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86화 (86/650)

86화 북한 리스크

사람들은 한진영이 하는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Front부터 Back까지 모두 아우른다는 말과 부동산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했다.

한진영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아직 그들의 머릿속은 틀이 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틀은 한 번에 깰 수는 없었다.

상식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 간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깬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은 급하지 않게 금이 가는 것부터 시작하려 했다.

“TF팀의 목표를 이야기했으니 이제 조금 더 가까운 곳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지금 당장 하려는 일. 그것부터 시작해서 나아가도록 하지요.”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뜬구름과 같은 이야기보다 당장 눈앞에 자리한 가까운 곳의 이야기가 시작되려 했기 때문이다.

“북한 리스크가 발생했을 시에 일어날 일을 철저히 분석해서 투자처를 고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입니다.”

“북한 리스크요?”

김석현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네. 북한 리스크입니다. 북한의 도발이 될 수도 있고, 북한의 핵실험이 될 수도 있고…… 무엇이 됐든 간에 북한 쪽에서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떤 것이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지 찾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본사에서 결재 없이 쓸 수 있는 돈 500억을 집행할 생각입니다.”

“갑자기 북한은…… 여기서 왜 나오는 겁니까?”

한진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석현을 바라봤다.

‘이유야 북한에서 도발이 일어날 테니까.’

최준호 지점장을 만났을 때 이야기했던 악재가 바로 북한의 도발이었다.

이미 그리스 문제로 연약해져 있던 시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리스크까지 터지며 증시는 1,600대가 아니라 1,500대 초반까지 무너져 내릴 게 분명했다.

환율은 치솟고 대한민국 채권은 북한 리스크로 인해 빨간불이 켜지게 된다.

한진영은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준호 지점장에게 준비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북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어디서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을지 찾으라는 미션을 내린 것이었다.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아는 것과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디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아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지금 팀원들은 온갖 방면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 시절 주식만 알던 자기와는 지금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상황이었다.

환율과 채권, 상품은 물론이고 파생까지 모든 분양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면 돈을 더 많이 불리는 방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한진영은 김석현을 비롯하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작년 북한의 핵 도발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하고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것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한 번 더 우리를 흔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최석영은 한진영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한진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최석영이었기에 한진영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에서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말을 하다 말고 주저하는 최석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제가 신도 아니고 그것까지 알지는 못하지요. 하지만 추론은 할 수 있습니다. 전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대형사고가 터진다는 것은 법칙으로까지 나와 있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핵실험 이후 계속된 도발 속에서 사고가 터질 수 있습니다.”

한진영은 본격적으로 팀원들에게 지시를 직접 전달했다.

“김석현 대리님은 환율을 조수아 씨는 채권 파트를 그리고 고제상 대리님은 상품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취합합니다. 이번에는 함께하는 다른 팀원들이 있으니 조금 더 깊게 파고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모인 자료를 기준으로 김준하 씨가 계산해주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대한그룹 때 한번 해봤던 작품이었다.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일을 만들어 간다면 지난번보다 오히려 이번 일이 더 쉬울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한그룹 때는 리스크 분배 차원에서 포지션을 보수적으로 잡았습니다. 지금은 그럴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GO로 잡습니다.”

“헷지도 없이 말입니까?”

새로 들어온 팀원 중 하나가 한진영의 말에 질문을 던졌다.

한진영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헷지 필요 없습니다. 리턴만 생각하고 갑니다.”

충격적으로 여겨질 만한 첫 회의가 끝났다.

한진영이 먼저 나온 뒤 따라 나온 팀원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갸웃하기만 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회의 내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팀원들 사이에서 한진영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한 명이 있었다.

“진영아.”

이성우가 한진영의 곁에 다가와 바짝 붙은 채 물었다.

“나는?”

모든 사람의 할 일이 정해졌다.

하지만 이성우만이 마땅히 할 일을 정해지지 않은 채 회의가 마무리됐다.

하다못해 비슷한 처지의 최석영조차 할 일이 정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성우만이 어떤 일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성우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진영을 찾은 것이었다.

“나는 뭐하면 돼?”

한진영은 곁에 바짝 붙은 이성우의 팔을 붙잡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너한테 중요한 일을 맡기려고 아까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

“정말?”

한진영의 말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은 이성우였다.

“당연하지.”

한진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다른 사람이 듣는지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성우는 이런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진짜로 중요한 일을 자기에게 맡기려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진영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와 주식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눌 거야. 그 전에 먼저 네가 생각하기에 타격을 받을 종목과 타격이 없을 만한 종목 그리고 지수가 돌아나갔을 때 가장 선두에 설 종목과 가장 뒤처질만한 종목을 선별해서 나에게 알려줘. 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종목 분석을 하라는 거지?”

“그래. 가감 없이 너만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지 마.”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했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내가 정말 좋은 종목들로 선별해서 너한테 가지고 갈 테니까.”

“잊지 말아야 할 건 좋아 보이지 않는 종목들도 포함해야 한다는 거야. 좋은 것들만이 아니라 좋지 못한 것들까지…… 내 말 알아들었어?”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 마. 네가 무슨 뜻으로 이야기한지 알아. 흐름을 보라는 거잖아. 시장의 변화를 말이야. 그래서 안 좋은 것들까지 같이 놓고 봤을 때 제대로 시장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라는 거지?”

