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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83화 (83/650)

83화 끌어 올린 낚싯대

한진영과 김정대는 사장실이 있는 맨 꼭대기 층을 향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에 둘만이 남게 되자 김정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왜 우리 회사에 온 건지 알고 있어?”

“네.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김정대에게 대충이라며 이야기했지만 사실 한진영은 지금 사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지난 시절에 한 번 겪어봤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신성증권의 모기업은 증권업을 비롯하여 금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신성증권에 대한 지배력만 유지한 채 자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던 신성증권의 모기업이 얼마 전 신성증권의 매각을 진행했었다.

그 매각 대상 중의 하나가 기풍철강이었다.

하지만 매각 진행과 함께 찾아온 서브프라임 사태로 매각은 어려움을 겪고 말았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 불안 속에서 증권사를 품는다는 것에 많은 그룹이 난색을 보인 것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매수 의사를 타진해왔던 기풍철강마저 발을 빼며 결국 매각은 불발되고 말았다.

그러자 신성증권의 본사에서 본격적으로 신성증권의 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순서로 신성증권의 사장을 모기업의 임원으로 내려 앉힌 것이었다.

김정대를 비롯하여 기존 직원들은 이런 처사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소한 같은 업계의 사람을 앉히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러지 않는 모기업에 실망을 가지는 직원도 생겨났다.

그러나 모기업은 그런 직원들의 불만보다 매각 실패를 더욱 크게 생각하는 듯했다.

어떻게든 매각을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그런 의미로 내려온 사람이 바로 지금의 사장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도록 해. 그냥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실 테니까.”

사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불안감을 지우지 못한 김정대였다.

사장이 기분이 좋아 부른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무슨 소리를 할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걱정이 이해되기도 했다.

처음 사장의 말을 듣는다면 당황할만한 이야기들을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런 사장과의 대화가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시절 몇 번의 대화로 사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장이 할 말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한진영이었다.

잘만 구슬리면 한진영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한진영의 생각을 모르는 김정대는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한진영에게 주의의 말을 건넸다.

“절대 기분 나빠하면 안 돼. 알았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분이 나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니야. 그게…… 생각과는 다를 수가 있어.”

“알겠습니다. 절대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김정대는 몇 번의 다짐을 받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멈춰 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사장실 앞에 도착한 김정대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정대가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했다.

“사장님. TF팀의 한진영 팀장과 함께 왔습니다.”

“오~ 한진영 팀장. 반가워요.”

신성증권의 남원석 사장은 한진영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한진영을 위아래로 살폈다.

“이제 사원에 불과해서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젊군요. 김 부문장님. 안 그렇습니까?”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젊은 친구가 큰일을 해냈습니다. 나이 든 저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으니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김 부문장님께 이야기 듣고 크게 놀랐습니다. 한진영 씨 덕분에 우리 회사에 큰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요. 그리고 이걸 기회로 큰 소득도 얻었다고요? 정말로 장합니다. 장해요.”

남원석은 한진영의 손을 잡고 격하게 위아래로 흔든 뒤 소파로 한진영을 끌고 갔다.

그리고 직접 자리에 앉히고는 한진영의 찻잔에 직접 차를 따라줬다.

“새벽에 경제수석님께서 전화를 직접 하셨습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한진영의 곁에 앉은 김정대가 남원석의 말에 고개를 쭉 뽑아 올린 채 물었다.

남원석은 한진영에 이어 김정대의 찻잔에도 차를 따르며 대답했다.

“우리 쪽에 노출된 채권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는 전화였습니다.”

찻잔에 차를 다 따른 남원석은 자리에 앉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부문장님께서 몇 번이나 임원 회의에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남유럽 쪽 채권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채권을 팔면 팔라고 했지 사라고 하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개별적으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도 없다고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뭐라고 하긴요? 잘했다고 칭찬하시지요. 덕분에 어깨 좀 펴고 전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조만간 증권사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신다는데 그곳에 가서 다른 곳 사장들의 축 늘어진 모습을 보려니 벌써 그 시간이 기다려진답니다.”

기분 좋은 얼굴의 남원석은 한진영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일을 미리 예견하고 진행했는지 말입니다.”

남원석은 가만히 한진영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한진영을 살피던 남원석이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정대는 남원석이 ‘그런데’라는 말을 꺼내자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원석이 ‘그런데’라는 말을 한 이후에 꺼내는 말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의 모습은 편안하기만 했다.

한진영은 ‘그런데’라는 말 뒤에 나올 말이 어떤 말인지 대충 예상했다.

그래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남원석은 예상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대한그룹에 판 그 상품 말입니다. 그거라 대한그룹이 엄청난 수익을 올릴 거라 예상된다던데…… 그걸 우리가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까? 그렇게 확신이 있었다면 파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사고 보유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저기…… 사장님.”

김정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남원석 사장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나서서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괜찮다는 듯이 김정대 부문장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직접 대답했다.

“안 그래도 저도 많이 생각한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생각해볼 만한 문제가 맞지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매우 아쉽습니다. 우리가 직접 사서 보유했다면 얼마나 큰 이익을 얻었을까 하고요.”

“그렇습니다. 저도 막상 경제수석님께 전화를 받고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미리 알고 있었다면 비워놓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한그룹의 그 상품을 우리가 들고 있었으면 하고 말입니다.”

한진영이 맞장구를 치자 기분이 좋았던지 남원석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듣기로는 대한그룹이 불안감에 안전하게 만들어달라 요구해서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우리였다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가 보유하는 거라면 수익을 노렸을 겁니다. 일방적인 포지션을 구축해서 그야말로 수익만을 바라봤을 겁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아깝다는 겁니다.”

김정대는 남원석의 말도 안 되는 말에 맞장구치는 한진영을 말없이 쳐다봤다.

