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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64화 (64/650)

64화 너희가 내 명함이고 계약서이다)

이성우는 주차장에 서서 한진영을 기다렸다.

금방 도착한다는 전화에 먼저 들어가지 않은 채 주차장에서 한진영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매끈한 모습의 스포츠카가 이성우 옆자리의 주차 칸에 들어왔다.

이성우가 새로 들어온 스포츠카에 시선을 줬을 때 시동이 꺼진 차의 운전석에서는 한진영이 내렸다.

그리고 조수석에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김준하가 내렸다.

이성우는 내리는 사람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는 뭐 차를 또 바꿨냐?”

새로 차를 뽑았다며 시흥지점의 직원들과 함께 한진영의 차를 둘러봤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던 이성우였다.

그런 한진영이 이번에는 다른 차를 끌고 오자 이성우는 신기한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보고 말했다.

“너 차 바꾼 지 얼마 안 됐잖아.”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지. 차는 우리의 얼굴과 마찬가지라고 말이야. 내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아야 나한테 사람들이 돈을 맡기는 거라고…… 거지같이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누가 돈을 맡기겠냐.”

“그래도…… 차라리 이럴 거 한 방에 람보르기니로 가지? 페라리야 들어오는데 시간이 걸린다지만, 람보르기니는 그래도 페라리보다 시간이 덜 걸리잖아.”

“람보르기니 타고 시내 주행하는 거 아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곁에 바짝 다가가 물었다.

“꼭 시내 주행 해본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너 몰아봤어?”

“왜 이러세요. 다른 사람이 보면 네가 아니라 내가 재벌 2세인 줄 알겠다.”

“지금 돈 벌어들이는 거로만 봐서는 네가 재벌 2세 맞지 뭐. 그래서? 어떠냐? 좌석이 많이 딱딱하다고 하던데…….”

“그건 직접 사서 타보고…….”

한진영은 가까이 다가온 이성우를 잠시 밀어낸 후 김준하를 소개했다.

“처음 보지? 인사해. 이쪽은 나하고 함께 근무하는 김준하. 그리고 이쪽은 이전 지점에서 같이 일했던 이성우. 둘이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까 서로 인사하고 잘 지내라.”

이성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 그래도 진영이한테…… 왜 그래요?”

이성우의 시선을 피하고 땅만 바라본 채 천천히 몸을 돌리는 김준하였다.

이성우는 인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김준하에게서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이래. 네가 이해해라.”

“원래…… 이래?”

이성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진영을 향해 입 모양으로 말했다.

‘괜찮아? 이상한 사람 아니야?’

‘괜찮아. 이상한 건 맞고…….’

한진영은 웃으며 김준하의 어깨를 잡고 이성우 쪽으로 김준하의 몸을 억지로 틀었다.

“자 얼굴 똑바로 보고 인사해.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텐데 처음부터 이러면 계속 힘들어져.”

한진영은 김준하의 몸을 이성우 쪽으로 향하게 한 후 김준하의 턱을 붙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성우는 이렇게까지 인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이러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여 다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진영이 친구 이성우라고 해요.”

“네…… 안녀……ㅇ 하…… 세요. 저…….”

“김준하. 이름은 김준하야. 자자. 악수. 악수해.”

김준하의 자기소개를 듣다가 뒤로 넘어갈 것 같아 한진영이 직접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을 잡아 악수를 시키고는 손뼉을 쳤다.

“우리 셋 모두 동기니까. 편하게 지내자. 성우야. 편하게 이야기해도 돼.”

“그럴까? 나야 뭐 그게 편하기는 한데…… 여기…… 는 괜찮나?”

“괜찮아. 괜찮아. 그렇지?”

한진영이 김준하의 어깨를 두르고 묻자 김준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그래. 준하도 괜찮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다 괜찮은 거야. 그렇지. 성우야?”

“어? 어……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광경이지만 한진영이 괜찮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한 이성우였다.

“자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 잊어버리지 말고 잘하자.”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가 뭔데? 난 듣지 못했어.”

“그래? 듣지 못했어? 그럼 알려줄게.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대한정유 회장을 꼬시기 위해서다.”

“어?”

이성우는 눈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누굴 꼬셔?”

“대한정유 회장.”

“대한정유 회장을 꼬셔? 지금 여기 예식의 혼주인 대한정유 회장을?”

이성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버스톤호텔 영빈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차장에 수많은 고급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은 들여보내 주지 않았기에 이 차들은 대부분 오늘 있을 예식에 초대를 받아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있을 예식의 신부가 바로 대한정유 회장의 장녀였다.

