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내가 해결해 주겠다
반응을 보인 김준하의 모습에 한진영은 계속 이야기했다.
“얼마나 땡겨서 박아 넣었어? 카드론에 저축은행은 물론이고, 사는 곳도 담보로 제공해서 대출받았지? 남은 돈이 얼마이고 잃은 돈은 얼마야? 내 생각에 대부업체에서도 돈 땡겼을 것 같은데…… 이율은 얼마짜리야?”
김준하는 깜짝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이제야 겨우 자기를 쳐다보는 김준하를 보고 웃었다.
“뭘 그렇게까지 놀라? 대충 한 4~5천 날렸으려나? 남은 돈은 2천은 돼?”
김준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급히 한진영의 입을 손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김준하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다. 더 잃었겠구나.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다 때려 박아 날린 거 생각한다면 말이야. 그럼 토탈 날린 게 1억쯤 돼?”
“그만!”
김준하는 자리에서 서서 한진영을 내려다봤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의 김준하였다.
그러나 김준하와 달리 한진영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김준하는 한진영이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진영을 향해 소리를 치려 할 때 한진영의 입이 먼저 열렸다.
“내가 도와준다니까. 걱정하지 마. 그까짓 1억쯤은 내가 다 복구해줄게.”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천천히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게…… 정말…….”
한진영은 김준하가 관심을 가지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김준하의 손목을 끌고 걸어갔다.
김준하는 한진영에게 잡혀 끌려가며 급히 물었다.
“어디를 가려고 그래요?”
“나가자. 나가서 자세히 이야기하자.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나도 제대로 도와줄 테니까.”
한진영은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조수아를 향해 소리쳤다.
“나갔다 올게요. 파생팀에도 이야기해주세요. 여기 준하랑 저랑 나갔다 온다고요.”
“어? 네. 그러세요.”
김정대가 몇 번이나 한진영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 누구도 한진영을 건드리지 않았다.
팀장인 성현수조차 한동안은 조용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사렸기에 한진영이 사무실에서 누워 잠을 자더라도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한진영과 함께 밖으로 나가는 김준하의 경우에는 파생팀의 깍두기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인 지금 김준하의 위치상 출근 이후 사라지더라도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을 게 분명했다.
조수아는 대수롭지 않게 나가겠다는 한진영의 말을 받아들였다.
***
회사 건물에서 나온 한진영은 김준하를 끌고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차가운 아메리카노 2잔 주세요.”
김준하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주문한 한진영은 커피숍 구석으로 김준하를 끌고 가 앉혔다.
그리고 김준하의 맞은편에 앉으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여기는 아무도 없을 테니 이야기해봐. 어떻게 된 거야?”
한진영은 고개를 빼고 김준하를 빤히 쳐다봤다.
대략적인 사건의 경위만 알고 있었던 한진영이었다.
어떻게 김준하가 주식에 손을 대서 망가졌는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회사를 관둔 뒤 빚에 허덕이다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게 전부였다.
김준하는 정신없이 끌려와서 아직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눈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신성증권의 지점 영업 1등을 획득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정말…… 도와줄 수 있어요?”
“이야기부터 들어보고…… 먼저 왜 이런 상황이 되고 만 건지 이야기해봐.”
김준하는 우물쭈물했다.
자기의 치부와 같은 창피한 일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를 차분히 기다려줬다.
여기까지 온 이상 결국 말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지금 김준하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라고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커피를 몇 모금 마신 김준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사 생활은 너무나 적응하기 어려워요. 지금도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에요. 한진영 씨는 안 그런가요?”
“나도 출근하기 싫지. 누구나 마찬가지야. 너만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런가요? 그런데…… 나는 그게 더 심해요. 회사에 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아요.”
“이렇게 나오면 조금 낫고?”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를 보고 웃었다.
“그럼 나오길 잘했는데? 앞으로는 나랑 종종 나오자고…….”
“그럴 수 있을까요?”
“아까 나오면서 봤지? 나랑 같이 가면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 없어.”
김준하 혼자 나간다고 해도 막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모르는 김준하 입장에서는 한진영과 함께 나와서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말만이라도 고마워요.”
“말만이 아니야. 걱정하지 마. 앞으로 회사 있는 게 답답하면 내가 종종 데리고 나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건 그렇고…… 그래서 주식에 손댄 거야?”
