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미끼를 문 생각지도 못한 대어
돔 경륜장은 한순간에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바닥에 고정되어 있다고 하여 하늘을 날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 손으로 들 수 있는 것들은 모두가 돔 경륜장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내 돈 내놔!”
“사기꾼 새끼야. 이것도 경기냐?”
“5번 탔던 김 뭐시기인지 그 새끼 내보내! 내가 다시는 자전거 타지 못하게 다리 몽둥이 분질러 버릴 테니까!”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도 서슴없이 나왔다.
사람들은 경기 때보다 더 큰 목소리로 경륜 본부가 위치한 곳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최석영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곱 배야. 일곱 배. 난…… 삼천 오백, 성우는 이억 천, 진영이 넌…… 이억 팔천…… 이거…… 우리 받을 수 있는 거지?”
최석영은 이제는 너무 커져 버린 금액에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걱정했다.
이성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멍한 얼굴로 날아다니는 집기들 사이에 서 있었다.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 우선 자리를 피하죠. 이러다 돈 받기 전에 먼저 물건에 맞아 죽을 것 같으니까요”
생각도 못 한 상황이 벌어져 잠시 정신을 잃고 있던 이성우와 최석영을 데리고 한진영은 밖으로 나갔다.
한진영 일행이 밖으로 나오자 다른 사람들도 뒤를 이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경비원을 비롯하여 돔 경륜장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밖으로 쫓아냈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은 돈을 찾을 만한 상황이 아니니 여기 제가 드리는 돈을 형수님께 먼저 드리세요.”
최석영은 한진영이 건넨 돈을 받아 들고 고마워했다.
성과급을 밀어 넣은 만큼 당장 와이프에게 건네야 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사양하지 않았다.
“그래. 우선 이 돈으로 마누라 눈 좀 속이고…… 내가 이 구매권 돈으로 바꾸면 너한테 단단히 한턱낼게.”
“안 내셔도 되니까 아이들이나 맛있는 거 사주세요.”
“아니야. 이런 거 확실히 해야지 우리 관계가 오래가지. 그리고 역시 진영이 너 믿으니까 생각도 못 한 일에서 오히려 돈을 번다. 우리 평생 함께 가자.”
한진영에 대한 믿음이 더욱 공고해진 최석영이었다.
이제는 주식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일에도 한진영의 말을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이성우 역시 한진영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한걸음 떨어져서 한진영의 권능과도 같은 능력을 지켜봤다면 지금은 바로 그 기적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디서 뭘 들었다지만…….”
당연시되던 1등이 1등을 놓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월드컵은 물론이고 올림픽에서도 기대받던 나라나 선수가 1등을 못하는 일은 드물지 않게 나오고는 하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1등을 놓친 것은 어디까지나 사고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흥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고의적으로 일으킨 사고?’
그게 아니고는 말이 안 됐다.
제아무리 대단한 한진영의 정보망일지라도 갑작스레 발생하는 사고까지 미리 예견할 순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경기 조작도 말이 안 되는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성우의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 갔다.
‘에이씨. 모르겠다. 돈 벌었으면 됐지.’
결국 생각을 포기한 이성우가 긍정 회로를 돌릴 때쯤.
“아. 잠깐만.”
밖으로 둘을 이끌고 나왔던 한진영은 광명 돔 경륜장을 향해 되돌아갔다.
사람들이 빠져나온 경륜장은 어느새 셔터가 내려와 사람들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한진영은 난데없이 사람들의 맨 앞에 서서 조금 전 벌어졌던 사고에 관한 책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이성우와 최석영은 당황했다.
“갑자기 왜 저래? 우린 돈 땄잖아.”
“그러게요.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한진영은 그런 둘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한 사람들과 함께 내려진 셔터를 붙잡고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아! 너희가 사람 새끼냐? 왜 사기를 쳐! 경마라면 이해를 해. 말이 쓰러지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이해라도 할 수 있어. 그런데 멀쩡하던 놈이 마지막 바퀴를 남기고 자전거 위에서 쓰러지는 게 이게 정상이냐? 너희들 사람들 돈 먹으려고 일부러 사기 친 거지! 이 개새끼들아! 내 돈 내놔.”
“옳소! 옳소!”
“쓰러진 새끼 불러와! 그 새끼 데리고 오라고!”
“내 돈 내놔. 이 쌍놈의 새끼들아!”
셔터가 내려와 있지 않았다면 유리문을 부수고 사무실로 쳐들어갔을 것처럼 사람들은 분노에 차 있었다.
