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지금을 즐겨라
이성우는 마이크를 잡고 잠시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강연회가 끝난 뒤 준비된 것들을 설명했다.
“강연회가 마무리된 뒤에 강연회에 만족하신다면 바로 대강당 밖에 준비된 저희 신성증권 가입처로 찾아와주시기 바랍니다. 신성증권에 가입하시고 예치금을 내신 뒤 순번을 받으시면 그에 따라 여러분의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상담을 진행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당장 어딘가에 투자하라는 것도 아니며 회원비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신성증권을 이용하셔서 투자하시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저희 직원에게 상담을 받으라는 뜻이니 부담을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모든 직원이 여러분의 어려움을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성우는 차분히 설명을 마친 뒤 장막 뒤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럼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강연회의 주인공인 최석영 과장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대강당을 가득 메웠다.
약 천여 명의 열렬한 환호에 대강당은 떠나갈 듯했다.
“수고했다.”
한진영은 최석영을 소개하고 돌아온 이성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이성우는 잠깐이지만 사람들이 내뿜은 열기에 찌는듯한 더위를 느꼈는지 연신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나 최 과장님이 방송에 나가는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저 양반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소개를 받고 나간 최석영은 사람들 앞에 유창한 말솜씨를 펼쳐 보였다.
“저거 봐. 저거. 분명 최 과장님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오늘 처음이라고 그러지 않았냐?”
이성우의 질문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우는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잘할 수가 있다고? 저건 노력이 아니라 재능의 영역처럼 보인다. 저 양반은 저쪽에 특화된 것 같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저렇게 잘한다는 게 보통 재능으로는 펼칠 수 없지. 게다가 오늘이 처음이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나아지겠냐? 최 과장님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한진영도 최석영이 사람들 앞에서 매끄럽게 이야기하는 것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최석영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강연회를 이끌어갔다.
“자 그럼 우리도 내려가서 보자.”
“그래.”
한진영과 이성우는 무대 뒤편에서 나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뒤편에서 볼 때와 직접 사람들 속에 들어갈 때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줬다.
흡사 록 밴드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사람들은 최석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는 것이 그대로 몸으로 느껴졌다.
“여러분. 지금 자리에 오신 분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오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판단에 확신이 없으신 분, 투자해본 적이 없으신 분, 특별한 무언가를 얻고 싶으신 분,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편안히 앉아 돈만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까지 각기 다른 생각으로 이 자리에 오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모두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돈을 벌겠다. 제 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돈을 벌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최석영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했다.
최석영은 내리쬐는 뜨거운 조명에 외투를 벗고 팔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이곳에 오신 분 중 많은 분은 방송에서 저의 성적이 실제인지 궁금하실 겁니다. 입으로만 매매하는 입매매 인지 궁금하시죠?”
“네. 궁금합니다.”
“보여주세요.”
최석영은 자리에 앉아 있는 천여 명의 사람들을 쓸어봤다.
천 명의 사람들이 보내는 눈빛에도 전혀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리쬐는 조명 아래 밝게 웃었다.
“전문가 투자대회 12연속 1등과 중국 루머를 그 누구보다 먼저 맞춘 저의 실적이 궁금하십니까?”
“네!”
최석영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최석영 뒤에 펼쳐진 커다란 화면에 수익률이 떴다.
“와~~~”
최근 반년간의 수익률 87%.
반년간의 코스피 평균 수익률이 -8%인 것을 생각한다면 플러스에 그것도 90%에 육박한 수익률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게다가 총금액에 관한 수익률이었기에 그 값어치는 남달랐다.
“제가 특별히 요청하여 저의 고객 한 분의 계좌를 가지고 온 겁니다. 어떠십니까?”
사람들은 마른침을 넘겼다.
단타를 치며 수백%, 수천%의 실적을 올리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최석영이 보여준 계좌는 소액으로 돌려 만든 보여주기식 계좌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실제 고객 계좌를 사람들 앞에 직접 깐 것이었다.
“문제는 수익률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저는 말로만 하지 않습니다. 거래 내역과 방송에서 제가 종목을 언급했을 때를 비교한 표입니다.”
방송에서 미래차를 언급했을 때 직접 미래차를 매수했으며 매도 사인을 보냈을 때도 실제로 매도한 거래내역이 쓰여 있었다.
“루머가 떠돌아다니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소액이지만 중국관련주 인버스 ETF에도 들어가도록 고객께 조언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방송에서만 나와 입을 터는 사람이 아닙니다.”