조금씩 얼굴이 펴지던 김준하의 얼굴에 다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한진영은 어두워지는 김준하의 얼굴을 보고 급히 손을 들어 김준하 눈앞에서 휘저었다.
“야야. 너한테 뭐라고 이야기한 거 아니니까 그렇게 시무룩해지지 마. 내가 뭐라고 널 혼내겠냐? 그냥 이야기해봐. 그래서 주식에 손댄 거야? 전업으로 먹고살려고?”
김준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업은 집에서 할 수 있으니까요.”
“증권사에 다니다 보니까 다들 주식으로 돈 잘 버는 거 봐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거냐?”
“처음엔 나도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가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재능?”
한진영은 김준하의 말에 웃음이 터질뻔한 걸 억지로 참았다.
재능이 있다는 사람이 이렇게 돈을 날려 먹고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준하는 아직도 자기가 재능이 있는 줄 아는 듯했다.
한진영의 질문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
“처음에 꽤 수익도 올려봤고…… 사람들도 제가 재능이 있다고 말하니까요.”
“사람들? 아니. 우선 그 전에…… 꽤 수익을 올렸다고 얼마나?”
“처음 투자했을 때 3 연상도 먹어보고…… 제가 사려고 했던 종목들이 오르는 걸 보면…….”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데?”
한진영의 질문에 김준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소액을 집어넣어 우연히 초심자의 행운으로 돈 좀 번 걸 가지고 이러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더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고는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래. 그건 그냥 묻어두고……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는 건 누가? 누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어~ 같은 팀에 있는 사람들이 제가 매매하는 걸 보고……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너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만 봐도 질색을 하면서 또 그런 이야기는 잘만 듣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진짜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한진영의 말이 비웃음처럼 들렸던지 김준하가 발끈하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하지만 한진영은 이번만큼은 김준하를 향해 강하게 나갔다.
“뭘 그렇게 봐? 너는 머리가 좋은 놈이 그렇게 생각이 없냐? 네가 재능이 있다면 돈을 그렇게 잃었겠어?”
“이제는 방법을 알아냈어요. 그동안은 이것저것 실험하느라 그랬던 거고…….”
“이젠 뭐 주식의 비밀이라도 풀어낸 것처럼 말한다. 어디 한번 설명해봐. 네가 알아낸 게 뭔데?”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는 냅킨에다 가지고 있던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대학교 때 본 적이 있는 희한한 기호의 공식들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법칙들이 냅킨 위에 적혀졌다.
“게임이론에 의하면…….”
“그래. 나 게임이론 들어본 기억나.”
김준하는 설명하다 말고 말을 중간에 끊어낸 한진영을 노려봤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눈빛을 보고 웃었다.
“왜? 내가 잘 안 들어 준다고 삐진 거야? 아니. 그래서 해법이 뭔데?”
“여기 있는 이 공식을 써서 투자하면 100% 성공할 수밖에 없어요.”
한진영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에 커피를 마신 뒤 물었다.
“좋아. 그것도 뭐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지금 너 까먹은 돈이 얼마고? 남은 돈이 얼마냐?”
김준하가 해법을 찾았다며 알 수 없는 공식을 쓸 때의 표정은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남은 돈이 얼마냐는 말에 그 표정은 온데간데없어졌다.
한진영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야기해. 다 들어줄 생각이 있고 해결을 해줄 자신이 있어서 네 앞에 있는 거니까. 하나 숨기면 숨기는 만큼 더 어려워진다는 거 똑똑한 네가 더 잘 알 거야. 빚이 얼마야?”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카드론이 두 개에 각각 2천씩. 4천.”
“휴우~ 그리고?”
“저축은행 2곳에서 700하고 1,200.”
“또?”
“사는 집 담보로…… 4천”
“참 다양하게도 빌렸다. 토탈 1억 2천이 좀 안 되겠네. 그럼 한 달에 얼마씩 갚고 있는 거냐?”
“400…….”
“400? 네 월급 다 거기에 박아야겠다. 뭐 남는 건 있냐?”
“없어요. 오히려 돈이 모자라요. 그래서 주식으로 돈을 벌어 모자란 돈을…….”
“주식으로 돈을 벌기는 뭘 벌어? 까먹고 있는 거지. 그런 놈이 퇴사하려고 한다고?”
