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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88화 (88/650)

88화 권한을 조금 더 풀어달라

TF팀이 투자한 500억이라는 돈이 단위가 바뀌어 1,000억을 돌파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험악해져만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100억씩 수익이 올라가는 TF팀의 상품을 보며 FICC 사업부는 물론이고 신성증권의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이. 한 팀장. 그런 좋은 거 있었으면 나도 좀 알려주지 그랬어?”

“너를 왜 알려줘? 어차피 알려줘도 하지도 못할 놈이.”

“내가 왜 못해?”

“너는 주식 파트 아니야? 우리하고는 완전히 다른데 이젠 너희 본부가 우리 할 일까지 건드리려고 그래?”

“그거야 네가 허락해주면 될 일 아니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

FICC 사업부 부문장인 김정대의 사무실에 장근수 본부장과 한진영이 함께하고 있었다.

장근수 본부장은 아쉬움이 계속 남는 것인지 한진영을 향해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500억으로 1,000억을 만들 재주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지 그랬냐? 아~ 아까워. 아까워.”

“네가 뭘 아까워해?”

“그냥 나 혼자 하는 말이야. 왜 네가 뭐라고 그래?”

“그럼 혼잣말 네 방 가서 해. 여기 와서 왜 하는데? 바쁜 사람 붙잡고…….”

“바쁜 사람? 여기서 네가 제일 안 바빠.”

“야…… 이…… 나가. 어서 가라고…….”

김정대는 장근수를 잡아끌었다.

방 밖으로 쫓아내려는 손길이었다.

장근수는 그런 김정대의 행동에도 굴하지 않고 이곳에 온 이유를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 팀장.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아?”

화를 내던 김정대도 장근수의 말에 한진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팀장 회의 이후 FICC 사업부의 팀장들과 모든 FICC 사업부의 직원들이 한진영의 입만 바라봤다.

그러나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다리는 것과 달리 아무런 행동이 나오지 않은 한진영이었다.

사업부 내부에서는 한진영의 지시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라도 움직이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완만하지만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환율과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채권 가격을 보며 지금이라도 추세에 올라 타야 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업부 내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한진영은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죽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처럼 시장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스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고, 북한 문제 또한 쉽사리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아. 이러면 그냥 이 방향으로 가는 거 아니야?”

장근수의 생각에 김정대도 동의했다.

“그건 장 본부장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이거 이대로 여름 때까지 이어질 것 같아.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타야 할 것 같은데…… 어때?”

김정대와 장근수는 한진영의 안색을 살폈다.

지금이라도 당장 추세에 올라타자고 하면 탈 준비가 되어 있던 두 사람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신호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던 두 사람은 한진영이 빨리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똑똑.

김정대는 한진영의 대답을 들으려 할 때 들려온 노크 소리에 화를 내려 했다.

그런데 한진영이 그런 김정대보다 먼저 반응했다.

“마침 왔네요.”

“응? 뭐가 와?”

“두 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마치 자기 방인 것처럼 노크 소리에 들어올 것을 이야기한 한진영이었다.

방 주인인 김정대는 그런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문을 바라보기만 했다.

누가 온다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야기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한 팀장이 오라고 해서…….”

“괜찮아. 다 끝났어?”

“네. 다 끝나기는 했는데…….”

김준하는 김정대 부문장과 장근수 본부장의 눈빛에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한진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들고 온 것을 한진영에게 내밀고는 쭈뼛쭈뼛 한진영 곁에 서 있었다.

“수고했어.”

한진영은 김준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고 받은 서류를 장근수와 김정대 앞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서류와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게 뭔가?”

“그동안 제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 답답하셨죠?”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가 그제야 답답함이 사라진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 그래. 이제 말할 마음이 생긴 거야? 그런데 이건 뭔데?”

“제가 준비한 겁니다.”

“준비? 무슨 준비?”

“지금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이 사태가 마무리되었을 때 뭐가 가장 좋을지에 대한 것이죠.”

“그게 무슨 말이야?”

한진영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김정대를 대신해서 장근수가 한진영이 놓은 서류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서류에 적혀 있는 계획 등을 살폈다.

