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84화 (84/650)

84화 호재가 아닌 악재로 돌려세운다

연일 뉴스에서는 대한그룹의 탁월한 선택에 칭찬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위험을 회피한 것뿐만 아니라 이걸 기회로 큰 이익을 얻은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보도들이 매일같이 뉴스 메인을 장식하고는 했다.

이렇게 대한그룹의 가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가치가 같이 올라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보도를 통해 이름과 얼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대한그룹이 어떻게 이런 이익을 얻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업계의 이야기를 들은 언론이 한진영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희대의 승부사라는 별칭으로까지 불리는 사람을 어떤 사람인지 취재를 하고 싶어 했다.

“팀장님.”

조수아가 한진영을 불렀다.

한진영은 하던 것을 멈추고 자기를 향해 돌아보고 있는 조수아를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무슨 일입니까?”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경제지를 비롯한 신문과 방송에서 한진영에 관한 기사를 싣고 싶다는 뜻을 매일 같이 전해왔다.

특집 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대한그룹에 그런 상품을 팔게 된 것인지 기사를 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거절해주세요.”

“팀장님. 지난번에는 인터넷 신문사였지만 이번에는 방송사인데…… 한번 나가보시는 게 어떠세요?”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조수아는 아쉬운 듯이 한진영을 향해 다시 한번 권했다.

“그냥 경제TV도 아니라 공중파인데…….”

“그냥 거절해주세요. 지금은 나갈 생각이 없으니까요.”

한진영은 외부에 자기를 알릴 생각이 없었다.

상업적으로 이미지가 소비되어 거물과의 거래에 차질을 빚기 싫었기 때문이다.

은밀히 거래를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되는 일도 많았고, 외부에 주목을 받아서는 안 되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했다.

그런데 외부에 이미지가 팔리는 사람에게 이런 커다란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자칫 거래가 성사되기 전에 한진영 때문에 일이 외부로 새어나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거래를 진행하는 사람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진영은 생각했다.

앞으로 큰일을 더욱 많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꺼리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마냥 숨을 수도 없었다.

이번이야 어떻게든 숨을 수 있다지만 다음부터는 한진영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은 대비하려 마음 먹은 상태였다.

‘어서 데리고 와야겠구나.’

한진영을 대신할 사람.

피할 수 없다면 그런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그래서 그는 새롭게 TF팀에 첫 번째로 데리고 올 사람을 마음속으로 정했다.

한진영이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남원석이 본사와 담판을 지었다.

돈이 되는 사업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한으로 500억의 자금 내에서는 결재 없이 집행해도 된다는 확답을 받아낸 것이었다.

팀의 규모도 원하는 대로 키워도 되지만 사업부 산하의 팀인 만큼 사업부의 위상을 건드릴 정도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뜻도 함께 받아냈다.

그야말로 FICC 사업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진영의 팀에게 부여하겠다는 뜻을 본사로부터 받아낸 것이었다.

이런 결정을 받아낸 것에는 대한그룹의 일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해외에서까지 화제가 된 일을 진행했던 팀에 힘을 실어줘도 괜찮다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한진영은 남원석이 본사로부터 확답을 받아온 만큼 바로 움직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할 일을 팀원을 모집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FICC 사업부 전체가 들썩였다.

“수아 씨. 수아 씨가 한 팀장님하고 친분이 있지? 내 얘기 좀 잘 해줘.”

“김 대리. 김 대리. 나 좀 데리고 가. 나 알잖아. 일 하나는 잘하는 거 말이야.”

“고 대리.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저녁이나 먹자.”

이미 팀에 들어와 있는 팀원들에게 FICC 사업부 직원들의 로비가 시작됐다.

회사에서 밀어주는 느낌이 확실히 들고 외부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있어야 확실한 성공이 보장된다는 느낌에 사람들은 TF팀에 합류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영이 가장 먼저 TF팀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은 의외의 인물들이었다.

“지점장님. 오랜만에 뵙니다.”

“그래. 이게 얼마 만이야? 요새 아주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 것 같아.”

최준호 지점장은 예약되어 있는 한식당의 룸에 도착하여 한진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진영은 최준호 지점장과 악수를 한 후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그래. 하~ 참. 대단해. 자네 처음 우리 지점 들어왔을 때부터 싹수가 남다르기는 했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 만에 이런 결과를 보여줄지 몰랐어.”

“이게 다 지점장님 덕분이지요.”

“하하하. 그래. 나 잊으면 안 돼.”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제일 처음 일한 곳인데요.”

“그래그래. 나도 내 새끼가 밖에 나가서 잘하는 것 같아 자네 소식 들을 때마다 뿌듯했어.

신성증권 시흥지점 지점장인 최준호 지점장과 한진영은 한동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나오는 음식을 먹으며 지난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의 식사가 이어진 뒤 어느 정도 배를 채웠다고 생각이 됐을 무렵 최준호 지점장이 먼저 이야기했다.

“나를 보자고 한 게 얼굴이 보고 싶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한진영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용건이 있어 뵙자고 했습니다.”

“그럴 것 같았어. 그래. 무슨 용건?”

최준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최준호 지점장을 향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최석영 과장과 성우를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누구?”

“최석영 과장과 이성우요.”

최준호 지점장은 손을 들어 잠시 한진영의 말을 멈춰 세운 후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그들을 데리고 가고 싶다고? FICC 사업부에? 왜? 왜 그들을 왜 데리고 가려고? FICC 사업부에 가봤자 아무 소용없는 아이들인데…….”

“그 전의 FICC 사업부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곳에는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자네에게 필요하다고?”

