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98화 (98/650)

98화 빈틈이 있더라도 우선 돌리고 보자

박도하가 앞에 나와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했다.

“한 팀장님의 지시대로 이번에는 초당 천 개의 주문이 한 종목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여러 종목에 들어갈 수 있게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알고리즘을 비롯하여 옵션 등을 수정할 수 있는 외부 프로그램까지 임시로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모든 옵션은 이 외부 프로그램을 통해 입력될 것이며 입력된 값을 통해 프로그램은 최적화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박도하는 외부프로그램에 들어갈 옵션 등을 하나하나 사람들 앞에 설명해 나갔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눈으로 박도하의 설명을 들었다.

외부 사람들 앞에 첫선을 보이는 프로그램치고 꽤 높은 수준의 완성도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놀라는 마음 감추지 못했다.

박도하는 설명을 마친 뒤 준비되어 있던 설정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종목과 각 종목에 쓰일 알고리즘 그리고 초당 처리 건수 등이 하나하나 적혀갔다.

박도하는 모든 것을 적어 넣은 뒤 최적화를 진행하자 프로그램이 입력된 것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변형됐다.

박도하는 최적화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은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로 세 종목만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박도하가 실행시킨 프로그램은 강우건설과 하이전자 그리고 미래차에 대한 매매가 시작됐다.

지난번보다 매매 건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종목당 초당 한 건 정도의 주문이 들어갔다.

미리 박도하가 사람들이 확인하기 쉽도록 주문에 표시하지 않았다면 어떤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한진영은 만족한 모습으로 곁에 앉아 있는 김정대에게 설명했다.

“속도를 조금 줄였습니다.”

“그러게. 자네가 설명한 것과는 좀 달라. 내가 생각했을 때는 주문이 미친 듯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대신 세 종목에 주문이 동시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계속 늘릴 수 있고요.”

“범위를 늘린다?”

“우선 시연회 때는 3종목이지만 시연회가 끝난 뒤 베타테스트 때는 10여 개 종목으로 범위를 늘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코스피 200과 코스닥 10여 개 종목 정도를 동시에 돌리는 것이 목표이고요.”

김정대는 한진영의 설명에 웃음을 흘렸다.

한진영의 계획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진영이라면 해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과 김정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프로그램은 계속 매매를 이어갔다.

사람은 쉬는 시간이 있어도 기계는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지난 첫 시연회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10여 분 동안 계속 매매가 이어졌다.

아무런 설명 없이 매매만 이어지는 시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지겨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만큼 재미있는 시간이 없다고 느껴질 만큼 화면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날 것 같은 회의실에 한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10분 됐습니다. 그만 정리 들어가세요.”

한진영의 지시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한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 왜 벌써 끝내느냐는 원망 섞인 눈초리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이런 사람들의 눈빛에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다들 이제 어떤 성적이 나왔는지 확인하도록 합시다. 박 대리님. 거래내역 띄워 주세요.”

한진영의 지시에 박도하가 프로그램의 거래내역을 스크린에 띄웠다.

한진영은 사람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성적을 공개했다.

“투입 금액은 지난번보다 많은 10억. 그리고 나온 10분 동안의 성적이…… 강우건설에서 10만 원, 하이전자에서 8만 원, 미래차에서 7만 원. 도합 실수익 25만 원이네요.”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소리를 따라 거래내역을 살폈다.

그리고 수익과 함께 띄워진 수수료를 보고 혀를 찼다.

“총수익이 55만 원인데 그중 수수료가 30만 원이라 수익이 25만 원이야? 아무리 세금이 포함된 가격이라지만…… 이거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니야?”

“딱 좋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익과 수수료의 비율이 일대일이었거든요.”

“일대일?”

“네. 비록 지금은 20%의 차이를 보이지만 조금만 손보면 목표로 한 것까지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딱 좋네요.”

한진영의 말에 김정대는 피식하고 웃었다.

“장 본부장이 무지하게 좋아하겠어.”

“다 같은 식구니까요. 수수료가 많이 나간다고 하더라도 뭐 이 수수료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세금은…… 많이 내면 좋지요. 나라에 큰 도움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래. 좋지. 좋아. 모두 돈을 버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니까 바로 시작해도 될 거 같아. 준비하고 바로 진행해.”

별다른 질문도 건네지 않은 김정대였다.

