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오늘은 맞지만, 내일은 틀릴 수 있다
김준하의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이성우였다.
그리고 한진영이 도움을 주어 김준하의 급한 불을 껐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눈이 돌아갈 정도의 성과급을 받으며 빚에 대한 걱정이 어느 정도 사라진 김준하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제 걱정을 덜었다는 것이지 불씨까지 모두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동굴 같은 집에서 나와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 더욱 필요했던 김준하였다.
그래서 돈에 관심이 많은 모습을 종종 보였었다.
음료수를 마실 때도 슬쩍 이성우가 계산할 때 자기 음료수를 놓는다던지, 밥을 먹으러 갈 때 말없이 끼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정도였다.
술을 먹거나 좋은 곳을 갈 때는 마치 자기는 억지로 따라오는 사람이기에 돈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쩌면 얄밉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김준하의 모습이었지만 이성우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자기처럼 돈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김준하처럼 돈에 집착해야 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김준하가 얄밉게 행동해도 모르는 척 넘어갔던 이성우였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김준하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고 돈을 가지려고 노력하는지 말이다.
게다가 지금 자동매매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큰 축 중에 하나였다.
가지고 싶다면 자기보다 먼저 이야기했을 것이 뻔해 보이는 김준하였다.
그런 김준하가 아무런 말이 없었다는 사실에 이성우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왜? 왜 가만히 있는데?”
한진영은 이성우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김준하를 가리키고 대답했다.
“직접 물어봐.”
이성우가 고개를 돌려 김준하를 바라봤다.
이유를 알려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서 어서 빨리 말하라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김준하는 한진영과 이성우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성우의 눈빛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하지 마세요.”
“뭘?”
“여기 한진영 팀장님이 말한 대로…… 할 생각 마시라고요.”
“그러니까. 이유를 알려달라고. 왜? 왜 넌 안 하려고 하는 건데?”
김준하는 답답하다는 듯이 발로 땅을 구르고 소리쳤다.
“가지고 가봤자 소용이 없으니까요.”
“소용이 없다고?”
이성우는 양미간을 찌푸리고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마치 김준하가 제대로 말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성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물었다.
“이거 나만 못 알아듣는 거냐?”
한진영은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성우가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네가 가지고 가서 돌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야.”
“왜? 왜 소용이 없는데? 집에 돌리면 경찰이라도 찾아온대? 누가 잡으러 오는 거야? 하지 말라고 막 총 겨누고?”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흔들었다.
“하여튼 너도…… 좋아. 네가 그렇게 궁금해하니 설명을 해줄게.”
“그래. 설명을 해줘.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말이야.”
“잘 들어봐.”
이성우는 한진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한진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진영은 집중하고 있는 이성우를 향해 천천히 설명했다.
“오늘은 돈을 벌 수 있는 알고리즘이지만 내일도 맞는다는 보장이 없어.”
“어?”
“오늘은 맞지만, 내일은 틀릴 수 있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이성우가 김준하를 돌아봤다.
김준하는 한진영의 설명을 이해한 것인지 깊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성우는 그런 김준하의 모습을 보고 한진영이 자기를 놀리기 위해 한 말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진영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다시 설명했다.
“너도 이 판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알 거야. 오늘 맞는 기법이 내일 맞는다는 보장이 없어.”
“그건…… 나도 알아. 기법이 매번 바뀐다는 건…….”
“그래. 오늘은 쌍 바닥이 전저점을 살려놓은 상태에서 완성된다지만 내일은 전저점을 깬 상태에서 완성될 수도 있는 거야. 프로그램 속에 들어있는 알고리즘도 마찬가지야. 수학 공식처럼 천년만년 정의될 수는 없다고.”
“그럼…… 잘 돌아갈 거라 생각해서 집에서 돌리다가 어느 순간…….”
“그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거야. 자동이 그게 무서운 거야. 수익도 꾸준히 쌓을 수 있지만 반대로 손실도 꾸준히 쌓이게 할 수 있다는 뜻이야.”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일정 손실이 나오면 자동으로 커트해주는 기능을 넣어주면 되잖아. 우리 HTS에도 손실을 막기 위해 스탑 로스 지점을 지정할 수 있어서…….”