“응? 환율 하락을 예상? 우리나라 채권은 물론이고 남유럽권 채권 또한 제자리를 찾아간다? 이게 뭔 말이야? 타겟 지점은 마지막 불꽃이 화려하게 타오를 5월 말을 예상? 북한 문제는…… 지방선거까지 계속 이어지지만, 남유럽이 해결되며 함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장근수의 말에 김정대가 손에 들려 있는 서류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장근수가 보고 있던 것의 뒷장을 살폈다.

뒷장에는 계획에 따라 매수할 상품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품의 현재 가격과 올라탈 가격대 등도 함께 적혀 있었다.

“제가 그동안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은 이미 시작된 추세에 올라타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겁니다.”

“뒤차에 타지 말자고?”

“네. 이미 진행되어 버린 것에 올라탔다가는 꼬여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사업부 전체가 움직이려 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골치 아파지지 않겠습니까?”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류를 한진영 앞에 놓았다.

“그래서 돌아설 때 함께 올라타자고? 그런데 이게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오늘이…… 5월 초니, 준비할 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이대로 지지부진하게 계속 가는 건 아니고?”

“지금 초계함 사건으로 외부의 일이 눈에 잘 안 들어와서 그렇지 바깥도 난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대로 남유럽이 파산하여 유로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는 미국에서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럼?”

김정대와 한진영의 말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장근수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혹시…… 구제금융이라도 받는다는 거 아니야?”

장근수의 말에 김정대가 고개를 돌렸다.

한진영은 장근수의 말에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본부장님은 단번에 알아들으시네요.”

“그렇지? 구제금융을 받는 거지? 이 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니까. 1,100억 유로의 채권을 발행해서 불을 끄겠다고 하는데, 그랬다가는 다 죽자는 거 아니야? 그게 될 것 같았으면 진작에 해결이 됐겠지.”

그리스와 남유럽의 부채 문제는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늪을 빠져나가기에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IMF가 구제금융을 준비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구제금융을 준비할 IMF도 그렇고 받는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도 모두가 꺼렸다.

그래서 하나의 방법으로만 이야기될 뿐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한진영이 이야기하는 순간 가능성이 확신이 되어 버렸다.

장근수와 김정대는 이제 그리스가 해결된다는 것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처럼 된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준비할 것을 한진영이 가지고 온 것으로 보였다.

김정대는 서류를 들어 보인 후 말했다.

“여기 나와 있는 상품이 우리가 탈 것들이란 말이지? 이거에 맞춰 준비하면 된다는 거지?”

“네. 이미 가격까지 다 맞춰 계산해 온 겁니다. 그 지점이 온다면 들어가 앉아 있을 만합니다. 남은 시간 고객들을 잘 설득해주십시오.”

“그건 걱정 마. 우리 하는 일이 그 일이니까.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 친구가 상품을 비롯해서 다 준비를 마친 상태니까 갈아탈 생각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도 남김없이…… 헷지도 없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살을 다 발라 먹겠다고요.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니 헷지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밀어붙일 계획입니다.”

김정대는 더는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잘하는 사람에게 굳이 이러니저러니 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민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근수는 김정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김정대가 다음 말을 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나섰다.

“나는?”

장근수의 말에 김정대와 한진영은 물론이고 한진영의 곁에 서 있던 김준하까지 장근수로 시선을 돌렸다.

김정대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장근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일 텐데 뭘 물어봐? 주식시장은 뭐 다를 것 같아서 그래?”

“마냥 똑같이 흘러가지는 않잖아. 혹시 몰라서 물어보는 거지.”

김정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는 장근수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했다.

1,500대까지 무너져 내린다면 채권의 흐름과 다른 식의 장이 펼쳐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인을 하고 싶은 것이었고, 대답을 해줄 수 있는 한진영을 향해 답을 물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장근수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한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말했다.

“1,500대 초반입니다.”

“1,500대 초반? 1,500대 초반이라 이 말이지.”

“종목은…….”

“어이구 종목까지 알려주려고? 그래. 뭔데? 제일 좋은 종목이 뭐야?”

장근수는 기대하지 않았던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며 한진영을 향해 몸을 굽혔다.

한진영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있던 종이를 탁자 위에 올렸다.

장근수는 한진영이 말한 종목이 저 종이에 적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서 종이에서 한진영이 손을 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진영은 종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손을 떼지 않았다.

