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오너 리스크는 계산할 수 없다
사람들은 슬금슬금 김준하가 있는 쪽을 돌아봤다.
그들은 김준하와 함께 앉아있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저 사람은 왜 저기에 가 있는 거예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니까요. 놔두세요.”
“팀장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나요?”
“조만간 터질 거예요. 얼마 전까지는 부문장님 눈치 보느라 건드리지 않았는데…… 어제부터 일주일간 출장 가셨잖아요. 그러니까 부문장님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한번 제대로 잡으려고 하겠죠.”
“어휴~ 그럼 또 사무실 좀 시끄러워지겠네요.”
“그러니까요. 부문장님이 아끼는 거 보면 좀 가만히 놔두지…….”
“자기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냥 불똥이 우리한테까지 떨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한진영과 성현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성현수의 점점 끓어오르는 얼굴이 사람들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것도 모르는지 김준하의 곁에 의자까지 가져다 놓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왜 산 건데?”
“이건…… 그러니까…… 회사가 저평가라…….”
“누구 기준으로 저평가인데?”
“내 공식에 의하면…….”
“더는 내 앞에서 그 공식 이야기하지 말랬지.”
한진영은 김준하의 계좌를 까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왜 김준하가 그렇게 많은 돈을 잃게 됐는지 한눈에 파악이 됐다.
“네 공식이 좋고 저평가 종목을 잘 찾는 건 알겠어. 네 말대로 네 공식이 주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몰라. 그런데…….”
한진영은 김준하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공식을 쓰는 사람이 문제야. 알아?”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평가라고 공식이 답을 줬으면 믿고 기다려야지. 못 기다리겠지?”
“다른 더…… 좋은 저평가 종목이 검색돼서…….”
“그래서 갈아타면 먼저 타고 있던 건 날아가고…… 맞지?”
김준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는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만 계속 강해지고…… 그래. 넌 틀리지 않았어.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네 공식은 틀리지 않았지. 틀린 건 네 마음이지.”
한진영은 한숨을 내쉬고는 김준하에게 진지하게 조언했다.
“너는 성격적으로 매매하면 안 되는 사람이야.”
“난…… 잘할 수…… 있어요.”
“퍽이나. 버릇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아? 죽어도 못 고쳐.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계좌나 제대로 만들어놔. 이게 뭐냐? 이거 하고 이거 그리고 이것도…… 모두 팔아.”
“지금 팔면 손해인데…… 요”
“이봐라. 이러니까 사람이 문제라고 하는 거야. 손해를 용납하지 못하겠지? 그러니까 물리면 한도 끝도 없이 들고 가서 이 종목처럼 박살을 내놓지.”
한진영은 -40%를 찍고 있는 종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준이 공식이면 매매도 공식처럼 해. 손절 라인도 없이 그저 빨간색 아니면 안 팔겠다고 생고집을 부리니 계좌가 이딴 식이지. 어서 팔아.”
한진영은 김준하의 계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백화점의 층마다 갖가지 품목들을 쌓아놓고 있는 것과 같은 김준하의 계좌를 심플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전에 담았던 종목이 날아가는 거 보고 심란한 마음에 온갖 저평가라는 종목들은 다 모아놨으니 계좌가 이 난리지. 네 계좌가 뭔 쓰레기 집합소냐?”
“그래도 여기 있는 것들 전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종목들인데요?”
“야! 소외주는 시장에서 소외를 당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네가 자랑하는 공식에 기업 오너의 리스크를 계산해 넣을 수 있냐? 여기 이 회사. 여기 회사 사장이 해외 도박으로 회사자금 유용한 사실을 네 공식은 알아낼 수 있어?”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김준하가 손으로 가리킨 회사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그의 공식상에 회사 가치는 현재 주가의 4배에 달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계좌 속에 보여주는 수익률은 -30%였다.
오너가 회사 자금을 유용하여 불법 해외 도박을 했다는 뉴스가 터진 이후 내리막길을 가는 중이었다.