“갑자기 웬 돈 타령이야? 우리는 돈을 땄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친구야.”
“데리고 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점점 더 심해지는 게 걱정이 될 정도인데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난감한 상황이었다.
한진영을 데리고 오긴 해야 하는데 그게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사람들의 흥분이 점차 커져 그 속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진영은 그런 사람들의 맨 앞에 서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부셔! 부셔! 다 때려 부숴!”
“여러분. 다시 쳐들어가서 우리 돈을 뺏어 옵시다!”
“맞습니다. 저들이 우리 돈을 갈취해 갔으니까 우리도 들어가서 우리 돈을 가지고 나옵시다!”
사람들은 점점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듯했다.
이렇게 약 20여 분 동안 난동이 계속되자 멀리서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됐다. 가자.”
경찰 사이렌과 더 과격해지면 진압하겠다는 방송이 나오자 한진영은 재빨리 돌아왔다.
이성우와 최석영은 단번에 태도를 바꾼 한진영의 손에 이끌려 광명 돔 경륜장을 빠져나갔다.
“뭐야……? 그냥 가지 왜 이상한 짓 한 거야?”
“이래야 나가리 되지 않아요.”
혹시라도 휘말릴까 싶어 짧은 거리를 뛴 바람에 숨이 찼던 최석영은 허리를 쭉 펴며 다시 물었다.
“뭔 소리야? 나가리가 되지 않는다니?”
“과장님. 생각해보세요.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으면 경륜 공단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 선수가 자빠진 게 노린 건지 아니면 진짜 실수인지 그건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고가 터졌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여차하면 그 경기를 취소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럼…… 이건?”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걱정하여 가슴팍 깊은 곳에 구매권을 집어넣고 있던 최석영은 구매권이 담겨있던 곳을 손으로 감싸고 물었다.
“그래서 제가 더 난리 친 겁니다. 그냥 화가 난 게 아니라 폭도처럼 보이게요. 그래야 경기가 취소되지 않고 우리가 딴 것도 정상적으로 교환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같이할 걸 그랬네.”
“딱 저까지가 좋아요. 과장님까지 오셔서 더 자극했다가 진짜 셔터라도 뜯어지고 사무실로 사람들이 치고 올라갔다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한 폭도가 됐을 테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최석영과 이성우는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지?”
“괜찮을 거예요.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돌아가죠. 시간도 늦었으니까요. 그리고…….”
한진영은 이성우를 돌아봤다.
이성우도 최석영과 마찬가지로 가슴에 품은 구매권이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2억이 넘는 돈이 되어 버린 구매권은 그에게도 큰돈이었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있지? 내기에서 이기는 쪽 부탁 들어준다는 거 말이야.”
“그럼. 기억하지. 말만 해. 내가 뭐든…….”
“그럼 삼덕빌딩 대강당 좀 빌리자.”
“어?”
이성우는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흔들고 다시 물었다.
“뭘 빌리자고?”
“KRX 한국거래소 후문 쪽에 자리 잡은 삼덕빌딩이 너희 아버지 회사 빌딩 아니냐? 거기 대강당 좀 빌리자고.”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눈만 끔벅거렸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 한진영과 이성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
“어이. 경륜장 가서 돈 좀 땄다며?”
최준호가 최석영을 향해 웃으며 손을 들었다.
최석영이 이성우를 한번 째려본 뒤, 어색한 미소를 짓자 최준호가 최석영에게 다가와 가슴을 손등으로 툭 하고 치고는 말을 걸었다.
“짭짤하게 벌었다며? 한턱내야지.”
“네. 그래야죠.”
최준호는 술을 얻어먹기 위해 말을 건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침 인사처럼 가볍게 말을 걸기 위해 지난 경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최석영의 모습이 이상하기만 했다.
최준호는 곁에 있는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저 조금 긴장한 것 같아서 그런 겁니다.”
“긴장? 아~ 오늘부터 대경티비 방송에 나가나?”
“네.
“잘해. 뭐 최 과장이라면 잘하겠지만 그래도 기왕 자리를 잡은 거 잘해서 우리 지점에도 도움이 되라고…… 그리고…….”
최준호는 슬쩍 눈을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눈빛을 받자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 뭐 알아서 한다니까 믿고 맡길게.”
“지점장님께서는 본사에다 말 좀 잘해주세요.”
“그건 이미 이야기 끝냈어. 홈페이지에 배너 광고 2주간 띄워 주기로…… 내가 이거 받아내는 데 얼마나 힘 들었는 줄 알아?”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본사에서도 신경 많이 써준 것 같네요.”
