돌아가려던 한진영의 팔을 최석영이 잡아끌었다.

최석영은 한창 빠르게 움직이는 오전 호가 상황판을 지나 객장의 가장 후미진 곳으로 한진영을 이끌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진짜로 강연회 할 거야?”

“과장님. 지금 몇 번째 물어보시는 거예요? 진짜로 합니다. 그러니 더는 물어보지 마세요.”

한진영은 가만히 최석영을 바라본 뒤 미소 지었다.

“과장님 하기 싫다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 누구보다 강연회에서 잘 하실 거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이야 걱정되겠지만 잘하실 거예요. 저야말로 과장님의 그런 모습을 믿고 하려는 거니까요.”

한진영의 말에도 최석영은 안심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의 팔을 움켜쥔 최석영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뒤 객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지금 객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지만, 저들이 우리의 고객으로 변할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되는 것 같습니까? 10%? 20%? 제가 봤을 때는 1%도 안 됩니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품에 안겨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한진영의 시선은 객장에 고정된 채 최석영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과장님의 실적은 지금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방송의 힘으로 실적이 꽤 올랐겠지만 지금은요? 지금은 그 효과를 보고 계십니까?”

“전보다 늘기는 했지만…… 확연히 느껴지지는 않아.”

“그렇죠? 그런 겁니다. 왜냐하면 아직 고객들도 확신이 없거든요. 과장님에게 그리고 시장에…….”

“그럼 강연회를 하면 사람들이 확신이 생길까?”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확신을 무슨 일이 있어도 만들어야죠. 그러려고 하는 게 강연회니까요.”

“그런데…….”

한진영은 여전히 불안감을 거둬내지 못하는 최석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씀하세요. 뭐가 그렇게 과장님을 불안하게 만드는데요?”

“너무…… 사짜 같지 않아?”

“사짜요?”

“그래. 강연회니, 투자 설명회니 이런 건 대부분 사짜들이 하는 거잖아. 눈먼 돈 끌어들이려고 말이야.”

“아~”

한진영은 그제야 최석영이 왜 불안해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래도 명색이 증권사의 직원인데 사짜들이나 한다는 강연회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최석영을 설득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증권사 직원이 직접 나와 강연회를 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특히 최근에는 강연회 같은 것조차 많이 사라져가는 추세니까요.”

“그래. 예전이야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힘들어 강연회를 따라다녔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 사람들 똑똑해졌어.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까지도 출중하다니까.”

“그렇죠. 그렇게 출중한 사람들은 강연회에 오지 않겠죠.”

“그러니까.”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동조하는 뜻을 보여 최석영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런 동조는 최석영의 불안한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한 일종의 연막이었다.

한진영은 최석영을 더욱 가까이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후 말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강연회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어?”

한진영이 자기의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 안심하던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에 멀뚱멀뚱 눈만 끔벅거렸다.

한진영은 그런 최석영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과장님이 여는 강연회에 일부러 참가비를 내고 찾아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한진영은 다시 최석영의 어깨에 손을 두른 후 객장을 쳐다봤다.

마권을 사서 말이 달리는 것을 쳐다보듯이 사람들은 상황판에 움직이는 시세들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가 산 주식이 오르자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떨어지는 통에 울상을 짓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가지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진영은 말했다.

“우리가 공략할 사람들은 저기 저렇게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의자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

“네. 세상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짓고 실의에 빠진 사람. 자기 판단력을 의심하고 자신이 없는 사람. 매번 실패하는 투자에 어떤 종목을 사야 할지 몰라 하는 사람. 마누라가 알기 전에 어떻게든 원금을 회복하려는 사람. 대학 등록금 납부 날짜 전까지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자식에게 돈을 보내야 하는 사람. 우리가 노려야 할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최석영은 한진영이 하는 말을 들으며 점차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최석영이 가장 두려워하던 말을 한진영이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진영이 너. 그런 사람들의 돈을 빨아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돈을 빨아먹는다고요?”

“그래. 인생의 바닥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를 빨아 먹으려는…… 너 그러면 안 돼.”

“과장님.”

한진영은 당장에라도 폭소를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왜 그들의 피를 빨아먹습니까?”

“지금 하는 말투가…… 꼭 그렇잖아.”

“그럴 리가요. 저는 그렇게 막장은 아닙니다.”

“그럼? 그들을 왜 노려야 한다는 거야?”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려 의자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가죽만 남은 까만 손을 가진 남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그런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의심이 없으니까요.”

“뭐?”

“과장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똑똑하다고요. 의심도 많고 자기가 분석해서 자기가 원하는 곳에 투자하려 하는데 강연회에 오겠냐고요.”

“그치. 내가 그렇게 말했지.”

“우린 그런 사람들을 노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노린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은 의심이 많아서 많은 금액을 맡기지 않지요. 자기가 옳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아는데 다른 사람에게 많은 돈을 맡기겠습니까? 하지만 저런 사람들은 다르죠. 자기의 판단에 확신이 없으니 믿을만한 사람에게 모든 돈을 맡길 겁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믿음을 주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의심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 투자자입니까? 우리는 저런 사람들의 돈을 받아야 해요.”

“그러니까. 네 말은…… 바닥으로 떨어져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자는 말이잖아.”

한진영은 점차 언성이 높아지는 최석영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어떻게 그렇게 이어지죠?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한진영은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다.

