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95화 (95/650)

95화 팀에서 사업부로의 격상을 노린다

임원 회의가 끝나고 나오자마자 장근수는 한진영을 찾았다.

“어이 한 팀장.”

임원 회의에서 당장에라도 불을 뿜을 것 같던 장근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진영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화통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너에게는 특별히 싸게. 어? 싸다는 표현이 좀 그런가? 그럼…… 할인…… 이것도 그런가?”

“그만해라.”

김정대는 친구이자 동기이며 함께 일을 하는 장근수가 창피했는지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장근수는 신이 났는지 한진영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기존 수수료율보다 더 좋은 가격으로 계약해줄게. 어때? 좋지?”

“흐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테스트니까요. 그리고 저희가 수수료를 많이 내면 본부장님 쪽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서는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장근수가 슬쩍 김정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마치 김정대가 못 듣게 슬며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말했다.

“자네 쪽에는 안 좋은 일 아닌가? 김 본부장이 섭섭해할지도 몰라. 그럼 나도 좀 곤란하고…….”

“다 들려.”

김정대는 기분 좋게 장난을 치는 장근수를 들고 있던 서류철로 내리치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 팀장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진짜? 진짜 그렇게 해도 돼? 이러면 내가 정말 미안한데…….”

“미안해할 것 없어. 저 친구가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겠지.”

“오~ 믿음이 아주 강해. 좋아. 나도 믿음으로 보답을 해야지. 자네가 원하는 쪽으로 모두 맞춰줄게. 나는 그냥 사인만 할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 정리해서 계약서 가지고 와.”

“알겠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장근수는 신이 난 듯이 한진영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김정대는 그런 장근수의 뒷모습을 바라본 뒤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괜찮으니 말씀하세요.”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가 입술을 한번 꽉 깨물고는 물었다.

“자네…… 내 밑에 계속 있을 생각이 없는 거 같군그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이해하니까.”

김정대의 말에 한진영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김정대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잠시 딴 곳을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팀으로 계속 놔두기에는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지. 사람도 그렇고 하는 일도 그렇고…… 그렇다고 우리 FICC를 나가 다른 곳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짧은 시간 만에 너무 커졌어.”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살며시 미소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김정대였다.

굳이 여러 가지 말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김정대의 모습에 한진영은 만족했다.

“역시 눈치채셨군요.”

“그래. 자꾸 자네가 권한을 늘려달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하는 일도 우리 FICC 분야를 뛰어넘으려 하는 것도 그렇고…… 모를 수가 없지. 자네 사업부로까지 TF팀을 키울 생각을 하는 거지?”

“맞습니다. 이대로 계속 팀으로 남아 있기에는 비좁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앞으로 일을 하려 한다면 팀이라는 명찰은 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업부. 좋아.”

한진영이 생각하는 것은 더 큰 것이 있지만 회사 내에서의 목표는 우선 TF팀을 사업부로까지 격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야 구차하게 권한을 늘려달라는 말을 할 필요 없이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대는 그걸 바로 눈치채고 이야기 한 것이었다.

“이번 건을 성공시키면 사업부로의 격상에 내가 적극 지지해주지. 단, 이번 건을 성공시킨다는 조건 하에서야.”

“저는 분명 테스트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알아. 그런데 내가 자네를 알지.”

김정대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렸다.

그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다른 이들에게 테스트라고 말하고 있지만, 자네가 설정한 목표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테스트의 수준을 까마득히 넘는 수준 아닌가?”

한진영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김정대는 들고 있던 서류철로 한진영의 가슴을 두드렸다.

“가자. 도대체 그 잘난 퀀트가 얼마나 잘 되는지 나도 직접 보고 싶으니까.”

김정대가 앞서 걷자 한진영이 자그마하게 웃음을 흘리며 뒤를 따랐다.

***

김석현과 이야기를 나눠 테스트해볼 세 가지 종목을 선별했다.

강우건설, 하이전자, 미래차로 각 업종의 대표 종목들이라 볼 수 있는 곳들이었다.

“팀장님. 제가 주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괜찮은가요?”

김석현이 한진영을 향해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한진영과 테스트 할 종목 세 가지를 선별하기는 했는데, 막상 이곳들의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막연하기만 했던 김석현이었다.

한진영은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김석현에게 말했다.

“잘 모르셔도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잘 모르는 게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종목에 대한 선입견이 없으니까요.”

“선입견이요?”

“강우건설이나 하이전자 모두 과거 워크아웃의 경험을 가진 곳입니다. 게다가 하이전자는 과거 국민주식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식 하는 사람이라면 안 건드린 사람이 없을 정도의 잡주 취급을 받기도 했었고요.”

“네. 그건 알고 있습니다. 동전주 수준까지 떨어져서 일부러 가격을 올리기 위해 액면병합도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뻑하면 유상증자에 채권단이 견디지 못하고 보유주식을 시장에 집어 던지는 바람에 주가가 요동치는 것이 일상인 주식이었죠. 한때 발행 주식 수가 20억 주에 유동비율이 80% 중반대를 훌쩍 넘기는 바람에 누구나 계좌에 담겨 있던 종목. 바로 그게 하이전자의 과거이죠.”

한진영은 모니터에 떠 있는 하이전자를 슬쩍 바라본 뒤 말했다.

“이 정도 아는 것만으로도 벌써 선입견이 생기지 않습니까?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혹은 저놈 또 언젠가는 빠질지 모른다는 것 같은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보유까지 했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선입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김석현은 한진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진영이 보고 있는 하이전자의 차트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렇네요. 제가 알고 있는 게 그게 전부인데도 그걸 바탕으로 선입견이 생기려 하니까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안 좋은 기억밖에 없는 종목에 사심이 안 담기려야 안 담길 수가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사심이 담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오히려 주식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좋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감정이 남아 있지는 않으니까요.”

