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87화 (87/650)

87화 남들이 걱정할 때 나는 돈을 번다

평소라면 한적해야 할 회사였다.

일주일간의 고된 강행군을 마친 직원들이 모두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로비부터 시작해서 FICC 사업부에까지 직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평일 아침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 아니냐 하는 모습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때 한진영이 FICC 사업부에 모습을 드러내자 시끄럽던 주변이 조용하게 변했다.

그리고 모든 직원이 한진영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오셨어요?”

조수아가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수아 씨도 나오셨어요?”

“네.”

조수아는 한진영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후 한진영의 소매를 잡고 사업부 안으로 들어갔다.

팔이 조수아의 손에 잡힌 한진영은 조수아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빨리요. 부문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김정대 부문장님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모든 팀장이 모여 한 팀장님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모든 팀장이요? 다들 일찍 나왔네요. 토요일인데…….”

조수아는 한진영의 팔을 잡은 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혹시…… 못 들은 건 아니죠?”

“뭘 말입니까?”

“어? 정말 못 들으셨어요? 그…… 초계함…….”

“아~ 들었지요. 들었으니까 제가 여기에 온 것 아니겠습니까?”

“들으셨죠? 깜짝 놀랐네.”

한진영은 조수아에게 잡힌 팔을 천천히 풀어내며 웃었다.

“뭘 깜짝 놀랐다고 그러십니까?”

“혹시 못 들은 줄 알았잖아요. 너무 태연하셔서요.”

“태연히요?”

“네. 다른 사람들은 어젯밤에 날아든 소식에 지금 다 정신이 없는데…… 팀장님만 지금 아무렇지 않으시잖아요. 오히려 토요일에 출근했다는 사실을 더 신경 쓰시는 것만 같은데요?”

“수아 씨.”

한진영은 조수아의 곁을 지나 앞으로 몸을 이동했다.

김정대가 기다린다는 회의실에 혼자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몸을 살짝 틀어 조수아를 보고 말했다.

“우리 포지션을 생각해보세요. 500억이 노빠꾸로 들어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게 놀랄 일이에요. 안 그래요?”

조수아는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이해한 듯한 조수아의 팔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몸을 돌렸다.

한진영이 회의실에 도착하자 회의실도 사업부와 마찬가지로 시끄럽던 소리가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다들 일찍 오셨습니다.”

한진영은 빈 의자 앞에 서서 어깨에 메어있던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뒤 김정대를 바라보고 말했다.

“찾으셨다고요?”

김정대는 한진영이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말 없이 한진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한진영을 말없이 지켜만 보던 김정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간첩인가?”

“네?”

한진영은 김정대가 농담을 건넸다고 생각하고 크게 웃으려 했다.

하지만 김정대뿐만 아니라 자리에 있던 팀장들 모두 진지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어젯밤에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김정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간첩이라는 생각이 들어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단지, 교묘할 정도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타이밍에 다른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물어본 말이었다.

한진영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간첩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제가 충분히 설명해 드린 것 같은데요. 계속된 북한의 도발과 대한민국 정부의 강경 대응. 이 상황에서는 뭔가 터져도 터질만한 시기였으니까요.”

“이게…… 추론으로 예상이 되는 문제였어?”

북한발 이슈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하는 시점에 예상이 안 될만한 일들로 충격을 주고는 했다.

그런데 그걸 예상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잃어버릴 지경이었다.

“제가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직접 보셨죠? 다른 분들도 모두 보셨죠? 예상을 제가 했으니 예상이 되는 겁니다. 증인이 여기 있으니까요.”

“이거 원…….”

김정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고 한진영을 쳐다보고 물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이 상황을 예상했으니 다음 상황도 알지 않을까 하여 물어본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런 김정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쟁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밖에서는 이런 군사도발에 보수정권인 현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던데?”

“그래요? 잘됐군요.”

“잘됐다고?”

한진영은 걱정이 가득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김정대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밖에서 그런 이야기가 계속되면 저희 물건을 팔아먹기 좋으니까요. 저희 포지션을 아시지 않습니까?”

한진영의 대답에 김정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봐. 한 팀장. 전쟁이야. 전쟁. 지금 한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생각하겠죠. 그리고 한동안 그 이야기로 떠들썩할 겁니다. 가뜩이나 그리스발 이야기로 시장이 말랑말랑해져 있는 상태에서 나온 이야기라 충격은 더 클 겁니다. 그걸 기대하고 제가 포지션을 잡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럼…….”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을 듣고 무언가 생각이 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있던 다른 팀장들도 김정대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겨 있던 생각을 한진영이 깨운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제야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것 같은 그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한탕 크게 해 먹으려 합니다. 저희 TF팀은 반대포지션까지 준비에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시장이 아주 말랑말랑해지다 못해 당장에라도 녹아 흘러버릴 것 같을 때 포지션을 바꿀 겁니다.”

“자네는 그럼 이 사태가 얼마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요. 반대로 이 사태가 질질 끌릴 거라 생각하는 겁니다. 단번에 해결이 되지 않고 지지부진 이야기가 끌리는 바람에 시장이 녹아버리는 수준까지 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한진영은 이미 한번 경험했던 일이었기에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에게 지금의 사태는 큰일도 아니었다.

그저 잘 차려진 상처럼 보일 뿐이었다.

“전쟁은 그렇게 쉽게 나는 게 아니죠. 다만 분위기를 띄우는 것만큼은 확실할 겁니다. 현 정부의 스탠스도 그렇고 외부에서 지켜보는 것도 그렇고…… 부문장님처럼 당장에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바라볼 겁니다. 내부에서도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들고 일어날 테고요. 저는 그 틈을 이용해서 뼈까지 발라 먹고 반대편 살까지 그대로 다 해먹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걸 통해서 우리 FICC 사업부를 본부로 격상시킬 겁니다.”