원자재 팀의 정 팀장은 놀란 눈으로 김정대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하는 외환 팀의 양 팀장을 향해 물었다.

“저게 좋아 보인다고 생각해서 본부장님께서 허락하신 건가요? 겨우 25만 원 수익이잖아요.”

“이봐. 정 팀장.”

양 팀장은 놀란 표정을 짓던 얼굴을 거두고 정 팀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자네는 뭘 본 거야?”

“제 말이 맞잖아요. 수수료와 세금 떼고 10억에 25만 원 수익. 지난 소문에는 5억에 20만 원 수익이라고 했는데…… 게다가 그때는 5분이라고 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보세요. 금액과 시간이 2배로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익이 오른 건 작으니 오히려 퇴보한 거 아니에요?”

정 팀장의 말에 양 팀장은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스크린을 향해 턱짓했다.

스크린에는 여전히 거래내역이 떠 있었다.

“잘 봐. 저걸 보고도 느끼는 게 없어?”

“저게…… 왜요?”

정 팀장은 양 팀장의 말에 거래내역을 다시 살폈다.

10억이 투입됐다고는 하지만 한 번에 매매한 양 자체가 매우 적었다.

적을 때는 1주를 매매할 때도 있었으며 많아 봤자 7만 원쯤 하는 주식 50여 주 산 게 전부일 정도로 쪼개어 진행된 매매였다.

그래서 생각보다 거래대금도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30만 원의 수수료가 나왔다는 것은 매우 작은 폭의 이득만을 얻었다는 뜻이었다.

정 팀장은 양 팀장의 말을 듣고 거래내역을 살피자 오히려 더 큰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저런 식이라면 10억이라는 투입금액도 사치스럽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양 팀장은 정 팀장의 얼굴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표정을 딱 보니 못 알아들은 얼굴이구먼. 잘 들어. 저 많은 거래내역 중에 손실을 본 게 10%도 안 돼. 게다가 손실조차도 약 손실에 불과하고…….”

양 팀장의 말에 그제야 정 팀장은 정신을 차리고 거래내역을 살폈다.

매매하는 중에 손절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손절을 할 상황은 펼쳐지는 것이었다.

매매를 잘하고 못하고는 수익을 얼마나 많이 내느냐가 아니라 손절을 얼마나 잘하느냐로 판가름이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매에서 손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했다.

양 팀장은 눈을 가늘 게 뜨고 거래내역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정 팀장을 향해 설명했다.

“기계 같은 손절을 많이들 이야기하는 데 봐봐. 저게 바로 흔히들 말하는 기계 같은 손절의 정수야. 본부장님도 저걸 보고 느끼신 거야.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이건 안정적이라는 걸 말이야. 그리고 수익이 낮은 것도 아니야. 10분에 25만 원이면 1시간에 150만 원이야. 하루에 천만 원. 10억에 천만 원. 수수료와 세금 떼고 하루에 1%. 모든 투자자가 꿈에 그린다는 매일 1%의 수익. 이게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그냥 지켜보는 시간도 아까우시겠지. 본부장님 입장에서는…….”

양 팀장의 말대로였다.

김정대는 이럴 줄 알았다면 시연회를 할 게 아니라 바로 베타테스트라도 하자고 할 걸이라며 아쉬워했다.

김정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계속 앉아있으면 자기 때문에라도 일의 진행이 더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자기와 같은 사람은 빨리 자리를 떠야 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김정대는 한진영에게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었다.

“언제 시작할 수 있어?”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돌리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김정대였다.

금융시장에서 먹고사는 입장에서 이런 걸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진영은 김정대의 모습에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바로 준비해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돌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쾅!

김정대는 회의실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자네는 시원시원해서 좋아. 완벽하지 않아도 돼. 바로 돌려서 시작하자.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냥 놔두면 벌을 받을만한 프로그램이야. 빈틈이 조금 보이는 것 정도는 무시해도 돼.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알겠습니다.”

김정대는 만족한 모습으로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갔다.

***

FICC 본부장과의 시연회 이야기는 당일 저녁때부터 화제가 됐다.

지난 첫 시연회와 그전에 있었던 TF팀장이 마련한 자리 등등 모두 화제가 되기는 했지만, 이번은 그 강도가 달랐다.

