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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7화 (37/650)

37화 하늘이 아니라 한진영이 도왔다

고객의 가는 길까지 배웅한 최준호는 빠른 걸음으로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봐. 진영 씨.”

최준호는 조금 전과 달리 다급한 목소리로 한진영을 불렀다.

한진영은 고객이 나가자 여유로운 자세로 자리에 앉아 자기를 부른 최준호를 바라봤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의 여유에 잠시 멈칫했지만 개의치 않고 한진영을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그…… 방송에서…….”

“사실입니다. 중국발 충격이 올 테니 준비해야 합니다.”

최준호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던지 한진영은 다 식어버린 차를 마시며 먼저 대답했다.

최준호는 한진영의 곁에 다가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다시 물었다.

“중국발 충격이 온다고? 그럼 거래세 인상이 정말이라는 말이야?”

“그건 모릅니다. 아직 루머니까요. 다만 사실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합니까? 사람들은 사실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럼 뭐에 관심이 있는데?”

“루머 그 자체.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감에 신경을 쓸 뿐이지요. 사실이든 아니든 시장에는 충격이 올 테니까요.”

“그러니까 거래세가 인상이 될지 안 될지는 자네도 모른다는 말이지?”

한진영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거래세 인상 건은 루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모두 오픈하여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수준의 정보만 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중국 정부에서 결정하는 일까지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것까지 알면 신이지. 그럼 루머가 정말로 퍼지긴 퍼지는 거지?”

“퍼질 겁니다.”

“정말이지?”

“네.”

“좋아. 그러면 우리 증시에 주는 영향은 얼마나 될 거 같아?”

“단기적인 영향으로 끝날 겁니다. 그래서 임팩트는 더 클 것이고요. 지난 북한 핵실험과 마찬가지로 시장에 잠깐이지만 큰 충격을 줄 겁니다.”

“루머만으로?”

“네. 루머만으로.”

최준호 팔짱을 낀 채 방송에서 최석영이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 봤다.

“하긴 지금은 지수가 작은 이야기에도 크게 반응할 만한 시점이야. 그런데…… 이게 강연회와 연결이 되려면 이번 주에 조정이 무조건 나와야 하는데…… 나올까?”

최준호의 얼굴에는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 시흥지점에서 보인 사람들의 격한 반응으로 보아 조정이 나타난다면 강연회에 사람이 몰릴 것은 불 보듯 뻔해 보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예상대로 조정이 나올 자리가 지금이냐는 것이었다.

최준호는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바라봤고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나옵니다. 루머가 생성됐다는 것은 루머로 한탕 해 먹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루머는 오래 놔둔다고 삭아서 맛이 좋아지는 음식과 같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루머가 생성됐다면 바로 그 루머로 해 먹어야지, 놔둬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해. 아끼다 똥 되는 게 루머니까.”

“반등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급락 뒤에 반등이 오겠지만 멍키마켓의 특징상 루머로 인한 급락은 최소한 두 번은 해 먹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중국 증시는 펀더멘털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아. 뭐 우리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그쪽은 그게 더 심하지. 좋아.”

팔짱을 푼 최준호는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걸터앉아있던 책상에서 일어났다.

“어제부터 아주 난리다. 난리야. 본사는 물론이고 친한 지점장들 그리고 예전에 함께 일했었던 동료들까지 전화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였으니까. 뭐 들은 게 있냐고 그러는데 나도 들은 게 있어야지.”

“정보가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렇지? 기다린 거지?”

사실 한진영이 기다린 건 정보의 확인이 아니었다.

오픈했을 때의 충격을 알기에 그저 미리 공개를 안 했던 것뿐이었다.

미리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는 상황에서 정보의 확인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최준호는 그저 한진영이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확인을 해서 확실하기에 오픈했다고 생각했다.

“자네가 물어오는 정보는 틀리지 않으니 믿겠네. 그리고 믿는다면 확실하게 밀어붙여야지.”

최준호는 김미진을 불렀다.

“과장급 이상 다 내 사무실로 지금 당장 오라고 하세요.”

최준호는 한진영에게 미소를 지은 후 자리를 떠났다.

최준호가 과장급 이상을 사무실에 부른 뒤 시흥지점의 방침은 바뀌었다.

