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5화 (45/650)

45화 전국 1등에 맞는 계약

회의실로 가는 직원들은 한진영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들에게 있어 한진영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시기와 질투의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진영도 이런 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귀찮아지게 생겼어.’

한진영은 자기에게 시선을 쏘아대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생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이런 식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있을 이득까지 이들이 알게 된다면 분명 사람들의 시기는 더 심해질 게 분명했다.

한진영은 귀찮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한 가지 거짓된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려 했다.

한진영은 어깨를 나란히 걷는 이성우를 향해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회사 바뀐 규정 이거 말이야. 나한테 제일 불리하게 바뀐 거 아니냐? 내가 이대로 참아야 하는 게 맞냐?”

이성우는 내내 가만히 있다가 회의실로 가는 길에 화를 내는 한진영의 모습에 당황했다.

“너 왜 그래?”

“왜 그러긴 화가 나니까 그러지.”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좀 그래. 화 좀 참아.”

이성우는 한진영이 소리 지르는 것이 다른 직원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한진영은 속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한진영이 화를 내는 이유를 알 리 없는 이성우는 한진영의 행동에 당황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런 이성우의 반응 덕분에 한진영의 행동이 더욱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퍼졌다.

사람들은 회의실로 가는 내내 한진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성우가 한진영의 팔을 잡아채어 한쪽으로 이끌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지자 이성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그러지 마.”

“왜 사람들 앞에서 그러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 욕해.”

“욕한다고? 누가?”

한진영은 큰소리를 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보란 듯이 소리쳤다.

“고객들을 물어다 준 사람이 누군데 나한테 욕해? 내가 강연회 잡지 않았으면 그 많은 고객이 어디서 찾아왔겠어? 최 과장님을 방송에 내보내서 얼굴마담을 시키지 않았으면 시흥지점이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겠어? 아마 여기 있는 직원 중에 절반 이상은 최근에 다 내가 만들어준 고객일 텐데 누가 누구한테 욕을 해.”

한진영은 자기에게 모인 시선을 둘러본 후 이성우에게 말했다.

“내가 제일 손해 본 사람이야. 너도 그랬잖아. 내가 제일 손해 봤다고…….”

“어? 어…… 그렇긴 한데…….”

“난 이번 분기 성과급 손해만 3천이야 3천. 다른 사람들 몇십 손해 봤다고 할 때 난 3천을 손해 봤다고…… 그런데 이 정도 화도 못 내?”

조금 전까지 한진영이 화를 내던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직원들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왜 화를 내는지 알게 됐다.

한진영의 말대로 회사 규정이 바뀌며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이 한진영이 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사람들의 바뀐 시선에 남 몰래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장 오늘내일하는 자기 자리보다 한순간에 천만 원이 날아가 버린 다른 사람이 더 불쌍해 보이겠지. 내 자리가 날아갈 일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제 조금 뒤에 얻을 한진영의 이득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게 분명했다.

한진영이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런 액션을 취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바뀐 사람들의 시선에 만족해하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은 떠드는 사람 하나 없이 조금 뒤 문을 열고 들어올 최준호 지점장을 기다렸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해?”

최준호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자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을 훑었다.

“왜 다들 죽을상이야? 회사 규정이 바뀌었다는 소리 들어서 그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다들 그런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최준호의 반응에 최석영이 용기 내 물었다.

“진짜인가요?”

“뭐? 약정 기준을 4배수로 올린다는 거?”

“네.”

“진짜야. 그런데 자네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 아니야? 내가 알고 있기로는 자네는 기준을 까마득히 넘긴 거로 아는데…….”

최준호의 말에 자리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최석영을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달랐다.

부러워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운이 좋다고 여기는 사람 등등 다들 제각기 다른 눈빛을 보냈다.

최석영은 난데없이 자기 실적을 공개하는 바람에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최준호는 그런 최석영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최석영 과장. 반년 전에는 기존 기준이었던 3.3배도 넘기지 못하던 친구였어. 그래서 자네 기본급 제대로 받은 날도 손에 꼽지 않나?”