“와~~~”
짝짝짝짝.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와 박수를 치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그들은 그동안의 의심이 모두 해소되었는지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이성우가 한진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거 네 고객 계좌 아니냐?”
“맞아.”
“그치? 너지? 어쩐지 저런 실적을 올리는 게 과장님 실력으로는 불가능하지.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힌다. 나 그냥 일하지 말고 너한테 돈 맡기고 놀까?”
“까불지 마. 일해야지. 왜 놀 생각을 해? 어서 인사할 준비나 해.”
한진영이 말하자 이성우는 옷을 매만지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때 단상 위에 올라가 있던 최석영이 한진영과 이성우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이런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저와 함께 하는 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개하겠습니다. 신성증권이 자랑하는 브레인들인 한진영 씨와 이성우 씨입니다.”
사람들은 일어선 두 사람을 위해 떠나갈 듯이 박수로 호응해줬다.
최석영은 두 사람을 세워놓은 채 두 사람이 있었기에 자기가 이렇게 제대로 된 분석을 할 수 있었다며 한참 동안을 떠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이름을 몇 차례나 불러줬다.
최석영의 호들갑과 같은 소개를 끝내고 자리에 앉자 이성우가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사람 쑥스럽게 과장님은 왜 저렇게 우리를 소개한 거야?”
“내가 그러라고 했어.”
“어?”
“강연회가 끝난 뒤에 이 사람들이 뭘 보고 찾아오겠냐?”
“그럼 조금 뒤에 우리를 찾기 쉽도록 이렇게 오래 세워두고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른 거야?”
“봐라. 느껴지지 않냐? 사람들의 눈빛이…….”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최석영과 한진영 그리고 이성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 팀이라는 설명으로 사람들에게 세 사람은 같은 사람처럼 인식됐다.
누구와 상담을 하든지 간에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한진영과 이성우를 최석영과 같이 생각한 것이었다.
먹이를 찾는 야수처럼 사람들은 한진영과 이성우를 향해 갈망의 눈빛을 보내는 중이었다.
“네가 입사해서 지금까지 얻은 실적의 몇 배를 조금 뒤에 얻게 될 거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찾아올까?”
“강연회는 처음이지?”
“그럼. 처음이지. 언제 이런 데 올 일이 있었나? 아니. 난 최근에 듣기로는 이런 강연회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에 많이 기세가 죽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이야기만 들었어. 그래서 강연회를 열어도 왔던 사람들이 빈손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분위기가 듣던 거 하고는 다르다.”
“다르지. 다르게 만드려고 루머 정보까지 오픈하며 강연회를 진행한 거니까 지금을 즐기도록 해라.”
한진영은 가볍게 이성우의 등을 두드리고 강단에서 계속 이야기를 진행하는 최석영을 올려다봤다.
최석영은 한진영과 이성우를 소개한 뒤 간단하게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다른 직원들도 소개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기에 정보를 공유한다지만 한진영과 이성우를 소개할 때와는 다른 비중으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진영과 이성우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됐고, 욕망의 눈빛을 더욱 둘에게 쏘아 보내게 됐다.
소개가 끝난 뒤 최석영은 강연회를 계속 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지난 증시의 리뷰나 자기의 실력을 자화자찬으로 포장되어 사람들 앞에 늘어놓는 정도였다.
특별한 무언가도 없었으며 증시 전망 또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이성우는 막바지로 진행되는 강연회를 지켜보며 한진영에게 물었다.
“아무 내용이 없잖아.”
“없지.”
“뭐 기법이나 기술 혹은 주목할만한 종목들 같은 건…….”
이성우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최석영이 남은 한 해 동안 눈여겨 볼 종목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최석영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노트에 필기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동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까지 최석영이 집어준 종목을 손에 넣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종목 추천 또한 특별할 것이 없었다.
특히 최석영의 마지막 말에 사람들은 들었던 펜을 놓고 말았다.
“여러분. 지금 기준으로 이 종목들이 추천 종목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내일 갑작스러운 뉴스가 터지게 되면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식은 대응의 영역이라는 것. 이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 그건 바로 전문가인 저희에게 맡겨 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앉아 있는 이성우를 향해 손짓했다.
“일어나. 준비하자.”
“어? 아! 알았어.”
이성우는 한진영이 무얼 말하는지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강당을 빠져나갔다.