FICC뿐만 아니라 신성증권 전체를 들썩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매매라는 개념을 뒤집는 일이 벌어지려 하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은 TF팀에 쏠렸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흘러 프로그램을 돌리는 날이 되었다.

“셋!”

“둘!”

“하나! 시작합니다.”

한진영이 말을 마치고 엔터키를 눌렀다.

일반적으로 쓰는 업무용 컴퓨터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본체 옆에 놓여 있는 키보드를 누른 한진영은 팀원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팀원들과 악수를 했다.

한진영은 그동안 고생했던 팀원들과 감격을 잠시 나눴다.

그리고 한쪽에서 서서 모니터를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 김정대에게 다가갔다.

김정대는 한진영이 다가온 것을 확인하고 모니터와 그 앞의 벽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화면을 저기 저 벽에다 쏘는 건 어때?”

한진영은 김정대의 말에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왜요?”

“사람들 앞에 자랑하고 싶어서 그렇지.”

김정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지난 시절 본격적으로 국내에 이와 같은 프로그램 들어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여가 지난 다음에서야 가능했다.

미국에서도 알음알음 이제 시작하려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할 뿐, 이렇게 HFT라고 불리는 초단타매매가 본격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만한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곳보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것에 한진영도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김정대의 마음은 이런 한진영의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신기한 물건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었다.

“봐라. 우리는 이렇게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뭐 이런 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거지.”

“그런 것보다 본부장님께서는 다른 할 일이 있습니다.”

“다른 일?”

김정대가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한진영을 바라봤다.

웬만해서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 한진영이었다.

이렇게 숨김없이 그대로 무언가를 해달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기에 김정대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내가 해줄 일이 있다는 이야기야?”

“네. 바로 이거요.”

한진영은 컴퓨터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이야 10개 종목만 돌리고 있어서 이거 하나로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컴퓨터와 더 좋은 시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가 되겠지만, 라인을 하나 새롭게 따 주시는 것도 고려해주시고요.”

“라인을 하나 따?”

“네. 지금은 기존 우리 신성증권의 HTS를 이용해서 들어가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 다리 걸치는 작업이니까요. 바로 증권거래소에 주문을 넣을 수 있는 라인을 하나 따 주셨으면 합니다.”

김정대는 한진영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김정대의 웃음소리에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던 사람들은 김정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김정대는 한참이나 웃음을 터트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웃음을 멈춘 김정대가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프로토타입이라느니 베타테스트라니 말을 했지만 사실 난 어느 정도 완성이 됐다고 생각했네. 여기서 나아진다고 해 봤자 이론적인 것의 개선만 필요한 줄 알았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닌가 봐. 나아질 게 한둘이 아닌 것 같아.”

“이건 그야말로 버전 0.01의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버전 1이 정식판이라고 한다면 이건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프로그램이란 것이죠. 개선하고 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본부장님께서 힘을 많이 써주셔야 합니다.”

“하아~ 이 친구.”

김정대는 한진영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몇 번이나 흔들었다.

감탄사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은 김정대는 한진영의 팔을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끝까지 밀어줄 테니까 어디 한번 제대로 해봐. 내가 봤을 때 이건 매매의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놈인 것 같아. 봐봐. 벌써 저 수익이 얼마냐? 가만히 앉아서 저런 수익이 나온다는 게 이게 말이 돼? 정말 놀랍다 놀라워.”

김정대가 모니터링용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실시간으로 수익이 보여졌다.

지난 2차 시연회에서는 3개의 종목이 돌아갔었다면 지금은 10개의 종목이 돌아가는 중이었다.

투입 초기 자본 50억으로 1시간 만에 벌써 5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상태였다.

한진영은 하루 5천만 원의 수익이 기대되는 프로그램을 보며 김정대에게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이걸 국내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선물시장 그리고 상품시장 등등 전 세계 모든 금융시장에 적용할 작정입니다. 부동산 시장과 같이 실시간 거래가 불가능한 곳 외에 컴퓨터로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 곳 모든 곳에 다 써먹을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좋아. 어디 해보고 싶은 것 있으면 다 해보라고. 뒤는 내가 받쳐줄 테니까.”

김정대가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한진영의 말에 대꾸했다.

그때 한진영과 김정대가 있는 곳으로 장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장사 시작했으면 말을 해야지.”

장근수 본부장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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