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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5화 (55/650)

55화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김정대는 김미진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와 한진영 앞에 섰다.

그리고 당장에 멱살을 잡아도 이상하지 않을 눈빛으로 한진영을 노려봤다.

그런 김정대의 모습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으로 한진영은 김정대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마치 지점장실의 주인인 것처럼 한진영이 김정대를 향해 말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나?”

“뭘 말씀입니까?”

“시침 떼지 말게. 내가 여기까지 온 걸 알면서 그런 말이 나오나? 어서 말해보게. 어떻게 알았냔 말일세.”

“아~ 두바이 말씀이시군요.”

최준호는 한진영의 입에서 두바이라는 글자가 나오자 화들짝 놀라 문 앞에 서 있는 김미진에게 손짓했다.

최준호는 닫히는 문을 보고 김정대에게 다가갔다.

“부문장님. 우선 앉아서 이야기하시지요.”

김정대는 최준호의 말에 한진영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아직 난 대답을 듣지 못했네.”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 말입니까?”

“그래.”

“그럼 그 전에 먼저 말씀해주셔야 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두바이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된 겁니까?”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어떻게 알았냐고 자꾸 물어보시는 겁니까? 제 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래. 자네 말대로 아직은 이루어진 게 없어. 그런데…… 두바이가 아니라 다른 쪽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되고 있다네.”

“어디입니까?”

“미국.”

김정대는 말을 마치고 재떨이를 끌어당겼다.

이제는 점차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시대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규모가 큰 건물의 경우에는 건물 내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 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객장과 같은 곳에서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고객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 하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권사 지점에서는 지점장실과 같은 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김정대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담뱃갑을 한진영에게 내밀었다.

“담배 태우지?”

“네.”

김정대가 담배를 같이 피우자고 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업무 중에 술을 마실 수 없기에 지금 자리에서의 담배는 술자리의 술을 건네는 것과 같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는 제스쳐로 건넨 담배였기에 한진영은 김정대의 담배를 거절하지 않았다.

한동안 담배를 함께 피우던 김정대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며 먼저 입을 열었다.

“미국 BoA에서 두바이에 투자한 펀드에 대해 익스포저(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는 금액)를 체크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하더군.”

“그 이야기는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김정대가 웃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빨아들였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대답했다.

“영업 비밀이네.”

“그렇군요.”

한진영은 김정대의 대답을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어차피 정보력이 생명인 곳에서 이 정도쯤에 놀랄 일도 없었다.

“평소라면 그냥 웃고 넘어갈 만한 이야기였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나 보군요.”

“달라. JP모건까지 익스포저를 파악하기 시작했으니까.”

가만히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하든 둘을 지켜보든 최준호가 끼어들었다.

“JP모건까지 말입니까?”

김정대는 입에 담배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에 있는 두 거대 은행이 동시에 같은 분석을 한다? 분명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김정대는 한진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런 것조차도 자네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그냥 웃으며 넘어갔을 거야. 자기네들끼리 저녁 먹다가 그냥 내친김에 한 게 아니냐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김정대는 손에 담배를 쥔 채 손가락으로 한진영을 계속 가리키며 말했다.

“네놈 이야기 때문에 이 모든 게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말 두바이가 파산하는 거냐?”

“저는 파산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럼 왜 저 코쟁이 놈들이 리스크에 대한 손해 정도를 파악하고 있는 건데? 파산했을 때 제 놈들이 얼마나 손해를 볼지 알아보는 게 파산할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채권 만기를 유예시켜달라고 할거라고요.”

“유예하지 않으면?”

“유예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BoA나 JP모건 등이 파악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그리고 미국 정부도 파산을 원하지 않을 테고요.”

김정대는 한진영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거둬 담배를 다시 머금었다.

한진영도 김정대를 따라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다.

두 사람이 피우는 것만으로 지점장실은 어느새 담배 연기로 뿌옇게 쌓이고 말았다.

그때 김미진이 차를 들고 들어왔다.

김미진은 조심스럽게 세 사람 앞에 차를 놓았지만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한진영이 상도 타고 대단한 건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까지는 본부장의 직함을 달고 있었던 김정대 사업부 부문장과, 그것도 지점장실에서 맞담배를 피울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김미진이 차를 놓고 조심스럽게 나가자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최준호가 입을 열었다.

“한동안 지점이 시끄러워지겠어.”

“어차피 금방 나갈 테니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한진영은 최준호의 말을 받아 김정대에게 물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헛웃음을 흘리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이제는 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너를 데리고 가야만 할 것 같다. 떠날 준비해라.”

김정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정대를 따라 일어나는 최준호를 향해 말했다.

“이 친구 다음 주에 내가 데리고 가려 하는데 괜찮지요? 장 본부장에게는 제가 이야기할 테니 지점장님은 정리만 해주시면 됩니다.”

이미 결정되고 시간만이 정해지지 않은 일이었다.

최준호는 김정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김정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아직 자네에게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군.”

“어떻게 알았냐는 말 말입니까?”

“그래. 이제 대답해보게. 어떻게 안 건가?”

김정대의 말에 한진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영업 비밀입니다.”

김정대는 한동안 한진영을 바라본 뒤 크게 웃으며 시흥지점을 나갔다.

***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과 약속되어 있던 일식집에 도착한 한진영은 입구에서 정병선이 아닌 김영철의 이름을 말했다.

“이리로 들어오시지요.”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한진영은 여러 개의 방중 가장 안쪽의 방 앞에 다가가 섰다.

그리고 방 앞에 서서 문을 열어주는 종업원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네요. 오랜만이네요. 와서 앉으세요.”

정병선은 미리 와서 한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 회장의 뒤에는 여전히 김영철이 서 있었다.