“성우야.”
한진영이 이성우가 말하던 것을 막아 세웠다.
그리고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도 회의에 참석해서 알 거 아냐. 컨셉 자체가 속도를 높이려 하고 있어. 그런데 그런 기능을 넣자고? 너를 위해서?”
“꼭 나를 위해서는 아닌데…… 다른…….”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진영은 이성우의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애초에 그런 기능으로 손실을 막으려 한다는 것 자체가 알고리즘이 잘못됐다는 뜻이야. 손실을 막아주는 기능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이제 알겠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을 이제야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이성우를 더욱 세게 끌어안고 말했다.
“손실이 난다면 알고리즘을 손보고 지금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해. 한번 뚝딱 만들고 천년만년 돌리는 게 아니라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만약 잘못된 곳이 있다면 어디가 잘못됐는지도 매번 확인하고 거기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소리야. 그런데 그걸 네가 혼자 할 수 있겠어?”
“아니. 할 수 없지.”
“그럼 매번 고친 것을 가지고 가서 집에서 돌리겠다고?”
“그건…….”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진영은 시무룩해진 이성우의 모습에 어깨를 둘렀던 팔을 내렸다.
“지금이야 이제 시작인 단계라 여러 가지로 간단하게 만들고 있지. 시간이 지나면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더 복잡해진다고?”
“당연하지.”
한진영이 이성우와 대화하며 김준하를 바라봤다.
마치 김준하에게 잘 들으라는 식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지금 알고리즘이 돌아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것만으로 안돼. 각 회사의 전세기가 어디로 날아가고 있는지, 컨테이너를 실은 배가 몇 척이나 대서양을 건너고 있는지, 북미 물동량을 책임지고 있는 히스패닉계 운전자들의 비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등등. 네가 생각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이 수치화되어 들어가게 될 거야.”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황당하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쳐다봤다.
“단순하게 차트의 흐름만을 넣는 건 기초적인 수준이야. 그리고 이건 앞으로 아주 짧은 순간만 먹히게 될 거야. 아주 짧은 순간만…….”
잠시 말을 멈춘 한진영은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계속 이야기했다.
“지난 회의실에서 보였던 초단타매매도 지금이야 전가의 보도처럼 느껴질 테지만 규제가 들어간다면 불편해지기는 마찬가지일 거야.”
“규제한다고? 프로그램을?”
“당연하지. 정부에서 이대로 놔둘 거 같아? 여러 곳에서 하면 그 부하를 어떻게 감당하겠어?”
“그럼 우리는?”
“우리는 규제가 없을 때 먹고 튀어야지. 그러니 우리는 그 이후까지도 준비를 해야 해. 지금부터……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준하야?”
한진영의 말에 김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볼 수 없는 것까지 모두 계량화하라는 말씀이시잖아요.”
“역시…… 잘 알아들어.”
한진영은 만족하고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까지 이성우는 당황한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었다.
단순하게 한번 짜인 것을 집에 가지고 가 돌리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지금 사람들 앞에서 보여준 초단타매매는 규제 전에 먹고 빠지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도대체 한진영이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할 지경이었다.
“뭘 멍하니 그러고 있어? 그러니 앞으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혹시 나하고 친한 걸 알고 너한테 접근해서 아까 네가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 선에서 알아서 정리해. 알았지?”
“어? 어. 그럴게. 그래야지.”
“가자. 다음 주에 본부장님 앞에서 2차 시연회를 하려면 검토할 게 한둘이 아니니까.”
한진영이 먼저 사무실로 향하자 김준하와 이성우가 한진영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처음 한진영이 시연회를 보인 뒤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TF팀의 모든 사람들은 두 번째 시연회를 위해 밤잠까지 줄여가며 일했다.
FICC 본부의 직원들은 이런 TF팀의 업무 강도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이번에 TF팀에 나온 성과급이 얼마라고?”
“분기 성과급으로 1억 2천이 나왔다고 해요. 일반 팀원이요.”
