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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4화 (34/650)

34화 욕심의 크기

한진영과 달리 이성우는 이런 상황이 탐탁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연신 담배를 피워 입에 머금고는 답답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 회장님, 의심병이 많아. 특히 나에게는 의심병이 더 심해. 그런데 내가 부탁하니까 색안경부터 끼고 의심하더라. 뭐 이상한 놈에게 홀린 게 아니냐고…….”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한 거야? 어디까지 했어?”

“그냥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했어. 너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 전부다.”

“그랬더니 와 보시겠다고 하신 거야?”

“그래. 직접 와서 보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라.”

이성우는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다시 머금었다.

“나는 그냥 나를 믿고 자리를 빌려주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어. 그런데 너에게 흥미가 생기신 것 같아. 처음에는 내 말을 믿지 않으셨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따로 알아보신 모양이야.”

“그러셨겠지. 직접 눈으로 본 것만 믿으시는 분일 테니까.”

“그래. 남의 말보다 본인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어쨌든…… 알아보고 내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셨어. 그래서 자리를 내어주기로 하신 거야. 그리고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싶다고 하셨어. 그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진실인지 궁금하신 것 같아.”

“그게 이렇게 한숨 쉬어야 할 일이냐? 땅 꺼지겠다.”

“휴우~”

한진영의 말에도 이성우는 한숨을 내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큰 고민이라도 생긴 것처럼 이성우는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너는 몰라. 굉장히 집요한 분이야. 근데 그 시선이 이제 너한테까지 미쳤다는 게…… 그게 불편하다.”

“왜? 나를 잡아먹기라도 하실까 봐?”

“맞아. 그것도 있고…….”

“나를 이용해서 너도 잡아먹을까 봐 걱정되겠지. 내 말이 맞지?”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네가 정말로 궁금하고, 너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온 게 아니라 나를 끌어내릴 구실을 잡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진영아. 너하고 한 내기 약속을 지키려고 아버지에게 얘기하긴 했는데…… 만약 정말 이상한 일을 벌이려고 한다면 난 여기서 빠질게. 난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야.”

“알아. 네 후계 구도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는 거. 그래서 너도 기풍철강으로 들어가지 않고 일부러 신성증권에 들어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 않을게. 대신에 나 좀 도와주라.”

“널 도와주려고 너희 빌딩에서 한다고 하는 거야. 그래야 네 아버지 귀에도 들어갈 테니까.”

이성우가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는데도 한진영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성우는 이런 한진영의 모습에 조금은 안심했다.

“날 도와주는 거 맞지?”

“너희 삼덕빌딩. KRX 한국거래소 후문에 자리 잡고 있는 덕분에 여기저기서 많은 제안 받았지? 증권사 사옥으로 쓰겠다는 말도 들었을 테고, 무슨 행사만 있다고 하면 그곳에서 하면 안 되냐는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테고…….”

“맞아.”

“그런데도 너희 아버지는 사람 홀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으셨고…….”

“모르는 게 없구나.”

“잘 알지.”

한진영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던졌다.

과거이자 미래였던 곳에서 이미 한번 겪었던 일이었다.

비록 그때는 이성우와 크게 접점을 이루지 못해 한 걸음 떨어져 당시 상황을 지켜봤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동생에게 후계 구도에서 밀려 한직으로 쫓겨난 이성우의 결말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너를 그렇게 만들지 않으마.’

한진영은 이성우가 기풍철강을 손에 넣도록 도와줄 심산이었다.

그래야 이성우가 힘을 가지게 될 테고 그런 이성우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풍철강의 현 회장이자 미래의 명예회장과도 접점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이번 강연회가 너에게는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어. 너희 아버지이자 기풍철강의 회장님이 보시기에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된다면 제안을 넣은 너까지도 함께 회장님의 눈 밖에 나게 될 테니까.”

이성우는 자기가 걱정하던 일을 한진영의 입을 통해서 듣자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마음이 풀릴만한 이야기를 곧바로 이어 건넸다.

“반대로 회장님의 마음에 흡족할 만한 강연회가 펼쳐진다면 어떨까? 너의 후계 구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그렇겠지만……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지.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나를 만난 게 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곧 하게 될 테니까.”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흔들리던 마음이 그대로 멈춰지는 느낌을 받게 됐다.

게다가 경륜장의 기적을 직접 두 눈과 온몸으로 느꼈던 만큼 한진영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말에 그대로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알았어. 그럼 난 너만 믿을게.”

“그래도 괜찮으니까 너는 나만 믿고 회장님 앞에서 더 강하게 나가도 돼.”

“좋아. 네 말을 들으니까 안심이 된다.”

“그럼 나는 한 사람을 더 안심시키러 갈 테니까 볼일 봐라.”

“어? 한 사람 더 안심시킨다고? 누구?”

한진영은 화장실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오늘 주인공이 많이 긴장하는 것 같다. 내가 가서 안정 좀 시켜줘야 할 것 같아. 그럼 간다.”

한진영은 손을 흔들고 먼저 이성우와 있던 자리를 떠났다.

***

최석영의 손에 이끌려 대경티비에 또 쫓아온 한진영은 카메라 밖에서 최석영이 준비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최석영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긴장감 때문에 발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러나 그런 그가 패널 자리에 앉자마자 사람이 돌변해 있었다.

마치 카메라 앞이 자기의 집이라도 된 것처럼 그는 편안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한 원고를 내려다보고 방송을 준비했다.

“내가 굳이 올 필요가 없었네.”

정작 방송에 나가서는 잘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 최석영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이곳에 온 한진영은 최석영을 지켜보기보다는 주변에 더 관심을 뒀다.

