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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72화 (72/650)

72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는 일

한진영은 달력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김준하를 향해 물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뭐하냐?”

“다음 주 목요일이면…… 회사에 있겠죠? 그건 왜요?”

김준하의 대답에 한진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회사에 있는 건 나도 알고…… 그날 별다른 일 없냐는 걸 물어보는 거잖아.”

“없죠. 그날 무슨 일이 있겠어요?”

“그래. 없는 게 당연하겠지?”

한진영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고는 김준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그날 너 휴가 내고 우리 집에 와.”

“휴가 내고…… 한진영 씨 집에요? 왜요?”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라는 게 이상한 김준하였다.

그런데 휴가를 내는 것도 모자라 집에 오라는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한진영은 그런 김준하의 행동에 혀를 차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해. 이게 다 너 때문이니까.”

“저 때문이요?”

“그래. 너 때문 아니면 발 들여놓지 않으려 하는 곳에 내가 발을 들이밀려고 하겠냐? 어쨌든 잔소리 말고 휴가 내고 그날 9시까지 우리 집으로 와. 공인인증서 가지고 오는 것도 잊지 말고…….”

“공인인증서는 또 왜요?”

“오면 알아. 에휴…… 하여튼 내가 이렇게 고생한 거 다 이자까지 쳐서 너한테서 뽑아 먹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김준하는 한진영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진영의 곁에서 지켜본 결과 그의 말을 따랐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진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한진영은 자리로 돌아가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안 하려고 했는데…….”

한진영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하게 되면 돈을 확실하게 벌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확실하게 돈을 버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하기에 찜찜해서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됐으니 할 수 없지. 뭐 이 방법이 제일 확실하기는 하니까.”

한진영은 자리로 돌아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떠올려봤다.

11월 만기일에 벌어지는 사고.

올해와 내년 모두 11월 만기일에 사고가 터지게 된다는 것을 한진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보다 내년에 터지는 사고가 더 컸다.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내년이 더 크고 강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올해 벌어지는 사고가 작은 거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내년에 벌어지는 사고가 워낙에 크고 파괴력이 있어서 그렇지 올해 벌어지는 사고도 만만치가 않았다.

게다가 내년에 벌어지는 사고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올해 벌어진 일이 내년을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었냐는 말이 나올만한 일이었다.

옵션 시장에서 벌어진 두 번의 사고.

내년은 지수옵션 시장에서 사고가 터지는 것이었고, 올해는 개별주식 옵션 시장에서 사고가 터지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바로 이 개별옵션 시장에서 터지는 사고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 했다.

“급한 불인 4천만 원만 벌면 되겠지?”

한진영은 가만히 사고가 터질 종목을 살피며 기억을 떠올렸다.

***

만기일에는 통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하여 마녀의 날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세 마녀니 네 마녀니 때에 따라서 부르는 숫자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마녀가 붙는 것만큼은 언제나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만기일은 큰일 없이 지나가고는 했다.

큰일이 벌어지기에는 시장참여자가 많았고, 감시하는 눈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그걸 기억하여 만기일에는 대형사고가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날이 결국 찾아왔다.

“어서 와.”

한진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서는 김준하를 위해 문을 열어줬다.

김준하는 신발장에서부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집안을 살폈다.

“집이 너무 좋네요.”

“얼른 들어와. 우리 할 일 많으니까.”

“네? 네.”

신발을 급히 벗은 김준하는 한진영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며 한진영의 집을 살폈다.

“혼자 살기에 크지 않아요?”

“아무리 커도 난 혼자 살 거다. 탐내지 마.”

“그래서 물어본 거 아니에요.”

“내 귀에는 네가 하는 이야기가 다 그렇게 들려. 그러니까 속으로만 생각해.”

한진영의 타박에 김준하는 샐쭉하게 입을 내밀고 다시 집을 살폈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이라 그런지 내부는 깔끔 그 자체였다.

요새 말하는 북유럽식 어쩌고 저쩌고가 이런 분위기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구부터 가전제품까지 집에 맞춘 듯한 분위기에 김준하는 이곳이 자기 집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 되겠다. 그만 봐. 닳겠어.”

