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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57화 (57/650)

57화 나와 함께 일할 사람

김정대의 격렬한 환영에 김정대의 비서는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놀랐다.

도대체 누구기에 김정대가 이렇게 환영을 하는 것인지 궁금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김정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진영을 다시 한번 안았다.

그리고 한진영의 등을 두드린 뒤 사무실로 안내했다.

“들어와.”

김정대의 사무실은 최준호의 지점장실보다 더 좋았다.

크기도 더 컸으며 사무실 안을 채운 가구 등도 지점장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고급이었고 새로운 것들이었다.

김정대는 소파를 가리키고 맞은 편에 앉았다.

“좋지?”

김정대는 한진영을 따라 사무실을 둘러봤다.

“여기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이 모두 그 말을 하더라. 좋아 보인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부장에서 부문장으로 내려왔으면 당연히 머무는 곳도 작아지고 거기에 따라 가구 등도 한 단계 낮은 수준으로 배치되어야 하는 게 맞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거야. 나도 놀랄 만큼…….”

김정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는 한진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자네 말이 떠오르더라. 두 발 전진을 위한 한발 후퇴. 그리고 알게 됐지. 이 자리는 겉으로만 사업부지, 본부 그 이상을 컨트롤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라는 것을 말이야.”

김정대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로 출근하려니까 아쉽지? 그래도 어떻게 하겠나? 지금은 사람 손이 하나라도 부족해서 아쉬운 상태니까 자네가 이해해주게.”

“안 그래도 오자마자 많이 바쁜 게 눈에 보였습니다.”

“말도 말게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자네가 두바이 이야기를 먼저 해준 덕분에 이렇게 바쁘게 된 거지. 물론 좋은 쪽의 바쁨이라 아주 만족스러워. 자네에게 고맙기도 하고…….”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됐다 뿐인가?”

김정대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쩐지 저 나쁜 놈들이 채권을 헐값이 던져대더라.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두바이 채권이 시장에 풀려나오니 눈이 벌게져서 마구 사들였지. 다른 곳도 아니라 두바이 아닌가? 기름 장사하는 놈들이 잘못될 리가 없다고 판단한 거지.”

김정대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많이 당했어. 특히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많이 당했어.”

안타까워하는 말속에서 고소함이 느껴졌다.

경쟁사들이 피똥 싸는 상황 속에 빠진 것이 즐거운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그런 김정대가 지금의 기분을 만끽하도록 기다렸다.

김정대는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졌는지 웃는 눈을 하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정 회장에게 한 말이 사실인가?”

한진영은 김정대가 말하는 사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김정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김정대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나도 그럴 것 같았어. 그런데 분위기가 좀 험악해야지. 아주 난리도 아니다. 여차하면 다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마 전에 주워 담았던 놈들이 허겁지겁 채권을 시장에 내던지고 있거든. CDS 프리미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고 있고…… 그래서 나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어. 잘못하다가는 폭탄을 다 떠안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정 회장의 연락을 받으셨군요.”

“그래. 정 회장이 채권 매입 의뢰를 해오더라. 부동산 리츠 회사가 채권을 매입하겠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더니 자네에게 이야기 들었다고 바로 대답하더군.”

“며칠 전에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참 그 양반도 대단해. 자네 말을 믿고 그렇게 지르다니 말이야.”

“얼마나 질렀습니까?”

김정대는 한진영에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두바이 채권 매입에 한 장을 집어넣었다.”

“한 장이라면…….”

“100억.”

“통 크네요.”

“통 크지. 일개 기업이 100억을 한 번에 태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것도 계통이 전혀 다른 부동산 회사가 집어넣기에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거야. 아니지.”

김정대는 한진영을 바로 보고 웃었다.

“어쩌면 자네의 말을 들어서 쉽게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

김정대는 말을 멈추고 잠시 한진영을 바라봤다.

끈끈한 눈빛을 한진영은 피하지 않았다.

김정대가 어떤 의미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대가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보기 전에 먼저 대답했다.

“수익의 20%를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게 조건이었나?”

“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아. 잘했어.”

김정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터폰을 통해 밖에 있는 비서에게 지시했다.

“문 과장 들어오라고 해.”

김정대는 지시를 마치고 한진영을 돌아봤다.

“우선은 분위기 좀 익히고 하고 싶은 쪽을 정하면 거기에 맞게 일을 줄 거야.”

“저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시는 건가요?”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는 그렇게 해줘야지. 그리고…….”

김정대는 손가락으로 자기와 한진영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사이는 다른 직원들에게 깊게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직원들이 샘을 낼 테니 말이야.”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묻고 싶은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김정대를 보고 묻고 싶은 마음을 접었다.

괜히 물었다가는 섭섭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똑똑.

노크와 함께 뚱뚱해 보이는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인사했다.

“부르셨습니까?”

“어. 여기 있는 이 친구 새로 들어온 친구니까 간단하게 우리 사업부 소개해주고 자리 하나 만들어줘.”

“어디 부서에 배치할까요?”

“그건 이 친구가 정해서 알려줄 테니 자네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문익현 과장은 놀란 눈으로 김정대를 바라봤다.

“부서를 이 친구가 정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김정대는 문익현에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저기 문 과장이 보여주는 거 살펴본 뒤에 편하게 정해서 문과장한테 말해. 그럼 그 부서에 바로 넣어줄 테니까.”

다시 김정대는 문익현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문 과장은 신경 쓰지 말고 이 친구한테 우리 사업부나 소개해주면 돼.”

문익현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오늘 새로운 직원이 온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달받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인지 미리 확인한 문익현이었다.

