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강연회를 시작하자
다음 날 아침부터 시흥지점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도 전보다 확연히 많아졌다.
최석영 얼굴을 보기 위해 온 사람부터 상담을 받기 위해 온 사람. 그리고 강연회 신청을 하려는 사람까지 시흥지점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진영아. 5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으로 올려도 되겠다.”
최준호는 지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10만 원은 강연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금액이니 5만 원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부담은 무슨 부담? 거기 오는 사람들이 10만 원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아닐 텐데…….”
“그래도 우리가 강연회로 돈을 버는 사짜 전문가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 우리는 다른 더 큰 목표가 있지.”
최준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때 최준호와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직원 하나가 찾아왔다.
“저기 지점장님.”
최준호는 찾아온 직원을 향해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 차장이 여긴 웬일인가?”
“헤헤. 지점장님. 강연회 준비를 하느라 얼마나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까? 그래서 제가 지점장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나에게 무슨 도움을 준다고?”
박 차장은 최준호와 한진영을 향해 실없는 미소를 지은 후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제가 자원하여 강연회 날 봉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준호와 한진영은 가만히 박 차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코웃음을 치며 최준호가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자원하여? 어? 봉사를? 어? 해주시겠다. 뭐 이런 말인가?”
“네. 비록 그날이 토요일이지만 제가 조금이라도 지점에 도움이 되고자 무급으로 나와 일을 할 생각입니다.”
“그것참…… 기특한 생각이군 그래.”
“감사합니다. 그럼…… 그날 제가 나오는 거로 알고 있으면 되나요?”
“아쉽지만 그건 안 되겠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최준호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고도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게다가 자네는 우리가 하려던 일을 비아냥댔던 사람이 아닌가?”
“지점장님. 그게…….”
“나도 귀가 있는 사람이야. 자네가 뭐라고 구시렁거리고 다녔는지 잘 알아. 그런데 자네에게 그 좋은 자리를 주라고? 자네는 양심이란 게 있는 사람인가?”
그동안 최준호도 화가 났던 것을 삭히고 있었던 것인지 박 차장을 향해 비아냥 섞인 말을 던졌다.
박 차장은 최준호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자리를 떠났다.
박 차장과 최준호의 이야기를 조심이 듣던 직원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한진영과 최준호의 뒷담화를 한 사람들은 그 며칠을 참지 못해 입을 놀린 자신을 탓했으며, 어떤 마음을 먹었든 겉으로 표현하지 않은 채 가만히 최준호의 지시를 따랐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연회에 갈 직원들은 걱정하지 마. 별 탈 없는 직원들로 보낼 테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뭐…… 그 정도는 내가 해줘야지. 지점에 사람을 이렇게 끌어모았는데…….”
최준호는 지점에 처음 온 것인지 대기 번호표를 뽑아주는 기계와 상황판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객장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주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최준호는 살가운 표정으로 미래의 고객으로 변할 아주머니를 안내했다.
***
강연회 준비는 모든 게 차질 없이 진행됐다.
광고와 증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배너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방송으로 강연회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제 이번 주 토요일이면 드디어 과장님의 첫 강연회가 시작될 텐데…… 어떠십니까? 많이 긴장되시죠?”
방송국에서도 최석영의 분석 방송이 인기를 끌어서 그런 것인지 강연회에 대한 광고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질문을 받아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긴장 많이 됩니다. 심장이 벌써 두근두근합니다.”
“뭐가 제일 과장님을 긴장하게 만드나요?”
“아무래도 여러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저를 이렇게 흥분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제 시청자 여러분이 제일 궁금해할 것을 물어볼 차례인데요.”
아나운서는 잠시 말을 끊고 화면을 바라봤다.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이 지금의 말을 하기 위해 시간을 끈 것처럼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강연회에 가면 좋은 정보. 아니. 정확히 말씀드려서 돈을 벌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 드릴 생각입니다. 물고기를 직접 낚을 방법을 알려드려야 그게 정말로 여러분께 도움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화면을 바라보던 이성우는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쳐다봤다.
