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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90화 (90/650)

90화 길게 끌고 가지 않고 일부를 정리한다

북한 이야기는 어느새 스리슬쩍 사라져만 갔다.

물론 정치권에서 계속 이야기하며 화두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치 쪽에서 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금융시장에서 북한 이슈는 이제 위협이 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그리스 구제금융으로 사람들이 인식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쪽이 무너지니 저쪽도 무너질 것 같다는 시각에서 이쪽이 살아나니 저쪽도 좋게좋게 끝나지 않겠냐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시장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언론의 생각이었다.

북한 이슈까지 사라지자 시장의 악재로 불릴 만한 것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스 이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쯤은 이제 더는 악재로 여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제 이런저런 악재보다 저평가라는 호재가 시장을 장악해갔다.

그리고 이런 호재를 등에 업은 시장의 회복은 시간이 갈수록 가팔라졌다.

특히 국내시장의 경우에는 다른 곳들보다 낙폭이 더 컸던 만큼 회복 또한 다른 곳보다 더 빨랐다.

“청명전자가 신의 한 수가 되겠는데?”

이성우가 청명전자의 차트를 보며 말했다.

“이거 무너질 차트였는데…… 기가 막히네.”

이성우는 탄식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이거 선거 이슈로 묶일 것 같다고 매수한다고 했을 때 믿지 못했는데 네 말이 맞았네?”

“덕분에 네 말대로 이게 신의 한 수가 된 거 아니겠냐? 벌써 50% 상승인데다 앞으로 지방선거까지 쭉쭉 오를 가능성도 있고…….”

“아~ 이번에는 내가 졌다.”

이성우는 아깝다는 듯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말했다.

“특별한 이슈가 나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겼을 텐데…… 이번엔 네가 이겼어.”

한진영은 이성우를 보고 말없이 미소 지었다.

자기가 틀렸음에도 주눅이 들지 않는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서 한동안 계속 이성우의 촉을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반대로 찍는 촉.

이건 미래를 아는 것만큼이나 값진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팀장님.”

이성우와 한참을 이야기하던 한진영이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김정대의 비서가 찾아와 한진영을 찾고 있었다.

“네? 부문장님이 부르시나요?”

“네. 부문장님께서 함께 사장님을 뵈러 가야 한다고 오시라고 하셨어요.”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신성증권 사장이 부를 때가 되지 않았냐고 생각하던 한진영이었다.

“갔다 올게.”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눈으로 잘갔다 오라는 말을 건넸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인사를 받고 몸을 돌려 김정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한진영이 오기를 서서 기다리고 있던 김정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 왔어? 가자.”

앉아서 이야기할 것도 없이 바로 가자고 하는 김정대를 따라 한진영은 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김정대는 앞서 걸으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께서 갑자기 자네를 보고 싶어 하셔.”

“이번 일 때문에 그러시겠죠?”

“아무래도 그럴 거야. 이번에 우리 수익이 좀 큰 게 아니니까.”

김정대는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본사에서도 고무적인 분위기라는 이야기도 들었어.”

“고무적인 게 아니라 신나겠죠. 이런 수익은 본사에서도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맞아. 자네 말대로 아주 신날 거야. 500억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결정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2,000억 넘겼나?”

“네. 넘겼습니다.”

“휘유~”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2,000억을 찍다니 믿을 수가 없다. 배포 하나는 대단해. 내가 인정한다.”

“부문장님도 대단하신 것 같은데요? 얼마 전까지 사원이었던 제 말을 따라 모든 사업부가 움직이게 만드셨으니까요.”

“흐흐흐. 그래. 너도 대단하고 나도 대단하다. 그렇게 결론 내리자.”

김정대는 웃으며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고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 앞에 도착한 김정대와 한진영은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만지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구. 이게 누구입니까? 우리의 영웅. 우리 신성증권의 히어로. 한진영 팀장 아닙니까?”

사무실에 들어오는 한진영을 향해 호들갑을 떠는 남원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한진영 앞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한진영을 번쩍 안았다.

남원석은 한진영을 안은 뒤 몇 번이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대단해요. 대단해. 정말 대단합니다.”