“네. 앞으로 할 일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거든요.”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말에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꼭 필요로 한다니까 뭐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우리 지점 입장에서도 둘이 나가는 건 곤란해. 자네도 알지 않나? 최석영 과장을 보기 위해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걸 말이야. 게다가 성우도 이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어. 최근 성적도 나쁘지 않아. 그런 둘이 훅하고 나가버리면 우리 지점 전체에 큰 마이너스가 될 거야.”

“그래서 이렇게 지점장님을 모신 겁니다.”

곤란함이 묻어나오는 얼굴을 하고 있던 최준호의 얼굴에 궁금함이 서렸다.

“혹시 둘이 나갔을 때 생길 마이너스를 채워줄 생각인 건가?”

“역시 지점장님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시네요.”

“자네와 한두 번 일한 게 아니니까. 그래. 무언가? 둘을 데리고 가도 손해 보지 않을만한 일이…….”

최준호의 얼굴에는 이제는 기대감까지 얹어졌다.

분명 한진영이라면 둘을 데리고 가는 것을 메우고도 남을만한 떡고물을 던져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 지점장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지수가 꽤 많이 떨어져 내리고 있습니다.”

“맞아. 작년 연말과 올 초만 해도 2,000을 회복할 것을 기대했는데…… 벌써 1,600대까지 떨어져 내렸어. 어디까지 내려갈는지 참…….”

“거의 다 왔습니다.”

“어?”

안타까워하던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다 왔다는 말에 동공이 커졌다.

“거의 다 왔다니?”

“슬슬 받을 준비할 때가 된 거죠.”

“준비할 때라고? 지금 분위기는 그게 아니던데…… 뭔가 아는 게 있나?”

최준호 지점장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진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패를 지닌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안 좋은 이야기들만이 들려왔고 뾰족한 해결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증시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상승의 힘을 잃은 채 비실비실한 모습을 보이며 1,600대까지 힘없이 빠져 내려왔다.

그런데 한진영은 준비를 이야기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스 이야기를 하며 잠시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을 이야기했던 한진영이었기에 최준호 지점장은 한진영의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두바이 때와 비슷하게 해결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거의 다 왔고요.”

“두바이 때와? 그럼…….”

“이대로 무너지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러기엔 규모가 두바이 때보다 더 크니까요.”

“정말인가?”

“언제 제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믿으십시오.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를 해볼 만한 자리입니다.”

한진영의 여유로운 모습에 최준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자네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지.”

최준호는 한진영의 말을 들은 이후 마음이 급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이지 받을 때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급히 움직이지 마시고 천천히 준비하며 시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혹시 또 무언가가 있다는 건가?”

최준호는 눈을 가늘 게 뜨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한진영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최준호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스 이야기가 나온 뒤 한참이 지났으니까요. 이대로 증시를 돌리려면 무언가 계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호재가 나온다는 이야기인가?”

“아닙니다. 악재가 나올 겁니다.”

“악재?”

“네. 항상 악재로 시장을 한번 뒤흔들어 붙어 있는 것들을 털어낸 뒤 돌아서니까요. 고점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연이은 호재로 고점을 만든 뒤 시장이 돌아 빠져 내려가지 않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최준호가 무릎을 쳤다.

“맞아. 그게 시장이야. 이대로 올리기에는 그리스 문제로 너무 진을 뺐어. 그렇다면 새로운 악재를 만들어 시장을 한번 털어내려 하겠지. 혹시 그럼……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도 알고 있나?”

한진영은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지난 경험을 통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리스크.

북한발 사고로 한바탕 요동을 치게 만든 뒤 증시를 돌려 세워버렸었다.

그러나 이건 안다고 해서 밖에 쉽사리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와 같은 선상에 놓기에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는 게 있나 보군.”

“아닙니다. 알고 있기보다는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지요.”

“내가 자네를 아는데…… 자네는 분명 알고 있어.”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런 최준호의 말에 한진영은 굳이 아니라며 계속 발뺌하지 않았다.

어쨌든 자기 입을 통해 이야기가 나오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최준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진영은 최준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최준호가 결심한 듯이 이야기했다.

“좋아. 그렇게 하게. 대신…….”

“알고 있습니다. 지점장님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최준호는 최석영과 이성우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한진영에게 계속 정보를 얻게 된다면 그거라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둘이 끌어들이는 고객이 많기야 하지만 한진영의 정보만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과 최준호는 이야기를 나누고 만족해하는 모습으로 다시 식사하기 시작했다.

***

며칠 뒤 FICC 사업부에 최석영과 이성우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다들 이상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외형을 확장하는 TF팀에 새롭게 합류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을 위아래로 자세히 훑었다.

“저 사람은 눈에 익은데.”

“아~ 그래. 저 사람은 나도 TV에서 봤다. 대경TV에 나오는 사람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저 사람이 TF팀에 합류하는 거야?”

“듣기로는 한 팀장과 친분이 있다고 하더니 그래서 데리고 온 건가?”

“지점 영업하던 사람을 친분만으로 데리고 왔다고? TF팀에서 뭘 한다고?”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사람들이 최석영과 이성우가 TF팀에 합류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진영아. 네가 오라고 해서 오기는 했다만…… FICC 사업부에서 우리가 할 일이 뭐가 있냐?”

최석영 과장과 이성우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시흥지점보다 몇 배나 큰 사무실과 사람들이 모두 자기 최석영과 이성우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질투가 가득 담겨 있었다.

TF팀이라는 FICC 사업부의 꽃이 될지 모르는 곳에 지점에서 구르던 사람들이 첫 주자로 영입이 된 것에 불만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TF팀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커진 듯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최석영 과장과 이성우가 TF팀에 옴으로써 한진영이 원하는 그림이 FICC 사업부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