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0화 (50/650)

50화 잡으러 가자

한진영은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앞으로 할 일을 설명했다.

“내가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건 다 왔다는 뜻이야. 이제 남은 사흘 동안 과감하게 매매하는 모습을 박기수에게 보여줘. 그렇게 되면 박기수는 두 사람이 완전히 넘어왔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마. 처음에는 쫄렸지만 해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듯이 굴어. 그리고 매일 술 마시러 다니는 것도 잊지 말고. 그렇게만 하면 박기수도 완전히 긴장을 풀 거야.”

“박기수를 완전히 풀어놓으려고 그러는구나.”

“그래. 계속 쫄아 있는 모습을 보이면 박기수가 두 사람이 죄책감에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물거품이 될지도 몰라. 그러니 지금쯤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됐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들리는 동업자는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르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뭐?”

이성우가 이제는 조금 안정을 찾았는지 편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최석영을 한번 돌아본 후 궁금했던 것을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럼 박 차장 계좌는? 그것도 만들어낸 가상계좌야?”

“아니. 그건 실계좌야.”

“어?”

“그걸 가상계좌로 하면 안 되지. 그렇게 되면 범죄 사실을 입증할 수가 없잖아. 그 사람 계좌는 실계좌야.”

“그럼 그 사람이 손해 본 건 어떻게 메우는데? 그건 회사에서 메워준다고 해?”

이성우의 질문에 한진영은 다시 한번 웃었다.

“내가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회사는 그런 거 메워주지 않아.”

“그럼?”

“계좌 주인하고 이야기했어. 손실 난 계좌 내가 맡겠다고…….”

“어? 네가 맡는다고?”

“그래. 손실 난 만큼 내가 수익으로 돌려주겠다고 했어. 뭐 그쪽도 나에 대해서 알아봤는지 흔쾌히 알겠다고 해서 무리 없이 이야기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도 뭐 겸사겸사 관리 계좌 늘리게 되는 거니까 나쁠 것도 없고…….”

“나쁠 게 없는 정도가 아닌데? 손실 메우려면 결국 네가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잖아. 가만히 놔둔다고 손실이 알아서 복구될 건 아니고…… 그렇다고 네가 서비스로 돌려줄 거는 아니잖아. 수수료 다 받을 거지?”

“당연하지. 내가 왜 서비스로 돌려줘? 엄연히 내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인데.”

이성우의 얼굴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히야~ 나는 박기수의 뻘짓에 손발이 덜덜 떨리는 시간을 보냈는데…… 과장님. 박기수가 돌리는 계좌가 얼마짜리죠?”

최석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잠시 고개를 들어 박기수가 자기가 돌리겠다고 한 계좌를 떠올렸다.

“세 계좌 합쳐서 50억쯤 됐던 것 같았는데…….”

“맞아요. 자기가 제일 덩어리 큰 계좌 세 개 딱 물어버리고 우리한테는 자투리들 넘겨서 겨우 10억 맞춰줬잖아요. 그런데 그걸…… 진영이 네가 그걸 날것으로 다 먹겠다고?”

최석영의 말을 받은 이성우가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손실을 메워줘야 하니 어떡하냐? 내가 해야지.”

“진짜 존경스럽다.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실적을 올릴 생각을 하다니…… 그 어떤 사람도 너를 따라가지 못할 거야.”

“억울해? 억울하면 네가 하던가…….”

한진영은 이성우가 하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넘겨주겠다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욕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한두 푼짜리 소소한 계좌들이 아니었다.

몇십억을 집어넣고도 짧으면 수년 길면 십 년 가까이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의 계좌였다.

이런 사람들의 계좌를 잘만 굴려준다면 다음에는 더 큰 계약을 진행할 가능성도 높았다.

꿀꺽.

“진짜?”

“진짜야. 네가 하고 싶다면 너한테 넘길게. 알잖아. 난 그거 아니더라도 할 건 많아.”

“그렇지. 넌 할 게 많지. 그러니까…….”

덥석.

이성우는 자기의 손목을 잡은 최석영의 손을 내려봤다.

최석영은 이성우의 손을 잡은 채 이성우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정신 차려. 그냥 계좌가 아니라. 손실 나 있는 계좌야. 알아?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알죠. 그걸…….”

“그걸 플러스로 무조건 만들어야 하는 거야. 무조건. 이제 이해가 가? 그냥 다른 계좌들처럼 손실이 났으니 어쩔 수 없네요. 할 수가 없다고…….”