왜 이런 말에 대꾸해주는지 이해하지 못한 김정대 부문장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남원석보다 더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2,500억 원에 달하는 상품을 팔아먹고 얻는 수익은 수수료 125억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대한그룹은 우리의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약 1,000억의 수익을 예상하지요. 얼마나 아깝습니까? 우리 증권사의 한 해 영업이익이 1,000억이 안 되는데…….”

한진영은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남원석은 그런 한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안 한 겁니까? 무서워서 그런 겁니까?”

“무섭긴요.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직접 보유하는 거라면 포지션을 더 과감하게 잡았을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요? 왜 안 한 겁니까?”

한진영의 눈에 남원석은 미끼를 물고 세차게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제 물고기가 잡힌 낚싯대를 잡아채 물 위로 끌어 올릴 때가 됐음을 느꼈다.

한진영은 자세를 고쳐 앉고 남원석을 똑바로 바라본 채 대답했다.

“저희에겐 2,500억이 없으니까요.”

한진영은 김정대를 돌아보고 물었다.

“부문장님. 우리가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이 2,500억이 되나요?”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250억도 제대로 굴리지 못하지.”

“그러니까요. 사장님. 우리는 2,500억이 없어서 못 한 겁니다.”

한진영은 답답한 듯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이 있어도 우리는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돈이 없다는 것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남원석을 향해 천천히 설명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우리 사업부가 개별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총액이 100억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그보다 더 큰 금액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서브프라임 이후 모기업에서 위험을 회피하라며 회사 보유분을 최소한으로 하라는 지침을 내리셨죠. 그 이후 각 사업부는 중개업무에 집중하게 됐습니다.”

한진영은 맞지 않느냐며 김정대를 돌아봤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시선을 받고 맞장구쳤다.

“그 말은 한 팀장의 말이 맞습니다. 현재 FICC 사업부의 보유총액은 70억으로 제한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을 받아 남원석에게 말했다.

“돈도 없고 보유 제한에도 걸려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그룹에게 팔아먹고 수수료를 125억을 받은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125억이라는 돈이 적은 돈은 아니니까요.”

“적은 돈이 아닌 정도가 아니지. 우리 사업부 올해 목표 금액이 200억이야. 그걸 한 번에 절반 이상 달성했으니 엄청난 거지.”

김정대가 한진영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한진영은 가볍게 고맙다는 뜻을 전한 후 남원석을 바라봤다.

“사장님.”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남원석은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말씀 좀 잘해주십시오.”

“무얼 말입니까?”

“그룹 사장단 회의 같은 곳에서 말입니다. 할 수 있다는 뜻을 좀 강력하게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다못해 사업부 규제를 500억까지만 늘려주셨어도 대한그룹에서 수수료를 125억을 벌 게 아니라 사업부 이름으로 500억을 벌 수도 있었으니까요. 얼마나 아깝습니까?”

“그렇긴 하네요.”

남원석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양손으로 무릎을 내리쳤다.

“좋습니다. 제가 사장단 회의 때 한번 강력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다짐과도 같은 말을 듣고 믿음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남원석도 한진영의 눈빛에서 그런 뜻을 느꼈는지 힘을 담아 말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두 번, 세 번 계속 그럴 수는 없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는 사실을 본사에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그룹이 큰돈을 벌게 됐다는 것도 지금쯤이면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고요. 그걸 눈뜨고 놓쳤으니 저도 할 말이 생겼습니다.”

남원석은 한진영을 향해 손을 올리고 김정대를 향해 말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친구를 구하신 겁니까? 우리 회사의 큰 동량이 될 것 같습니다.”

한진영을 향한 칭찬에 김정대는 웃으며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만이 아닙니다. 전부터 뛰어난 감각이 있던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사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최연소 임원까지도 노려볼만한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가는 길에 조금은 도움이 되기 위해 특별 진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팀장에 어울리는 직급이 있어야 할 것 같으니…… 과장 어떻습니까? 한 번에 차장까지는 무리가 있어도 과장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대리를 뛰어넘고 말입니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우리 회사의 팀장 중 가장 낮은 직급이 한 팀장을 제외하고 과장이라고 하던데 그렇지 않습니까?”

“네. 그렇지요.”

“그럼 키를 맞추어 주도록 하지요. 한 과장. 어떻습니까?”

한진영은 고맙다는 뜻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남 사장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남원석은 말을 마치고 김정대에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성과급이요.”

“네.”

“특별히 신경을 써주세요. 직급도 직급이지만 제일 중요한 건 돈 아니겠습니까? 적절한 보상이 함께해야 능률도 오르고 다른 사람들도 한 과장을 보고 목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네. 팀별 성과급으로 5억을 생각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 팀장의 공이 가장 크기에 가장 큰 금액을 한 팀장의 몫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했군요. 거기에 제 이름으로 조금 돈을 더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남원석은 한진영을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한 과장의 이름을 다른 곳에서도 이제 알게 될 것 같아서요. 돈에 밀려 직원을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분명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을 텐데 거기에서 돈 때문에 회사를 옮겼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을 앉혀놓고 서슴없이 대화하는 두 사람이었다.

한진영은 이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들이 왜 이런 대화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것만큼은 만족을 시켜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 오는 연락에 눈 돌리지 말라는 의미였다.

남원석은 충분히 한진영에게 의미가 전해졌다고 생각이 됐는지 다른 포상을 이야기했다.

“김 부문장님. 듣기로는 지금 TF팀은 임시로 만들어진 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임시로 소집된 곳입니다.”

“이곳을 조금 더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한 팀장에게 권한을 더 주고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팀장의 안목이 날카롭게 느껴져서 말입니다.”

한진영이 원하던 것을 먼저 이야기하는 남원석을 바라보고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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