그리고 과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거 나도 알려주면 안 되냐?”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알면 좋지. 돈 버는 방법 알아서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한진영은 이성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돈을 벌 방법이 확실하게 하나 있지.”
이성우는 한진영이 무슨 말을 할까 싶어 눈을 끔벅거렸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에 들린 과자 봉지에 손을 집어넣어 과자를 빼 먹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이자 기풍철강의 회장님에게 잘 보이는 것. 그것만 잘하면 너는 다른 사람은 꿈도 못 꾸는 돈을 벌 수 있다.”
“야!”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에서 과자 봉지를 뺏어 품에 안고 몸을 돌렸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웃었다.
“왜? 어려울 것 같냐?”
“너는…… 우리 아버지 못 봐서 모른다니까. 얼마나…….”
“왜 못한다고 생각하냐? 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하게 만들어주마.”
“네가? 어떻게?”
고개를 돌리고 있던 이성우가 한진영의 말에 흥미가 생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다시 이성우의 손에 들린 과자봉지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잊었냐? 이번 주 토요일 날 강연회를 하고 그 강연회에 네 아버지이자 기풍철강의 회장님이 오신다는 거?”
“알고 있는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무슨 상관? 그날 너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내 인생?”
과거이자 미래인 곳에서 이성우는 기풍철강의 후계 구도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그러나 그때는 한진영을 모를 때였다.
지금 이곳에서는 한진영을 알고 있었고, 한진영이 이성우를 기풍철강의 위로 밀어 올리려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침 그 일의 첫 작업이 강연회에서 벌어질 예정이었다.
“내가 너를 기풍철강의 후계자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지?”
“그랬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냥 나만 따라와. 내가 앉혀줄 테니까.”
따르릉.
한진영의 말이 끝날 무렵 전화기가 울렸다.
한진영은 전화기에 적힌 번호를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성우를 향해 말했다.
“마침 딱 맞춰 전화가 오는구나.”
“무슨 전화인데?”
“네 인생을 바꿔줄 전화.”
한진영은 알 수 없는 말을 건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프라임 리츠의 김영철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질 바레와 협상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톤당 50불에 천만 톤까지 매수할 수 있는 우선협상권을 얻었습니다.
“좋습니다. 그거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피곤함에 젖어 있던 김영철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협상하며 온몸을 젖게 만들었던 피로가 사라진 듯한 목소리였다.
“그럼 강연회 날 보시지요.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 참. 정 회장님하고 김 비서님도 5만 원씩 준비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기로 했거든요.”
-하하하.
수화기를 뚫고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이성우를 향해 한진영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일이 잘 흘러가고 있음을 알렸다.
***
강연회가 열릴 삼덕빌딩 앞에 선 최석영은 몇 차례나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빨리 와요.”
이성우는 그런 최석영을 두고 먼저 삼덕빌딩을 향해 들어갔다.
이제 최석영의 저런 모습에 익숙해진 이성우는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성우는 갑작스럽게 울린 커다란 목소리에 멈칫했다.
“누구…….”
“접니다. 도련님…….”
이성우는 허리를 반으로 접어 인사한 사람의 입을 다급히 막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들을지 모를까 걱정하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오늘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돼요.”
“네? 네. 알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도련님이…… 읍. 읍.”
이성우는 급히 다시 남자의 입을 막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그의 눈으로 한진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여기.”
이성우는 한진영을 부르며 잡고 있던 사람을 놓았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차라리 자기에게 아는 척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문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과장님 봤냐?”
“봤지.”
“역시 너도 놔두고 왔구나. 잘했다. 그 양반하고 발맞추다가는 일도 못 하고 먼저 심장마비로 저세상 갈 것 같아.”
한진영은 조금 전까지 이성우와 함께 있던 사람을 바라봤다.
멀어지는 그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이성우를 살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 걱정되냐?”
“좀 그래. 불편하잖아.”
“하긴…… 하지만 조금 뒤에는 내 옆에 같이 있어야 한다.”