대단하다는 말을 연속해서 몇 번이나 한 남원석은 품에 안겨있던 한진영의 양어깨를 잡고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어디서 이런 귀한 분이 우리 신성증권에 오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김 본부장님. 안 그렇습니까?”

김정대는 자기를 향해 본부장이라고 부르는 남원석의 말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남원석은 한참 동안 한진영을 바라보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김정대를 돌아봤다.

그리고 김정대의 표정을 확인하고 웃었다.

“아하. 제가 본부장이라고 불러서 놀라셨나 봅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내려온 것은 아니지만 내부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FICC를 본부급으로 승격시킬 계획입니다.”

남원석의 말에 김정대는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아무런 말과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김정대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남원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왜 그러십니까? 기존에 김 본부장님의 경우에는 새로운 사업부가 생겨서 부문장으로 강등 아닌 강등을 당하신 것 아닙니까? 본래의 자리를 찾으신 것이니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김 본부장님의 살신성인과 같은 선택을 회사가 감사해야 하지요.”

“아닙니다. 살신성인이라니요? 그저 회사에 도움이 조금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한 선택입니다. 그렇게 잘 봐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와 회사 모두 김 본부장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기억한다는 말에 김정대는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한진영의 조언을 받아들여 사업부를 맡았을 때는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기도 했다.

본부급을 맡아 다스리던 사람이 사업부로 내려앉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이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성과를 내며 본부급으로 격상된 것에 김정대는 자기의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더욱 영향력이 커질 FICC를 떠올리며 한진영에 대한 고마움 마음이 생겨났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곁에서 김정대를 향해 말없이 축하의 인사를 눈빛으로 건넸다.

김정대는 한진영을 향해 마주 눈을 맞추었다.

‘고맙네.’

‘그 마음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럴 일 없어.’

‘어디 종이에 써서 남겨놓고 싶네요.’

‘좋아. 그렇게 하자고.’

김정대와 한진영은 한동안 웃으며 눈으로 대화했다.

“자 그럼 가서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남원석이 김정대와 한진영에게 말을 건네고 나서야 둘은 눈빛으로 나누던 대화를 멈췄다.

그리고 남원석을 따라 응접용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남원석은 밖에 차를 내올 것을 전하고 한진영을 다시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

“기억합니까? 그날 처음 여기 와서 나에게 한 팀장이 했던 말 말입니다.”

남원석은 그날을 떠올리는 듯이 잠시 허공을 바라본 채 말했다.

“몇 달 전 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날 한 팀장이 찾아와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요.”

허공을 쳐다보던 남원석은 고개를 내려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그날 그랬지요? 우리가 직접 운용할 수 있다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네. 그랬습니다.”

“그때 믿지 않았어요. 대한그룹이 얻은 그런 큰 수익률보다 어떻게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인지 말입니다. 그런데…… 놀랐습니다. 수익률 300%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저는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김 본부장님. 흔하지 않은 일이지요?”

남원석이 김정대를 향해 묻자 김정대도 신이난 모습으로 대답했다.

“흔하지 않습니다. 흔할 수가 없지요. 수익률 300%는 어디에 가서도 볼 수가 없는 수익률입니다. 게다가 금액도 금액이고 기간도 그렇고…… 역대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성증권이 설립된 이후 가장 큰 수익에 가장 높은 수익률일 겁니다.”

김정대가 한껏 칭찬의 말을 건네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자부심마저 느껴질 것 같은 김정대의 눈빛에 한진영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남원석은 김정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맞아요. 다들 그럽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입니다. 한 팀장. 대단합니다.”

한진영은 남원석의 칭찬에 살짝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원석에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 모든게 사장님이 저를 믿고 밀어주셔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하하하. 이런 한 팀장님의 모습. 보기 드뭅니다. 요즘 이런 친구가 있다고 어디 생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김 본부장님?”

“저도 동의합니다. 여러 가지로 한 팀장은 요즘 친구 같지가 않습니다.”

남원석과 김정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진영을 띄워줬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지금은 그들이 그런 말을 할만한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는 수익률에 높은 실적.