“제가 좀 본다고 닳는다는 말은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표정을 보니까 닳는다는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그만 보고 이리 들어와. 공인인증서 USB에 담아 왔지?”

“네. 담아왔어요.”

김준하는 컴퓨터가 놓여있는 방에 들어가 바지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졌다.

그리고 자그마한 USB를 한진영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공인인증서는 왜요?”

“여기서 매매해야 하니까.”

“여기서 매매를 한다고요?”

“그래. 내가 보는 앞에서…… 그래서 내가 너 부른 거야.”

“회사에서도 가능한데…… 왜 굳이 휴가까지 내서 집에 와야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 되니까. 그래서 말 나온 김에 네 다짐부터 받아야겠다.”

“다짐이요?”

“그래.”

김준하에게 받은 USB를 컴퓨터에 꽂은 한진영은 김준하 앞에 서서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말했다.

“오늘 일은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돼.”

“이유를 물어봐도 되나요?”

“그래. 이유도 알려줄게. 다른 사람들이 알면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까 봐 말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어떤 의심이요?”

“한패가 아니냐는…… 정확한 건 차차 알려줄 테니까. 나하고 약속부터 해. 어서.”

김준하는 한진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큰 소리로 다짐했다.

“어디에 가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그래. 그렇게 약속했으니 오늘 네가 최소한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해줄게.”

한진영은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신성증권의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는 의자를 돌려 김준하를 올려다봤다.

“내가 왜 너를 우리 집으로 부른 줄 알아? 너한테 알려주고 너보고 하라고 해도 되는데 말이야.”

“아니요. 저도 궁금했어요.”

김준하도 매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문제였다.

알려주고 하라고 해도 됐을 텐데 굳이 불러서 눈앞에서 하게 만드는 이유를 모르게는 김준하였다.

“너한테 하라고 해도 돼. 그런데 사람이란 다들 작건 크건 욕심이란 괴물을 품고 있거든. 앉아.”

한진영은 김준하를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김준하의 어깨를 양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그 욕심을 통제하는 건 쉽지가 않아. 특히 너처럼 코너에 몰려 있는 사람은 더욱 심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너의 빚을 모두 정리할 수도 있어.”

김준하는 빚을 모두 정리할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올려다보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김준하의 머리를 잡은 채 고개가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서 네 아이디로 접속해.”

한진영은 김준하가 아이디와 비밀번호 그리고 공인인증서를 통해 HTS에 접속하는 것을 확인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는 꼬리가 밟힐 수도 있어. 그리고 밟힌 꼬리를 확인한 뒤 의심받게 될 테고…… 조사 과정을 지나게 되면 관련 없다는 결과를 받아들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받을 불이익을 생각했을 때 아예 조사를 받지 않는 게 좋아.”

“도대체 뭐길래 조사까지 받는다는 거예요?”

“그건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자 접속했어?”

“네.”

화면은 아무 세팅도 되어 있지 않은 기본 화면이었다.

여러 차트를 비롯하여 관심 종목, 뉴스, 주체별 포지션 등 무엇도 화면에 떠 있는 게 없었다.

한진영은 그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개별주식 옵션 창을 띄워.”

“네? 뭘 띄우라고요?”

“개별주식 옵션 창. 어서. 장 시작하려고 한다.”

한진영의 지시에 김준하는 HTS에서 개별주식 옵션 탭을 찾았다.

평소 잘 건드리지 않는 곳이었기에 탭이 어디 있는지도 생소하기만 했다.

한진영은 어디에 있는지 잘 찾지 못하는 김준하를 위해 손가락으로 직접 탭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눈앞에서 내 컨트롤 하에서만 하게 하려고 너를 집에 부른 거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게 되면 네 욕심이 너를 끌고 모든 빚을 털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속삭일 테니까.”

김준하는 개별주식 옵션 선택 창이 떠진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기서 민국은행을 선택해.”

한진영의 지시를 따라 민국은행을 선택하자 옵션 종류들이 쭉 화면에 떴다.

김준하는 고개를 살짝 틀어 한진영을 돌아보고 물었다.

“근데 개별주식 옵션을 매매하려고 지금 이걸 띄운 거예요?”