“그뿐이야? 경제지 세 군데에도 하단 광고 실릴 거야. 각각 사흘간 따로따로 실리고 마지막 일주일 남기고부터는 동시에 광고 들어가도록 조치했으니까 그런 줄 알아.”
한진영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최준호를 보고 웃었다.
최준호가 이렇게 자랑할만한 일이기는 했다.
본사 홈페이지와 경제지에 광고를 싣는 것을 확정한 것만으로도 최준호가 할 일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참. 장소는 어디로 잡았어? 난 당연히 여기 우리 지점에서 할 줄 알았는데…….”
“지점에서 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 넓은 곳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넓은 곳? 여기도 꽤 넓어.”
최준호는 객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여기 의자를 깔면 300명까지 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하려면 간이의자를 놓고 앉히는 것도 모자라 뒤에 사람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집중도도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보기가 좋지 않아서요.”
“그렇긴 하지.”
최준호도 걱정하던 것이었다.
억지로 자리를 만들 수 있지만 억지로 만드는 것이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준호는 잠시 걱정이 되는 표정을 하고 물었다.
“그래서 어디서 할 건데? 대관료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그 돈까지 다 광고비로 돌렸어. 그 덕분에 경제지에 그렇게 광고를 오래 실을 수 있게 된 거긴 한데…… 설마 뭐 집 마당에서 하거나 한강에서 하겠다 이런 건 아니지?”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그럼 어디서 하든지 간에 돈이 들 텐데…….”
“돈 안 드는 곳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게 어딘데?”
“아직 확정되지 않아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혹시라도 안 되면 우리 지점에서 할 수도 있으니까 그 점 염두에 두시고요.”
최준호는 한진영을 향해 눈을 갸름하게 떴다.
“하여튼 음흉해.”
“그래도 제가 하는 일에 빈틈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야. 어쨌든 결과는 좋은 쪽으로 대부분 나왔으니까. 알았어. 믿고 기다릴게.”
최준호는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하든지 간에 지금 지점에서 가장 믿음이 가는 것은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고 더 먼 곳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믿고 기다려달라고 하니 최준호로서는 믿고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일주일 안에 어디인지 알려주기는 해야 해. 그래야 광고가 확정돼서 나갈 수 있어. 광고 내보낼 때 장소도 나와야 하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정되면 내일이라도 알려 드릴 테니까요.”
“알았어. 자네만 믿고 기다릴게. 그리고 자네는 배에 힘 좀 줘. 왜 그렇게 떨고 있어?”
최준호는 최석영의 배를 손으로 두드렸다.
최석영은 최준호가 배를 건드리자 배가 아파져 오는 것인지 급히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최준호는 그런 최석영을 보고 한바탕 크게 웃고는 몸을 돌렸다.
한진영은 최준호와 최석영이 자리를 떠났는데도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입에 담배 한 개비를 물 때쯤에 이성우가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질문에 말없이 자기도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주변을 살핀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하냐?”
“중요하지. 나는 숨긴다고 숨겼는데…… 지난번에 만났던 그 정 회장 때문인가?”
이성우는 담배를 깊게 빨아 마시고는 오른쪽 머리를 검지로 두드렸다.
“어디지? 아무리 봐도 내가 너한테 빌미를 제공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뭐 큰일이라고 그러냐? 왜? 남들이 네가 기풍철강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안 돼?”
“알면 불편하지.”
“불편할 것도 많다. 너 어차피 여기서 3년만 지나면 떠날 사람 아니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이성우는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우리 쪽에도 네 정보원이 있는 거냐?”
“있다면 솎아내시려고?”
“당연히 솎아내야지. 스파이가 숨어들었는데 그걸 그냥 어떻게 두고 봐.”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대답이나 해. 자리 만들었어?”
이성우가 한진영의 질문에 잠시 말을 멈추고 담배를 몇 모금이나 빨아 마셨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고 한진영에게 대답했다.
“너 정말 확실하지?”
“뭐가?”
“우리 건물에서 하는 거 말이야. 그거 이상한 거 아니지?”
“참 별 걱정도 다 한다. 왜? 이상한 짓 할까 봐 회장님께서 자리 만들어주지 못하시겠데?”
“아니. 자리는 만들어주시겠대. 대신…… 우리 회장님도 와서 보시겠다고 하시더라.”
“그래?”
한진영은 생각도 못 한 대어가 미끼를 문 것에 오히려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