무조건적인 수익을 전제조건으로 깔고 시작해야 했다.

모르긴 몰라도 손실도 한두 푼이 아닐 게 분명했다.

그런 계좌를 플러스로 돌려야 한다는 부담을 떠올리라는 최석영의 꾸짖음이었다.

이성우는 최석영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한진영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한 이성우를 향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이제부터 박기수 잡으러 가자.”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점에서는 얼마 전부터 박기수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박기수가 엄청나게 큰 거물을 물어서 약정을 미친 듯이 치고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당사자인 박기수는 이런 소문을 부정하기만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맞는 것 같아.”

“그러니까요. 저렇게 여유로운 것 좀 봐요.”

한진영과 같이 이미 드러난 일은 더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기풍철강 회장의 개인적인 투자를 받았다는 이야기나 프라임 리츠 건과 같은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모두 박기수가 물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로 몰렸다.

“도대체 누구야? 미진 씨가 슬쩍 지나가면서 보니까 삼선전자를 1,000주씩 매매한다던데…….”

“뭐라고요? 삼선전자를 1,000주씩 매매한다고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이야기를 전한 직원은 그런 상대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처음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어. 다른 곳도 아니라 삼선전자를 어떻게 1,000주씩 매매하냐고 한 소리 했는데…… 그게 아니야. 그걸 본 사람이 미진 씨만이 아니었어.”

“본 사람이 또 있다고요?”

“그래. 한두 사람이 아니야. 삼선전자로 단타를 치고 있다고 하더라.”

“무슨 말도 안 되는…… 단타를 어떻게 삼선전자로 쳐요. 칠 게 따로 있지.”

10억을 매매하더라도 호가 하나를 다 비우지 못하는 것으로 보자면 삼선전자만 한 종목이 없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만큼 하루 변동폭 또한 1% 남짓으로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이런 종목에서 단타를 친다는 것은 수수료만 날려 먹겠다고 덤비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의심이 간다는 거야. 매매가 혹시 수수료 따먹기가 아니냐 해서…….”

삼선전자에서 단타를 칠 리 없다고 고개를 젓던 직원이 지금의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지?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럼 계좌 주인이 가만히 있겠어요? 수수료만 나가는 짓을 누가 가만히 놔둬요?”

“계좌 주인에게 말하지 않으면 되지.”

“그게 무슨…… 그거 잘못하다가는 콩밥 먹어요.”

“나도 알아. 그래서 알면서도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이잖아. 그런데…… 저 박 차장이 하는 일이 그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그래요?”

“알려진 것이 너무 없잖아. 보통 규모가 있는 계약의 경우에는 직원들이 모를 수가 없어. 한진영이를 봐봐. 계약서에 사인하기도 전에 소문났었잖아. 근데 박 차장은……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더 의심이 간다 이거야.”

“그렇네요.”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박기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이렇게 시흥지점 직원들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것은 이야기를 나누던 둘만이 아니었다.

시흥지점 모든 직원이 박기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성우야. 오늘은 어떠냐? 어디로 갈 거야?”

“오늘은 강동 쪽으로 넘어가죠.”

“강동에도 좋은 곳이 있어?”

“거 차장님. 저하고 이 정도 같이 다니셨으면 이제는 저를 믿을 때도 되지 않으셨어요?”

박기수는 이성우의 어깨를 주무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믿지. 믿는데 너무 신기해서 그래. 무슨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어떻게 그렇게 여러 곳을 알고 있나 싶어서…….”

“아직 강북 쪽은 넘어가지도 않았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하하하. 기대하고 있을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성우와 박기수가 기분 좋은 듯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 출근한 시간부터 오늘은 어디에 가서 술을 마실까로 둘은 시간이 나는 대로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지점의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깨달을 틈이 없었다.

한진영이 이걸 노리고 이성우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붙어 있으라고 한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그럼 오늘도 바로 넘어가자. 회사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좋죠. 그런데 바로 넘어가도 괜찮아요?”

“이거 왜 이래. 우리끼리…… 오늘 할당량 다 못 채웠어? 우리는 쉽게 채울 수 있잖아.”

“아~~~”

“무슨 말인지 알지? 아직 못 채웠으면 가서 대충 두어 번 매매해. 그럼 끝나잖아.”