“그래. 우린 여기서 돈을 벌 거야.”

“여기는…… 사람들이 잘 안 하잖아요. 기관들도 거래를 잘 안 하는 곳이라고 하던데…….”

“그래. 유동성도 없고 거래자들도 많지가 않아 그래서 죽어있는 시장이나 마찬가지지.”

개별주식 선물의 경우에는 그래도 거래자들을 간혹가다 볼 수 있었다.

특히 삼선전자의 경우에는 만족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는 했다.

그러나 그 외의 종목들은 거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개별주식 옵션의 경우에는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죽어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장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다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시장이 죽어있는 곳이야. 거래 종목도 겨우 7종목에 불과하고 말이야. 하지만 구색은 다 갖추어져 있어. 보면 옵션도 호가마다 잘 정리되어 있잖아. 거래가 안 돼서 그렇지.”

민국은행의 현재 주가인 38,000원을 기준으로 하여 호가 단위 1,000원마다 콜옵션과 풋옵션이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거래가 되지 않다뿐이지 있을 건 다 있는 모습이었다.

일반적으로 지수 옵션의 시장과 거래 방식 또한 똑같았다.

단지 지수 옵션과 다른 것은 기준이 KP200이냐 개별주식이냐만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해외에서는 수십 년 동안 활발하게 거래를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즐겨 거래하는 곳이 바로 이 시장이었다.

특히, 개별주식에 대한 헤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래자들은 이런 개별주식 옵션을 매매하는 것을 선호했다.

민국은행 매수자가 민국은행 옵션을 통해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의미에서 시범적으로 개별주식 옵션 시장을 열었고 점차 이 시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옵션시장을 헤지의 개념이 아닌 투기의 장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중이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자 민국은행 풋옵션을 38,000원부터 35,000원까지 쭉 펼쳐서 거둬들일 거야. 쭉쭉 걸어서 사들여.”

“얼마요? 35,000원이요?”

“그래.”

“거기는…… 결제가 안 되는 구역이잖아요. 지금부터 8%가 빠져야 하는 자리인데…… 지금 거래도 최하가에 거래가 되고 있어요.”

“그래. 그러니까 거둬들여. 대신…… 마구 사지마. 최대한 티가 나지 않게…… 걸어서 받아먹는 작전으로 나가야 해.”

“얼마나 사요?”

“얼마나 사는지 지금 따질 필요 없어. 어서 걸어놔. 오늘 온종일 이 작업을 할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고…….”

지금 거래하는 옵션 가격이 타당한지 계산할 때 흔히 과거 21일간의 통계치를 이야기하는 역사적 변동성(HV)과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는 내재적 변동성(IV)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래서 이 기준들을 계산한 뒤 나온 값과 현재 가격을 따져보아 거래되는 옵션에 프리미엄이 얼마나 붙었는지를 따졌다.

그러나 이런 모든 계산이 개별주식 옵션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거래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에는 더욱 계산과는 다른 가격이 개별주식 옵션 시장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이거…… 100원인데…….”

“100원에 사. 뭘 고민해?”

“아까워서 그렇죠. 지금 38,000원인 민국은행이 36,000원까지 빠질 일이 없어 보여서요. 그럼 100원 날리는 거잖아요. 이건 100원도 아까운 가격이에요.”

“뭐가 아까워? 팔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거야말로 감사한 거지. 만 주 질러.”

“만 주요? 만 주면…… 100만 원어치를 사란 말씀이세요? 몇 시간 뒤에 휴지가 될 것을요? 아니. 휴지는 똥 닦는 데 쓸 수라도 있지. 이건 말 그대로 0원 되는 거 아니에요?”

“그래. 너처럼 결제 안 된다고 생각해서 매도 치는 애들 많다. 딱 좋아.”

이렇게 거래가 씨가 마른 개별주식 옵션 시장에서도 딱 하루만은 거래가 활발히 벌어지고는 했다.

옵션만기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러나 거래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모든 종목이 거래가 느는 것은 아니었다.

결제가 안 될 가능성이 높은 것들 위주로 거래자들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바로 민국은행 38,000원 이하의 풋옵션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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