“본부로 격상한다고?”

“이번 일로 돈을 벌게 되면 사업부라는 명칭이 우리 사이즈에 맞지 않게 될 테니까요.”

한진영과 김정대의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처음 한진영을 데리고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진영의 판단은 틀린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전까지 따지자면 한진영의 판단은 계산기만큼이나 정확했다.

김정대는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좋아.”

김정대는 결정을 내린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팀장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지금부터 이번 사태의 일에 한해서만은 한진영 팀장의 판단에 따라 모든 FICC 사업부 팀들이 움직이도록 하겠다. 이의 있는 사람 있어?”

김정대의 말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있던 팀장들도 모두 원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방향을 제시해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같은 팀장이라는 직함을 쓰고는 있지만, 한진영은 그들의 까마득한 후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한진영의 판단에 감탄을 내뱉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에 한 다리 걸치고 싶다는 것이 팀장들의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이런 유연한 감각은 있어야만 팀장이라는 직함을 달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물론 한진영을 고깝게 보던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채권팀의 성현수처럼 한진영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반대를 하던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리에는 성현수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김정대가 그를 배제한 채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한도 부팀장에게 성현수 것까지 더해 넘긴 상태였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성현수는 더는 볼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김정대는 반대가 없다는 것은 동의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모두 TF팀과 정보를 공유하며 TF팀이 가려는 방향을 따라가도록 한다. 그리고 한 팀장.”

“네.”

“본부로 격상시키겠다는 말 꼭 지켜.”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저를 밀어주려 하시는데 제가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명패 미리 주문해놓으셔도 될 겁니다.”

“하여튼 말은…… 좋아. 그럼 시작하자.”

김정대의 말에 팀장들은 처음 회의실에 찾아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회의실을 나왔다.

***

초계함의 침몰은 그리스로 인해 체력이 많이 소진된 시장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게다가 그리스처럼 외부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여파는 더욱 컸다.

대한민국에 투자한 해외자본이 유출되기 시작했으며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당장에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나라로 변해갔다.

그리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던 환율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1,500원대를 다시 찍어 지난 고점이었던 1,700원대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파산의 지표로 이야기하는 CDS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초계함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당장에라도 신용등급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여파로 채권의 가격도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1,700대 회복을 노리던 증시 또한 주저앉기는 마찬가지였다.

1,600대를 무너뜨리고 1,500을 터치하며 시장에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금융 시장은 공포로 치달았고 대부분의 투자사는 악재에 악재로 뒤덮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했다.

오직 신성증권이 이런 공포 속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오늘 기준으로 우리가 투자한 상품들의 가치가 800억을 돌파했어요.”

조수아의 보고에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달받은 서류를 검토했다.

조수아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계속 보고를 이어갔다.

“대한그룹에 판매한 상품의 경우에도 오늘 마감 기준으로 3,500억을 넘어가고 있어요. 대한그룹 미래전략실에서는 이 정도쯤에서 만족하고 정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한진영은 서류를 내려보던 시선을 올려 조수아를 바라본 채 말했다.

“대한그룹에서는 이 정도에 만족한다고 하던가요?”

“네.”

“욕심을 많이 낼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요. 그럼 그렇게 하라고 하세요.”

“그럼 성공보수에 관한 이야기도 준비하라고 할까요?”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은 조수아였다.

대한그룹과 계약을 체결하며 별건으로 집어넣은 조항이었다.

수익 500억 단위마다 신성증권에 10%의 수익배분을 약속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 대한그룹에서 이런 조항을 받아 들었을 때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체결 시에 수수료를 한 번에 지급하고 그 뒤에는 어떤 수수료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성공보수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이중으로 수수료가 나갈 수 있는 일이었기에 대한그룹에서는 별건으로 진행되는 성공보수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한진영이 계약서를 들고 윤길영을 찾아간 뒤 모든 것이 해결됐다.

손해 볼 것을 수익으로 바꾸게 만드는 일에 그깟 10%의 수익 배분이 아깝냐는 말로 윤길영을 설득한 것이었다.

윤길영은 한진영의 말에 껄껄 웃음을 보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체결을 지시했다.

신성증권 내부에서는 이런 별건 조항을 흥미로운 시각으로 바라봤다.

수익 500억이라는 돈이 쉽게 이룰 수 없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다던 500억의 수익이 1,000억으로 바뀌어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한진영은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조수아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계약서상에 쓰인 대로 진행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성공보수의 10%는 우리 몫이라고 이미 부문장님과 이야기를 마친 상태니까요.”

한진영의 확답에 조수아는 환하게 웃었다.

1,000억에 10%인 100억이 신성증권의 몫.

그리고 거기에 10%인 10억이 TF팀의 성공보수로 책정이 됐다.

일을 진행한 사람이 10명이 채 안 됐기에 개인당 1억이 넘는 돈이 또다시 성과급으로 지급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대한그룹 한 건으로만 TF팀 팀원이 받는 성과급이 2억을 훌쩍 넘겼다.

한진영이 받아 간 성과급은 5억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런 모습을 보며 FICC 사업부의 직원들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한진영은 자기를 바라보는 사업부 직원들의 눈빛을 보며 일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팀장 회의에서 모든 팀장이 한진영을 따르기로 했지만, 김정대는 내심 다른 직원들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을 뛰어넘을 정도로 돈에 대한 열망은 강렬했다.

TF팀이 거액의 성과급을 타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사업부 직원들은 어서 한진영이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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