김석현은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았다.

사심을 담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한 눈으로 종목을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그동안 하이전자가 흘러온 흐름의 정규분포를 비롯하여 수학적인 접근은 김준하가 할 일이었다.

김석현은 분석을 통한 종목의 가치를 산출해내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숫자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그게 핵심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김석현이 한진영의 의도를 알아들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이제 돌아가 세 종목의 분석값을 도출해내려 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인사하고 돌아가려는 김석현을 잡아 세웠다.

“잠시만요.”

김석현은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한진영은 앉은 채로 김석현에게 말했다.

“흐음…… 아무래도 양방향을 보기보다는 한 방향만 보는 것이 더 빠르겠지요?”

김석현은 한진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해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눈만 끔벅거리며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리기만 했다.

“현재 지수가 지난 악재를 딛고 반등한 이후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숨 고르기가 끝난 이후 2,000까지 다이렉트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이후 다시 한번 숨 고르기가 있은 뒤 2,200까지는 무리가 없다고 보고 있고요. 그러니…… 상방으로만 짜보시죠. 어떻습니까? 이렇게 한다면 한결 어깨가 가벼워지겠죠?”

김석현은 한진영의 말에 잠시 멈춰 서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그리고 금세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테스트를 주식시장에서 하시려는 이유가 하방 포지션이 없어서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지수 2,000까지 지수가 상방이라면…….”

“조건을 줄여서 일하는 효율을 높이는 편이 좋을 듯싶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방향을 안다면 분석과 전략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선물 시장이라면 상방과 하방 모두를 신경 써야만 했다.

매수와 청산 포지션만 있는 주식시장에 비해 매도 포지션이라는 것 하나를 더 신경 써야 했던 것이다.

한진영은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하려는 바를 잘 이해할 것 같은 김석현을 올려다본 채 말했다.

“선물 시장보다 포지션이 하나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짓수가 엄청나게 줄어들 겁니다. 거기에 방향까지 한 방향이라면 어떻습니까? 이렇다면 일이 더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단순히 한쪽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넘어 경우의 수가 확 줄어드는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이 이야기했다면 2,000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이유라도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야기한 사람이 한진영이었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기보다 한진영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다.

김석현은 한진영의 말에 알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표현했다.

“코스피를 2,000까지 열어둔다는 것만 알아도 저희 쪽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바로 준비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 편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하여 대충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진영이었다.

하지만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해준다는 생각으로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들은 김석현은 허리까지 숙여가며 인사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한진영이 한 방향만을 가리키자 일은 생각대로 수월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하방에 대한 위험을 지운 상태에서 전략을 수립한다는 것은 일이 반을 넘어 십 분지 일까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김준하의 수치화도 탄력을 받았다.

김준하 입장에서도 과거 하락 시에 보여줬던 데이터를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정규분포의 복잡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준하와 김석현이 빠르게 치고 나가자 오히려 박도하 측의 프로그램이 빠듯해지고 말았다.

“많은 기능을 넣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속도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박도하는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덕지덕지 붙은 HTS의 기능들에 신물이 났던 자기가 TF팀에 와서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에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도하는 한진영의 조언에 정신을 차리고 프로그램을 새롭게 손봤다.

그리고 본연의 임무인 속도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갔다.

박도하가 초심을 찾는 순간 프로그램 쪽의 일도 탄력을 받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잘 맞물려 돌아갔다.

***

약 한 달간의 시간이 흐르자 나뉘어 있던 부서 간의 업무가 점차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김석현이 분석하여 짠 전략에 김준하의 수학적 공식이 더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고리즘을 박도하가 만든 프로그램에 얹자 지난번 한진영이 보여줬던 프로그램과는 다른 제대로 된 퀀트매매를 위한 프로그램의 시제품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기본적인 것들이 모여 조립이 끝나자 시연회를 가지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오늘 TF팀의 직원들은 모두 회의실에 모여 박도하가 만든 프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번에 한진영이 보여줬던 프로그램보다 더 허접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박도하가 선보인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실행과 종료 버튼만 있을 뿐. 그 외의 것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을 보고 한진영의 눈치만 살폈다.

한진영은 당황한 다른 팀원들과 달리 차분한 모습으로 가만히 프로그램을 살피고는 박도하에게 물었다.

“수치를 입력할 공간과 어떤 종목을 할지 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한진영도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안 팀원들은 시선을 박도하에게 돌렸다.

과연 박도하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지난번 한진영의 경우야 급하게 만드느라 그런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시연을 하면서도 한진영이 미리 언급하며 개념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달라붙어 진행했는데 지난번에 한진영이 보여준 것보다 못한 것에 사람들은 이상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도하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지 미소를 머금고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수치를 바꾸거나 종목을 바꾸는 등의 것들까지 다 쳐냈습니다. 최적화라는 목표를 위해 어떤 것도 외부에서 손을 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대신 속도를 높였습니다.”

“속도요? 그럼 처리 건수가 기대 이상이라는 뜻인가요?”

한진영의 질문에 박도하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살폈다.

한진영은 박도하의 모습에서 자신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 한진영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박도하가 증명했다.

“최대 초당 천 건의 주문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됐습니다.”

“천 건이요?”

한진영은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속도를 강조했다고 하기로서니 시제품에서 이런 제품을 내놓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처음부터 지난 시절 박도하가 만들었던 최종 프로그램에 가까운 성능을 보유한 프로그램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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