“요즘 시대가 많이 바뀌어 결혼 당사자들이 주인공이 됐다지만 옛날부터 결혼의 주인공은 결혼하는 사람들의 부모님이었어. 그래서 혼주라고 불렀던 거고…… 그런 사람을 지금 결혼식에서 어떻게 꼬시겠다는 거야?”

이성우가 놀란 얼굴로 한진영에게 말하자 한진영이 비어있는 왼팔을 들어 이성우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왼쪽과 오른쪽에 이성우와 김준하를 양팔에 낀 한진영은 조금 뒤 결혼식이 펼쳐질 영빈관을 바라본 채 말했다.

“너희가 있으니까 꼬시는 게 가능하지. 나 혼자라면 못 할 거야.”

“우리? 우리가 어떻게?”

“너희가 내 명함과 계약서가 될 테니까 두고 봐. 가자.”

한진영은 양쪽에 두 사람을 끼고 영빈관을 향해 걸어 나갔다.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붙잡혀 걸어가며 물었다.

“그런데 꼬셔서 뭐 하려고?”

“뭐하기는 채권하고 파생상품, 달러 등등 팔아먹을 수 있는 건 다 팔아먹어야지. 내가 FICC에서 일하는 거 잊었냐? 채권만 팔아먹어서는 나도 감질나. 할 수 있을 때 큰 거 빵빵 터트려서 나도 한몫 단단히 땡기려고 그런다.”

“나는?”

이성우는 한진영과 마주 볼 것처럼 얼굴을 돌리고 물었다.

“너야 팔아먹을 수 있는 거 죄다 팔아먹은 뒤에 받는 성과급과 지위 등등으로 보상을 받는다지만 나는? 나는 얻는 게 뭔데?”

“너 잊었냐?”

한진영은 이성우를 빤히 쳐다보고 말했다.

“네가 성공할 자리는 신성증권이 아니야.”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자기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보고 만족해하며 이성우의 등을 두드렸다.

“내가 자리를 옮겼다고 잊어버리면 안 된다. 네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매일 생각하면서 지내. 그래야 지금처럼 이상한 생각하지 않지.”

“그래. 나도 깜빡했다.”

이성우가 한진영의 말을 알아듣자 이번에는 김준하가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저는…… 요?”

어디로 오는지도 모르고 억지로 한진영에게 붙잡혀 여기까지 온 김준하였다.

차에 올라탈 때부터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성우가 먼저 운을 떼고 한진영이 차분히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고 용기가 생겨 물어봤다.

“저는 뭘 얻는데요?”

한진영은 이번에는 김준하를 돌아보고 대답했다.

“네 능력을 증명받을 수 있지.”

“제 능력이요?”

“그래. 지금까지 너도 확신이 없지? 네가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아니. 확신이 없는 게 아니라 분명 너 스스로 너는 지금 있는 자리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야. 내 말이 맞지?”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 말 없는 것이 바로 수긍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 한진영이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퇴사를 결심한 거겠지. 물론 전업을 통해 사람들과 엮이지 않고 돈을 벌어볼 생각이 더 컸겠지만, 지금 자리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퇴사의 이유 중 하나였을 거야. 내가 그 생각을 깨주도록 해줄게. 너는 지금 하는 일과 매우 매우 어울리는 사람이야.”

“어떻게 깨준다는 건데요?”

“내가 팔아먹을 상품들을 네가 설계해봐.”

“제가…… 설계하라고요?”

“그래. 조금 뒤에 나와 대한정유 회장과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머릿속으로 상품을 계산해. 어떤 것과 어떤 것을 더하고 어떤 것을 빼느냐. 그리고 수익률과 만기를 비롯한 대한정유의 회장이 흠뻑 빠질만한 상품을 네가 설계하는 거야. 그리고 그게 제대로 먹히면…… 너는 지금 네가 있는 곳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게 증명이 되는 거야.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김준하는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상상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일하며 제대로 된 재미라고는 느껴보지 못했던 김준하였다.

그러나 한진영의 말대로 대한정유가 좋아할 만한 상품을 자기가 설계하고 먹히는 모습을 본다면 회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김준하는 한진영을 향해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너도 마음에 드나 보구나. 자 그럼 다 됐지? 가보자. 예식장에는 늦지 않게 가는 게 손님으로서의 예의지.”

한진영은 김준하와 이성우의 등을 두드린 후 먼저 앞서 영빈관을 향해 걸어갔다.