“그렇죠. 그럼 이따가 뵐까요?”

“장 마감치고 바로 넘어갈 거야. 최 과장에게도 알려줘. 그런데 그 친구 괜찮나? 보니까 제수씨가 보통이 아니던 것 같은데…… 저 친구도 양반 되기는 글렀네. 이야기하자마자 나타나는 것을 보니 말이야.”

이성우와 박기수가 이야기하는 곳으로 최석영이 다가왔다.

그는 자리에 오자마자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 말했다.

“오늘 끝나고 잠시 남으라는데요.”

“끝나고? 왜? 지점장이 할 말 있데?”

“할 말이라기보다는…….”

최석영이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는 최석영의 눈빛을 보고 무슨 일인지 깨달았다.

‘오늘이구나.’

이성우는 급히 박기수의 신경을 자기 쪽으로 돌렸다.

“잠깐 있다가 가죠. 이야기가 길어지면 안양 쪽으로 넘어가도 괜찮으니까요.”

“안양?”

“강동은 여기서 가기에는 거리가 좀 있으니까요. 가볍게 안양으로 가도 괜찮아요. 거기에도 좋은 곳 있거든요.”

박기수는 이성우의 말에 최석영에게 쏠렸던 신경을 모두 거둬버렸다.

그리고 다시 이성우와 일이 끝난 뒤 간다는 업소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진영은 장 마감 30분 전에 모든 정리를 마쳤다.

오늘 있을 재미있는 광경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장 마감 10분 전에 최준호가 지점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김미진을 불러 지원팀에 지시를 내렸다.

“오늘도 소강상태로 마감됐구나. 김 사장. 오늘은 어땠어?”

“별 재미없지 뭐. 차 사장은 어때? 오늘 좀 재미 봤어?”

“나도 뭐 그저 그렇지. 그런데…….”

객장 상황판 앞에 놓여있는 소파에 앉아 상황판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장 마감과 함께 짧은 소회를 나누었다.

그때 김미진이 상황판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금일 저희 매장에 행사가 있어 고객님들을 오랫동안 모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금 바로 나가라고?”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뭔데 그래? 무슨 행사인데?”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 내부 행사입니다.”

“그래?”

고객들은 서로 바라봤다.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남아있겠다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직원들이 나와 나가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객을 내보내는 것이 객장만이 아니었다.

상담 쪽에 남아있던 고객들에게도 일일이 사정을 설명하고 밖으로 내보냈다.

직원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도 유독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곳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번에 만난 수련이? 난 걔가 마음에 들던데. 자네는 누가 좋아?”

“저는 그래도 일편단심 수진이입니다.”

“열부 났구먼. 하하하. 최 과장은? 그래도 최 과장은 와이프가 제일이야?”

“저야. 와이프밖에 없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박기수는 느끼지 못했다.

이성우, 최석영과 조금 뒤 함께 나눌 술자리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박기수 등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지점 안에 있는 모든 고객이 밖으로 나갔다.

직원들은 눈을 굴리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그때 고객들이 나간 문을 통해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시흥지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모든 신성증권 시흥지점 직원들은 손을 위로 올려주십시오. 우리는 신성증권 감사팀입니다. 모든 신성증권 시흥지점 직원들은 머리 위로 손을 올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감사팀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머리에 손 올려주십시오.”

갑자기 시흥지점을 급습하듯이 쳐들어온 신성증권 감사팀은 빠르게 시흥지점을 장악했다.

그리고 감사팀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최준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누가 박기수입니까?”

최준호는 감사팀 팀장에게 한쪽에서 여전히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박기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감사팀 팀장은 박기수에게로 다가갔다.

박기수는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멈추고 자기 앞에 다가온 사람을 올려다봤다.

“당신은 누구…….”

“신성증권 시흥지점의 박기수 차장 맞습니까?”

“내가 그 사람인 건 맞는데…… 당신은 누구요?”

“박기수 차장을 이 시간부터 모든 업무에서 배제합니다. 또한, 관리하고 있는 계좌들도 모두 감사팀에서 압수합니다.”

“뭔데 당신이 내 계좌를 압수하고 말고 이야기해?”

박기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런 박기수를 향해 감사팀 팀장에 서류를 내밀었다.

“고객계좌를 불법으로 매매했다는 정황증거가 포착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경찰 출석이나 준비하세요.”

박기수가 받아 든 종이에는 고소장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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