한진영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해석이었다.

한진영의 의도는 정확히 ‘반대로’ 찍는 능력을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당사자에게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잘못 의도를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분이 좋다면 그거라 만족한 한진영이었다.

“그래. 그런 의도도 깔려있어. 그러니…… 쉿. 이건 너와 나만 알고 진행하는 거야.”

“그래. 아무도 모르게…….”

이성우는 특별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에 들고 있던 노트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돌아가는 자리에서도 연신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이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야겠다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

TF팀이 북한 리스크를 기준으로 상품을 설계한다는 소식이 FICC 사업부에 전해졌다.

“정신 나갔는데?”

“그렇죠?”

FICC 사업부의 직원들은 모일 때마다 TF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갑자기 생뚱맞게 북한 리스크 이야기는 왜 나온 거야?”

“지금까지 북한이 계속 도발을 해오는 게 뭔가 하나 큰 게 터질지 모른다는 게 이유라고 그래요. 정부 쪽 반응도 강경 대응 일변도라 이러다 제대로 쾅 하고 붙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 전쟁이라도 한대?”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요. 하지만…… 뭐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죠.”

FICC 사업부 직원들은 이상한 눈으로 TF팀을 바라봤다.

전략을 세우는 거야 어디서든 있는 일이니까 그건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뜬구름과 같은 이야기를 설정해놓고 전략을 짜는 것 자체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닐까요?”

“뭐가?”

TF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리스 사태 보세요? 그걸 예측한 사람이 한 팀장이잖아요. 그래서 그 덕분에 과장에 팀장까지 달았고요.”

“그거야…… 얻어걸린 거겠지.”

“얻어걸린 거든 노리고 걸린 거든 어쨌든 걸린 건 걸린 거잖아요.”

“그럼 이번에도 그렇게 걸릴 거란 말이야?”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희 팀에서는…….”

“설마 TF팀을 따라가기로 한 거야?”

“뭐 완전히 따라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 환율이 하락 가능성을 낮게 보고 진행하기로 했어요.”

“미치겠네. 그 말을 어떻게 믿고?”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저희 팀장님도 그러시던데요. 완전히 믿지는 못하더라도 하나의 시야로 인정하고 바라볼 필요는 있다고요.”

FICC 사업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TF팀이 자신 있게 진행하는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쪽과 이렇게 확정하고 진행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로 정확하게 반반이 갈린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FICC 사업부의 내부 모습을 보면서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확정된 거야?”

김준하가 건네준 복합 상품을 바라보고 물었다.

김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원화 가치의 하락 속에서 채권 가치 또한 함께 떨어진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한진영은 김준하가 설계해온 것을 하나하나 살핀 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좋습니다. 만족스럽네요.”

김석현은 만족해하는 한진영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일방적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헷지라도 몇 개 걸어놓고 혹시 모를 리스크에 대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헷지 좋지요.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팀장님…….”

한진영은 보고 있던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말했다.

“헷지를 걸 것 없이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도록 하지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것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걸 이제부터 설계하도록 합시다. 북한 리스크도 없고 그리스 사태 또한 해결되는 핑크빛 미래가 펼쳐진 세상이 열렸을 때 나타날 것을 기준으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그리스 사태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북한 리스크가 발동됐을 때에 관한 상품을 설계했던 사람들은 한진영의 말에 허탈감을 느꼈다.

“설마 지금 가지고 온 것들을 파기하고 다시 진행하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그럼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가지고 온 것인데 파기라니요.”

“그럼 왜 지금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만들라고 그러십니까?”

“그건…… 파도타기를 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파도타기요?”

“네. 여기에 탔다가 내려서 탈 것을 미리 준비해놓자 이거지요. 일이 마무리된 뒤에 설계를 시작한다면 일이 늦어질 테니까요.”

“그게 무슨…….”

열심히 일해온 것들이 파기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뒤를 이어 바로 반대가 되는 것에 파도타기를 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진영은 의혹이 가득한 눈을 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만약 다른 누군가에게 판다는 설정이라면 이렇게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돈으로 진행할 수 있기에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잠시만 의문을 접어두고 제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지나면 제가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럼 지금 가지고 온 것들은…….”

“바로 집행할 생각입니다.”

“바로요?”

최소한의 검토도 없이 바로 진행한다는 한진영의 말에 오히려 사람들이 놀라고 말았다.

“저희를 믿어주시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검토는…….”

“검토를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얼마나…….”

“500억. 남김없이 다 집행할 테니 수아 씨.”

“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없었던 조수아는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바로 자금 집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바로면…….”

“오늘 내에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이요?”

한진영은 서류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웃었다.

“이미 설계까지 마친 것들입니다. 그러니 기다릴 필요가 없지요. 바로 합시다.”

“네…….”

조수아는 한진영의 추진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리가 마무리된 뒤 거칠 것 없이 일사천리로 자금 집행이 이루어졌다.

몇 날 며칠 동안 고생하며 만든 일방적인 포지션의 복합상품을 TF팀이 취득하게 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업부 사람들은 TF팀의 한진영이 미친 게 아니냐는 뒷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나올 수 없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저녁 긴급 속보로 뉴스가 터졌기 때문이다.

[해군 초계함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하여 원인 파악 중]

금요일 저녁 시장을 강타하는 뉴스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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