“지점장님. 그 이야기는…… 부끄러운 과거 이야기를 하시면은…….”

“부끄러운 과거지만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당당히 우리 지점 실적 2위의 아주 뛰어난 직원이 되어 있지 않나? 게다가 지난번의 성과급도 상당했고…… 이번 분기 성과급도 내가 듣기로는 쏠쏠하게 들어올 것 같은데…… 아니야?”

“지점장님.”

최석영은 자꾸 자기 이야기를 하는 최준호의 말에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최준호는 그런 최석영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할 수 있어. 그렇게 큰 문제 아니야. 최 과장도 하지 않았나? 그까짓 4배수가 뭐 대수라고 다들 울상을 짓고 있는 거야? 3.3배수에서 겨우 0.7배수 오른 건데…… 별로 달라질 건 없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최준호의 말에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에 만들어낸 가장 큰 피해자라는 그림자가 한진영에게 씌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하게 이야기를 한다면 한진영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진영에게 몰리자 최준호 지점장이 먼저 선수 쳐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진영 씨 덕분에 우리 지점은 그래도 나은 편이야. 고객들을 물어다 다른 직원들에게 나눠줬으니까. 그 덕분에 약정 기준 넘긴 직원이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일 거야. 모두 한진영 씨에게 고마워해야 해.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도 엄청 골치 아파졌을 테니까. 저기 밑에 평택인가? 그쪽 지점은 새로 생긴 기준 넘기는 직원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양반이야. 기준 바뀐 거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지점장님. 저는 신경이 쓰이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한진영이 최준호 지점장에게 말했다.

한진영의 이런 반응이 예상되어 먼저 선수를 쳤던 최준호 지점장이었다.

하지만 한진영의 기분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건 나도 참 안타깝게 생각해. 그래서 그러니까 한진영 씨는 잠깐 나 좀 보고가. 나랑 따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최준호는 말을 마치고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봤다.

남아 따로 둘이서만 할 말이 있다는 눈빛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로 이야기 나누시지요.”

한진영이 따로 이야기하겠다고 하자 최준호가 다시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회사가 규정을 바꿨다고 불만이 많은 것 알고 있어. 새롭게 기준을 충족시키는 일이 어렵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회사에서는 여러분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야.”

최준호는 김미진을 바라보고 말했다.

“대형 현수막은 언제 나오지?”

“지금 제작 들어가서 다음 주면 나온다고 해요.”

“여기 건물 주인에게 말해서 현수막 거는 거 협의 다 한 거지?”

“네. 월 200에 현수막 거는 거 승인받았어요.”

최준호는 직원들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자네들에게 온라인 고객을 물어다 주기 위해 지점에서 매달 200씩 투자를 한다는 거 명심해. 미진 씨. 전단지는?”

“전단지도 주당 5천 장씩 준비하기로 했어요.”

최준호는 이번에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다.

“전단지도 매주 5천 장씩 주변 아파트 단지와 상가 등에 뿌릴 계획이야.”

최준호는 직원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것 말고도 준비한 것들이 많아.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는 바로 전에 고객들을 대량으로 유치했잖아? 얼마나 다행이야. 안 그래?”

최준호의 말에 반응하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강연회를 통해 고객을 유치한 것이 너무나 다행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고객이 붙어 있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대로 고객이 떠나버리면 단숨에 정리 대상에 포함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직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최준호 지점장은 직원들을 돌아보고 다시 힘차게 말했다.

“좋아. 내가 자네들을 대신해서 회사에 강력하게 이야기할게. 그리고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받아내도록 할게. 지원을 충분히 해 준 상태에서 영업을 이야기해야 하는 게 정상이니까. 그리고 지점 차원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들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직원들은 최준호의 말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한번 내려진 결정을 바꾸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의 지원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지원을 해 줄 거라면 먼저 지원 방법부터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것이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었다.