“회장님. 김 비서님은 계속 저렇게 서 계시는 겁니까? 힘드시겠습니다.”

겨우 두 번째 만남에서 천연덕스럽게 말을 건네는 한진영의 모습에 김영철은 속으로 놀랐다.

아무리 격의 없이 만나는 자리라고 이야기했다지만 나이와 맞지 않는 모습에 김영철은 한진영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슴속에 숨긴 김영철은 한 걸음 물러나며 정병선에게 인사했다.

“그럼 저는 밖에 나가 있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십시오.”

정병선이 김영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김영철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한진영은 나가는 김영철을 향해 잠시 고개를 돌아봤다.

그리고 김영철이 완전히 밖에 나가자 정병선을 향해 물었다.

“그냥 나가시는 겁니까? 계속 계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식사와 함께 비즈니스 이야기를 할 때는 함께하지 않는 게 규칙이라서요. 괜찮습니다.”

“식사와 함께 비즈니스라…… 지금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까? 지금 자리가요?”

“모르고 오시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럼 우선 음식을 들이도록 하지요.”

정병선이 말을 마치고 상 위에 올려져 있는 버튼을 누르자 문을 열고 종업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식전 입맛을 돋우기 위한 일식 계란찜에 해당하는 차완무시와 전복 내장 죽이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하얀 도자기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술이 담겨 자리에 놓였다.

“여기 괜찮습니다. 입에 맞으실 겁니다.”

“숟가락을 들기 전부터 입에 맞을 거라고 말씀을 하셔서 그런지 맛을 보지 않아도 맛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하. 드시지요. 드시면 생각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실 겁니다. 이 집. 괜찮은 곳입니다.”

정병선이 음식을 손으로 가리킨 후 술병을 들어 술을 따랐다.

자기 잔에도 술을 따른 정병선은 술병을 내려놓은 뒤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숟가락을 들고 죽과 계란찜을 크게 한입 먹고 있었다.

“아~ 술. 술 드셔야지요?”

한진영은 입에 음식을 가득 문 채 술잔을 들어 올렸다.

정병선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십니다. 대단해요.”

“제가 말입니까?”

“네.”

정병선도 술잔을 들어 올려 술잔을 부딪친 두 사람은 동시에 술을 목 뒤로 넘겼다.

한진영은 먼저 술병에 손을 뻗어 술병을 들어 올린 후 술을 따르며 정병선에게 물었다.

“제가 뭐가 대단하다는 말씀입니까?”

“이렇게 태연하셔서 말입니다.”

“태연히요? 저는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오시기 전에 뉴스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뉴스요? 아~ 뉴스.”

한진영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를 보니 큰일 났더군요. 두바이 월드가 채무상환을 유예해 달라는 발표가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진짜로 그렇게 된다면 큰일인데 어찌 될런가 모르겠습니다.”

큰 걱정이라는 듯한 한진영의 얼굴을 정병선은 가만히 바라봤다.

한진영은 술잔을 들고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뭐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미국의 경제지표도 좋고 두바이쯤 되는 나라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리도 없을 테고…… 적당히 잘 마무리가 되겠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정병선의 말에 한진영은 술잔을 든 채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술을 입에 털어 낸 뒤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저를 부른 게 단순히 프라임리츠에서 맡기신 돈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기 위한 자리는 아닌가 보군요.”

정병선은 한진영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약속을 잡을 때는 사실 그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간만에 한진영 씨 얼굴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다는 말씀입니까?”

“바뀌었지요. 이곳에 오기 전에 들었던 뉴스로 말입니다.”

“두바이 이야기에 흥미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많을 수밖에 없지요. 건설과 저희 리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요.”

“아~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맞습니다. 그렇지요. 리츠와 건설. 말씀대로 뗄 수 없는 사이지요. 그래서 두바이 월드에 관심이 많으신 겁니까? 두바이 쪽이 무너지면 건설도 함께 무너질 테고, 그 영향을 프라임 리츠가 받을 것 같아서 말입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저에게 물어보시는 겁니까?”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물었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글쎄요. 제 질문이 무엇인지 대답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요.”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웃던 정병선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우선 한잔하시고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네. 그렇게 하지요.”

둘은 술잔을 부딪치고 동시에 술을 마셨다.

그리고 정병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저는 한진영 씨의 정보력에 감탄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저희도 나름대로 전 세계에 망을 깔아놓고 정보를 취합한다고 했는데…… 이번 건으로 알게 됐습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떻게 알게 됐는지 말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하. 알고 있습니다.”

정병선의 웃음소리에서 그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병선은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바이 루머는 루머로 끝날 것 같지 않더군요.”

정병선은 말을 마치고 한진영의 안색을 자세히 살폈다.

“놀라지 않는 것을 보니 이것도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군요.”

“계속 말씀하시지요.”

“좋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다 이야기하지요. 실제로 두바이 정부가 두바이 월드에 대한 채무를 유예해 달라는 요청을 채권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것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었으니 미리 알려드린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 덕분에 프라임 리츠도 한몫 단단히 챙길 준비를 마친 상태이시고요. 그러십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도 한몫 좀 잡았으면 싶은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정병선의 질문에 한진영은 대답하기보다 조금 전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자 그럼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셔야지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알려드리면 저에게도 기회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먼저 답을 듣고 생각해보지요. 아직은 제 패가 더 높은 것 같으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는군요. 한진영 씨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잣말과 같은 말을 내뱉은 정병선은 고개를 똑바로 들고 한진영을 향해 조금 전 질문에 대답했다.

“장근수 본부장. 그가 알려줬습니다.”

“장근수 본부장이요?”

한진영은 예상하지 못한 이름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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