김준하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방어기제가 튀어나오는 것인지 한진영을 향해 자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해답을 찾기 전에 이런 식의 시련은 모두 예상했던 수준이었어요. 이제 해답을 찾았으니까 실패는 없어요.”
“아니. 그래서 퇴사는 왜 한다는 건데?”
“집중을 해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대부업체서 3천 땡기고 담보 잡혀 있는 전셋집 정리해서 2천 정도 마련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본격적이 아니었고? 빌린 돈만 1억 2천에 그전에 네가 모아놨던 돈까지 다 날릴 동안은 본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야? 이거 생각보다 더 미쳐 있었구만 그래.”
“회사 다니면서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한진영은 핏발까지 세우고 이야기하는 김준하를 보고 생각했다.
‘독이 단단히 올랐구나.’
김준하같이 똑똑한 사람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머리가 좋고 냉철하기 때문에 당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오히려 김준하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김준하를 향해 날카롭게 세웠던 각을 잠시 눕혔다.
지금 상황에서 비난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아. 이제 대충 알았고…… 해결법을 찾아줄 테니까 날 따라와.”
“나는 다른 걸 원하는 게 아니고…… 괜찮다면 돈을 빌려줄 수 있나 싶어 물어본 거예요. 얼마 전에 받은 천만 원도 그렇고…… 듣기로는 성과급도 엄청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냥 돈만 빌려주면 돼요.”
“김준하 씨.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돈이 모자라서 잃고 있다고 생각하지? 돈만 충분하면 이까짓 주식판 네가 마음대로 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근데 너 이대로 회사 관두고 그 공식 믿고 돈 다 집어넣었다가는 마지막은 안 봐도 뻔해. 네가 똑똑한 거는 알겠는데 주식판 무시하지 말아라. 너보다 더 똑똑한 놈들이 달려들어서 돈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곳이니까.”
김준하의 최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한진영이었다.
고시원에서 홀로 지내다 결국 투신하여 생을 마감했던 김준하.
자기가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실패했을 때의 충격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으로 보였다.
자기에 대한 믿음이 커서 과감하게 투자했고, 투자 뒤에 찾아온 실패에 그대로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한진영은 몸을 살짝 일으켜 세운 뒤 김준하의 넥타이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윽!”
김준하는 한진영의 손에 끌려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한진영은 김준하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냥 너한테 돈을 줘서 잃은 돈을 메워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하면 너는 네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지. 맞지?”
“잠깐. 이것 좀…… 놓고…….”
“그러니 따라오라는 거야. 너의 그 공식 나부랭이하고 비교해 봐. 그러고 나서 네 공식이 더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면 그땐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켁켁.”
한진영이 잡아당겨서 숨이 막히는지 김준하는 한진영의 손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그러나 한진영의 손은 풀리지 않고 오히려 힘이 들어갔다.
“똑똑히 알아들어. 내가 너를 도와주는 이유는 너를 살리기 위해서야. 너는 주식 재능은 젬병이지만 계산 쪽으로는 특출난 놈이니까. 그런 네가 필요해서 내가 손을 내미는 거니까 너는 내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해. 이미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는 상태니까.”
꽈당!
한진영이 잡아당긴 넥타이를 손에서 풀자 그대로 김준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커피숍 구석에서 들려온 소리에 커피숍에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김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노력했다.
한진영은 얼굴을 가린 채 몸을 일으키는 김준하를 바라봤다.
“전셋집 빼지마. 대부업체에서 새롭게 받은 3천. 그거 가지고 나머지 돈을 다 까도록 만들어줄게. 그리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하지 마. 월급으로 지금까지 진 빚을 갚아야지. 그것마저 없으면 너는 빚에 허덕이다 죽어 나가게 될 테니까.”
“나는…….”
몸을 완전히 일으킨 김준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한진영의 윽박지르는 모습에 그대로 몸이 얼어붙고만 김준하였다.
“내 앞에서 헛소리 지껄이는 건 이제 그만해. 더는 못 들어주겠으니까. 3천으로 매달 상환할 400만 원을 만들려면 월 수익이 10% 이상이 되어야 해. 거기에 생활비 그리고 새롭게 받은 3천을 갚는 돈까지…… 월 수익 20%는 돼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건데 월 수익 20%가 우습게 보이는 거냐? 네가 월 수익 20%씩 10년…… 아니 5년만 그렇게 해도 넌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어. 알았냐? 이 헛똑똑아!”
한진영은 김준하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