직원들은 그래도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불만이 있다면 나가면 된다는 말을 들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고개를 떨구고 그저 최준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최준호는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직원들 하나하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다독였다.

최준호는 모두를 다독이고 난 후 회의실로 다시 돌아왔다.

“어휴. 힘들다. 그래도 우리 지점 사람들은 착해서 별말이 없네. 다른 곳은 지금 난리라고 하더라. 이게 다 네 덕분이야. 그래도 어쨌든 우리 지점 직원들은 대부분 기준을 넘기니까 별말이 없는 거지. 성과급이야. 뭐 그건 다른 이야기니까. 그럼 슬슬 우리 이야기를 해볼까?”

최준호는 생각보다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전의 직원들을 앉혀 놓은 자리에서 보여주던 업무적인 미소가 아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 우리 신성증권 영업실적 1등이 자네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어. 하긴. 자네 말고는 사람이 없지. 예치금부터 시작해서 약정까지 자네 실적이 월등하니까.”

“지점장님.”

“어?”

“저는 성과급 기준이 바뀐 것에 불만이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이야기하시지요.”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가 크게 손을 휘저었다.

“알아. 내가 잘 알지. 아마 바뀐 규정으로 인해 자네가 받는 성과급이 약 천만 원 정도 차이가 날 거야. 그렇지?”

“월 천만 원입니다. 분기로 따지면 3천이에요.”

“그렇게나 차이가 많이 나나?”

괜히 몰랐다는 척 너스레를 떤 최준호는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한진영은 최준호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최준호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는 양손을 휘둘렀다.

“에이. 자네하고 괜히 신경전 벌이지 않을래.”

최준호는 고개를 흔들고는 조금 전부터 회의실 탁자에 올려져 있던 서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최준호가 회의실로 들어올 때부터 가지고 온 서류였다.

처음 회의 탁자에 올려놓을 때부터 뒷면이 보이게 올려졌기에 어떤 서류인지 모르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야기하다 말고 서류에 손을 가져다 댄 최준호를 보고 피식하고 웃었다.

“역시 저 같은 사람들을 지킬 방법이 따로 있었군요.”

“당연하지. 총도 안 들고 전쟁터에 나갈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자네 표정을 보니 예상했었던 것처럼 보여. 알고 있었어?”

“어느 정도는요.”

과거이자 미래였던 곳에서는 제안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당시에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었기에 어떤 상황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회사 방침을 따르기만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제안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기가 그 제안을 받으려 했다.

한진영은 웃는 얼굴로 최준호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상하기는 했으니까요. 새로운 규정으로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지키나 궁금하기는 했습니다. 이대로 놔둔다면 다른 증권사에서 빼갈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 한 달에 천만 원씩 손해를 본다면 나 같아도 우리 회사에 안 있지. 당장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말 거야. 그래서 회사에서는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신경 쓰고 있어.”

최준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진영을 향해 서류를 내밀었다.

조금 전까지 뒤집어져 있던 서류는 맨 앞에 계약서라는 커다란 글자가 적혀있었다.

“계약서?”

“자네에게 새로운 계약을 제안하려고 하는 거네.”

“계약이라…… 일반적인 성과급은 아닌가 보네요.”

“자네 같은 전국 1등인 친구하고 어떻게 일반적인 성과급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한진영은 달라진 대접에 웃으며 계약서를 펼쳤다.

최준호는 계약서를 읽어가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우선 회사에서는 자네에게는 기존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냥 회사가 얻는 수수료의 절반을 자네에게 주려 해.”

한진영은 계약서를 읽어 내려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제가 친 약정의 0.25%가 제 몫이라는 말이네요. 이번에 130억을 했으니 3,250만 원이 제 몫이고요.”

“어떤가?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오히려 이렇게 된다면 기존 규정보다 600만 원을 더 벌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리고 약정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저에게 좋은 것이고요.”

한진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 위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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