공식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주가와 순식간에 얻어맞은 손해에 김준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계좌에 손해가 더해지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정곡을 찌르는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는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아이작 뉴턴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그랬지.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마찬가지야. 오너 리스크를 네가 무슨 수로 계산하게? 소외주? 과평가 받는 곳에 올라타고 인간의 광기에 함께하는 편이 승률은 훨씬 높아. 어이구 별게 다 담겨있네. 이럴 거면 인덱스 펀드에나 투자하던가. 매수 종목 50개를 도대체 뭔 생각으로 다 담은 거냐?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손에 다 쥐고 싶다 이거냐?”
한진영은 김준하의 모니터를 연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좌를 정리해 나갔다.
한진영이 말로 계속 타박하고는 있었지만 사실 마음속 한편으로는 조금 놀라는 중이었다.
‘이걸 어떻게 찾았지?’
저평가로 분류되어 시장에서 조만간 주목받을 종목들이 김준하의 계좌에 여러 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바닥을 치고 있고 시총도 중소형주에 불과하여 시장에서 완벽히 소외를 당하던 종목들이었다.
알만한 사람이 아니면 모를 정도로 업종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종목들이 떡하니 김준하의 계좌에 담겨있으니 한진영으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공식인가 뭔가 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는데.’
한진영은 김준하를 향해 내뱉는 타박과는 달리 공식에 관심이 생겨났다.
“정리하고 조금만 손보면 제자리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정말이요?”
“내 말만 따르라고 했지? 내가 누구야? 신성증권에서 고객들 계좌 제일 잘 돌린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말만 들어.”
한진영이 김준하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을 때 그들이 있는 곳으로 성현수가 다가왔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왜 여기에 와서 이러고 있나?”
한진영은 성현수가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웃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게 잘난 사람이 왜 FICC 사업부에 왔냐 이 말이야. 계속 지점 영업에나 있지.”
한진영은 성현수의 말에 말없이 웃었다.
그 모습에 성현수는 한진영이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겠다고 생각하여 더 한진영을 비꼬았다.
“이제는 파생팀에까지 와서 다른 사람들 일 못 하게 방해를 하니 채권팀 팀장으로 내가 얼굴을 들지 못하겠어.”
“제가 부끄러워서요?”
“그래. 네가 우연히 두바이 채권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거 하나 했다고 이곳에서 펑펑 놀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런 모습 그냥 두고 못 봐.”
“그래서 자르시게요?”
“그럼. 실적이 모자란 사람은 잘라야지.”
한진영은 성현수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네요. 실적이 모자란 사람은 회사에 있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어쩌죠?”
“뭐가?”
“제 실적이 기준치 아래라고 하면 여기 있는 우리 팀 모든 직원은 물론이고 팀장님도 온전히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요.”
“그게 무슨 소리야?”
한진영이 조수아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조수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성현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저기…… 팀장님.”
“뭐야?”
이제 막 한진영과 신경전을 벌이려는데 조수아가 찾아와 짜증이 난 성현수였다.
조수아는 그런 성현수를 향해 매우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저기…… 금방 정리해서 팀장님에게 보고하려고 했는데…….”
“이게 뭔데?”
“한진영 씨가 이번에 새로 튼 채권 중개 리스트예요.”
“뭐라고?”
성현수는 조수아의 말에 놀란 얼굴로 서류를 내려다봤다.
한진영은 그런 성현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거참. 조금만 기다리시지. 다 준비했는데…… 그건 그렇고 실적이 안되는 사람들을 정리하자는 건 저도 찬성합니다. 제대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리만 지키는 건 저도 못 보겠으니까요.”
“너…… 너…….”
성현수는 중개한 날짜를 확인하고 한진영이 일부러 자기가 화를 내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현수는 조수아를 훽하고 돌아봤다.
조수아가 정리를 늦게 하여 이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조수아 선배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진짜로 할 일이 많아 늦게 정리한 거니까요. 그건 그렇고 실적으로 팀을 정리하는 건 위에부터 하는 게 어떨까요? 팀장님부터 말입니다. 팀장님이 솔선수범해서 본인 실적을 공개하고 기준을 잡으신다면 다른 팀원들도 군소리하지 못할 테니까요.”
성현수는 한진영의 말에 속이 부글거렸다.
그러나 한진영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이 중개한 채권 규모가 자기가 두 달 동안 해도 채우지 못할 규모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이렇게 쉽게 실적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흥지점에서 가지고 온 기풍철강 이정훈 회장과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의 계좌가 있어서였다.