이성우는 아직도 열기가 후끈후끈한 대강당을 뒤돌아보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정말 아무 내용도 없네. 5만 원을 받은 것 자체가 미안한 심정이야.”
딱!
이성우는 누군가가 자기의 머리를 내려친 것을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누가…….”
“나다.”
최준호가 이성우의 머리를 내려친 종이 뭉치를 들고 다시 한번 머리를 내려칠 것처럼 들어 올리고 눈을 부라렸다.
“5만 원 받은 게 미안해? 저 사람들은 50만 원을 내더라도 안 아까워할 거야. 강연회 내용이 아무것도 없어? 내용이 있으면 우리가 뭐로 밥을 벌어 먹고살겠냐? 이건…….”
한심한 듯이 이성우를 쳐다보고 밖에 나와 있는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자. 준비해. 무조건 예치한 순서대로 고객을 받는다는 것 말하고 어떻게든 돈을 집어넣게 만들어. 미진 씨. 옆에서 잘 설명해야 해.”
“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준비 마친 상태예요.”
사람들에게 나눠줄 서류와 순서표 등을 들고 김미진을 비롯한 지원팀이 곁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에서 강연회가 끝났는지 대강당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사람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대강당에서 나오자마자 준비된 탁자와 의자 그리고 여러 가지 선간판들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달려 나왔다.
비록 이성우의 말처럼 강연회 내용은 알멩이가 쏙 빠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 찾아온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이들 눈에 최석영은 돈을 벌게 해줄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다 보니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남들보다 빨리 신성증권 계좌를 만들기 위해 서로를 밀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오늘은 상담은 하지 않습니다. 예약한 날짜에 오시면 자세한 상담을 받을 수 있으니 오늘은 순번만 받도록 하세요.”
“순번의 우선순위는 입금 순서입니다. 여기 계좌번호와 확인표 그리고 가입서 등이 있으니 원하시는 직원에게 가입서를 들고 가 입금 확인을 받고 순번을 배정받으세요.”
“오늘은 상담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런 것이니 양해해 주세요.”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렸는데도 시흥지점의 직원들은 당황한 기색 없이 사람들을 통제했다.
서로 서류를 가지고 가기 위해 혼잡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마다 최준호 등이 나서 사람들 줄을 세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았다.
그리고 대기표를 받아 순서에 맞게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직원들은 입금 확인과 순번 그리고 예약시간 등을 잡으며 고객을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고객님. 입금하신 분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5천. 그럼 우선 5천을 넣도록 할 테니 어서 시간이나 잡아줘요.”
“그럼 화요일 오후 4시 어떠세요?”
“좋아요. 그럼 그때 오면 한진영 씨와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거죠?”
“맞습니다.”
최석영 주위로 가장 고객들이 많이 몰렸지만, 한진영과 이성우 주변으로도 그에 못지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최석영과 한진영 그리고 이성우가 한팀이라는 이야기가 제대로 먹혀든 것이었다.
그리고 셋에 모자라기는 했지만 다른 직원들 앞에도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사짜 전문가들이 회원 비를 받는 것이 아닌, 증권사에 가입하여 예치금을 넣는 것에 안전함을 느꼈는지 수천만 원의 돈을 집어넣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많이 넣으면 넣을수록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예치하고 있었다.
“다다음 주까지는 가득 찼습니다. 이번 달 마지막 주 월요일은 어떠십니까?”
“거기라도 넣어주세요.”
이미 한 달 치 상담 시간이 모두 예약이 되어 버린 최석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모든 날짜가 가득 찼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음 고객님부터는 옆에 있는 직원에게 상담 시간을 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흥지점의 직원들은 모두 정보를 공유하게 될 테니 저를 믿고 다른 직원과 계약을 진행하시도록 하십시오.”
최석영의 말에 사람들은 군소리 없이 다른 직원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석영에게 한 달이 넘은 뒤에 상담을 받느니 차라리 다른 직원에게 다음 주에 상담을 받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최준호는 김미진 곁에서 늘어나는 예치금 액수에 입이 찢어지라 즐거워했다.
“……100억?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숫자냐?”
“지점장님 축하드려요.”
“축하로 끝날 일이 아니야. 최석영, 한진영, 이성우 셋만으로 50억을 훌쩍 넘겼어. 나머지도 50억을 넘겼고…… 단 하루 만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최준호의 눈가에는 눈물이 비치는 듯했다.
기대하기는 했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예치금 숫자에 최준호는 감격에 겨운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