본사에서 신성증권을 장악하고 실적을 끌어올리라고 내려온 사장에게 이것보다 좋은 선물은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알아서 직원들이 일을 찾아 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원석 입장에서 지금처럼 즐거운 일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본사에서 올해 우리 증권사의 실적에 기대가 대단합니다. 지난해 실적을 이미 초과달성 했으니 새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본사에 말했습니다. 실적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본사에서도 제 말에 동의했고 특별상여금을 조만간 준비해서 고생이 많은 직원들에게 수여한다고 합니다. 물론 한 팀장은 이런 특별상여금 외에 따로 성과급이 지급될 테고요.”

남원석은 잠시 자켓 안에 손을 집어넣어 흰 봉투 하나를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한진영 앞으로 슬며시 밀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그런 것 외에 내가 따로 마련한 격려금입니다. 사양하면 섭섭할 테니 사양하지 마세요.”

남원석이 빙그레 미소 짓고 봉투에서 손을 뗐다.

한진영은 잠시 봉투를 내려보다 집어 들고 남원석을 향해 다시 한번 고개 숙였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사장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나는 이런 한 팀장님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한진영은 봉투를 품 안에 넣었다.

남원석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어디까지 우리가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한진영은 봉투가 들어간 품에 잠시 손을 올려놓은 뒤 대답했다.

“상품과 관련된 것들은 이제 슬슬 정리를 해 나갈 생각입니다.”

한진영의 대답에 곁에 앉아있던 김정대도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의 뜻이 곧 FICC 본부가 가는 방향이었기에 한진영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한진영은 김정대와 남원석을 번갈아 바라본 뒤 계획을 이야기했다.

“상품을 비롯한 외환 등의 것들은 길게 가지고 가기 어렵습니다. 그때그때 바뀌는 분위기에 대응을 해야 하는 것들이니까요. 채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길게 끌고 갈만한 시기가 아닙니다.”

“채권도?”

김정대는 고개를 갸웃하며 한진영에게 물었다.

“다른 것들이야 자네 말이 맞기는 한데…… 채권은 더 끌고 가볼 만하지 않아? 얼추 위기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다 끝났으니 말이야. 내 생각에는 여기서 채권 가격이 요동칠만한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요. 그리스 문제가 잊을만하면 계속 이야기될 겁니다.”

“그리스 이야기가 계속 이야기된다고? 끝난 거 아니야?”

구제금융을 통해 그리스에 더는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이었다.

그런데 한진영만은 끝난 게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김정대는 의문을 담은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자네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네. 제가 직접 그리스를 다녀오며 느낀 것은 이대로 그리스가 가만히 구제금융을 받음으로 일을 마무리 짓지 않으려 할거라는 겁니다.”

“그리스가? 아니 위험에 처해진 그들을 외부에서 구해줬는데 왜 당사자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거야? 그럼 가만히 있지 않고 그들이 뭘 할 것 같은가?”

“아마 내부에서 현 정권의 실책을 분명히 걸고 넘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주범으로 오히려 현 정권을 지목할 테고요. 이걸 바탕으로 분명 IMF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구제금융에도 불만 섞인 이야기를 주장할 겁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한번 겪었던 것이라서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한번 겪었던 일…… 하긴 그렇지.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 IMF를 비롯한 돈을 빌려준 곳들의 간섭이 시작될 테니까. 우리도 그런 간섭에 대한 불만 섞인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지. 그럼 그 일이 그리스에서도 벌어진다는 이야기야?”

“우리나라는 양반입니다. 말로만 끝났으니까요. 하지만 유럽은 다릅니다. 거기는 수틀리면 튀어나와서 때려 부수는 것으로 시위를 시작하는 곳이니까요. 그런 곳이 가만히 외부의 간섭을 당하고만 있을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구제금융은 진통을 겪으며 나아갈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는 동의했다.

자기들의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해 과격행위를 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곳이 서구권의 시위 형태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그리스의 채권을 들고 가는 건 위험한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내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쯤에서 잘 먹었다고 생각하고 손을 터는 게 좋습니다. 우리는 방향만 잡아놓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이상징후에 맞춰 들어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방향이라면…….”

“그리스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방향 말입니다.”

“아~ 이해했네. 이해했어.”

지금은 채권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그리스 내부에서 반발이 튀어나온다면 채권 또한 다시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한진영은 자리 깔고 주저앉아 그런 등락을 온몸으로 맞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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