올해 신성증권 실적 1등을 차지한 신입직원으로 영업 쪽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점 영업과 관련된 것으로 FICC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점 영업이 개인을 상대로 하는 것에 비해 이곳은 개인과의 영업은 극히 드문 상황에서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진영이 왜 FICC에 전출된 것인지 문익현은 이해하지 못했다.

실적 1등이라는 타이틀을 따자마자 이곳에 온 것에 불쌍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데 오자마자 부서 선택권을 한진영에게 준다는 김정대의 말에 문익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경우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한진영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럼 나가보게. 자네는 오늘 점심 나하고 같이 먹고…….”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김정대가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한진영을 배웅하려 했다.

문익현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마저 받았다.

문익현과 한진영이 부문장실을 나가려 하자 김정대가 한진영을 불러세웠다.

“잠깐.”

한진영의 몸이 문에 반쯤 걸쳐져 김정대를 돌아봤다.

김정대는 그런 한진영을 바라보고 웃었다.

“장 본부장이 나에게 그러더군. 자네를 잘 데리고 있으라고 말이야. 언젠가는 데리고 가겠다고…….”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잘 데리고 있겠다고 했어.”

“잘하셨습니다.”

“나는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야.”

“저는 이곳에 강요로 온 게 아니니까요.”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크게 웃었다.

사업부 부문장실의 문이 열린 채 터진 웃음이었다.

밖에 있는 FICC 사업부 사람들은 부문장실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모두 시선을 모았다.

***

문익현은 뒤를 천천히 뒤를 따르는 한진영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부문장실을 나오며 눈짓으로 김정대의 비서인 최승아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녀도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는 뜻을 전할 뿐이었다.

문익현은 도대체 한진영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만 했다.

“여기는 원자재팀. 원자재가 뭔지는 알지?”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알고 있다니까 편하게 설명할게. 업무 대부분은 중개 역할이야. 트레이딩도 하기는 하는데 그것보다 주된 수익원은 기업들이 원하는 원자재의 선물을 대리로 처리하는 업무를 주로하고 있어. 기업들도 트레이딩 목적보다는 원자재 확보를 위해서 많이 이용하고…….”

문익현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고 다른 쪽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쪽은 아시아 외환 팀. 외환 관련 팀은 좀 세분되어 있어. 이유는…… 알지?”

“여러 통화를 거래하니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 미국의 달러에 일본의 엔은 물론이고 프랑스, 영국, 호주, 캐나다 등등 가짓수가 많으니까. 자네도 뭐 뉴스 같은 곳을 통해 많이 봤을 거야. 전화 통화하는 장면…….”

“무슨 말씀인지 알고 있습니다. 외환 거래방식은 보이스(voice) 거래방식을 전통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 전자거래 방식으로 바뀔 거라는 것. 그렇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씀하려고 하시는 것이죠?”

“어? 어…… 맞아.”

외환 거래방식의 전자화는 한진영이 이곳에 오기 전에도 완벽하게 바뀌지 않았었다.

그때도 여전히 전화로 주문을 넣었고 전자화는 일부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래서 정부는 외환 거래방식의 전자화를 통해 고객들이 호가 시스템에 직접 연결되는 방식을 구축하려 했다.

그런 계획이 앞으로도 10년이 훌쩍 지난 뒤에나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전화로 주문을 집어넣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문익현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한진영을 향해 뭘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파생팀은 어디에 있습니까?”

“파생팀? 어…… 저기.”

“맞아. 저쪽이었지.”

한진영은 문익현이 가리킨 곳을 향해 파생팀이 자리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사람 앞에 섰다.

커다란 안경을 쓰고 앉아 있는 사내는 더벅머리에 연필을 쥐고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흔히 말하는 증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외모와는 상반되는 비주얼이었다.

“누구…….”

“반갑습니다. 저는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한진영의 인사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나 한진영의 손을 잡았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김준하라고 하는데…… 누구세요?”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요? 과장님?”

뒤에서 한진영이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문익현은 한진영의 질문에 급히 앞으로 나섰다.

“어. 맞아. 우리와 같이 일하기로 했는데…… 자네 파생팀에서 일할 생각인가?”

“아니요. 일은 채권 세일즈 파트로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저에게 맞을 테니까요.”

“그렇지. 아무래도 그쪽이 지난 자네의 일과 가장 비슷하기는 한데……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이곳에서 일할 것도 아니라면서…….”

“인사를 하고 싶어서요. 여기 있는 김준하 사원과 말입니다.”

김준하는 악수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불편한지 손을 꾸물거리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그런데 저를 아세요?”

“이제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 이렇게 인사하러 온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제 이름은 한. 진. 영. 입니다.”

“아…… 네.”

김준하는 한진영의 소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고는 안경을 다시 만진 뒤 자리에 앉았다.

한진영은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언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김준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전혀 생소한 파트인 FICC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김준하를 찾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낙점했을 만큼 김준하의 능력은 한진영이 잘 알고 있었다.

‘전에는 몰랐지만 안 이상 놓칠 수는 없지.’

지난 시절에는 김준하의 진짜 능력을 몰랐었다.

그저 외모로만 느껴지는 바보스러움에 어디에나 회사에 한 명씩 있는 전형적인 괴짜가 아니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공정한 가격을 파악하기 어려운 장외시장에 굴러다니는 파생상품에 대한 합리적인 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진영은 장내시장과 장외시장을 모두 두루 손에 쥐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브로커를 통해 두루뭉술하게 거래되는 장외시장의 특성상 합리적인 가격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김준하는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한진영은 자기가 원하는 채권팀으로 향하며 고개를 돌려 김준하를 바라봤다.

‘지난번에는 너의 죽음을 막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막아줄 테니 나와 함께 제대로 일해보자.’

한진영은 죽은 뒤에도 그가 만들어 낸 계산법으로 돌아가던 신성증권의 파생팀을 떠올리며 채권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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