[고객들에게 중국 관련주를 추천하지 말아라]

중국 관련주 매각을 유도하라는 것은 몇몇 직원들의 극심한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떤 루트를 통해서 어떻게 습득한 정보인지 모르는 것에 고객들 주식의 매각 유도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최준호는 그런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대신 새로운 중국 관련주에 대한 추천은 일주일 동안 일절 금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또한, 방송을 보고 찾아온 고객들에게는 모른다는 말보다 아직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우리 시흥지점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는 정도로 이야기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절대 방송과 다른 의견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최준호 지점장의 지시에 이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지점장실을 나왔다.

“아니. 지점장님은 뭘 믿고 그 새파랗게 젊은 놈 말을 믿는 거야?”

“최 과장 앞세워서 저렇게 일을 벌이는데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그래도 어쩌겠어요? 지점장님이 그러라고 하는데 다른 말 할 수 있어요? 까라면 까야죠.”

지점장실을 나온 대부분의 사람은 불만 섞인 표정으로 한진영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

신성증권 시흥지점을 업계에서는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직원이 방송에 나와 혼란을 주는 것을 그냥 방치한 것도 모자라 지점 방침으로 중국 관련주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업계 관계자들은 한심스러운 눈으로 신성증권 시흥지점을 바라봤다.

최준호 지점장과 친한 몇몇 사람들은 최준호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이런 선택을 만류하기도 했다.

지점장이 커리어의 끝이 아니지 않냐며 최준호를 설득했다.

잘만하면 구역장이 될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본사 세일즈 파트장까지 길이 열려있는 상황에서 이상한 짓을 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그러나 최준호는 그런 사람들의 조언에도 꿋꿋이 한진영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주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진영이 보여주는 능력에 이번에도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며칠이 지나도 루머의 이야기는 나올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지수는 월요일부터 이틀 연속 상승했으며, 나온다는 중국 거래세 인상 루머는 나오지 않은 채 조용하게 시간만 흘러갈 뿐이었다.

방송을 본 사람들은 드디어 귀신 같던 최석영의 적중이 드디어 틀리는 날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것까지 맞출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최석영의 실패에 고소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최석영의 말을 듣지 않아 눈뜨고 돈을 벌 기회를 잃은 것을 마치 손해를 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석영의 말과 달리 움직이는 지수를 보며 비난 섞인 말을 인터넷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비난은 내부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가 무슨 신이라도 된 줄 아나?”

“그러게 지점장님은 뭘 믿고 저런 애송이 말을 들으신 거야?”

“이틀 동안 강보합으로 마무리됐는데 온다는 거래세 인상 루머는 언제 온다는 거야?”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한진영은 물론이고 한진영의 이상한 말에 홀린 최준호를 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뒷담화는 한진영이 있는 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한진영과 함께 있던 이성우가 한진영을 대신하여 뒷담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 얼마나 지났다고 저렇게 대놓고 떠들어? 이번 주가 지나려면 아직 5일이나 더 남았는데! 얼굴 쳐다보고는 말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이성우도 지기 싫다는 듯이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까마득한 후배인 이성우의 말에 대놓고 뒷담화를 하던 사람들이 돌아봤다.

이성우는 그런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렇게 쳐다보면 누가 무섭다고 하나? 할 말 있으면 똑바로 얼굴 보고해 봐.”

“저게…….”

선배를 향해서도 거침없이 소리 지르는 이성우의 모습에 오히려 뒷담화를 하던 이들이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성우는 그런 그들을 향해 가슴을 내보이며 불만 있으면 덤비라는 식으로 손짓했다.

한진영은 이런 이성우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성우는 사람들을 내쫓고 씩씩대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넌 화나지도 않냐?”

“뭐가?”

“뭐긴 뭐야? 사람들이 저러는 게 화나지 않냐는 거지. 같은 회사, 같은 지점에서 일하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저게 뭐 하는 짓이야?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라 지점장님이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도 저런다는 게 말이 돼?”

“어느 곳에서나 시기와 질투는 있는 법이니까. 나는 그런 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저 모습도 얼마 가지 못해.”

***

다음 날.

한진영의 말대로 그런 사람들의 조롱 섞인 모습은 하루밖에 가지 못했다.

