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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5화 (35/650)

35화 원한다면 줄을 이어와라

강연회와 프라임 리츠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그리고 한진영도 프라임 리츠와 강연회를 엮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프라임 리츠와의 관계는 지금만으로도 충분했다.

여기서 더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프라임 리츠에서 먼저 강연회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한진영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김영철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네. 강연회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본사에까지 보고하여 광고를 준비하는 중이었기에 관심 있게 신성증권 시흥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철의 말이 그저 관심이 있어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은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영철을 향해 물었다.

“강연회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혹시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이리저리 재기보다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한진영이었다.

김영철은 이렇듯 바로 한진영이 물어올 것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잠시 잔기침을 내뱉은 채 제대로 대답을 내뱉지 못했다.

한진영은 가만히 김영철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김영철은 몇 번의 잔기침 이후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프라임 리츠에서는 한진영 씨가 진행하려는 강연회에 관심이 있습니다.”

“관심이 있다고요?”

“네. 관심이…… 그것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프라임 리츠에서 왜 저희 강연회에 관심이 있으신 거죠?”

한진영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관심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프라임 리츠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강연회에 이런 자리에 일부러 나타나면서까지 관심을 가지는 프라임 리츠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철은 한진영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상했다고 하여 막상 직접 물어오니 곤란해하는 듯했다.

김영철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프라임 리츠는 사업의 다각화를 계속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진영 씨가 진행하려는 강연회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고요.”

“사업 다각화? 그건 지난번에도 들었던 말인데요. 그리고 강연회와 사업 다각화가 무슨 상관이라고 사업 다각화를 위해 강연회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하시는 건가요?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김영철은 한진영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한진영의 시선을 피해 최석영이 진행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스렸다.

한진영은 그런 김영철의 모습을 묵묵히 기다렸다.

어차피 닦달한다고 하여 프라임 리츠의 진심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가만히 스스로 이야기하기만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김영철은 마음을 다스렸는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한진영 씨에 관심이 더 높아져 강연회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조금 진부하게 들립니다.”

“그런가요? 좀 한진영 씨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하나 알려드리지요.”

김영철이 대답하기를 기다리며 한진영이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그림이 하나가 있었다.

한진영은 김영철을 향해 그가 떠올린 그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삼덕빌딩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관심이 생겼다고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좋을 것 같나요?”

“네. 그거면 납득이 됩니다.”

“그러면 그 이유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별다른 대꾸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김영철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차라리 이렇게 나오는 프라임 리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괜한 머리싸움을 걸면서 상대의 속내를 알아내기 위해 음흉하게 행동하는 것보다 이처럼 먼저 모든 걸 꺼내놓고 이야기를 하려 하는 모습이 한진영의 성격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기풍철강과 줄을 대고 싶으셔서 그러십니까?”

“기풍철강이 이번에 새롭게 공장을 세운다고 합니다.”

한진영은 김영철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한진영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렇군요. 공장을 세운다.”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김영철을 향해 물었다.

“그럼 제가 얻는 것은 무엇이죠?”

“30억을 더 준비해 놨습니다.”

“50억을 맞춰주겠다 이거군요.”

“50억쯤 돼야 한진영 씨가 갖는 수수료율 0.2%에 더 의미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편도 천만 원은 저도 달콤하게 들리는 이야기지요.”

“달콤한 걸 원하신다면 더 근사한 걸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한진영은 김영철의 어깨를 잡아 매끄러운 말투로 이야기하는 최석영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너무 단것만 찾다가는 당뇨병에 걸릴지도 모르니 적당히 먹으려 합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던진 말이었기에 김영철은 완곡한 한진영의 거절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답하지 않은 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이렇게 부드럽게 거절하는 편이 프라임 리츠에도 더 좋은 일이었다.

“김 비서님은 돌아가서 정 회장님께 말 좀 전해주십시오.”

“뭐라고 말입니까?”

“기풍철강과 줄을 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한 가지 있다고 말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김영철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에게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김영철의 얼굴을 계속 앞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브라질 철광석 회사인 발레입니다.”

“네?”

“발레와 줄을 이어 오시면 그 줄을 받아 제가 기풍철강에까지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뒤에 그 줄을 묶을지 말지는 프라임 리츠의 몫이겠지만요.”

김영철은 한진영의 말에 잠시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김영철의 양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다 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철광석 가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답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김영철은 철광석 가격이라는 말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표정이 환해졌다.

한진영은 고맙다는 뜻의 표정을 짓는 김영철을 향해 고갯짓을 하고는 시선을 최석영에게로 돌렸다.

***

지난 투자대회 이후 몰렸던 고객들이 차츰 줄어들 때쯤 딱 맞춰 최석영의 새로운 방송이 전파를 탔다.

그 덕분인지 시흥지점에는 다시 고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깔끔하고 믿음직한 외모에 매끄러운 말주변이 시청자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 것이 최석영이 인기를 끈 요인이 됐다.