최석영은 그런 한진영을 보며 들끓었던 마음이 한진영의 표정과 함께 차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흔들리는 자신과 달리 한진영에게서는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장님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장님의 걱정대로 저들의 뒤통수를 친다면 그건 정말로 사짜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하지만 뒤통수를 치지 않고 저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제공하면 어떻습니까? 그 사람도 사짜가 되는 건가요?”

“네 말은 그럼…….”

“쉽게 주머니가 열리기 때문에 저런 사람들을 우리 고객으로 만들자는 거지 저런 사람들의 뒤통수를 쳐서 돈을 갈취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 바닥에 이제 막 들어와서 겨우 자리를 잡으려는 제가 제 인생을 걸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렇지? 그런 건 아니지?”

“당연하지요. 저는 우리 고객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저런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저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예수이며 부처이고 마호메트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습니까? 과장님. 저들에게 예수이며 부처이고 마호메트가 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의 눈빛에서 욕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김미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의 눈이 김미진에게로 쏠렸다.

김미진은 일 년에 네 번 있는 지금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마치 먹이를 물고 온 어미 새를 바라보듯이 사무실에 있는 모든 직원들이 사랑을 가득 담아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미진은 잠시 서서 사람들을 훑어본 후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과급 지급이 5분 뒤 마무리되니까 모두 계좌 확인하시고 이상 있으신 분들 저에게 오세요. 언제나 그렇듯이 자세한 성과급 내용은 메일로 보냈어요. 꼭 확인하세요. 내일이 지나서 찾아오시면 저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꼭 내일까지 오셔야 해요.”

김미진의 말에 자리에 직원들의 몸이 컴퓨터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모두 메일을 열어 자기의 이번 분기 성과급 내역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 과장님. 과장님 성과급 장난 아니네요. 한턱내셔야겠어요.”

최석영은 기척도 없어 다가온 이성우의 목소리에 다급히 손으로 모니터를 가렸다.

이성우는 그런 최석영의 행동에 웃음을 터트렸다.

“과장님. 그게 손으로 가린다고 가려져요? 그리고 이미 다 봤는데 뭘 그렇게 가리고 그러세요. 500만 원 들어온 게 가릴 정도는 아니잖아요.”

“야. 좀 조용히 해.”

“왜요? 창피해서 그러세요? 에이. 과장님 지금까지 분기 성과급 받은 게 손에 꼽히는데 500만 원이면 그게 어디에요. 창피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자랑할만한 일이지요.”

“야 인마.”

최석영은 이성우의 입을 막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성우는 그런 최석영의 행동을 예상하였던지 급히 몸을 빼고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성과급 500만 원이면 큰돈이죠. 여기 성과급 받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큰 돈이에요. 그러니 뭐라도 좀 쏘세요.”

“야 인마!”

이성우가 돌아다니며 떠든 바람에 이제는 잡아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최석영은 손을 놓고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진영에게 이성우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거 네 동기지? 네가 좀 어떻게 해봐라. 아 저거하고 괜히 친해지는 바람에 피곤하기만 해.”

한진영은 찾아온 최석영을 앉은 자리에서 올려다봤다.

“이번에 500만 원 받으셨어요?”

최석영은 한진영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480 얼마…… 근데 대충 500 근처니까 성우도 500이라고 부르고 다니는 거고 나도 그냥 아무 소리 없는 거고…….”

“아쉽겠습니다.”

이성우의 반응과 다른 한진영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이런 한진영의 반응이 오히려 최석영의 솔직한 심정과 가까웠다.

“너만 알고 있어. 맞아. 아쉬워.”

“그러시겠죠. 들인 노력과 찾아온 고객 숫자 그리고 주변을 비롯한 과장님의 기대 등을 따져봤을 때 500이라는 금액은 아쉬움이 나오는 금액이죠. 저 친구에게는 그렇지 않아 보여도요.”

한진영이 이성우를 향해 턱짓했다.

이성우는 자기를 쫓아오지 않는 최석영으로 인해 재미가 반감된 건지 한진영이 있는 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이제 실컷 과장님 놀렸냐?”

“놀리기는 누가 놀려? 분기 성과급을 500이나 번 게 대단해서 그런 거지. 과장님. 오늘 저녁 내실 거죠?”

“알았어. 낼게. 그러니까 그만 좀 이야기해. 500이라는 소리 때문에 귀에 딱지 앉겠다.”

최석영이 이제 그만 이성우의 입을 막았으면 하는 심정에서 저녁을 사라는 이성우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성우는 최석영이 저녁을 산다는 말에 신난 얼굴로 즐거워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보고 피식 웃었다.

“과장님은 그렇고…… 너는 얼마나 받았는데?”

“나? 나 7만 원.”

“에?”

최석영은 성과급으로 받은 금액이 7만 원이라는 말에 놀란 눈으로 이성우에게 되물었다.

“7만 원 받았어? 우리가 넘겨준 고객도 꽤 됐잖아.”

“넘겨받으면 뭐 해요. 입 아프게 설명만 신나게 했지 결국 펀드 하나 제대로 가입하지 않고 집으로 가버리는데 저라고 뭐 뾰족한 방법 있겠어요. 그래도 만족해요. 이번엔 그래도 성과급을 받기라도 했으니까요. 지난번에는 오히려 실적 채우지 못해서 월급이 80%만 들어와서 석 달 동안 얼마나 우울했는데요.”

이성우는 이번 분기에는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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