이성우와 이야기한 뒤 골라온 종목들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이성우가 안 좋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것.

바로 앞으로 시장을 주도할 종목들이었다.

한진영은 이성우가 골라온 종목을 보고 연신 감탄했다.

지난 기억 속에서 한진영도 떠올리지 못했던 종목들을 기가 막히게 이성우가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목들이 종이 위에 적혀 있었다.

한진영은 종이 위에 손을 얹어 놓은 채 말했다.

“이번에는 저희도 주식에 손을 댈 생각입니다.”

“어?”

“뭐라고? 뭐에 손댄다고?”

김정대와 장근수는 한진영의 말에 놀랐다.

“왜…… 자네가 주식에 손을 댄다는 건가? 이봐. 김 부문장. 자네가 시켰어?”

“내가 뭘 시켜? 한 팀장. 도대체 무슨 말이야?”

FICC와 WM은 엄연히 서로의 분야가 나뉘어 있었다.

WM이 파생을 비롯한 상품과 관련된 곳에 손을 대지 않는 반면 FICC가 주식시장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규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FICC 사업부 산하의 팀에서 주식에 손을 대겠다는 말에 두 사람은 모두 놀라고만 것이었다.

“저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거하고 주식에 손을 댄다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환율을 비롯한 FICC에서 다루는 것만 가지고는 장기로 끌고 가기 힘듭니다. 저는 장기로 끌고 갈 것들이 필요합니다.”

“채권 있지 않나?”

“수익률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요.”

“자네…… 도대체 어디까지를 생각하는 거야?”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지그시 웃으며 말했다.

“저에게 권한을 조금 더 풀어주십시오. 그래서 두 분이 모두 계실 때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무래도 본부장님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장근수는 한진영의 말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장근수를 보며 손을 까닥였다.

“종이 위에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TF팀의 자금 안에서만 움직일 거지?”

“네. 그건 약속할 수 있습니다. 고객을 유치하거나 새로운 자금을 투입하여 WM본부가 하려는 일에 발을 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장근수는 김정대를 돌아보고 확답을 받으려는 듯이 말했다.

“한 팀장만 허락하는 거야.”

“허락할 거야?”

오히려 김정대는 장근수의 허락을 예상하지 못한듯한 반응이었다.

장근수는 눈짓으로 한진영이 손을 가리고 있는 종이를 가리키고 말했다.

“허락 안 하면 저 종이 안 줄 거 아냐?”

“지수대는…… 들었잖아.”

“그것만 들으면 뭐 해? 저게 핵심인 것 같은데…… 안 그래?”

“장 본부장님은 이야기가 잘 통해서 말하기가 참 편합니다.”

장근수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코를 씰룩거렸다.

“너…… 만약에 넘겨준 것이 별것 아니거나 시원치 않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특별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압니다. 장 본부장님도 이걸 꼭 보고 싶으니 허락하시는 거 아닙니까?”

“너는…… 야. 얘 내가 데리고 가면 안 되냐? 내가 옆에 놓고 갈구고 싶은데…….”

장근수의 말에 한진영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장근수는 한진영의 웃음에 마주 웃어 보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됐지? 내가 허락했으니까. 내놔.”

한진영은 장근수의 손에 쪽지를 건넸다.

장근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진영이 건넨 쪽지를 내려다봤다.

“이거…….”

“값어치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이거 정말이야? 은행주에 건설주…… 그리고 청명전자? 얘는…… 이슈가 있는데 이거 맞아? 아무리 현재 폭탄 맞고 있는 곳이라 분위기가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지만…….”

장근수의 말에 김정대 손 위에 놓여 있는 쪽지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앞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으시면 따라오십시오. 길은 제가 낼 테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장근수의 눈에 웃음기가 어렸다.

“너는 내가 기필코 데리고 가야겠다. 너 같은 놈이 우리한테도 필요해.”

“무슨 소리야. 아직 우리 식구야. 눈독 들이지 마.”

“네가 감당하지 못할 아이야.”

“그건 네 생각이고…….”

김정대는 장근수가 채갈까 봐 걱정이라도 된다는 듯이 자리까지 한진영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한진영을 품에 끌어안아 절대 뺏기지 않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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