***

대한정유를 정점으로 하여 에너지와 화학 사업을 영위하는 대한그룹은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그룹이었다.

연 매출 15조 중 정유 사업으로 12조, 석유화학 그리고 윤활유 등 나머지 사업으로 3조를 올리는 거대한 회사였다.

그리고 수출 비중이 50%가 넘어가며 수출 효자 기업으로도 유명한 곳이 대한정유였다.

이런 곳의 장녀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하객으로 찾아왔다.

대한정유와 알게 모르게 엮여있는 기업가들뿐만 아니라 정관계 사람들까지 참석하여 식장은 북적이고 있었다.

“저기 저 사람은 신나라당의 원내대표 아니에요?”

“저기 저분은 기획재정부 장관님 같은데요? 어. 저기 저분은 강성그룹…… 회장님?”

김준하는 티비 속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보게 되어 그런 것인지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아져 있었다.

연신 한진영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가리키자 결국 보다 못한 이성우가 한진영을 대신하여 나섰다.

“좀 가만히 있어. 왜 이래? 창피하게…….”

“저는 그게 아니라 너무 신기해서…….”

“네가 자꾸 그러면 사람들이 널 신기해할 거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이성우는 김준하를 진정시키고 고개를 계속 돌렸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등을 한 대 쳤다.

“아야!”

“너야말로 가만히 있어. 그렇게 고개 돌리다가는 공중에 뜨겠다. 도대체 너는 왜 그러는데? 네가 저 사람들이 신기해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아~ 회장님 오신다고 했냐?”

“어. 아버지 오신다고 했어.”

“그래. 오시겠지. 그런데…… 회장님은 너 오는 줄 모르고?”

“모르실 거야. 여기 오신다는 이야기도 비서실장 아저씨에게 들어서 안 거니까.”

“혹시 동생하고 둘이서만 이곳에 오신다고 한 거냐?”

“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가만히 곁에서 듣던 김준하는 한진영에게 궁금한 눈으로 쳐다봤다.

한진영은 물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 나오는 김준하의 눈빛에 웃으며 손가락으로 이성우를 가리켰다.

“얘 기풍철강 아들이야.”

“네?”

김준하는 깜짝 놀란 얼굴로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그렇게 봐? 전혀 그렇게 안 보여서 그러는 거야?”

김준하는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진영 씨가…… 더 어울리는…… 좀 외모적으로는 없어 보이게 생겼는데…….”

“나 얘 때려도 되냐?”

이성우가 김준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웃으며 그런 이성우와 김준하를 두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오셨습니까?”

“아 그래요? 한진영 씨. 이거 참…… 이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지만…… 고마워요.”

정병선이 다가온 한진영의 손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정병선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을 자세히 살폈다.

누구기에 정병선이 이렇게까지 반가워하고 직접 고맙다고까지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저는 잠시…….”

정병선은 이야기하던 사람들을 향해 가볍게 인사하고는 한진영을 끌고 한쪽으로 걸어갔다.

“조금 전 만난 사람들과는 차차 인사를 시켜주도록 할게요. 지금은 우선 대한정유 회장님과의 일이 우선이니까요.”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분들과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으니 소개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누군지 알고 있어요?”

“벽해건설 사장님과 동흥리조트 사장님 그리고 수선토건 사장님 아니었습니까?”

“그걸…… 대단하네요. 저 사람들과 알고 있던 사이에요?”

“제가 있는 곳이 어딘지 생각해보십시오.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이거 참…….”

정병선은 다시 한번 한진영을 향해 혀를 내둘렀다.

외부로 잘 안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언론을 통해 자그마한 사진이 공개되고는 했지만, 그것도 몇 년 혹은 십여 년에 한 번씩 공개되는 사진이기에 실물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그런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본 한진영이었다.

정병선은 한진영이 업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병선의 생각과 달리 한진영이 이렇게 한눈에 사람들을 알아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지난 시절의 경험 때문이었다.

‘저 사람들 죄다 리베이트 건에 휩쓸려 깜방에 사이좋게 들어간 사이지.’

한진영은 새로운 곳에 온 것을 알게 된 이후 함께 가까이해도 되는 사람과 가까이하면 안 되는 사람들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정병선과 같은 사람과 친해지게 된 것이었으며 이성우와 김준하 등을 친구로 두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정병선 등과 반대에 자리한 이들이 바로 조금 전 정병선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괜히 안면을 트면 이상한 꼬투리를 잡힐 사람들이야.’

마이너스의 기운을 물씬물씬 풍기는 그들에게서 한진영과 정병선은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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