사람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던 100억 규모의 계좌.
이것을 들고온 한진영이었기에 쉽게 실적을 채울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성현수는 한진영이 맨땅에서 채권 중개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신성증권에 연락하여 채권 거래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꽉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최근 중개 요청을 받은 것 중에 한진영에게 돌린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한진영의 실적은 지난 두바이 관련 채권이 전부였고, 그 이후에는 탱자탱자 노느라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조수아에게서 서류를 받을 때까지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실적으로 정리 좀 할까요?”
한진영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현수를 향해 아래서 위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성현수가 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한진영은 그런 성현수의 뒤통수를 대고 소리쳤다.
“실적이 모자라는 사람은 잘라야 한다는 말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부문장님이 돌아오시면 건의하도록 할 테니 팀장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팀장님의 말씀에 백번이고 동감하는 입장이니까요.”
채권팀의 팀원들은 자리로 돌아가는 성현수를 노려봤다.
괜히 한진영에게 시비를 터는 바람에 자기네들에게도 불똥이 튈지도 모르게 됐기 때문이다.
성현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내가 성현수를 모르지 않지.”
이미 지난 시절 겪어봤던 성현수였다.
김정대 부문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성현수가 놓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중개 요청이 들어오는 것이 자기 쪽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실적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게 생겼구나.’
한진영은 시흥지점에서 가지고 넘어온 계좌들을 이용하여 실적을 쌓았다.
그리고 조수아에게 실적을 팀장에게 잠시만 올리지 말고 기다리라고 부탁한 뒤 성현수가 찾아오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성현수를 보며 한진영은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런 한진영과 달리 조수아는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팀장님이 저에게 뭐라고 하면 어떡해요.”
“걱정 마세요. 뭐라고 할 건 없습니다. 그냥 진짜로 처리할 게 많아 늦었다고 우기세요. 그럼 성 팀장도 할 말이 없을 테니까요.”
한진영의 말에도 조수아의 울상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최근에 정리한 북광건설은 어떻습니까? 계속 가지고 갔으면 큰일 날 뻔했지요?”
조수아는 북광건설이라는 말이 나오자 급히 울상이었던 표정을 바꿨다.
“네.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아플 뻔했어요.”
“아프기만 했겠습니까? 살이 찢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한진영이 조수아에게 그냥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주식상담을 들어주는 것을 핑계로 부탁한 것이었다.
조수아는 북광건설이라는 말이 왜 나온 지 알아들었다.
서로 주고받은 것이 있는 만큼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조수아는 더는 한진영에게 투덜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돌렸다.
그냥 성현수가 뭐라고 하든 간에 발뺌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조수아였다.
한바탕 소란이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이자 한진영은 다시 김준하를 닦달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한진영이 몸을 돌라 김준하의 계좌를 다시 확인했다.
“야! 너 정리 안 하고 뭐 했어?”
“아니. 조금 소란스러워서요.”
“소란은 너하고 상관도 없는 거였는데 왜 네가 신경 써? 빨리 정리해.”
손이 나가지 않았는지 한진영이 몇 번을 말하고 나서야 매도 버튼을 누르는 김준하였다.
그렇게 다시 김준하의 계좌를 정리하고 있을 때 한진영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한진영은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김 비서님. 어쩐 일이십니까?”
-진영 씨가 부탁한 일의 시간이 정해져서 연락드렸습니다.
“시간이 정해졌다고요?”
한진영은 김영철의 전화를 반갑게 받으면서도 김준하의 계좌를 손가락질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통화하면서도 확인하겠다는 한진영의 태도에 김준하는 눈물을 머금고 계좌를 정리해 나갔다.
한진영은 김준하가 매도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김영철에게 말했다.
“언제입니까?”
-사흘 뒤 버스톤호텔 영빈관에서 결혼식이 치러질 겁니다. 그때 잠시 시간을 내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가장 빠른 시간을 잡다 보니 억지로 자리를 끼워 만드셨나 봅니다.”
-아무래도 그런 감이 있습니다. 불편하시면…….
“아닙니다. 저야 뭐 덕분에 식사도 하고 좋지요. 대신 세 자리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셋이요?
“네. 셋이요.”
한진영은 매도하는 자기 계좌 속의 주식을 아까워하는 김준하를 보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