“조금 뒤? 언제?”
“회장님하고 이야기할 때.”
“어?”
한진영은 놀라는 이성우를 뒤로하고 강연회가 열릴 삼덕빌딩의 지하 강당으로 향했다.
“어서 와. 이것 좀 봐라.”
먼저 와 있던 최준호는 넓게 걸린 현수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뿌듯해했다.
“사실 저걸 밖에 걸고 싶었거든. 그런데 삼덕빌딩 측에서 반대해서 할 수 없이 안에다 건 거야.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다.”
최준호는 가슴이 메는지 손으로 쓸어내며 말했다.
“사실 우리 지점에서 이렇게 강연회를 하는 사람이 나올 줄 몰랐어. 뭐 예전에 너도나도 강연회를 할 때는 아무나 한 명 내보내면 됐다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사람들이 영악해졌고 거기에 맞춰 제대로 된 강연자가 아니면 보러 오지 않으니까 꿈도 꾸지 못했지. 그런데…… 공짜 강연회도 아니고 돈을 내는 강연회에 그것도 5만 원이나 받는 강연회에…….”
최준호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한진영의 양어깨를 잡았다.
“진영아. 네가 입사한 지 1년이 안 됐지?”
“네. 아직은 1년이 안 됐지요.”
“보자. 우리 회사가 대리는 3년 차부터 달 수 있나? 걱정하지 마. 너는 3년 차 되자마자 내가 대리 달게 해줄 테니까. 그리고 과장도 내 아래에서는 햇수만 채우면 바로 달게 해줄게. 연차로 묶여 있어서 승진에는 한계가 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모두 해줄 테니까 내 아래에 쭉 있어라.”
한진영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한진영은 최준호 지점장 밑에서 과장직까지 달 생각이 없었다.
과장을 달기 위해서는 7년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그전에 한진영은 더 높은 곳에 가 있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최준호에게 굳이 자기 계획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말없이 미소만 지어 보였다.
강연회 참석 예약은 방송에서 최석영이 강연회를 한다는 이야기 하자마자 다음날 모두 꽉 차고 말았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예약이 다 찼음을 알렸음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내어 달라고 요구했다.
5만 원이 아니라 10만 원, 20만 원이 되더라도 오겠다는 사람들이 널렸으며, 주식 카페 같은 곳에서는 강연회 티켓이 암거래로 거래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최준호 지점장은 삼덕빌딩 측에 준비된 600석 외에 임시 좌석을 200여 석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현장 판매로 입석표 200여 표를 판매할 것을 공지하여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 보답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휴~. 사람 무지 많다.”
이성우는 삼덕빌딩 대강당에 운집해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10월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냐? 방송의 힘이 대단하구나.”
이성우는 무대 장막 뒤편에서 빼곡히 자리를 채운 사람들을 보고 감탄했다.
삼덕빌딩의 대강당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곳을 다 채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빈 좌석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강연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빈 좌석은 고사하고 임시 좌석에 입석으로 뒤편은 물론이고 사이드까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대강당을 이렇게 사람으로 채울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이성우는 고개를 돌려 안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곁에 있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대기실 안 가봐도 될까?”
“왜? 과장님 대기실에서 쓰러지기라도 했을까 봐?”
“혹시 모르잖아. 그 양반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니까.”
“걱정하지 마. 그럴 일 없으니까. 봐라. 저기 온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데다 화장까지 곱게 한 최석영이 한진영과 이성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성우는 놀란 눈으로 최석영을 위아래로 살폈다.
“전문가는 아까 온 그 뷰티 선생님들이 전문가인가보다. 사람이 달라졌어.”
“후우~”
이성우의 말에 크게 한숨을 내쉰 최석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준비가 된 최석영의 모습을 확인하고 마이크를 이성우에게 건넸다.
“시작하자.”
한진영의 말이 끝나자 이성우는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짝짝짝짝.
빈 강단에 이성우가 나타나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로 이성우의 등장을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