게다가 그의 냉철한 분석에 매료된 사람들이 시흥지점으로 하나둘 몰려든 것이었다.

“역시 방송의 힘이 대단해.”

최준호는 다시 혼잡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객장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실적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최준호는 실적 걱정이 되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댔다.

그리고 그의 눈에 실적이라는 큰 숙제를 풀어줄 사람이 들어오자 재빨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봐. 진영 씨.”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나가던 한진영은 최준호의 부름을 받고 걷던 걸음을 멈췄다.

한진영과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같이 가던 동료들은 이해한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어디 가나?”

“잠시 담배 좀…….”

“미안한데 잠낀 이리 좀 와줘. 나하고 좀 이야기해.”

최준호는 한진영의 손목을 잡고는 자기 사무실로 끌고 들어갔다.

한진영은 최준호가 이리 다급해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에게 오전에야 강연회 장소를 알렸기 때문이다.

사무실 문을 닫은 최준호는 밖에 있는 비서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 것을 지시하고 한진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삼덕빌딩에서 한다고?”

“네. 삼덕빌딩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거기 지하에 대강당이…….”

“알아. 나도 알고 있어. 삼덕빌딩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을 끊어내고 잠시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어떻게 구한 거야?”

“어떻게 구하다뇨? 정식으로 임대요청을 해서 허락받고 구한 건데요?”

“그걸 공짜로?”

“네. 잘 설명했더니 공짜로 빌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누가?”

“기풍철강의 회장님이요.”

최준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한진영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고 물었다.

“자네가 기풍철강 회장님을 알아?”

“아니요. 모르지요. 제가 어떻게 기풍철강 회장님을 알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회장님에게 묻고 회장님께서 그걸 받아들이신 거야?”

“회장님을 모르지만 다른 연줄을 알거든요.”

“다른 연줄?”

“우리 지점에 회장님과 그 어떤 사람보다 친한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는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한진영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얼굴이었다.

최준호는 몸을 천천히 뒤로 물리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었어?”

최준호의 질문 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한진영은 두려워하는 것 같은 최준호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왜 왔는지도 알고?”

“대충은…… 근데 그게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할 일입니까?”

한진영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심하는 최준호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재벌가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대기업의 후계자가 회사에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최준호의 행동이 조금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준호는 말없이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눈빛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성우가…….”

“아니. 됐어.”

최준호는 한진영이 말을 하려던 것을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건 됐고…… 삼덕빌딩에서 한다니 뭐 어쨌든 잘 된 것 같아.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다만…….”

최준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진영을 빤히 바라봤다.

한진영은 최준호의 눈빛에서 경고의 의미를 발견하고는 웃고 있던 표정을 굳혔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도록 해야 해. 삼덕빌딩의 강당을 빌린 것도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빌렸다고 말하고…… 뭐 알만한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시치미를 떼어야 한다는 말이야. 알아듣겠어?”

한진영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최준호의 지금 표정과 말을 통해 지금은 의문을 품기보다 최준호의 지시를 듣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점장님이 말씀한 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자네는 눈치가 빠르고 일머리가 있으니 내가 한 이야기도 잘 알아들었겠지.”

최준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시선을 먼 곳에 두어 심란한 마음을 잠시 정리하려는 듯했다.

한동안의 침묵이 이어진 뒤 최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거고…… 그럼 이제 장소까지 정해졌으니 진행해야지?”

“네. 날짜는 3주 뒤에 하는 것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광고를 내주시고 본사에도 이야기해서 2주 동안 배너를 띄워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만으로 되겠어? 대경티비는?”

“대경티비에도 이야기해놓았습니다. 간단하게 방송 말미에 아나운서가 언급하고 최 과장이 그 말을 받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정도로 말입니다.”

“그거로는 부족할 텐데…… 그렇게 짧게 나온 언급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어.”

“그래서 따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방송에서 조금 재미있는 것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확 끌 만한 것으로 말입니다.”

최준호의 얼굴에서는 한진영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이 피어올랐다.

“그게 뭐냐고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테지?”

“죄송합니다. 아직은 말씀드리기 어려운 일이라…… 확인이 좀 필요해서 말입니다.”

“좋아. 자네가 뭐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더는 묻지 않겠네. 다만 이거 하나만 대답해주게. 확실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가 맞는 건가?”

“우리가 마련한 곳을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장료를 5만 원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입장료를 5만 원이나?”

최준호의 얼굴에서는 당혹감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강연회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사람을 끌어모아야 하는 입장에서 강연회에 참여하는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진영은 입장료를 받겠다는 것은 물론이고 5만 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하려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한진영의 선택이었다.

최준호는 이런 한진영의 선택에서 자신감을 발견했다.

“5만 원이나 받겠다는 것을 보니 그만큼 확실한 거겠지?”

“확실한 겁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게. 그 돈으로 광고비 등을 충당하면 될 테니 잘됐어.”

최준호의 허락을 받은 한진영은 최준호에게 인사를 한 뒤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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