회의실에 모여 있는 팀장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TF팀의 팀원들을 살피며 이야기를 나눴다.
“히야. 나보다 성과급이 많이 나오네. 아니지. 나보다 10배를 받았다고 하는 편이 맞는 표현인가?”
“그래도 양 팀장님은 성과급 많이 받으셨네요. 저는 겨우 200 받은 게 전부예요. 그런데 저 팀은 일개 팀원이 1억이 넘는 성과급을 받고 있으니…….”
“부러워?”
“부럽다기보다는…… 뭐 솔직히 부럽죠. 팀원이 1억이 넘는 성과급을 받았다면 한 팀장은 도대체 얼마를 받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희의실 탁자 끝에 앉아 분주하게 조금 뒤 있을 시연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진영을 팀장들이 잠시 바라봤다.
“10억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더라.”
“10억이요?”
원자재 팀의 정 팀장이 놀란 눈으로 외환 팀의 양 팀장을 바라봤다.
양 팀장은 정 팀장의 놀라는 말소리에 짧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우리 회사 이번 분기 최대 성과급자라고 그래. 하긴. 왜 안 그렇겠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저 한 팀장 덕분에 우리 FICC가 본부로까지 올라간 건데.”
“본부로 승격된 게 한 팀장 혼자만의 일인가요?”
“입이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온전히 한 팀장의 성과지 그럼 아닌 거 같아서 그러는 거야?”
“저희 모두…… 다 같이 열심히 했잖아요.”
정 팀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도와달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자리에 있는 다른 팀장들도 모두 양 팀장의 말에 동의하는 것인지 정 팀장의 시선을 외면하기만 했다.
양 팀장은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정 팀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봐. 정 팀장. 성과는 돈이 알려주는 거야. 자네 성과급이 200이면 200만큼만 일한 거야. 그걸 모르겠어?”
양 팀장의 말에 정 팀장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다른 업종도 아니라 돈을 가지고 노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받는 돈이 능력이 되는 세상이었다.
회사가 200을 줬다는 뜻은 200만큼의 값어치밖에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던 것이었다.
양 팀장은 정 팀장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다시 돌렸다.
“하여튼 난 놈이야. 오늘 봐. 오늘 우리 앞에서 시연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 이제 슬슬 외부로 공개해도 될 만큼의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 아니겠어?”
“정말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그렇게 매매를 잘할까요?”
양 팀장은 조용해진 정 팀장 뒤에 앉아있던 채권 팀의 신임 팀장인 구 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과거 한진영과 날을 세웠던 팀장은 좌천되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하게 됐다.
소문에는 다 쓰러져가는 지방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는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한진영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알아서 회사가 정리했던 것이었다.
양 팀장은 구 팀장을 슬쩍 한번 바라보고 말했다.
“나도 그게 궁금해. 중간 과정 없이 바로 기계가 매매하는 시대로 접어든 게 과연 성공할지…… 오셨다.”
양 팀장이 말을 하는 사이 김정대 본부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각 팀의 팀장들은 물론이고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TF팀의 팀원들도 하던 것을 멈추고 들어온 김정대를 향해 인사했다.
“어. 어. 하던 거 마저 해.”
김정대는 가볍게 인사를 받고는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어때? 잘 될 거 같아?”
“잘 안 되면 문제가 있지요.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을 썼으니까요.”
김정대는 화면이 보일 스크린을 슬쩍 돌아보고 말했다.
“지난번에는 잘됐다며? 그때 내부 시연회를 펼쳐 보인 뒤 소문이 자자했어. 컴퓨터가 자동으로 매매하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고…….”
김정대는 한진영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살짝 말했다.
“처음에는 비공개로 진행하려고 했는데 공개로 전환한 거 보니까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네. 오늘 공개하고 바로 적용할 생각입니다.”
“잘됐네. 안 그래도 장 본부장이 징징대더라. 빨리 돌려야 자기네들 실적도 늘어날 텐데 도대체 언제 하는 거냐고 말이야.”
김정대의 말에 한진영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2차 시연회 준비가 모두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