“중국 상하이 지수가 6%가 넘게 하락한 데다 홍콩 항셍지수는 4%대 그리고 H주 또한 4%대 하락? 지금 지수가 거래세 인상 루머 때문에 빠지는 것 맞지?”

이성우는 중국의 폭락과 그에 따른 코스피의 급락을 보며 자리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개돼지도 살길을 알려주면 고맙다고 인사하기 마련인데 이건 뭐 답을 알려줘도 뒤에서 욕이나 하고 있었으니…… 진영아. 같은 지점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필요 없다. 알려주지 말고 우리만 먹도록 하자. 한 번도 아니라 몇 번이나 답안지를 알려주고 지점장님이 따라 하라고 코치까지 했는데도 이상한 소리나 해대고 있었으니…… 최 과장님. 안 그래요?”

“그래. 대단하다. 대단해. 하늘이 도왔다.”

“하늘이 왜 도와요? 도운 사람은 하늘이 아니라 진영이인데요. 고맙다고 하면 진영이에게 고맙다고 해야죠.”

“맞아. 맞아. 진영아. 고맙다.”

최석영은 한진영을 와락 끌어안았다.

방송에 나온 직후 최석영도 주변에서 많이 시달렸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한진영을 믿는 것과 별개로 주변에서 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에 있던 와이프 또한 괜찮은 것 맞냐고 걱정하는 통에 며칠 동안 밤을 지새웠던 최석영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생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좋은 소식이 날아들어 최석영을 기쁘게 했다.

“진짜 거래세 인상 루머가 퍼지다니. 정말 너는 신통방통하다.”

최석영은 한진영을 끌어안고 얼굴에 입을 맞췄다.

“과장님. 그래도 입맞춤은…….”

“괜찮아. 이정도 감사는 받아줘.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는 사람이 이렇게 수두룩한데 과장님의 이런 감사가 얼마나 진심처럼 느껴지냐?”

이성우는 말을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특히 대놓고 한진영의 뒷담화를 하던 박 차장 등이 있는 곳을 보며 혼잣말을 꺼냈다.

“진영이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분명 누구는 중국 관련주 추천해서 된통 얻어맞고 있었겠지. 지점장님이 지점 방침으로 막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어휴……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아직 버티고 있나 몰라.”

혼잣말이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 크기였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이성우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한진영이 미리 알려주지 않고 최준호가 지점 방침을 세우지 않았다면 이번 급락에 제대로 얻어맞았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수는 -3%가 넘게 빠져 내려오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 중국 관련주로 묶인 종목 같은 경우에는 -10%가 넘는 폭락세를 이어갔다.

몇몇 코스닥 업체의 경우에는 하한가에 돌입했을 정도로 중국발 쇼크는 강력하게 코스피에 영향력을 끼쳤다.

이성우는 마치 자기가 한 일인 것처럼 뿌듯해하며 한진영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곁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최석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과장님. 우시려고 그러세요?”

“아니. 나는…… 진영이도 고생 많았겠지만……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최석영을 보며 이성우는 웃음을 터트리려 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머리를 살짝 때려 웃음이 나오지 못하게 한 후 최석영을 다독였다.

“이해합니다. 마음고생이 심하셨지요?”

“믿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닐까 봐. 걱정했었어. 아니면…… 사람들이…….”

이성우는 고생이라고 해 봤자 며칠이나 되냐며 혼잣말을 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뒤통수를 다시 한번 때린 후 최석영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고생하셨지만 그래도 일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죠?”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방송 말입니다.”

“아~”

최석영은 한진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까.”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날 최석영은 방송에 나와 아나운서의 감탄에 찬 칭찬에 연신 손을 흔들며 겸연쩍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얼굴이 온통 웃음꽃을 보이는 게 싫지 않다는 뜻이 그대로 화면을 통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아나운서는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대단한 최석영 과장님이 강연회를 한다고 합니다. 어디서 하시죠?”

“KRX 한국거래소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삼덕빌딩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삼덕빌딩이요? 거기는 주식 관련 행사는 하지 않기로 유명한 곳인데. 대단합니다. 그럼 행사 날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요.”

“강연회는 다다음주 토요일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강연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미리 방송사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럽게 방송에서 강연회 홍보를 하게 됐다.

그리고 이런 홍보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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