최석영에게는 신경을 더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뵙습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한진영의 곁으로 프라임 리츠 정병선 회장의 비서인 김영철이 다가왔다.

“비서님은 회사보다 대경티비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대경티비에 올 때마다 뵙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최 과장님이 방송하는 날이라 혹시나 진영 씨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온 것뿐입니다.”

“저를 만나기 위해 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한진영은 최석영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둬 곁에 나란히 선 김영철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서 있었지만,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앞에서 펼쳐지는 방송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느낌을 전해줬다.

“계약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데…… 혹시 회장님께서 전할 말이라도 있다고 하시던가요?”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김영철이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회장님께서는 진영 씨의 매매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하시고 계십니다.”

“매매 스타일이야 분명 제가 회장님께 미리 말씀드렸고 회장님께서도 알고 계시던 사실인 것 같은데…… 새삼스럽게 마음에 들어 하신다니 조금 의아하네요.”

“말을 하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김영철은 한진영에게 미소를 띠며 계속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하고는 합니다. 그에 반해 진영 씨는 너무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죠.”

“회전율 높이지 않고 차분히 매매하는 스타일을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어 하셨나 봅니다.”

한진영은 프라임 리츠에서 받은 투자금을 본격적으로 매매하고 있었다.

수수료의 일부분을 먹기로 한만큼 보통 사람이라면 못해도 하루에 한 번, 잘하면 하루에 서너 번씩은 돌려 수수료를 빼먹으려 하지 않겠느냐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 번에 800만 원씩 하루에만도 수천만 원의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짧아도 며칠 혹은 길게 가지고 간다면 한 달 이상을 바라보며 계좌를 차분히 굴려 갔다.

프라임 리츠의 정병선 회장은 매번 매매할 때마다 받아보는 체결 내역을 보고 이런 한진영의 매매 스타일에 만족을 하는 것이었다.

“눈앞에 좋은 것이 나타나면 마음속 밑바탕에 숨겨져 있던 욕심도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누구보다 욕심이 많다는 것을 저희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만큼 잘 숨긴다는 것도 저희는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 욕심이 너무 커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회장님께서 하셨는데 진영 씨 입을 통해 들으니 그게 정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김영철에게서 한진영은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이 아무리 큰일을 위해 작은 욕심쯤은 버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수천만 원의 돈을 벌 기회를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초탈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도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는 심정으로 꾹꾹 눌러 참는 것이었다.

그만큼 한진영은 더 큰 것을 꿈꿨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이득쯤은 아무렇지 않게 버렸다.

그리고 한진영이 그렇게 작은 것을 버렸기에 김영철이 나타나 나란히 함께 서 있게 된 것이었다.

“회장님께서 매우 만족해하시며 물으셨습니다. 아직도 프라임 리츠로 올 생각이 없느냐고 말입니다.”

김영철이 말을 마치고 한진영을 은근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치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하는 것과 같은 눈빛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영철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저는 프라임 리츠로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김영철은 한진영의 대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쉽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한진영 씨에게 큰 기대를 하고 계시는데…….”

“꼭 프라임 리츠에 들어가야지만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밖에 나와 있어도 프라임 리츠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긴 한진영 씨가 신성증권에 있기에 김정대 본부장과 만남도 성사된 것이겠지요.”

“그 일도 마음에 드셨다고 하십니까?”

“마음에 들다뿐입니까? 회장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던 고객 공유라는 커다란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첫 번째 사례가 되어 매우 만족해하십니다. 그래서 한진영 씨에 대한 주가도 높이 올라갔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두 분이 어울릴 것 같아 소개해 드렸는데 만족하다니 주선자로서 이보다 좋은 일은 없지요.”

한진영과 김영철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생방송이 시작됐다.

최석영이 맡은 방송은 한 주간의 시황 분석과 앞으로 있을 한 주간의 증시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코너였다.

최석영이 맡고 싶어 하던 고민 상담 코너는 아니었지만, 한 주간의 큰 이슈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 있을 일을 예상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방송도 대경티비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방송 중의 하나였다.

“시청자 여러분.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난 전문가 투자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최석영 과장님과 함께하는 한 주간의 증시분석이 이번 주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청을 부탁드리며…… 최석영 과장님.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하시겠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한 주간의 증시분석을 맡게 된 최석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매주 금요일 저녁 방송을 할 예정이니 따뜻한 관심과 많은 애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석영과 함께 방송을 진행할 아나운서는 준비한 멘트를 시작하며 최석영과 방송을 이어갔다.

“최 과장님은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김영철은 물 흐르듯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최석영을 바라보고 감탄했다.

“화면 밖에서 만날 때는 영락없는 샌님 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저렇게 카메라 불만 들어오면 다른 사람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다 저마다 자기만의 적성이 있다는데 최 과장님의 적성은 방송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화면 안과 밖에 저 정도로 다르다면 그건 재능의 영역 말고는 설명이 안 될 것 같군요.”

한진영은 새삼스럽게 감탄하는 김영철과 주변의 방송 스텝을 차례로 돌아본 후 말했다.

“저는 그런 것보다도 이렇게 생방송이 진행되는데도 이렇게 떠드는 우리를 아무도 저지하지 않는 게 더 신기하네요. 저를 만나러 오는 것 말고도 미리 대경티비에게 언질을 주신 겁니까?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최석영을 보며 즐거워하던 김영철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경티비에 부탁을 했지요. 스튜디오에 뛰어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막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한진영은 가만히 김영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영철은 최석영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최 과장님과 강연회를 하기로 하셨다고요?”

한진영은 김영철의 입에서 강연회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가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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